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3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스펙타클 파루시아 》
살전 4:13~18
<신앙은 자라 가야 하는 여로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신자들은 단 3주 만에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신앙생활 이어 가기에 부족함을 느낍니다.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방문했을 때, 이들의 갈급함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디모데에게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신앙은 질문할 때 성장합니다.
__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서 신앙생활은 시작됩니다.
__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듯이, 신앙도 마라톤에 비유함이 옳습니다.
__성도는 끊임없이 예배하며, 성경을 읽고, 기도로서 주님의 뜻을 확인해야 합니다.
__주님의 뜻이 아니라면 내치고, 주님의 뜻이라면 가시밭길이라도 가야 합니다.
디모데는 질문을 메모하여 바울 사도에게 전달했습니다.
그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이미 죽은 이들은 어떻게 되나요?”
오늘 본문은 이 질문에 대한 바울 사도의 답변입니다.
(13~14절)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말은 곧, “좋은 질문 해 주셨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바울도 단 3주간 선교로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있던 차입니다.
바울은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겠으니 잘 들으라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예수 안 믿는 사람과 달라야 한다고 합니다.
__예수 안 믿는 이들과 사후 세계에 대하여 대화 할 때가 있습니다.
__그들은 “죽은 다음을 누가 알아? 다 쓸데없는 이야기지!”라고 합니다.
__“그러면 설날, 추석날 차례는 왜 지내고 제사는 왜 지냅니까?”
__“그야 뭐 다들 그렇게 하니까… 그건 일종의 문화 아녀?”
__추석이 낼모레입니다.
__문화라고 하면서 죽은 조상에 대해 차례상에 절을 할 겁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사후 세계는 새로운 소망으로 가득합니다.
조상과 부모와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소망으로 슬프지 않습니다. 물론 상실의 아픔은 슬프고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입니다.
“죽음 이후를 누가 알아?”하면서, 차례와 제사를 지내면서 슬퍼하는 이들과 급이 다릅니다.
__데살로니교회 성도여,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진대,
__우리는 소망 없는 불신자의 슬픔과는 다르게 슬퍼해야 합니다.
__죽음으로 인한 상실의 고통과 슬픔을 견뎌야 하지만, 우리는 불신자와 다릅니다.
__불신자는 소망 없이 슬퍼합니다. 우리는 슬프지만 소망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사도 바울은 먼저 이렇게 결론적인 답변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믿고 구원받은 자들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스펙타클 파루시아>
오늘 설교 제목을 “스펙타클 파루시아”로 선포했습니다.
파루시아는 ‘재림’이라는 뜻이고, ‘스펙타클’은 ‘위대한 광경’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십니다. 그때는 종말의 때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어 주재하신 하나님이 최종 심판을 하십니다. 그때가 ‘파루시아’입니다.
천지창조의 순간이 위대하고 웅장하고 스펙타클한 광경인 것처럼 최후심판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 재림, “주께서 강림하시는 그때” 스펙타클 파루시아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천지창조 순간을 기억하는 것처럼 파루시아도 기억해야 합니다.
파루시아가 우리 생전에 오든, 우리의 삶 이후에 오든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__데살로니가서를 쓸 때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생애중에 주님이 오시리라 고대했습니다.
__말년에 이르러서는 자기의 죽음 이후에 파루시아가 오겠구나 생각했습니다.
☞ 지금부터 “스펙타클 파루시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 주님의 호령>
“스펙타클 파루시아”는 가장 먼저 “주님의 호령”으로 막이 열립니다.
이어서 “천사장의 소리”가 스테레오 사운드로 빵빵하게 들려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우리의 오금을 저리게 하면서 천지를 진동케 합니다.
(16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주님의 호령, 천사장의 소리, 하나님의 나팔 소리, 이 셋을 대충 그런가보다 하면 안 됩니다.
믿음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추상적인 믿음은 뿌리가 약합니다. 쉽게 넘어집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 파루시아, “스펙타클 파루시아”를 제대로 감상해야 합니다.
분명히 감상하고 평생 우리의 가슴판에 깊이 새겨두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첫 번째 소리, “주님의 호령”입니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첫 번째 선포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호령하실까요? 한국식으로 하면 “이리 오너라!”가 될 것입니다.
조선시대 양반이 이웃집을 방문할 때, 대문 앞에 서서 크게 외칩니다. “이리 오너라!”
주님께서 다시 오셨습니다. 그리고 호령하십니다.
“이리 오너라, 약속대로 내가 다시 왔다, 등불 들고 나를 맞이하라!”
주님의 재림, 파루시아, 주님의 호령으로 이렇게 시작합니다. 장엄한 스펙타클입니다.
간혹, 재림에 대하여 ‘언젠가 주님이 다시 오시겠지…’ 막연히 덮어둡니다.
그렇게 덮어두고 믿으면, 우리 믿음이 “막연한 믿음”이 되고 맙니다.
우리의 믿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막연한 믿음”입니다.
신앙이 막연해지면 “소망 없는”(13절) 불신자와 같이 막연해집니다.
사후 세계를 “누가 알아?” 하면서 차례와 제사를 지내는 사람과 똑같아집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 재림심판, 파루시아!! 분명히 알고 믿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 오직 성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성경은 그러나 그때의 장면을 “스펙타클 파루시아”로 보여줍니다.
