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관광 가이드들이 이구동성으로 하소연하는 이야기가 있다. 현지의 관습이나 관례를 지키지 않는 관광객들에게 문제를 지적하면 '한국에서는 안 그래도 되는데 왜 여기서는 그렇게 행동해야 하느냐'고 따져 묻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 우물 속에서는 하늘의 모양이 사각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물 속에서 바라보는 진실일 뿐이다.
한국적인 것(이라는 실체가 있는지는 궁금하지만)은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통용 범위가 한정되어 있는 매우 특수한 기준이다. 이 기준을 세계 어디서나 밀고 나가려면 끊임없는 문화적 마찰을 감내해야 한다. 문제는 그만한 대가를 치르고서도 별다른 이익이나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 축구의 수준을 끌어올리려면, 선진축구를 접목하는 길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라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한국 축구가 외국의 유수한 지도자를 초빙하여 나름대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을 제외하면 결별의 모양새가 거의 좋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외국의 지도자들이 한국에 부임하여 가장 먼저 부딪히는 장벽은 한국 축구의 파행적인 운영방식이다. 1부 리그로부터 2부, 3부, 4부 리그에 이르는 피라미드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매 리그가 연중 리그를 벌이며 각 리그 상 하위 팀이 자리바꿈을 한다는 것은 유럽에서는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이런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축구 실력의 향상을 도모하는 일은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에 다름 아니다. 비유를 하자면, NASA의 책임자급 연구원을 초빙해 놓고 일 년 기한으로 우주선을 만들어 내라고 다그치는 것과 같다. 최소한도의 시설도 갖추지 않고 사람만 닦달한다고 해서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피라미드 시스템은 경기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상시적으로 유지하며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해 우수한 선수들을 다수 공급받을 수 있는 필요충분 조건이다.
이러한 축구문화를 단기간 내에 건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면, 외국인 감독들에게 남은 선택은 단 하나다. 편법을 쓰는 일이다. 크라머 감독은 나름대로 장기적인 플랜을 세우고 그 진도에 맞춰 선수들을 조련하였다. 그러나 투입 요소와 산출 요소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크라머의 과거 행적을 보아 그에게 기회를 주면 좋은 결과가 이어질 것이 거의 분명했지만 5-6년의 세월은 우리의 기준으로는 너무나 장구한 세월이었다. 크라머는 말하자면 기초 공사와 지반 다지기부터 시작했던 사람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를 두고 크라머가 한국 축구를 무시하는 징표라며 흥분하기도 했었다.
비쇼베츠는 한국 축구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나름대로 파악하고, 다른 등산로를 택해 정상에 도전했던 감독이다. 소수 정예를 모아 반복 훈련을 시키고 이를 통해 대표팀 전력의 향상에만 전력을 경주한다는 것. 그러나 주전 선수가 예기치 않은 부상이라도 당하는 날엔, 별다른 대안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 비쇼베츠 축구의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리고 초반부터 이러이러한 밑그림을 미리 다 그려놓고 그것을 바탕으로 인선을 했던 탓에 재능은 있으되 대표선수로 뽑히기 어려웠던 인재들도 상당수를 헤아렸었다.
90년대 후반기를 견인한 차범근 감독 역시 한국 축구 나아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뛰어넘지 못했다. 크라머나 비쇼베츠에게도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자신의 뜻을 소신껏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 한국 축구계는 경기력 저하에 대해 별다른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고 사람만 바꾸면 얼마든지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막연한 환상에서 놓여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히딩크가 자신의 의지를 굳건히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취임 직전 한국 축구가 느꼈던 위기감이 그만큼 절박했었다는 뜻이다. 일본에 확실히 밀리고 아시안컵에서는 연이어 정상 정복에 실패했으며 공동개최국으로서의 체면이 백척간두에 매달려 있던 시절. 감독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최선을 다해 밀어주자는 공감대가 자연스레 형성되었고, 그런 시기에 대권을 잡은 히딩크는 다른 감독에 비해 상당히 유리한 지점에서 자신의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히딩크의 성취가 공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기상천외하기까지 한 고감도 충격 요법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히딩크 감독의 취임 초기,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사항이 하나 있었다. 훈련 계획표라는 것을 아예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월간 훈련 스케줄은 물론 주간 훈련 스케줄도 미리 발표된 적이 없다. 심지어는 아침에 공표한 당일 훈련 스케줄을 오후에 가서 뒤집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유럽의 명문 프로 구단 중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훈련을 진행하는 팀은 단 한 군데도 없다. 그렇다면 분명히 무리인 줄 알면서도 히딩크가 이러한 훈련법을 고수한 이유는 어디 있는가.
이 오랜 의문이 마침내 풀렸다. 월드컵 조직 위원회 모 직원의 상가에서 만난 차범근 감독은 필자의 질의에 이렇게 답했다. "감독은 속된 말로 '미친놈'이 되어야 한다. 때로는 선수들과 다정다감하게 어울리다가도 일순간에 안면을 몰수하고 사납게 몰아 붙여야 하니까. 선수들이 감독을 인간적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팀 전체로 보아서는 매우 위험한 신호등이 켜진 것이다. 축구란 선수 개개인 모두가 매일매일 능력의 극한까지 나아가 처절하게 투쟁해야만 아주 약간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운동이다. 인간적인 정이 쌓이면 피차간에 최후의 한 걸음을 내딛지 않는다. 발전과 진보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감독과 선수가 인간적으로 친하게 된다는 것은, 단기전이라면 몰라도 장기전에서는 독약이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관점에서 차감독은 "히딩크의 무계획성은 사실상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행동의 결과일 것"이라며 "외국인 감독이 비교적 단기간에 경기력을 끌어올리는데는 이만큼 효율적인 전략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평가를 덧붙이기도 했다.
숱한 선수들로 대표팀을 운영하고 홍명보나 황선홍, 그리고 안정환 같은 선수들을 오랫동안 들판에 방치했던 대목에서도 히딩크의 용병술이 빛을 발한다. 포지션이 겹치는 선수는 선수들 상호간의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여 기량의 향상을 꾀하고, 대안이 없는 선수들은 그들의 자존심을 교묘하게 자극하여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벌이게 한다는 것. 월드컵 직전에야 성과가 나오도록 훈련 스케줄을 조정하고,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도 눈 하나 까딱 않고 험로를 걸어온 그의 뚝심에서 한국 축구의 희망을 읽는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두지만 축구 문화의 건설 없이 성적을 거둔다는 점에서 히딩크의 성취란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일종의 편법에 다름 아닐 터이다. 그러나 편법으로라도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건 엄연한 능력이다. 그렇다면 한국 축구의 그러한 능력에 덧붙여 진정한 축구 문화를 어떻게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 월드컵 이후를 위한 청사진의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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