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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산자락에서 만나는 모든 삶의 형태는 이미 거룩한 종교를 이루고 있다
고행과 절제가 없이는 이 땅에서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을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다
히말라야 대고원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뭇짐승, 들꽃들... 모두 호흡을 삼가할 줄 아는 무욕의 수행자들이다
우리는 이 거룩한 종교의 세계를 순례하면서 내면의 소리, 청연한 지혜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따뜻함이 그립다
난방 자체를 모르는 이 땅에서 아침의 모닥불은 꿈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출발을 앞둔 우리들은 모닥불 앞에 모여서 곁불을 쐬었고, 현지인들은 차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웠다
이 추운 날에도 냉방에서 잠을 자고, 양말도 신지 않은채 슬리퍼 신고 다니는 이곳 사람들을 보면 불가사의하다
산속에서 네번째 밤을 지새고 보니 따뜻한 아랫목과 아내의 포근한 품이 슬슬 그리워지기 시작하였다..그러나 이건 대욕이다
자, 또다시 출발이다
우리는 마차푸차레를 바라보며 스틱을 높이 들고 화이팅을 외치며 하루를 시작하였다
우리는 새벽부터 걷고 또 걸으며 생각을 잊은채 무념무상으로 움직였다
모든 기억과 기대, 바람과 희망도 내가 알 바 아니며, 과거와 미래 따위도 입에 담기 싫었다
모든 사고의 기초가 붕괴된듯 텅 빈 대지 위, 텅 빈 하늘 아래, 텅 빈 한 존재가 다만 미끄러지듯이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히말라야 사람들의 지혜
민가를 걷다 보면 우리나라의 낟가리 같은 이런 형체를 자주 만날 수 있다
지푸라기를 아무렇게나 흩뿌려 놓은 것 같지만 안으로 비가 스며들지 않아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추위는 매섭지만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아 이런 형태의 지푸라기 모듬이 오래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네팔의 아기
이른 아침의 추위를 아랑곳하지않고 아기는 처마 밑에 매달린 바구니 안에서 곤히 잠자고 있었다
아기의 얼굴에는 이미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말라붙어 있었고, 숨소리는 히말라야의 찬바람 소리를 닮았다
이 아이도 커가면서 부모들처럼 히말라야에서 사는 법을 배워서 히말라야인으로 살아가게 되리라
히말라야의 토마토
히말라야의 토마토는 혹독한 추위를 용케도 견뎌내면서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다
그 모양은 찬바람에 그을린 이곳 사람들의 얼굴 같기도 하고, 고산에 사는 염소들의 엉덩이 같기도 하였다
정씨 아줌마가 한 개를 따줘서 먹어보았더니 의외로 사근사근하고 단맛이 강해서 먹을만하였다
시누와(Sinuwa) 2,340m
참롱에서 보면 시누와는 모디콜라(Modi khola) 계곡의 산 중턱으로 보이는 마을이다
특히 밤에 참롱에서 시누와의 불빛을 바라보면 건널 수 없는 피안 같기도 하고, 그리운 고향으로 느껴지기도 하다
그러나 시누와로 가기 위해서는 고도 370m 정도 아래에 있는 촘롱콜라(Chomrong khola)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한다
마차푸차레가 보이는 시누와마을에서 콜라 한병에 120루피(약1,800원)를 주고 사서 마셨다
밤부(Bamboo)에서 점심을 먹다
밤부라는 이름이 암시하듯이 롯지 주변과 트레킹로 양쪽에는 무성한 대나무숲이 우거져 있었다
해발 2,310m에 자리잡은 밤부의 Green View Lodge에서 라면과 쌀밥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식당 안에는 삼성전자의 상표가 선명한 텔레비젼이 놓여 있어서 우리의 국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식당에서 MBC까지 갔다가 고산병이 생겨서 하산했다는 젊은이의 얘기를 듣고 우리는 바짝 긴장하였다
식사를 마친 뒤,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는 마당에서 신발을 벗고 충분히 쉬면서 일광욕을 즐겼다
히말라야의 야생화
우리가 걸어가는 길 양쪽 둔덕에는 앙증스럽고 귀여운 꽃이 많이 자생하고 있었다
네팔인 가이드인 펨바(Pemba)에게 물어보았더니 '바니풀'이라고 하였다(바니=물, 풀=풀)
높아질수록 흰색이 선명해지는 바니풀은 혹독한 히말라야에서 살아가는 고산족들의 깨끗한 미소를 닮아 있었다
원시림 속을 걷다
히말라야의 깊은 속살을 향해 들어감에 따라 눈앞에 다양한 식생이 전개되었다
수백년 묵은 나무 줄기에 이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은 타잔이 나오는 밀림 속 같은 느낌이었다
여름철에는 이 나무들 위에서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들이 떨어져 살을 파고드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
히말라야는 캐내면 캐낼수록 새로움이 솓아나는 신기한 광맥 같아서 높이가 높아질수록 기대가 커져갔다
도반(Dovan) 2,600m
우리가 다섯번째 밤을 지낼 도반에 도착하여 Annapurna Approach Lodge에 여장을 풀었다
도반의 롯지들은 ABC를 향하거나 내려오는 순례객들로 초만원이어서 방을 구하지 못해 그냥 내려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고산병 때문에 내려오는 초등학교 여교사, 제주에서 혼자 온 여인, ABC에서 자고 내려오는 50대 부부....
