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한국의 나무가 된 귀화 미국인 1호 민병갈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을 설립한 귀화 미국인 1호 민병갈.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img9.yna.co.kr%2Fetc%2Finner%2FKR%2F2019%2F03%2F25%2FAKR20190325122300371_01_i_P2.jpg)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을 설립한 귀화 미국인 1호 민병갈.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한국인 최초의 미국 시민권자는 서재필이다. 1884년 갑신정변에 실패해 일본을 거쳐 이듬해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으로 개명하고 1890년 6월 10일 시민권을 얻었다. 그러면 한국으로 귀화한 미국인 1호는 누구일까. 미군 장교 출신의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는 민병갈이란 이름으로 1979년 서양인 최초로 한국 국적자가 됐다. 올해는 그의 귀화 40주년이기도 하다.
그는 '파란 눈의 나무 할아버지'란 별명을 갖고 있다. 2000년 국제수목학회는 그가 가꾼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을 세계에서 12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에 선정했다. "내가 죽으면 무덤을 쓰지 말고 그 자리에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으라"는 유언을 남겼을 만큼 나무를 사랑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고아 4명을 입양해 키웠고, 한식과 한복을 즐겼다.
![손자를 안고 며느리가 준비하는 식사를 기다리는 민병갈.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img0.yna.co.kr%2Fetc%2Finner%2FKR%2F2019%2F03%2F25%2FAKR20190325122300371_02_i_P2.jpg)
손자를 안고 며느리가 준비하는 식사를 기다리는 민병갈.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는 192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나 버크넬대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해군정보학교에서 일본어 과정을 이수하고 1945년 6월 일본 오키나와에 배치돼 일본군 포로와 종군위안부를 직접 신문했다. 광복과 함께 38선 이남을 관할한 미국 군정청에 부임했다가 한국의 인심과 풍광에 이끌려 한국 근무를 자원했다. 미국의 경제협조처(ECA)와 국제협력처(AID)에 근무한 인연으로 1953년 한국은행 상근고문으로 초빙돼 눌러앉았다.
민병갈은 미 군정청에서 만난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을 친아버지처럼 따랐다. 군에서 전역할 때 유일한의 권유로 가진 돈을 몽땅 유한양행 주식에 투자해 목돈을 모았고, 이를 종잣돈 삼아 주식 투자로 번 돈을 수목원에 쏟아부었다. 한국은행 시절 민병도 총재와 형제처럼 지냈는데, 그의 성과 돌림자를 따 한국 이름을 지었다. 민병도도 퇴임 후 민병갈의 도움을 얻어 강원도 춘천의 남이섬 가꾸기에 매달렸다.
![2018년 유색 벼를 심어 피아노 건반 모양을 연출한 천리포수목원의 논 모습. [천리포수목원 제공]](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img6.yna.co.kr%2Fetc%2Finner%2FKR%2F2019%2F03%2F25%2FAKR20190325122300371_08_i_P2.jpg)
2018년 유색 벼를 심어 피아노 건반 모양을 연출한 천리포수목원의 논 모습. [천리포수목원 제공]
민병갈이 수목원 조성에 나선 계기는 생뚱맞아 보인다. 여름 휴가 때면 태안의 만리포 해수욕장을 즐겨 찾았는데, 1962년 인근 천리포에 들렀다가 딸의 혼수 비용이 필요하니 바닷가 야산을 사 달라는 마을 노인의 부탁을 받고 2만㎡(약 6천 평)의 땅을 사들인 게 시작이었다. 딱한 사정을 외면하지 못해 도우려고 한 일이었다. 소문을 들은 주민들이 내 땅도 사 달라고 졸라대자 차례로 매입한 뒤 1970년 수목원 공사에 나섰다.
그는 금요일 오후만 되면 천리포에 내려와 월요일 새벽 서울로 다시 출근할 때까지 나무를 심고 숲을 돌봤다. 57만9천281㎡(약 17만5천 평)의 수목원 구석구석을 돌며 삽과 호미질을 했고, 식물도감을 뒤져 나무와 풀의 학명을 모두 외웠다. 해마다 미국 나무 경매장에도 한두 차례씩 들러 신품종 묘목과 종자를 사들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2년 3월 11일 청와대에서 민병갈에게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img1.yna.co.kr%2Fetc%2Finner%2FKR%2F2019%2F03%2F25%2FAKR20190325122300371_03_i_P2.jpg)
김대중 대통령이 2002년 3월 11일 청와대에서 민병갈에게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민병갈은 자식처럼 키운 나무에 상처를 줄 수 없다며 인위적으로 나무를 보기 좋게 다듬는 것을 싫어했다. 수목원 직원들은 "나무를 지켜만 주고 주인 노릇을 하지 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고 한다. 농약과 기계를 쓰지 않는 것도 특징이고, 철저한 기록과 관리로 정평이 났다. 1982년 완도호랑가시나무를 발견해 국제학회에 등록하는가 하면 새로운 목련 품종을 잇따라 개발하는 등 학문적 성과도 적지 않다.
이 같은 공적을 인정받아 1974년 산림청장 감사패, 1989년 영국왕립원예협회 공로메달, 1992년 국제목련학회 공로패, 1996년 환경부장관상, 1999년 한미우호상, 2000년 국제수목학회 공로패와 미국호랑가시나무학회 공로패 등을 받은 데 이어 2002년 금탑산업훈장의 영예를 안았다. 경기도 포천 광릉의 국립수목원 '숲의 명예전당'에도 박정희·현신규·임종국·김이만에 이어 2005년 5번째로 헌액됐다.
