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중항쟁 44주기 오월문학제 환영사>
기억과 역사 그리고 미래
천지사방 연둣빛 일렁이는 오월입니다. 5·18광주민중항쟁 44주기 오월문학제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오신 작가 여러분과 이 자리에 계신 광주시민들께 뜨거운 환영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환영합니다, 여러분!!
역사는 기억됨으로써 역사가 되고, 기억됨으로써 역사는 이어집니다.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는 까닭은 그것을 이어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 욕구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고 형성합니다. 5·18은 1980년 5월에 광주에서 한 번 일어난 사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고 해마다 기념함으로써 그것을 그때의 일회성에서 해방해 지금의 일로 만들고 또 앞으로의 일로 만듭니다. 동시에 그것을 광주라는 공간적 한계에서 해방해 한국에서 그리고 세계 어디에서나 의미를 갖는 보편적인 사건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패배할 것이나 패배하지 않을 것이고, 승리하지 못할 것이나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라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실천했던 시민군들의 말과 그 죽음이 역사 속에 부활하여 숨 쉬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겠지만 2011년 5월, 5·18광주민중항쟁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이제 5·18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은 이미 세계의 정신이 되었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기록들은 자랑스러운 세계의 유산이 된 것입니다.
항쟁이 있는지 4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작가들은 살아남은 자들의 부채의식으로, 연대와 상생으로, 치유와 희망을 노래하면서 오월의 슬픔을 다양한 형태의 예술로 승화시켜 표현해 왔습니다. 이제는 미래 세대들에게 어떻게 하면 5·18정신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무심한 ‘망각의 시대’를 고민해야 합니다. 5·18광주민중항쟁 44주기의 표어 「오월의 숨결, 세대를 잇자!」에 그 열망이 잘 집약되어 있습니다. 최근 오월어머니집은 “5·18광주민중항쟁 44주년을 맞아 유튜브 채널 어니음악창고(https://www.youtube.com/watch?v=MipdnqG4biY)를 통해 ‘오월, 기다림’이란 노래를 공개했다”라고 밝혔습니다. 노래는 오월어머니집 회원 14명과 광주지역 20~30대 청년 14명이 함께 불렀고, ‘14’라는 숫자는 5·18의 세 숫자를 모두 더해 나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묻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우리 작가들도 세계의 정신이 된 광주 5·18정신을 어떤 형식으로 담아 미래 세대들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이어질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학적 성찰과 물음을 끊임없이 계속해야 합니다.
조국이 위태롭습니다. 이번 겨울 동안 방현석 작가의 『범도』를 읽었습니다. 한평생 식민지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풍찬노숙하며 헌신한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역사 속에 쓰러진 의병들, 독립투사들의 고투, 배고픔과 슬픔에 대하여 오래 생각했습니다. 백 년 전 그때와 지금 조국의 현실은 어떻게 다른가요? 그분들이 꿈꾸었던 조국의 자유, 독립, 민중에 의한 참된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는지 의문입니다. 여전히 불안정한 분단체제 속에서 친일부역자에 대한 역사적 단죄가 완성되지 않았고, 주변 국가들의 한반도를 둘러싼 끊임없는 위협과 간섭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영화<서울의 봄>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는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과 민주주의는 우리 시민 모두가 책임감, 사명감, 의식을 가지고 부단히 깨어있어야만 유지할 수 있는 귀한 가치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마음에 깊이 새겨두어야겠습니다.
오월 문학제는 5·18광주민중항쟁 기간 보여준 오월의 정신, 대동공동체를 지향하며 한반도 곳곳에서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의 정신과 연대 상생하고 그 정신을 계승해야 할 것입니다. 지역과 지역을 넘어서 세계의 평화와 생명공동체를 위해 우리 서로 손잡고 어깨동무하고 나갑시다. 희망이 없는 것 같을 때 연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세계적인 거장 켄 로치(Ken Loach) 영화감독은 은퇴작 ‘나의 올드 오크(The Old Oak)’에서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부족하지만 그것마저 나누려 할 때 더 강해지고 단단해질 수 있다고.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When you eat together, you stick together).”라고. 오월문학제에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시인 광주전남작가회의 고문 김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