오후 3시 반에 도착하여 여유를 즐겼지만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서 타이레놀 1정을 먹었더니 금방 가라앉았다
원래는 히말라야호텔까지 가려고 했지만 여기서 주저앉아서 걱정되었다...내일 고도를 1천미터 이상 올려야 하기에 ㅠㅠ
여유있는 휴식
도반은 다음날 ABC까지 올라가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쉬어가며 고소 적응을 하는 곳이다
셀파와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각자 찍어온 사진을 보면서 영웅담을 늘어놓기에 바쁘다
뚜비를 쓴 캐나다인은 어찌나 술을 많이 마시던지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아무 탈없이 ABC까지 올라갔다
롯지 앞의 폭포
우리가 묵은 숙소 앞에는 거대한 폭포가 흐르고 있어서 항상 물소리가 들렸다
아침에는 이 폭포 소리 때문에 비가 오는 줄 알고 깜짝 놀라서 밖으로 나온 적도 있었다
폭포 옆의 움막에서 주방팀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자는 잠자리를 보고 마음이 울컥하였다
우리가 혹시 이들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지나 않은지..???
그러나 우리가 그들에게 밥지을 기회를 주는 것은 그들의 경제를 도와주는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마차푸차레의 일몰
일몰을 마주할 때 우리의 마음은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린다
그저 경이감에 현묵할 수 밖에 없고, 그 숭고함은 언어를 초월해 있고, 시성의 그 어떤 표현보다도 더 깊고 넓다
특히 성산(聖山) 마차푸차레의 일몰은 우주 본연의 아름다움과 무한한 깊이의 생명력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석양을 받아 붉게 보이는 마차푸차레는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막 열리는 경이로운 신세계 같기도 하였다
히말라야의 밤은 길고도 길다
롯지의 불이 꺼지면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침낭 속으로 들어가는게 최선의 방법이다
추위를 타는 사람들은 물통에 뜨거운 물을 담아 끌어안기도 하고, 핫백을 침낭 바닥에 넣어두기도 한다
저녁 8시 쯤에 잠자리에 들면 히말라야의 밤은 길고도 길어 눈을 몇번씩 떠봐도 시간은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나는 긴긴 밤을 견디기 위해 MP3을 꺼내어 미켈란젤리가 연주하는 하이든의 피아노협주곡 11번을 들었다
미켈란젤리의 광기어린 눈동자와 폭풍이 몰아치는듯한 연주는 앞으로의 힘든 여정에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마차푸차레의 새벽
해발 6,993m의 마차푸차레(Machapuchare)는 안나푸르나 산맥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나온 봉우리다
두 개로 갈라져 나온 봉우리의 모습이 물고기 꼬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Fish Tail' 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새벽에 화장실에 가기 위해 나왔다가 마차푸차레의 모습을 보고 섬뜩한 무서움을 느껴 부리나케 뛰어 들어갔다
창백한 달빛을 받은 마차푸차레는 마치 유령 같기도 하고, 코부라의 표독한 눈동자 같기도 하였기 때문에...
마을 입구의 성황당(?)
새벽에 출발하여 도착한 마을의 입구에는 우리나라의 성황당 비슷한 이런 구조물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밖에는 어김없이 타르초가 나부끼고 있으며, 안에는 놋쇠로 만든 종과 하얀 천, 그리고 매끄러운 돌이 한개 세워져 있었다
또한 순례객들이 안전을 빌며 갖다 놓은 야생화와 동전, 사탕, 돌맹이, 나뭇잎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우리들도 여기에서 잠시 쉬면서 종도 한번씩 쳐보고, 내부도 들여다 보면서 안녕을 기원하였다
히말라야호텔(Himalaya Hotel)
해발 2,900m에 있는 히말라야호텔 롯지에 도착하여 생강차를 마시며 차가운 몸을 녹여주었다
원래 계획은 이곳에서 자기로 하였는데 서울아리랑 사장 왈, 주인이 싸가지가 없다고 하여 도반에서 자게 된 것이다
히말라야호텔은 작지만 오밀조밀 모여 담소를 나누고, 식사를 하는 모습이 매우 정겹게 느껴졌다
ABC까지 갔다온 사람들은 영웅담을, 이제 ABC로 향하는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부러운 표정으로 듣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흰코 케이브(Hinko Cave) 3,170m
히말라야 호텔을 출발하여 어른 키만큼의 높이로 자란 나무숲길을 따라 40분쯤 가면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나타난다
거대한 규모의 천연 암반, 흰코 케이브가 만들어 주는 그늘에서 마차푸차레를 바라보며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이곳에서는 설산이 한눈에 조망되었고, 빙하가 녹은 물이 실어온 찬바람이 적당히 불어주었다
