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30여년전인 1964년 연천초등학교 1학년 시절 내 짝지는 이옥기 였다. 그 당시 옥기는 두눈이 초롱초롱하고 얼굴도 동그랗고 항상 미소를 잃지않은 아주 이쁜 여학생이였다.
집은 멀리 통제(통현리)에서 다닌걸로 기억되고 공부도 참 잘하였다. 그런데 받아쓰기 시험 볼때 가끔 내 시험 답안지를 커닝(cunning)하여 항상 같이 100점을 많이 받았었다. 같이 앉아있는 옥기와 나는 당시 담임 이였던 김종분 선생님(맞는가 모르겠네 ?)한테 칭찬 겸 의심도 받았다.
그래서 하루는 내가 꾀를 내어 답안지를 수정했다. 선생님께서 받아쓰라고 한 것은 “나란히” 였는데 나는 일부러 “나란이”라고 적었다. 그러면 옥기가 지는 정답을 나란이 라고 적을것이고 나는 답안지 제출할 때 살짜기 수정하면 이번에는 서로 틀린 점수가 나오겠지 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니나 다를까 채점 결과 역시 난 100점을 받았고 옥기는 95점을 받았다. 그 당시 받아쓰기는 주로 20문제를 내었기 때문에 옥기는 나란이 라 적어 한개를 틀렸기 때문이다. 그런일이 있은후 옥기는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하여 중앙으로 진출코자 초등학교 6학년때 인천으로 전학을 갔고 인천박문여중 3학년때 다시 고향 연천으로 전학와 연천중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중앙에서 다니다 시골중학교로 전학오니 미모가 출중하고 도시 여학생으로서 세련미등으로 많은 남학생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인기를 독차지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옥기는 초등학교 1학년때 나랑 짝지였다는 사실을 모른다.
중3때 전학와서 난 너무 반가워 아는체도 하고 초등학교 1학년때 짝지였다는 사실을 알려줘도 기억이 안나는가 별 관심도 안 보이고 해서 나는 자존심이 상해 연천실고를 입학한후 얼마 안있다가 꼴 보기 싫어서 부산으로 멀리 전학갔다. ㅎㅎㅎ (농담........옥기야 웃을려고 하는거 알지 ?)
세월이 흘러 30여년만에 일육회 게시판의 옥기 사진을 보니 그 옛날 초롱초롱했던 눈망울과 포동포동했던 얼굴은 어느새 넉넉하고 중후한 여인으로 변했어도 고왔던 눈매와 다정하고 명랑한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고 벌써 할매가 되었다는 소식에 다시한번 인생무상을 느껴본다
옥기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 다 보고 싶어 내년 2월의 정모를 손꼽아 기다리며 오늘도 육일회 둥지에 틀어 앉아 차탄천 맑은물에 목욕을 하고 고기를 잡던 옛 추억을 생각하며 잠시 또 향수에 젓어본다.
매월 16일에 개최한다는 연천 고향의 일육회 모임에 11월에는 좀 힘들고 어쩜 12월 16일 모임에 참석토록 노력해볼께
모두들 다시만날 때 까지 건강히 잘있고 가내와 직장에 행복과 발전을 기원하면서 이만 아쉬운 작별을 고할까 한다.
2005. 10. 28
부산에서 변강희가
첫댓글 ㅋㅋㅋ 옥기의 초등 때 불성실함(?)이 적나라하게 들어나는구만...히히히~! 강희의 소회를 읽으니 나도 덩달아 과거를 회상케 되는구나. 근데 우리 기 수는 육일회가 아닌 일육회다.~ㅎ
ㅎㅎㅎ 기억력 참 대단타~ 김종분선생님 맞고... 이리도 상세히 기억하는디~ 옥긴 전혀 기억에 없다니... 안타깝코마... 옥기야~! 기억 좀 더듬어 보거랑~ ㅋㅋㅋ
우리 졸업기수가 16회 맞다. 어제 술한잔 했드만 아직 술이 들깬 모양이다. ㅎㅎㅎ 육일회를 일육회로 정정했다.
에구....이건 뭔소리....한 웅큼 토해낸다.... 까칠한 기억들.....
기억력이 대단하구나...난..중학교 내내 연천 다녔는 줄 았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