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전도 여행의 핵심지는 비시디아 안디옥이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처음으로 설교한다. 스데반의 설교가 사도 바울의 설교에서 재현된 것이다. 구약이 메시아를 말함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신 분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라는 것, 그로 인해서 우리가 죄 사함과 의롭다고 함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전도 설교의 내용이다. 예수님을 전하니 부흥이 일어난다. 우리도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면 죄 사함과 의로움 때문에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고 영혼들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 설교 후에 영접하는 사람들과 거절하는 유대인들로 나누어졌는데 영접하는 사람을 통해서는 부흥이 일어났고 또 다른 쪽에서는 박해가 시작됐다. 생명이 있는 곳에서는 이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다. 예수님을 전하면 영접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영접하니까 부흥이 일어난다(42). 다음 안식일에도 또 말씀을 전해 달라며 많은 사람이 따랐다. 반응이 좋았고 분위기가 좋았다. 온 성이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다(43, 44).
거절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시기심이었다. 말씀 자체가 싫어서가 아니라 바울에게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 싫어서 반박하고 비방한 것이다. 시기하는 사람들은 메시지를 공격할 수 없을 때 메신저를 공격하는데 메시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바울을 비방하는 것이다(45).
가인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고 아벨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지만, 아벨과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셨는데 가인과 그의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셨다. 그럼 문제를 파악하고 고치면 되는데 시기심이 들어가면 하나님과 나 사이의 문제를 다른 사람과의 문제로 치환시킨다. 진짜 중요한 가치를 다 놓쳐 버리게 된다.
시기심은 마귀가 주는 것이다. 시기심이 들어가면 말씀이 아닌 사람이 보인다. 교회 와서 자꾸 사람이 보이면, 그 마음 가운데 시기심이 있기에 시험에 든 것이다. 시기심이 있으면 사람만 보고 하나님이 나에게 중요한 분으로 다가오지 못하신다. 이게 시기심의 치명적 약점이다.
이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모든 생명의 역사에는 영접과 거절, 부흥과 박해가 동시에 다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믿음의 동의어는 영접이다(요1:12). 영접하는 마음을 옥토라고 한다. 30배 60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교회의 능력은 영접과 반응하는 것이다. 그럼 무조건 백배 폭발적인 능력이 나타난다.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준 말씀조차도 옆에서 듣다가 영접하면 내 것이 된다. 모압 여인 룻은 며느리로서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그 약속을 자기가 받아들이고 영접하니까 메시아의 조상이 된 것이다.
영접하는 마음이 있으면 내 삶에 여백과 여유가 있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회복되는 일들이 벌어진다. 옆에 있는 형제나 자매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영접해 보라. 백배의 열매를 거두는 승리가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거절조차도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거절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방향이 명확해질 수 있다. 안디옥에서 거절당함으로 말미암아 바울의 사역이 해석되고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이다. 바울을 이방의 빛으로 삼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46,47; 사49:6; 행9:15).
우리 인생도 많은 거절이 있겠지만 하나님 안에 있으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다. 모든 게 평탄하다고 좋은 게 아니라, 거절과 저항이 있을 때 정리도 되고 해석이 되고 버릴 걸 버리게 된다. 그래야 초점을 맞추고 뚫고 나갈 것이다.
부흥도 있고 거절도 있는 가운데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구원받게 된다. “~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48) 여기서 예정과 선택이 나온다. 예정과 선택은 숙명이나 기계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되면 그냥 영접하라. 영접하면 30배 60배 백배로 부흥이 일어난다.
안디옥에 있는 모든 유대인이 다 예수를 영접했다면 백배로 열매를 거둬서 안디옥의 유대인들도 구원받고 이방인 선교도 하고 능력 있는 교회로 세워져 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거절하니까 그들을 버려두고 이방인에게로 간 것이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거절하는 사람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바울의 무리가 발의 티끌을 털고 떠났다(50,51 ; 마10:14). 핍박을 당하다 보면 낙심해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발에 먼지를 털어내고 난 뒤에 계속 사역하기 위해서 이고니온으로 갔다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안디옥에서 쫓겨났지만, 그들은 이고니온으로 갔다. 발의 먼지를 털라고 하신 것은 과거의 먼지를 털라는 것이다. 상종하기 싫은 과거의 상처들 때문에 지금의 현재를 살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다. 먼지를 털라는 것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상처를 다 털어 버리라는 것. 그 상처를 안고 이고니온으로 가면 두려워서 사역을 계속할 수 없다.
오늘 예배 시간이 먼지를 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다 털어 버리고 싱싱하게 새 마음을 갖고 시작하자. 주께서 생명과 능력을 주시면 된다. 우리에게는 다음 칸이 있다. 다음 사역지인 이고니온을 향해 가니 기쁨과 성령 충만함이 있더라는 것.
나를 살리고 너를 살리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십자가 부활을 증거했더니 영접과 거절이 있더라. 무슨 말씀이든지 영접하라. 30배 60배 백배의 열매가 있다. 믿는 자란 거절감이 있는 곳에서 영접하는 사람이다. 거절이 있을 때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거절을 통해서 오히려 정리되고 해석되고 초점을 맞추게 된다. 거절을 통해서 더 많은 일을 한다. 상처로 살지 말고 먼지 털고 가라. 비전과 꿈으로 살고 이고니온으로 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