그러나 담배 꽁초가 널려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면 소변 냄새가 물씬 풍겨 우리들의 각성을 촉구하는듯 하였다
눈물짓는 슬픔에 찬 세상을 떠나서
고독한 동굴을 네 아버지 집으로
정적(靜寂)을 네 낙원으로 만들라
사고(思考)를 다스리는 사고가 너의 기운찬 말이고
네 몸이 신들로 가득 찬 너의 사원이며
끊임없는 헌신이 너의 최선의 약이 되게 하라.......................티벳의 고승 밀라레파의 詩 중에서
위험한 휴식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여기는 몇 년 전에 눈사태가 일어나 13명이 사망한 곳이라고 한다
아스라이 보이는 산의 꼭대기에서 눈덩이가 쏟아져 내리면 앞만 보고 가는 순례객들은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가이드가 재수없는 곳이라고 빨리 떠나자고 해서 우리 일행은 휴식을 중지하고 서둘러 출발하였다
만년설 녹은 물에 손을 씻다
좌우에 거대한 병풍처럼 늘어선 산에서 만년설 녹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폭포와 강을 이루고 있었다
빙하가 녹은 물이 만들어낸 모디콜라(Modi Khola)는 석회석 성분이 많아서 뿌옇게 보였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에 손을 씻으니 정신이 바짝 들고, 우리가 가야할 길이 더욱 선명해졌다
데우랄리(Deurali) 해발3,200m
고갯마루에 자리잡은 데우랄리에 도착하여 샹그릴라 롯지에 자리를 잡고 김밥과 수제비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포항의 한동대 학생들에게 먹다남은 수제비와 김치를 주었더니 환장하게 맛있다며 국물까지 모두 마셔버렸다
내가 젊었을 때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을 이루어 내는 이들 젊은이들의 패기와 열정이 부러웠다
때로 나는 히말라야에서 얼마나 눈물겨웠던가
빛나는 만년빙하 밑을 아무 생각 없이 혼자되어 걸을 때
고원의 모랫바람이 눈을 찔러 나도 모르게 주저앉아 두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을 때
무려 60kg의 짐을 실은 어린 나귀들이 방울 소리를 딸랑이며 내 곁을 숨가쁘게 스쳐 지나갈 때
깊은 밤 노천온천에 몸을 담그고 앉아 쏟아지는 별의 폭우 속에서 끙~ 하고 돌아눕는 산의 내밀한 소리를 들을 때
나는 번번이 눈시울을 붉혔다......................................................................................박범신의 산문집에서 발췌
위험한 얼음동굴
높은 산의 경사면에서 훌러내린 빙하가 만들어 놓은 얼음동굴이 위험해 보인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아 가이드가 접근을 만류했지만 이 사나이는 조금도 무섭지 않은 모양이다
고도가 3천 미터를 넘어서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여 배낭에 커버를 씌우고, 자켓의 모자를 둘러쓰고 걸었다
드디어 MBC에 도착하다
쏟아지는 눈발을 헤치고 걸어서 히말라야의 여섯번째 밤을 지낼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에 도착하였다
서울에서 온 가이드는 고소증 때문에 도착이 늦어졌지만 우리 일행은 한명도 뒤쳐지지 않았다
눈발이 점점 굵어져서 내일 아침 ABC에 가지 못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였다
Fishtail Guest House 의 복잡한 5인실에 여장을 풀고 김치참치죽으로 저녁식사를 마치니 긴장이 풀렸다
모두가 친구 되다
게스트 하우스의 식당에서는 각국의 순례객들이 금방 친구가 되어 이야기꽃을 피웠다
정씨 아줌마는 우주복같은 자켓과 신발를 신고 나와서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완전 꼴불견 ㅋㅋㅋ
밖으로 나오니 눈발이 그치고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여 불안감이 일시에 해소되었다
고산증이 염려되어 친구와 함께 비아그라 25mg을 복용하고 내일 아침을 꿈꾸며 눈을 감았다
첫댓글 점심 먹으러 가는것도 잊은채 안나푸르나에 푸욱 빠져버렷네요.
가슴 뭉클하고 너무나 장엄하고 ,,,
현장에서 생중계하는 것 같은 착각속에 그저 감동만 있을 분입니다.
무사히 다녀오셔서 넘넘 감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대단한 산사나이들입니다.
내용은 더 생생하게 올려놓아 꼭 현지에 있는 듯합니다.
건강하게 살아 돌아와주어 감사해요
할아버지로 변신해서 웃기긴했지만~
서서히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마차푸차레가 경이롭네요
힘든만큼 자연의 신비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회원님들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사진마다 달린 해설이 아주 좋습니다.
정말 힘든 작업을 하고 계시네요.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TV에서 보았던 산(마차푸차레)의 새벽.......... 와 !!!!! 정말 좋다..
생생한 산행기 덕분에 편하게 즐기기 넘 좋네요
현지인들의 생활하는 모스과 산행을 함께하니 좋아보이네요
회원님들의 모습이 넘 행복해보여서 좋넹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