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선에서는 386운동권을 대변하는 소수 정치세력에 속했던 노무현씨가 대통령으로 뽑혔다”
중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 관련 교과서의 이념적 편향성을 바로잡기 위해 지난해 출범한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상임공동대표 박효종 교수)’이 1년여동안 심혈을 기울인 끝에 마침내 중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최종본을 공개했다. 이 교과서는 내년 3월 출간될 예정으로 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에 앞서 교과서 포럼은 30일 학계 전문가들에게 교과서 최종본을 선보이고 이에 대한 의견을 듣는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내년 3월 출간되는 교과서포럼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최종본을 살펴보면, 우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단원에서 “386운동권을 대변하는 소수정치세력에 속했던 노무현씨가 대통령으로 뽑혔다”고 기술했다.
또 일반적인 역사교과서에 ‘군사정변’으로 기술된 ‘5․16 군사쿠테타’에 대해서는 ‘5․16 혁명’ 또는 ‘5월 혁명’으로, ‘5․16 군사쿠테타’로 들어선 정부에 대해서는 ‘혁명정부’라고 각각 표현했다. ‘지체된 근대화의 위기’를 ‘5․16 혁명’ 배경의 하나로도 꼽았다. ‘5․16의 의미’에 대해서도 이 교과서는 “5․16은 당시 국가 경영의 원칙을 놓고 대립하던, 민주적이나 상상력이 결여되고 무기력한 민주당 통치 집단과 그들에 도전하던 경직화된 이념 지향적 급진세력을 대신해 당시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인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주도할 새로운 대안적 통치 집단 등장의 계기가 된 사건이다. 당시 상황에 대한 고찰은 경제발전의 획기적 계기가 된 5․16이 혁명적 사건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표현했다.
이 교과서 최종본은 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1961년에서 1979년까지 박정희 집권기간에 한국경제는 몇 차례 위기를 겪고 적지 않은 부작용을 동반했으나 직접적 경쟁상태였던 북한을 압도하게 되었고, 또 그 기간 한국이 세계 최빈국의 위치에서 중진국의 반열로 진입하게 됐다는 면에서 박정희 모델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될 수 밖에 없다” “예측 가능한 기업환경을 보장할 수 있었던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능력,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100억달러수출, 중화학공업화 계획 등 국내외 다수가 반대하고 회의하던 거대기획물들을 발상하고 밀어부칠 수 있었던 대통령의 과감한 상상력과 행동력도 박정희 모델의 중요한 구성물” 등 이라고 표현했다.
최종본에는 아울러 1980년 ‘서울의 봄’에 대해서는 “학생세력은 그들 특유의 저돌적 행동력과 동원력 때문에 유신 이후 과도기 정국의 동향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요한 세력중의 하나였다. (중략)급기야 5월 15일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10만 학생이 운집해 대규모시위를 감행한다. 주목할 것은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가 시민들 그리고 노동집단 등으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중략)서울의 봄이 짧게 종말을 고한 것”이라고 기술했다.
이 최종본에는 ‘5․18광주 민주화항쟁’은 “4․19학생봉기와 더불어 민주화 역사를 장식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남게 됐다. 그리고 이 충격적 사태진전에 미국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확산됨에 따라 광주민주화항쟁은 이후 한국사회에 반미급진주의를 확산시키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다”고 표현됐다.
이와 함께 ‘1990년대 시민운동의 성장과 사회갈등’이라는 단원을 통해서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참여연대 등을 언급하면서 “한국의 시민운동은 우리나라 사회발전에 나름대로 기여한 점이 적지 않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단체는 점차 스스로 독선과 오만으로 무장한 권력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중략)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시민사회 활동을 본격적인 정치참여를 위한 준비단계로 삼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한국의 시민운동은 이념적인 양분과 대립을 통해 한국의 시민사회를 통합하는데 실패하고 시민사회가 사회정의의 실현 혹은 사회적 약자 대변을 통한 사회통합의 기능을 수행하기 보다는 오히려 사회갈등의 무대로 작용하는 역기능을 보여주고 있다”고 기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