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名不虛傳)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라는 경전의 말씀이 있다.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서 노력하여 ‘기지(奇智)’가 스승과 버금가거나 능가할 수도 있다. 스승은 제자의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제자의 앞날을 축복한다.
‘탁구’의 현정화가 떠오른다. 현역 시절에 가냘픈 몸매로 세계를 제패한 전설적 존재였다. 그녀는 시간의 화살이 세월을 재촉해 벌써 오십 대 중반의 여인으로 변했다. 탁구의 인생을 떠난 지 이십칠 년의 세월이 흘러 중년의 여인으로 가정주부이다. 그런 그녀가 제자이자 현역 국가대표선수인 서효원과 경기한다는 것이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두 달 동안 지옥 훈련을 통해 체력을 끌어올리며 몸을 만들었다. 드디어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현정화의 완승으로 끝났다. 현정화는 기적과 같은 도전이었고 탁구 유망주들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기부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시 현정화는 레전드로 기억에 남을 것이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다.
또 ‘씨름’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80년대에 혜성처럼 나타나 씨름판을 평정한 씨름의 황제 이만기이다. 그도 세월 따라 육십 고개를 넘고 있다. 아무리 씨름판의 황제였지만, 지금의 현역 프로선수와 대결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모래판을 떠난 지도 삼십 년을 넘겼으니 말이다. 주위에서는 전혀 승산이 없다며 말렸다. 큰아들은 아버지가 다칠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말렸으나 아버지의 결심을 꺾을 수 없었다. 해서 아들과 대결하여 아버지가 이기면 말리지 않겠다고 했다. 아들은 3초를 버티지 못하고 모래판에 내동댕이쳐졌다.
황제는 씨름판 선배인 뒤집기의 명수 털보 이승삼을 찾았다. 털보 선배는 상대가 누구인지 물었다. 태백급 장사 허선행이라고 했다. 털보는 선수의 감독을 오래 했기에 선수들의 특기를 알고 있었다. 조언하면서 체력을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그 뒤 근력과 지구력 운동과 맹연습으로 재무장했다. 태백급 선수는 가장 경량급으로 몸동작이 빠른 선수이다. 레전드 이만기가 어떤 작전으로 시합에 임할까 궁금했다.
드디어 두 선수가 모래판에 입장했다. 경기는 1분 경기로 삼판양승이었다. 첫판을 내어주고 둘째 판에서 이만기는 시작과 동시에 허선행을 들어 올려 특기인 배지기로 한 판을 제압했다. 마지막 한 판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셋째 판이 시작하자 허선행은 빠르게 동작이며 자세를 낮추고 밑으로 파고들었다. 이는 상대 배지기의 방어이기도 하지만, 공격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변칙기술인 ‘어깨 돌려치기’로 이만기를 모래판에 눕혔다. 전설적인 씨름판의 레전드 이만기는 아쉽게 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건재함을 과시했고 그저 이만기가 아니라 명불허전이었다.
나도 씨름을 좋아했으며 지역에 장사씨름 대회가 열리면 꼭 참관했다. 옛 시절이 회상된다. 고등학교의 반 급우들과 씨름으로 큰 친구들을 제압했다. 군 소대장 시절에는 소대원의 대표와 씨름을 겨루어 이겼다. 대학 시절에는 총학생회 체육대회에 사범대학 씨름 선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이제 일흔을 넘긴 늙음에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며 움츠린다.
코로나로 잔뜩 움츠리며 웅크리고 있는데 스포츠 경기를 통해서 용기와 희망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시간의 화살에 이끌려 세월에 실려 가고 있다. 세월에 맥(脈)없이 끌려만 갈 것인가. 연어는 바다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생명의 잉태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우리도 현실에 안주하거나 침잠하지 말고 하루하루 익어가는 삶으로 평화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