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영일이냐
유 영 희
―― 어린이는 큰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한다.
이것은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어렸을 때 훌륭한 사람이 될 결심을 하고 노력하면 이 다음에 그렇게 된다는
뜻이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읍니다.
훌륭한 일이라고 해서 무슨 착한 일인 줄 아신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똑똑히 말씀드리면 나는 이 세상에서 못할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구름 위를 날아다니는 일이라든지, 바닷속이나 땅속을 마음대로 헤엄치고 기어다닐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비행기나 배 또는 그밖의 무슨 기계나 다른 물건을 가지고 그런 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기야 어떤 때는 그렇게 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맨손으로 재간을 피웁니다.
내 재간이 요것뿐인 줄 아셔요? 나는 또 어떤 물건이나 짐승이나 벌레 같은 것으로도 변해버릴 수 있는 재간을 가지고 있읍니다.
엉터리라구요? 천만에요. 나는 아직까지 거짓말을 해본 일이 없읍니다.
이름이 뭐냐구요? 난 성남국민학교 제 4학년 박 영일입니다. 글세요, 이름은 분명히 박 영일인데 사실은 누가 박 영일인지 잘 모르겠읍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구요? 아직도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으시는 모양이군요.
그러면 내 말을 자세히 들어보셔요.
어제는 날씨가 퍽 좋았읍니다. 그렇지만 무더운 여름날이라 도무지 교실 안이 견딜 수 없게 더웠읍니다. 정심을 먹고 첫시간이라 졸리기까지 하였읍니다. 이런 때는 보건시간으로 바꾸어서 앞 강으로 수영이라도 하러 갔으면 좋으련만 선생님께서는 그런 것을 영 생각을 못하시는 모양이었읍니다.
나는 그만 공부에 싫증이 나서 양손으로는 교과서를 들고 앉은 채 눈은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읍니다.
저편 강 언덕에는 포플라나무들이 줄을 서서 햇볕에 검푸른 얼굴들을 번쩍이고 있었읍니다.
그리고 넓은 하늘에는 뭉게뭉게 흰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읍니다.
흰 봉우리 위에 또 흰 봉우리가 생기고 그 봉우리 위에 이상한 흰 봉우리가 피어오르고 있었읍니다.
---야, 굉장하다. 한번 저 위에 올라가봤으면------
나는 문득 이렇게 생각하였읍니다.
그 다음 순간 나는 마치 나비가 꽃밭 위를 날으듯이 훨훨 공중을 날아갔읍니다. 그리고 문제없이 흰 산봉우리 위에 올라가 앉았읍니다.
푹신한 솜산, 나는 좋아라고 이 솜산에서 저쪽 산으로 이 골짜기에서 저 골짜기를 재미있게 오르내렸읍니다. 넓은 세상을 내려다보며 봉우리 꼭대기에서 밑으로 미끄럼도 탔읍니다.
정말 신나는 놀음이었읍니다. 그런데 아깝게도 이 신나는 놀음이 그만 깨어지고 말았읍니다.
나는 우리들의 좁은 교실로 다시 내려와야 했으니까요.
“얘, 얘!”
옆의 아이가 내 옆구리를 아프도록 찌르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왜 그래?”
나는 화가 나서 그 아이를 쏘아보며 말했읍니다.
“하 하 하!”
웅성웅성 교실 안이 웃음과 말소리로 가득차고 선생님과 아이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읍니다.
“박 영일!”
선생님이 이렇게 내 이름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였읍니다. 언제나 시원스럽게 대답하는 버릇이 있는 나였지만 이번만은 대답을 하지 못하였읍니다. 나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눈치를 번갈아 살피며 부시시 자리에서 일어섰읍니다.
갑자기 교실 안이 조용해지고 모두가 내게만 시선을 주는 것이 아니겠융니까?
나는 속으로 생각했읍니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구나!
자연히 내 얼굴은 앞으로 수그러졌읍니다. 그러면서도 힐끗힐끗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았읍니다. 그런데 웃는 얼굴인지 성난 얼굴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읍니다.
웃음을 못 참아 하는 얼굴 갈가도 했읍니다.
“박 영일이가 누구야!”
“예, 접니다.”
내가 이렇게 대답하자 아이들은 무어가 그렇게 우스운지 또 한바탕 웃어댔읍니다. 나는 내 옆에 앉아 있는 경식이와 창복이를 곁눈으로 흘겨보며 주먹을 쥐어보였읍니다.
“그럼, 왜 아까부터 박 영일이를 몇 번씩이나 불렀는데 대답을 안했나?”
--아하, 이제 알았다. 그렇다면야 무서울 것이 없지.
이렇게 생각한 나는 기운을 내서 말했읍니다.
“예, 잘못했읍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그제서야 선생님은 웃으시며,
“아아니, 넌 그동안 어딜 갔었니? 대답도 하지 않고…”
“예, 잠깐------”
나는 뒷통수를 긁으며 어물어물했읍니다.
“잠깐 어딜 갔었니?”
그렇지만 그것만은 말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참 이상도 합니다. 분명히 내가 교실에 앉아 있었는데 어째서 대답을 하지 못했을까요?
