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들 / 손석희 / 창비
저자가 JTBC에서 경험했던 주요 장면들을 소환해서 언론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적은 책으로, [어젠다 키핑을 생각하다]와 [저널리즘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의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알릴레오 북’s 59회를 먼저 시청해서인지 읽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물론 알릴레오에서 다룬 부분은 일부이기만, 빠진 것들도 역사적으로 굵직한 장면이어서 새로운 것은 없었다.
저자가 주로 힘을 주어 강조한 것은 “어젠다 키핑”이다. 어젠다 키핑이나 어젠다 세팅, 모두 쉽게 접할 수 없는 단어이다. 어젠다 키핑은 저자의 제안인 듯 보인다. 언론이 뉴스를 어떻게 골라내어 공중에 전달할 것인가를 어젠다 세팅이라 한다면 어젠다 키핑은 얼마 동안 세팅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가를 말한다. 슬쩍 지나가는 것은 공론의 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쉽게 사라지고 잊혀지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일인 미디어와 전통 미디어의 차이를 잠깐 언급하였고, 언론이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 같은 것을 제시한다. 그가 생각하는 보도의 원칙은 사실, 공정, 균형 그리고 품위, 네 가지이다. 원칙이라는 것이 모두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으므로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은 진실이라는 말에 힘을 잃어버리고, 공정(공평하고 올바름)도 바라보는 사람이나 위치에 따라 달라지며, 균형이나 품위 모두 허공을 가리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치 사람과 같아서 시간이 지나야 그 보도가 혹은 그 보도를 하는 미디어가 보도의 원칙을 잘 준수했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세간에 마지막 저널리스트로 인정받는 이유도 그가 걸어온 족적으로 판단받은 것이리라.
얼마 전 읽은 청소년용 소설 앤드루 클레맨츠의 [랄슨선생님 구하기 The Landry News]에서는 심장을 또는 Mercy를 가져야 한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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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분(公憤)이란 것에는 감정뿐 아니라 논리도 들어가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명분 없는 감정만 가지고 공분을 느끼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공분의 감정이 사그라들 때가 오는 것이다. 세상에는 그 어젠다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감정이란 것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쩔 수 없이 감정이라는 부분이 걷어내지고 논리만 남아 있을 때, 그때가 사실은 매우 애매한 지점이 되는 것이다. 이 어젠다를 계속 끌고 갈 것인가, 그러기엔 사람들이 너무 지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시청자들이 우리 뉴스를 떠난다면 그 어젠다를 이어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와 효력이 있는 것이까.
그때는 결정해야 했다. 감정은 사그라지고 논리만 남아 있을 때, 그마저 닫아버리면 어찌 되는 것인가. 우리 사회에는 감정도 안남고, 논리도 안 남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분명히 존재하는 어젠다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껍데기만 남는 것이다. 그러면 (좀 격한 표현이긴 하지만) 기자들은 어디 가서 앵벌이 해오는 것밖에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적어도 논리적으로 우리가 거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이 되는 한 계속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언제 끝낼 것인가. 이에 대해선 사실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언론이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기억해준다면 된다고 생각했다. 7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