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친구가 생일이라고 한턱 쏜다는데 오늘부터 결심하고 술과 음식을 절제하기로 한 날이라 좋은 안주에 술을 권하는 것을 참느라고 혼났다. 다행히 강권하지는 않아 결심을 지킬 수 있어 내심 기분이 좋았다. 이 친구는 자기 생일이 있는 주를 생일 주간으로 정해 친구들과 이웃들을 초청해 식사를 함께 하곤 한다. 인생을 즐기는 참 좋은 습관이다.
원시인들은 물고기를 잡거나 짐승을 잡거나 누가 성년이 되거나 무슨 명목으로든 건수를 만들어 축제를 벌려 일년의 반이상이 축제였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인생을 즐길 줄을 모른다. 정 축제할 일이 없으면 하늘이 너무 맑다든지, 자고 일어나보니 놀랍게도 살아 있었다든지, 신기하게도 당신이 보고 싶다든지, 뭐든 축제할 명분이 없겠는가? 나는 거의 매일 누군가와 축제를 하고 함께 하지 않는 날은 혼자서도 잘 논다.
강화백북스 모임. 운영위원 세분을 새로 모셔 저녁 식사하며 상견례도 하고 그간의 모임을 돌아보며 몇가지 의견을 모았다. 아무래도 독서 모임은 다수가 함께 하기 보다는 소그룹으로 나누어 진지한 토론을 하는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이 있어 다음 달부터 그러기로 했다.
강화의 여러 단체들에게 군에서 주는 후원금이 있는데 백북스도 그런 걸 신청해 보면 어떠냐는 제안이 있었는데 우리는 돈이 필요없고 정 필요하면 십시 일반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이웃사촌도 그런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데 거절했고 오형의 도반소농공동체도 십여년 이상 모임을 했는데도 일체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무슨 대단한 일도 아닌데 명분을 크게 내세우며 뻔질나게 군청을 드나들며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오늘 백북스 모임은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라는 책을 양태부님의 해박한 설명을 들으며 공부했다. 절에 있는 건축물이나 그림, 조각상등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불교는 좋아하지만 불교문화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절에 가도 별 흥미가 없다. 옛문화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에게 맞는 문화를 개발할 수는 없을까? 성당이나 교회, 절은 어찌 그리 천편일률적인지. 특히 나는 이미 시대에 뒤진 종교의식들이 싫다. 내가 교회에 다니지 않는 것은 찬송, 기도, 예배등의 종교의식이 너무 지루하고 의미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종교의식 중독자들이 싫다.
종교의 본질을 생각할 때 나는 기존의 종교들이 이미 그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참다운 종교는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본래의 사람다운 모습을 되찾게 함으로서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하고 사회적으로는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과 새로운 삶을 제공해줄 수 있는 정의의 등불이 되는 것이다. 지금의 교회와 절이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아무튼 백북스 모임 끝나고 뒷풀이. 내가 절주하기로 해 오늘은 모두가 다 차만 마셨다. 차만 마시니 다 참석해서 모임이 더 좋았다. 일산 백북스 모임 인도자 송도현님이 오셔 반가왔다. 님이 한 재미있는 얘기 하나 소개. 여러 남자가 한 여자의 환심을 사려 여자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A-얼굴이 참 이쁘네요. B-마음씨도 착하고요. C-눈동자가 어린아이처럼 맑아요 D-E-등등. 남들이 칭찬을 다해 할 말을 찾기 어려웠던 마지막 남자의 말-사람의 보는 눈은 다 같은가 봐요. 실제로 나는 미운 어린아이나 미운 여자를 본 적이 없다. 오늘도 내 앞의 여인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26일
힘든 일도 없는데 코피가 줄줄 흐른다. 피를 보면 왠지 섬뜩하다. 딸과 전화를 하다 별일 없냐고 해서 무심코 코피가 난다고 하니 큰 걱정을 하며 전화를 끊고는 한참 후 다시 전화해 자기가 인터넷도 뒤지고 의사 친구들에게도 연락해 봤는데 혈압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내과에도 가보고 비염 때문인지도 모르니 오늘 당장 이비인후과를 가보라고 난리다. 자기는 아빠 건강이 제일 걱정이란다.