이것을 보아도 나하고 몸하고는 다른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내 몸을 박 영일이라고 부르거든요. 나도 그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내 이름은 뭔가요?
내가 박 영일이하고 아주 가까운 것은 사실입니다. 내가 없으면 박 영일이는 영일이 구실을 못하고 영일이가 없으면 나는 또 나대로 야단이 납니다.
아마 나는 영일이의 둘도 없는 친구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언제나 박 영일이와 붙어다녀야 하는 박 영일이의 심부름꾼일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하라는 대로 영일이가 꼬박꼬박 하는 것을 보아서는 영일이가 내 심부름꾼일는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그런 것은 따지고 보면 그런지 몰라도 아직까지 따져본 일도 없고 따지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박 영일이라는 이
름은 우리 둘의 이름으로 알고 있읍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늘 나 혼자 있을 때가 퍽 자유스럽습니다.
보통 밤이 되면 내 세상이 됩니다. 영일이가 잠자리에 누워버리면 나는 영일이를 근심할 필요도 없이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가 있읍니다.
나 혼자가 되면 무슨 일을 하느냐구요? 그거야 뭐 일일이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요. 그건 나한테 물어보는 것보다 박 영일이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빠를 것입니다. 나는 재주가 비상하기는 하지만 일일이 내가 한 일을 직접 남에게 말 할수는 없읍니다. 무슨 일이든지 박 영일이를 통해서야 남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박 영일이는 반드시,
“내가 어젯밤에------”
하고 제가 한 일처럼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들도 아무런 의심없이 으혜 박 영일이가 그랬으려니 하고 듣고 있읍니다. 이런 일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조금도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원망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저 나라고 하면 영일이고 또 영일이라고 하면 그건 나려니 하고 느끼고 있읍니다.
자, 이만하면 내 말을 잘 알아들었읍니까? 아직도 똑똑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구요?
글쎄요, 나도 이 이상 더 나와 영일이의 이야기를 설명할 수는 없읍니다. 내 이름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어쨌든 그저 그런 것인 줄이나 알고 두고두고 생각해보셔요. 참 미안합니다.
너무 엉터리 같은 소리를 오랫동안 지껄였읍니다.
그러면 나의 지나간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께 들어보셔요.
지난 여름이었읍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동해안으로 가서 며칠 동안을 쉬고 왔읍니다. 방학 때가 되어서 그런지 나 외에도 많은 어린이들이 해변가로 와서 즐거운 날을 보내는
것이었읍니다.
나는 여기서 많은 동무들을 사귀었읍니다. 요새도 그 어린이들과는 편지를 주고받고 한답니다. 그리고 금년에도 해변가로 다시 모이자고 서로 약속을 하고
있융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쌀 몇 되에 고추장, 된장, 남비, 홑이불, 이렇게 몇가지만 장만하면 되니까 문제없읍니다.
그렇지만 역시 어른이 따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파아란 바닷물이 싹아 하고 모래언덕으로 밀려들어오면 우리들은 마구 풍덩거리며 물속으로 뛰어들어갑니다.
또 언덕에 앉아 모래 앞을 두 다리를 뻗은 위로 끼얹으며 둘러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는 재미란 여간 큰 것이 아닙니다.
“삐, 뻐, 삐-----·”
갈매기가 흰 날개를 벌리고 물결 위로 날아다니는 모양을 보며 우리들은 차례로 재미있는 이야기내기를 하였읍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지금 갑자기 생각이 잘 안 납니다. 그러나 그때
수남이나 명애가 한 이야기는 내게는 처음 듣는 신기한 이야기였으므로 지금도 그 이야기를 잘 기억하고 있읍니다.
그 중의 명애가 한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였읍니다.
“해변가에는 도깨비가 참 많이 살고 있단다. 옛날 노인들이 그러시는데 옛날에는 그 도깨비들이 저녁때만 되면 제 세상처럼 막 날뛰곤 했대. 장난이 어찌
심한지 게잡이 하는 사람들이 갯고랑으로 나가면 말똥을 마구 떠내려보내서 할 수없이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지 않아?”
명애는 이렇게 이야기하며 자기는 요새도 도깨비를 본다는 것이었읍니다.
“뭐? 그게 정말이냐?”
다른 아이들은 거짓말이려니 하고 명애를 쳐다보았읍니다. 그러나 명애는 실없는 소리를 할 아이가 아니므로 모두 도깨비가 어떻게 생겼더냐고 물었읍니다.
“글쎄, 내가 가까이서 본 건 아니구 말이야. 난 학교에서 늦게 돌아올 때가종 있거든, 그리고 또 집의 심부름으로 저 꾸불꾸불한 논둑길을 걸어서 건너 동 r
네까지 갔다와야 할 때도 있는데----“
명애는 잠깐 말을 끊고 무서운 것이나 보는 아이처럼 질린 표정을 지었읍니다. 그리고 멀리 가물거리는 어선들이 있는 바다 쪽을 바라보며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였읍니다.
