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게 조용한 날이었다. 돈을 벌어오지도 않으면서도 매일 복녀를 닦달하는 그 소음과 폭력이 묘하게 환영과 환청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이 놀고 먹는 몸뚱이로 기 정도까지두 벌어오지 못할 거무 내 집에 들어올 생각일랑랑 아예 하디 마오! 기러케 할 거무 기냥 밖에서 뒈지디 기느냐!”
(놀고 먹는 몸으로 그 정도까지도 벌어오지 못하면 집에 들어 올 생각일랑 하지 마라!)
매일 들리는 그 독촉하는 말소리의 끝에 게을리 바닥과 한 몸이 된 남편은 항상 손에 잡히는 아무 물건을 복녀에게 던졌다. 다행히도 등으로 맞으면 티가 안 나고 좋겠지만 얼굴로 맞았을 때는 길가다가 넘어졌다는, 아무도 안 믿을 변명이나 하니 주변 아줌마들은 복녀가 맞고 산다는 것을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은 자신을 향한 손찌검이 느껴지지 않았으니 참 이상한 하루라고 생각했다. 왠지는 모르겠다만 복녀는 남편에게 인사도 없이 집을 나섰다고 또 복날의 개 마냥 뚜드려 맞는 건 아닌가 하였다.
수상하리만치 날도 맑았다. 햇볕은 너무나도 반짝거려서 바라보면 눈이 멀 것만 같고, 구름 한점 없는 하늘, 선선하게 부는 바람은 복녀의 기분을 들뜨게 만들기는 했다. 햇빛에 오늘따라 도드라져 보이는 옷에 붙은 그동안의 흙먼지를 털어내며 발걸음을 그녀가 옮긴다. 어떻게든 금액을 깎으려 드는 수상한 약속들을 지키려 마당으로 나서기 시작한 참이었다.
수상한 행운은 그녀가 감독에게로 다가섰을 때도 이어졌다. 감독은 옆에 웬 수상한 아저씨 하나를 끼고 있었다.
“어이, 복녀! 시간 되디 기느냐? 이 아재 좀 데리고 가라우. 기느니 배의 배를 불너두 다른 아조마이들은 벌써 짝 채자 간 건디 통 안 보위네 기려.”
(어이. 복녀, 시간 되는 거 아닌가? 이 아재 데리고 좀 가시게. 뭐가 그리 고픈지 배의 배를 불러도 다른 아줌마들은 이미 짝 찾아 간 건지 안 보이네. 그랴.)
복녀의 작은 머리가 굴러간다.
‘한 번이라도 이런 큰 손님이 있던가. 그나마 있는 왕서방이라도 이 정도로는 못 주는데. 아직 왕서방이랑 약속은 2시간 정도 남았으니까 빨리 상대하고 돈을 받아버릴까?’
그녀의 고민은 그닥 길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니 그 손님을 상대하고 그녀의 손에는 큰 돈이 있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의 손님이 왔다. 그 손님들이 하나같이 복녀가 맘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무서울 정도로 돈이 잘 벌렸다. 이 정도면 한 달 치에 버금가는 돈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 찾아 가는 왕서방과의 약속에 늦지 않게 더 머물러 달라는 백발의 할아버지 손님을 잘 타일러 나오는 길이었다. 길가에 익숙한 아줌마들이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왕 서방네 이야기 들었디요? 기거이 생거디(진짜)라디요? 이번엔 에누리 없는 진띠기(진짜)라던데 기티 안소?”
(왕서방 이야기 들었어? 그거 진짜라지? 이번엔 진짜라던데?)
복녀는 그들이 왕서방의 이야기를 하는 건 유추할 수 있었다만 뭐가 이번엔 진짜라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복녀는 애써 신경 쓰지 않는 척 그들을 지나쳐 왕서방네로 들어섰다.
익숙했다. 익숙한 문, 익숙한 사람, 익숙한 방. 그러나 익숙했던 분위기만 묘하게 달랐다. 그녀는 익숙한 그 왕서방을 상대하면서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복녀, 이번까지만 나 혼자다 해. 앞으로는 집으로 찾아오지 말라 해. 다른 데서 만나자 해.”
복녀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유사 애인처럼 굴던 그였다. 복녀가 질문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에요?”
복녀는 제발 그가 예상했던 그 말을 하지 않길 바랐다. 그렇지만 그 말을 왕서방은 내뱉어 버렸다.
“나 오늘 결혼 한다 해. 너랑 더 이상 이 집에서 만날 수가 없다 해. 그래도 걱정하지 말라 해. 그래도 ...”
복녀는 왕서방의 다음 말을 듣지 못했다. 번개 맞은 듯이 머리가 찡해졌기에 들을 겨를이 없었다. 어젯밤 남편에게 맞았던 가슴팍이 다시 후끈거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남편에게 받은 상처를 그나마 위로해주던 그 남자도 결국 그녀를 멀리하기로 선언한 것이다.
왕서방이 이어간 뒷말을 다 듣지도 못하고 손에 쥐어진 값을 받았다. 나중에 가서 옆집 부인이 하는 말이지만 그때 복녀는 부모라도 잃은 듯이 넋이 완전 나가 무슨 일이든 저질러버릴 것 같았다고 했다.
복녀는 그 길로 집에서 낫을 챙겨 나왔다. 낫을 찾으면서 뭐 찾냐고 소리를 지를는 남편도 무시한 채 왕서방과의 일들을 되짚었다. 복녀가 가장 좋다는 둥, 남편이랑 말고 자신이랑 살자는 둥의 말은 사탕발림임을 깨달은 그녀의 눈빛은 금세 분노로 휩싸였다.
복녀는 왕서방네 안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새 신랑 차림의 왕서방과 새색시의 꼴이 복녀의 신경을 싹 긁어버렸다.
사람의 소리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의 괴성을 지르면서면서 복녀가 왕서방에게 달려들었다.
낫은 왕서방이 아니라 복녀의 목을 뚫었다. 그녀의 주머니에서 격렬히 짤랑거리는 돈소리와 새색시의 비명이 들리 우는 밤이었다.
복녀의 시신은 바로 묻히지 않았다.
복녀의 처참한 최후를 보던 의사는 괜히 차분한 듯이 진단을 내린다.
“뇌일혈로 하시지요. 그게 제일 평범합니다.”
왕서방은 진단을 마친 의사에게 10원짜리 두 장을 건넨다.
복녀의 남편에게는 시신 값으로 10원짜리 세 장을 건넨다.
그는 왕서방이 돈을 다시 가로채기라도 할 듯이 돈을 낚아챈다. 신이 난 표정으로 복녀의 남편은 집으로 향한다.
수술대에 놓인 시신의 주머니를 뒤진다. 짤그락 거리는 돈을 모조리 빼낸 그였다.
“이 답답한 여편네야, 죽어서 복잡하게 되긴 했디만 도움이 되는 날두 다 오위네 기려. 아주 운수 땡 잡은 날이디 기니!”
(이 답답한 여편내, 죽어서 복잡하게 되긴 했지만 도움이 되는 날도 오다니. 완전 운수 땡 잡은 날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