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이 머무르던 곳 영월 청령포(淸泠浦) #2
노산대로 가는 데크계단 입구에서 가을 단풍과 함께 -----
청령포 서측의 능선에는 노산대와 망향탑이 위치하고 있다.
단종은 층암절벽 위에 자리한 노산대에서 한양에 두고 온 왕비를 간절히 생각하며 흩어져 있는 돌을 쌓아 망향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노산대는 17세 단종이 이곳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아주 오랜 풍상을 겪은 모습으로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자라 육중한 몸을 굳게 버티고 서 있는데
단종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觀), 슬픔과 울분으로 가득 찬 그의 오열(音)을 들었다고 해서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관음송은 높이가 30m에 달하는 노거수로 중간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동서로 비스듬히 자란 형태다.
수령은 약 600년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단종이 유배되었을 때의 수령을 80년으로 추정하여 계산한 것이라 한다.
관음송의 나이는 600년으로 추정하며 높이 3m, 가슴높이둘레 5.19m, 1.6m에서 가지가 두갈래로 갈라져 있다.
단종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둘로 갈라진 이나무의 줄기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청령포는 특히 소나무 숲이 매우 아름답다.
창송으로 이루어진 소나무 숲은 밖에서 보는 모습도 빼어나지만 하늘을 빼곡히 뒤덮고 있는 숲 안의 풍광도 매우 청량하다.
절하듯 단종어소를 향해 숙여져 있는 소나무
나무가 넘어지지 않도록 받침대로 받치고 있었다.
단묘재본부시유지비
'단종이 이곳에 계실 때의 옛터'이다 라는 글이 영조대왕의 친필로 음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영조 39년 가을 울면서 받들어 쓰고, 어명에 의하여 원주감영에서 세웠다.
지명은 청령포이다 라는 뜻의 한문이 음각되어 있다고 한다.
단종어소는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다.
어소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가 있으며 밀납인형으로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단종어소 입구 행랑채
청령포는 특히 소나무 숲이 매우 아름답다.
창송으로 이루어진 소나무 숲은 밖에서 보는 모습도 빼어나지만 하늘을 빼곡히 뒤덮고 있는 숲 안의 풍광도 매우 청량하다.
가 너무 잘 어울린다.
2005.9.11/2016.8.26.에 이어 세번째로 방문한 청령포의 약 1시간(11:10~12:10) 탐방을 마치고
민족통일 제43주년 강원특별자치도대회가 개최되는 영월 문화예술회관으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