![포천 광릉의 국립수목원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된 민병갈의 흉상 부조.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img2.yna.co.kr%2Fetc%2Finner%2FKR%2F2019%2F03%2F25%2FAKR20190325122300371_04_i_P2.jpg)
포천 광릉의 국립수목원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된 민병갈의 흉상 부조.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는 2002년 4월 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유족과 천리포수목원 임직원들은 차마 유언을 따를 수 없어 완도호랑가시나무 옆에 무덤을 만들었다가 10주기인 2012년 유골을 수습해 뼛가루를 고인이 아끼던 태산목(목련과 나무의 한 종류) '리틀젬'(Little Gem) 아래 수목장으로 안치했다. 묘터에는 작은 표지석을 설치했다.
그의 뒤를 이어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현 한솔섬유 대표)과 이은복 한서대 생물학과 교수(현 생명과학과 명예교수)가 차례로 이사장을 맡았다. 환경부는 2006년 천리포수목원을 멸종 위기종인 가시연꽃·노랑무늬붓꽃·망개나무·매화마름·미선나무의 보전기관으로 지정했다.
![천리포수목원 설립자 민병갈의 흉상.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img7.yna.co.kr%2Fetc%2Finner%2FKR%2F2019%2F03%2F25%2FAKR20190325122300371_09_i_P2.jpg)
천리포수목원 설립자 민병갈의 흉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최초의 민간 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은 2009년 이전에는 사전 허락을 받은 식물연구자나 후원회원만이 들어올 수 있는 '금단의 비밀정원'이었다. 그러나 2007년 12월 기름 유출 사고로 피해를 본 태안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고 일반인에게도 자연과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겠다며 2009년 개방을 결정했다. 민병갈의 별세 후 가중된 재정 위기에 숨통을 트려는 의도도 있던 것으로 풀이된다. 오는 4월 1일은 일반 개방 10주년 기념일이다.
밀러가든·에코힐링센터·큰골·남새섬·목련원·침엽수원·종합원 7개 구역으로 나뉘는 천리포수목원에는 목련 700여 종, 호랑가시나무 600여 종, 동백나무 500여 종, 무궁화 300여 종, 단풍나무 250여 종 등 1만6천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종수로는 국내 최다이고 광릉 국립수목원의 갑절을 넘는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곳은 6만5천623㎡(약 2만 평) 규모의 밀러가든과 에코힐링센터 등 일부 지역이다. 민병갈의 일대기와 유품을 전시해놓은 민병갈기념관과 밀러가든 갤러리도 들어서 있다.
![지난 20일 천리포수목원을 찾은 상춘객들이 영춘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img4.yna.co.kr%2Fetc%2Finner%2FKR%2F2019%2F03%2F25%2FAKR20190325122300371_06_i_P2.jpg)
지난 20일 천리포수목원을 찾은 상춘객들이 영춘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요즘 천리포수목원에는 봄을 맞이한다는 이름의 영춘화(迎春花)가 활짝 피어 상춘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민병갈의 기일인 4월 8일 전후로는 그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했던 목련이 소담스러운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그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깃든 목련꽃을 감상하며 아름다움과 향기에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민병갈의 한국 사랑과 나무 사랑을 한 번쯤 떠올리기 바란다. (한민족센터 고문)
heeyong@yna.co.kr
목련 한 그루 심고 26년을 기다렸다
내가 좋으려고
수목원을 차린 것이 아니다.
적어도 2, 3백 년을 내다보고 시작했다.
나는 어떤 목련 한 그루가 꽃을 피우기까지
26년을 기다린 적이 있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나무의 나이테는 일 년에 한 개만 생긴다.
수목원도 마찬가지다. 천리포 수목원은
내가 제2의 조국으로 삼은 한국에
길이 남을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천리포 수목원 설립자 민병갈)
- 윤재윤의《소소소 진짜 나로 사는 기쁨》중에서 -
* 민병갈.
한국 이름으로 바꾼 미국인.
한국을 제2의 조국 삼아 천리포를 만든 사람.
목련 한 그루를 심고 26년을 기다렸다는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천리포 수목원"과 설립자 "민병갈(Carl Ferris Miller)"님의 이야기...
언젠가..아주 오래전에 이 꽃방에서 "천리포수목원"을 간적이 있습니다.
아마 계절적으로는 봄철로 기억 합니다.
꽃들이 너무 아름답게 피어 있어서
꽃만 열심히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정작 수목원을 알지 못하고요~~
그때 다하지 못한 "천리포수목원"을 사진 몇장과 더불어 ...
이 수목원을 설립한 "민병갈(Carl Ferris Miller)"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잔잔한 감동을 받았거던요.
주로 그의 기념공원과 기념관에 쓰여 있는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서
소개 드릴까 합니다.
먼져 "천리포 수목원"은 18만평의 부지에 1400만종의 식물이 있는
정말 아름답게 꾸며진 수목원 이더군요.
위치는 천리포항 부근이구요.