“스펙타클 파루시아”로 주님의 강림을, 우리 심령에 새길 때, 믿음이 딴딴해집니다.
예수님의 호령으로 “스펙타클 파루시아”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이리 오너라, 약속대로 내가 다시 왔노라, 등불 들고 나를 맞이하라!”
<2. 천사장의 소리>
주님의 호령에 이은 두 번째 소리는 “천사장의 소리”입니다.
주님의 재림에는 천군 천사가 대동합니다.
천사장이 주님의 호령에 이어서 외칩니다. 천군천사! 그 광경을 상상해보세요!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사극을 보면, 왕의 행차에 앞서서 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렀거라, 상감마마 납시신다!” 이 소리를 듣고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부복합니다.
“스펙타클 파루시아”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방방곡곡에 천사장이 알립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침례(세례) 요한이 외쳤습니다.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보라! 메시아,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의 재림에도 이렇게 널리 선포하는 천사장의 소리가 있습니다.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재림하셨다! 모두 부복하여라!”
요즘 극장은 음향시설이 보통 좋은 것이 아닙니다. 매우 뛰어납니다.
영화보면서 음향에 압도당하기도 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때의 음향은 영화관의 온갖 시스템을 뛰어넘습니다.
오늘 이 설교 들으시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보다가 음향에 압도되거든,
“스펙타클 파루시아!” “스펙타클 파루시아!” 꼭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나팔소리>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이리 오너라” 천사장의 “주님 다시 오셨다!”
이 소리 다음에 또 한 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팔 소리”입니다.
설교 마치고 찬송가 180장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진동할때에~” 부를텐데요,
그 장면을 우리가 뼈저리게 실감해야 합니다.
극장에서 영화볼 때도 감동이 사무치는데, 하물며 주님 다시오시는 “스펙타클 파루시아”
극장에서는 극장안에만 진동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에는 천지가 진동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나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요?
하나님의 나팔 소리는 산 자는 물론,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우고 불러모으는 소리입니다.
앞에서 주님의 호령, 천사의 소리도 죽은자 까지도 일으키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나팔 소리”는 죽은 자, 산 자를 모두 불러서 심판대에 세웁니다.
심판대, 이 땅의 재판정이 아닙니다. 천상의 법정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이들을 천상의 법정에 세우는 스펙타클 파루시아로 전개됩니다.
<스펙타클 파루시아 연출자>
예수 안 믿는 사람들, 죽음 이후에 대해 애매모호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사후 세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차례상 차림을 멈추지 못합니다.
차례 지내다 안 지내면 불벼락이 떨어질 것 같은 불안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제사를 지내다 안 지내면 조상이 노해서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불안에 빠집니다.
왜 이렇습니까? ~ 애매모호하고, 막연하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가 디모데를 통해서 한 질문은 “먼저 죽은 자는 어찌 됩니까?”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질문에 대충 대답하지 않습니다. 매우 치밀하고 짜임새 있게 대답합니다.
“스펙타클 파루시아”는 하나님의 연출입니다.
예수님이 “딱~” 재림하셨습니다.
그 때에 이 땅에는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재림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15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16절)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속으로~”(17절)
“스펙타클 파루시아”의 시놉시스는 정교합니다. 짜임새가 분명합니다. 어수룩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그때 살아있는 사람들에 앞서서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먼저 일어납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파루시아 전에 이미 세상을 뜬 자들이 무덤에서 일어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러일으키십니다.
“하나님의 나팔 소리”는 “죽은 자를 생명으로 불러오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먼저 일으키십니다. 죽은 자를 부활시킵니다. 살려놓고 심판을 하십니다.
<의인의 부활 악인의 부활>
무덤에 있는 자를 살리실 때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똑같지 않습니다.
의인은 “생명의 부활”입니다. 악인은 “심판의 부활”입니다.
☞ 누가 의인이고 누가 악인입니까?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을 적용합니다.
__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 자들이 의인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이 악인입니다.
__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 자는 생명의 부활, 원수 된 자는 심판의 부활입니다.
<맺음>
파루시아, 재림, 강림, 예수님의 다시 오심, 같은 뜻입니다. 이 때는 최후 심판의 때입니다.
① 주님의 호령, 천사장의 소리,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재림이 시작됩니다.
② 재림 전에 죽은 자, ‘잠들어 있는 자’들을 먼저 부활시킵니다.
③ 재림 당시 살아있는 자들과 함께 주님은 심판하십니다. 생명의 부활, 심판의 부활!
④ 의인으로 평결받은 이들이 모두 구름 속으로 들리어 올라갑니다. 휴거입니다!
⑤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합니다. 그때부터 영원히 주님과 함께~
주님의 강림은 이렇게 주도면밀합니다. 빈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스펙타클 파루시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지상의 극장에서 상영된 그 어떤 ‘스펙타클’보다 완벽합니다.
지상에서 사람들이 연출하는 스펙타클의 감동은 “스펙타클 파루시아”의 맛보기입니다.
“스펙타클 파루시아” 잘 감상하셨습니까?
주님의 다시 오심이 이러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이러합니다.
재림 시 산 자들은, 산 채로 변화를 입고 휴거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에게 웅장하게 편지를 썼습니다. “스펙타클 파루시아”
그리고 말씀합니다.
(18절)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세상에서 위로를 찾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 따라 위로를 받으라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이 위로를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오늘 예배합니다. 그리고 보았습니다.
“스펙타클 파루시아”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