막상 강화의 수이비인후과라는 곳에 가니 의사가 대충 코속을 한번 들여다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며 일분만에 처방전을 써준다. 좀 어이가 없어 이게 다냐고 물으니 정 걱정되면 큰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 받아 보란다. 약국에 가서 약사에게 그런 사정을 말하니 예전에 한의사들은 피가 머리에서 터지지 않고 코로 나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했다며 한술 더뜬다. 의사나 약사 말대로 아무 일도 아니겠지. 날씨도 추운데 괜히 왔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집에 와서 뒹굴거리며 책보고 음악 듣고 영화보고 정현의 테니스 시합도 보며 하루를 보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지 테니스 시합은 너무 싱거웠다. 발바닥이 그리 아프면 진작 얘기를 하던지.
27일
대학 친구 딸의 결혼식이라 서울에 다녀왔다. 대학시절 나는 네비게이터 선교회 회원으로 3년간 공동생활을 했다. 이 친구는 3년간 나랑 같이 살았다. 목포대 교수이며 목포 시장에 세 번이나 출마해 아슬아슬하게 떨어졌다. 떨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기독교가 강한 목포의 교회들이 그를 이단으로 몰았기 때문이란다. 참 기독교를 말하며 교회와 목사를 비판하면 금방 이단으로 몰리는 세상이다. 나는 아에 교회를 나가지도 않고 기독교인이라고 하지도 않으니 이단으로 몰릴 염려도 없다.
오늘은 그 때 우리를 지도하던 선생님도 오셨다. 벌써 82세란다. 그런데 지금도 매주 과천도서관에서 단테의 신곡 읽기 모임을 20년 가까이 계속 인도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선생님과는 애증의 관계다. 선생님 때문에 지독히 보수적이고 편협한 네비케이터에 가입하여 대학생활을 허송했고 선생님이 네비게이터를 관두고 대전의 구원파 모임에 갔을 때 선생님 따라 학교 선생도 대전에 와서 하고 거기도 따라 갔다. 그리고 선생님이 무교회로 옮기자 또 그리로 갔다. 결국 선생님이 이혼을 하고 가정과 집회가 파탄나고서야 나는 자유로왔다.
그런 경험들이 다 오늘의 나를 있게하기는 했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어찌 그리 로봇처럼 끌려다녔는지 한심할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을 다시 뵈니 눈물이 난다. 선생님을 처음만난 날이 생각난다. 대학 2학년 어느날 서울사대 청량대라는 공원에 앉아 있는데 선생님이 오셔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때 까뮤의 이방인을 읽고 있어 자유인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과 나는 자유에 대한 토론을 늦게까지 하다 선생님이 자기 집에 가서 식사를 하자고 했다. 용두동의 선생님 집에 가니 단칸방에 세를 들고 계셨는데 마침 비가 내려 아궁이에 물이 들어가 요리를 할 수 없었다. 저녁도 굶고 우리는 다락방 같은 곳으로 올라가 얘기를 계속했다. 그 때 선생님이 성경을 펴더니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을 읽어주셨다. 나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이 말씀에 강력한 충격을 받고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그것을 알려면 자기에게 와서 배우라고 했다. 이것이 내가 선생님과 네비게이터에게 낚인 사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말한 자유는 종교의 노예가 되는 길이었다.
지금은 선생님도 네비게이터를 떠나고 예전의 신앙과는 전혀 다른 신앙을 가지고 계셔 나와도 말이 잘 통한다. 인연이란 무엇인지. 선생님 뵈니 내가 참 못됬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거웠다.
첫댓글 홍 선생님께서 네비게이터 선교회 출신이시군요. 당시 네비게이터나 대학생 성경읽기 선교회(UBF라고 불렀나요?) 등은 기존 교회와는 등지고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신앙생활하면서 새로운 뭔가를 추구하곤 했지요.
제가 다니던 교회에도 대학생이 되면서 네비게이터 선교회에 몸 담으면서, 교회를 싸늘하게 등지고 시니컬하게 변해 간 몇몇 선배들이 계셨지요. 저는 중 3때인 75년부터 JOY에서 훈련받았어요. 비슷한 신앙이력..ㅎㅎ
CCC도 있었지요. 김준곤목사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