매표소를 지나 수목원으로 들어가면 ...
비교적 넓은 저수지(수생식물원) 와 건너편에 건물이 보입니다.
이는 수목원의 메인건물로 ...
조그만한 카페와 기념품 판매장이 있으며..
2층은 민병갈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그 옆에 조그만한 기념공원이 있는데...
이곳을 먼져 들렸습니다.

민병갈님의 흉상이 있고...
그 옆에 민병갈님의 이름이 들어간 학명의 "완도호랑가시나무"가 있더군요.



그 앞에는 아직도 꽃이 피어있는 "태산목"이라 부르는 커다란 목련나무가 하나 있는데
그 나무 아래 민병갈님의 수목장이 있다네요.
이 목련나무는 민병갈님의 고향에서 가져온 나무 랍니다.
조그만한 비석아래 꽃다발이 있었습니다.


연이어 "민병갈 기념관으로 향하여
사진과 설명문을 찬찬히 읽어보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이런데 가서 이렇게 열심히 본건 처음인듯~~

초입에 있는 "민병갈 연대기"를 봅니다.
미 해군정보장교로 한국에 왔다가..전역후 귀국
한국이 좋아서 다시 미군정청 정책고문관으로 와서
한국은행에 취업 -한국에 귀화하고 천리포 수목원에 평생을 바친 일대기...
자신은 전생에 한국인이었을 것이라고 말한 밀러씨는
1979년 한국에 귀화하여 '민병갈' 이라는 한국인으로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이고...
미국에 있는 어머니에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컸을까요?


기념관을 나와서 ... 수목원을 돌아 봅니다.
온갖 꽃들이 있었지만 ..사진은 별로 찍지를 않았네요.

수목원내에 이런류의 건물이 10채가 있습니다.
일명 "게스트 하우스"라 불리며...원하는 분들에게 숙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크기와 건물 양식이 다양하며...1박에 20-30만원 정도라네요...

바다가 보이는 어느 "게스트 하우스" 옥상이 전망대 입니다.
11:00시 경이었는데...해무로 꽉 차 있네요...

조그만한 습지....

나가는 출구(입구)에서 낙우송을 한장 찍고...


우측으로 돌아 천리포해수욕장이 보이는곳....
12:00 경인데...해무로 꽉차 있었습니다.

마지막 나오다 보니...비닐하우스로 된 임시 시설에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금년이 민병갈님 돌아 가신지 12년이 되었나 봅니다.
민병갈님 추모 사진 전이었습니다.
살아 생전의 모습들이 있었는데..몇장만 골라 소개 합니다.



장황하게 늘어 놓을수 없구요...
2002년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임업인으로서는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민병갈씨는
같은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의 나이 82세의 일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면서 민병갈씨는
제2의 조국인 한국에 자신이 평생을 바쳐 가꾸어온 "천리포 수목원"을 선물합니다.
죽음에 이르면서까지도 자신이 사랑하던 목련나무 아래에 묻히길 원하셨던 민병갈씨는
현재 천리포 수목원의 목련 가운데 하나인 태산목 아래에 잠들어 계십니다.
현재 천리포수목원은 원장 1명과 8명의 이사로 구성된 "재단이사회"에서 운영하며,
수목원은 일반관람 및 회원제로 운영된답니다.
수목원 회원이 되면 이곳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식물종자를 받을 수 있고
여러 가지 의미 있는 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며
무엇보다 바다 풍경이 멋진 게스트하우스를 실비로 이용할 수 있다는군요.
그 누구보다도 한국을 사랑했던 한국인 민병갈씨의 천리포 수목원은
4계절 모두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점 수종은 목련속 약 400종, 감탕나무속 370종은 타 수목원에서는
볼수 없는 귀한 수종들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