“하루는-----· 그게 분명히 봄이었던가봐. 저녁 먹고 나는 건너 동네로 밭일을 부탁하러 아저씨댁엘 심부름을 갔었어. 그런데 글쎄, 무시무시한 밤길을 혼자 걸어가려니까 갑자기 저쪽에서 이상한 불이 켜지더니 내 앞으로 막 달려들지 않아? 그땐 참 십년은 감수했을 거야.”
“그래 어쨌니?”
나와 아이들은 침을 삼키며 다음 말을 재촉했읍니다.
“그래서…… 그래서 말이야, 할 수 있어? 엄마! 하고 질겁을 해서 소리를 지르며 집으로 되돌아서서 도망오고 말았지 뭐.”
나는 겁에 질린 그때의 명얘 모양을 상상해보았읍니다. 그리고 만일 그날 밤 내가 거기 있었더라면 도깨비하고 용감히 싸웠으리라고 생각했읍니다.
그러나 도무지 명애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읍니다. 그후 나는 바닷가를 떠나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읍니다. 그렇지만 밤마다 영일이가 잠이 들면 훨훨 날아서 그 해변가로 찾아갔읍니다. 아름다운 경치는 변함이 없지만 사람들이 다흩어져 돌아간 해변가는 쓸쓸하기 짝이 없었읍니다.
그래서 하루는 명애가 말하던 그 도깨비가 나온다는 곳으로 찾아가보았읍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도깨비를 만나보려고 길목을 지켰읍니다. 도깨비가 어떻 게 생겼는지도 알아보고 싶었지만 만일 도깨비가 나온다면 잡아버릴 생각이었읍니다.
예수를 믿는 내가 도깨비 하나쯤을 못 잡아서야 말이 되겠읍니까?
성경에도 귀신 같은 것들이 예수님 앞에서 꼼짝을 못한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읍니다.
나는 그 도깨비를 잡아묶어가지고 명애네 집을 찾아가보려고 했읍니다. 그렇 지만 첫째날도, 둘째날도 또 그 다음날도 헛일이었읍니다.
도깨비뿐만 아니라 명에도 내가 지키고 있는 길을 한번도 지나가지 않더군요나는 너무도 섭섭하여 이번에는 밤새도록 구름속에 숨어서 지켜보았읍니다. 역시 그것도 헛수고였융니다.
그런데 하루는 도깨비가 정말 나타나고야 말았읍니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혼자서 좋아라고 그쪽을 바라보았융니다.
언제 켰는지 도깨비는 빨간 불을 켜들고 이쪽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왔읍니다. 그러자 나는 섬뜩하고 풍골에 냉수를 끼얹은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았읍니다.
------이래서는 안된다!
나는 용기를 내었읍니다. 그리고 달려드는 도깨비를 눈을 부라라고 쏘아보았읍니다.
하지만 그 도깨비는 모르는 체하고 그냥 내 앞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은 또 이상하게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혹시 내 표정이 이상해져서 그 도깨비한태 얕보이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읍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두 다리에 힘을 확 주고 가슴을 젖히고 어엿이 섰읍니다. 그리고 또 입을 꼭 다물고 둔에 힘을 주어 크게 떴읍니다. 그러고는 달려오는 불을 향해 손짓을 했읍니다.
“빨리 와!”
그랬더니 이번에야말로 나한테 질렸는지 그 도깨비는 깜짝 불을 끄고는 없어l지고 말았읍니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마치 ᅟᅳᆼ리한 사람처럼 빙긋이 웃으며 두 주먹을 어깨위로 쳐들었읍니다.
그런데 얼마 었으려니까 도개비가 다시 나타났읍니다.
이번에는 불을 켜가지고 저쪽으로 달아나고 있었읍니다.
“내가 너를 놓칠 줄 아느냐?”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두 팔에 힘을 주어 나버처럼 퍼덕이며 공중으로 날아올라갔읍니다. 그러자 내 몸은 가볍게 둥둥 떠서 그놈의 뒤를 따라 날아가고 있었읍니다. 얼마 후에는 그놈을 타고 누를 거리에까지 가까이 따라갔읍니다.
그러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읍니다. 그것은 도깨비가 아니라 어떤 아저씨가자전거에 불을 켜달고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놀란 것은 그것뿐이 아닙니다.
“아버지, 냐는 아버지하고 이렇게 가면 이 길이 하나도 무섭지 않아.”
“그래 ? 그러니까 아버지는 좋은 거야. 명앤 아버지에게 감사해야 해.”
이렇게 주고받는 정다운 말소리가 그쪽에서 돌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명애의 아버지와 명애가 타고 가는 자전거였습니다.
나는 하도 반가워서,
“명애야! 명애야! 나 영일이야, 보고 싶었어.”
하고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래도 명애는 못 들은 체 하고 그냥 아버지의 허리에 두 팔을 감은 채 저쪽으로 사라졌습니다.
나는 또 불러보았습니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때서야,
―― 앗차!
하고 깨달았습니다.
―― 영일이는 내가 있어야 영일이가 되듯 나는 또 영일이가 있어야 내 구실을 하는 것이로구나!
하고 느꼈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