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의 여행계획이 확정되어, 신라의 고도 경주를 가기로 하였다.
경주는 중학교 때 여행을,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자건거를 타고 대구에서 하이킹을, 2010.12월에 의좋은 남매들 여행을 하였기에 최근 12년만에 다시 찾게 되었다. 경주는 일생동안 몇번을 가보아도 또 가보고 싶은 곳이다. 여러번 가본 곳 중 대표적인 곳이 불국사(다보탑/석가탑), 석굴암, 첨성대, 구 안압지('동궁과 월지'로 이름이 바뀌었다.) 등이다. 자꾸 찾는 이유가 고도에서 풍기는 조상의 숨결 때문이 아닐까?
여행코스는 1일차는 월정교 - 교촌마을 - 첨성대 - 황리단길 - (감포) 문무대왕릉 - 소노벨경주, 2일차는 보문호수 - 황룡원 - 불국사(다보탑/석가탑) - 동궁과 월지(안압지)를 탐방하기로 했다.
1일차 : 월정교 - 교촌마을 - 첨성대 - 황리단길 - (감포) 문무대왕릉 - 소노벨경주
월정교
월정교는 삼국사기에 통일신라 경덕왕 19년(760년)에 "궁궐 남쪽 문천 위에 월정교, 춘양교 두 다리를 놓았다." 라는 기록이 있으며, 현장에 배모양의 교각만 전해지고 있었으나 오랜 고증을 통해 누교를 복원하였다. 2005년 연구가 시작되고, 2007년 본격적으로 복원이 시작되었다. 2011.9월에 상량식을 거쳐 2013년에 교량과 누각 등 1차 복원 사업이 완료되어 일반에 개방되었다. 주변 정비사업까지 완료됨에 따라 2018.4.6 공식적인 완공에 이어 2018.11월부터 항시 개방으로 전시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 교량으로 길이 60.57m이며 관람객들은 내부를 직접 거닐면서 전시물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월정교와 춘양교지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제457호)으로 지정 보전되고 있다.
남쪽과 북쪽 문루를 연결하는 길이 60.57m의 교량 내부
월정교의 양쪽 끝부분에 있는 문루
'월정교' 란 현판 글씨는 김생 글씨체에서 따 온 현판이 이곳 남쪽 문루에 설치되었으며, 교촌마을 쪽의 반대편(북쪽) 문루에는 최치원 글씨체의 현판이 설치되어 있다.
경주 교촌마을
경주 교촌마을은 한반도 최초의 국립대학이라 할 수 있는 「국학」이 있던 곳으로 전통적인 유교교육의 중심지이자 유서 깊은 마을이다.경주 최부자댁과 향교를 비롯한 몇 채의 한옥만이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다가 2009년 경주시가 체험형 관광지로 활용하기 위해 전통한옥 복원을 시작하며 지금의 한옥마을이 조성되었다. 이 마을에서 생산되는 경주교동법주도 유명하다. 경주 교촌마을 하면 최부자가 연상될 만큼 경주 최부자가 유명하다. 언젠가 경주에 다시 한번 들리게 되면 꼭 최부자 집을 방문하고 싶었다.
최부자댁(국가민속문화재 제27호)
경주 교동 69번지에 위치한 최부자댁은 300년 동안 부를 이어온 12대 만석꾼 집안이다. 세계 역사를 통틀어 300년이라는 긴 기간동안 부를 유지해왔던 가문은 경주 최부자댁이 유일하다. 7대 최부자 최언경이 경주 내남면 이조리에서 1779년 경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향교 옆에 집을 세우기를 반대하던 유림이 많았으나, 집터를 향교보다 더 낮추어 집을 지으며 향교의 권위를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 주었다. 최부자댁은 사랑채, 안채, 문간채, 사당, 곳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970.11월 화재로 불타 주춧돌만 남았던 큰 사랑채는 2006.8월에, 작은 사랑채는 2020.12월에 복원되었다.(최부자댁은 1947년 경주 최부자 12대손 문파 최준 선생이 기증으로 현재 학교법인 영남학원이 소유하고 있다.)
*** 300년을 내려온 최부자댁 가훈 ***
1.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하지 마라.(부와 벼슬을 모두 욕심내지 말고 부자로 살면서 이웃을 도와라.)
2. 재산을 만 석 이상 모으지 마라.(만 석 이상 불어나는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3. 흉년기에 땅을 불리지 마라.(흉년에 먹을 것이 없어서 팔려고 하는 땅을 사들여 그들을 원통하게 해서 안된다.)
4.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찾아오는 손님과 가난한 사람들을 넉넉히 대접하라.)
5. 사방 백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특히 흉년에는 곳간을 열어 이웃에 양식을 나눠 주어라.)
6.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무명옷을 입고 함께 일하면서 주변의 어려움을 헤아리는사람이 되어라.)
탄압의 역사 속에서 한국 역사상 유례없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아름다운 부자 최부자댁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중한 삶의 교훈을 남기고 있다.
최부자댁에서 인증샷
최부자댁 부속 건물 중 하나인 사랑채
길을 가다가 찍은 사진인데, 경주의 남산이 유명하니 여기에서 꼭 사진을 찍고 가라는 노점상 분의 조언을 듣고 촬영하였다.ㅎㅎ
첨성대 옆에 조성해 놓은 핑크뮬리 밭으로 절정의 붉은 색감은 잃었지만 운치있어 좋았다. "너를 향한 그리운 마음이 잉크처럼 번져나와 꽃이 된 꽃, 오히려 그리운 그리움보다 붉다."(이상윤의 시 핑크뮬리 중에서)
첨성대
첨성대는 동양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이다. 삼국사기를 참고하면 신라 선덕여왕(632~647년 재위)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첨성대는다듬은 돌을 받침대 위에 27단으로 원통형으로 쌓아 올렸는데, 아래쪽이 부르다가 위로 갈수록 점차 수직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위에 긴 돌을 맞물려 우물정 자 모양을 얹었다. 안쪽은 12단까지 자갈과 흙으로 채우고 그 위로는 비어 있으며, 13단과 15단 사이에 정남향으로 창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사람이 가운데로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관측했다."는 기록이 있어 첨성대의 기능을 알 수 있다.
첨성대
모과나무와 첨성대
첨성대를 배경으로 인증샷
황리단길
서울의 핫플레이스 경리단길을 본딴 거리 명칭이 아닌가 싶다. 경주하면 유적지를 먼저 떠올리곤 하는데, 유적지 탐방과 연계하여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놓았다. 볼거리와 먹거리가 한데 어우러져 있어서 경주를 즐기기에 또 다른 매력 하나를 추가하고 있었다. 황리단길 주변에 월정교, 교촌마을, 계림, 첨성대, 동궁과 월지(안압지), 대릉원이 있어 연계 관광으로 좋았다.
황리단길
경주문무대왕릉(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30-1)
문무대왕릉은 삼국통일을 완성한 신라 제30대 문무왕을 장사지낸 곳이다. 바닷가에서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는 수중릉으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문무왕은 당나라와 손잡고 백제를 정벌한 태종무열왕의 뒤를 이어 21년간 왕으로 있으면서 고구려를 통합하고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 우리나라 최초로 통일국가를 완성하였다. 「삼국사기」에는 문무왕이 "내가 죽은 뒤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 지내라." 하고 유언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이런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아들인 신문왕이 바다의 큰 바위 위에 장사를 지내고 그 바위를 대왕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1일차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인 소노벨 경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