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동경에 가면 임페리얼이라는 호텔이 있습니다. 원래 이 건물은 1890년 ‘제국호텔’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는데 너무나 많은 투숙객으로 인해 1915년부터 재건축해야 할 정도로 협소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재건축을 책임자로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라는 사람이 선정되었습니다. 라이트는 설계를 위해서 4년을 소요했고 1919년부터 공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기초공사하는데만 무려 2년을 쏟았습니다. 기초공사에 너무나 막대한 비용이 들어 사람들은 “호텔건축에 큰 돈과 막대한 시간을 낭비했다”며 비난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기초공사 2년, 시공에 2년 총 4년에 걸친 호텔공사 끝에 1923년 6월 공식 개관했습니다. 사람들은 “과잉투자를 해서 지은 토쿄도내의 가장 대표적인 건물”이라며 이 건물에 대해 비난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런데 제 2세대 제국호텔이 개관하고 3개월 뒤 우리가 잘 아는 관동대지진이 발생했고 이 지진으로 인해 도쿄도 시내의 건축물 상당수는 불타거나 무너졌습니다. 도로도 갈라져서 제 역할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국호텔’, 지금의 ‘임페리얼호텔’은 조금의 피해도 없이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이 ‘임페리얼호텔’은 건축할 때 기초작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이 되고 있습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을 짓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을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을 집짓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살펴볼 때 집은 꿈속에서 항상 우리의 가치관, 의식상태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입니다. 모두가 나름의 소망과 지혜를 따라 인생이라는 집, 생애라는 집을 짓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인생의 집을 짓고 살아가지만 생활속에서 엄청난 시련이 닥쳐올 때 튼튼히 버티는 집이 있는가하면 속절없이 무너지는 집이 있습니다. 집이 무너진다는 것은 허무하게 인생을 마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5장부터 이어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산상수훈의 결론 부분이라고 지난 주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모두 들은 제자들이 이제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 지를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부분을 가르쳐주시는 말씀입니다. 산상수훈의 말씀, 더 나아가 주님의 모든 교훈을 우리가 인생가운데 어떻게 적용하는 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제대로 된 집을 지은 인생이 될 것인지, 아니면 허술한 집을 지은 인생이 될 것인지를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며 우리 인생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 속에서 참 굳건한 인생, 멋진 인생, 튼튼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삶에서 믿음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첫째는 고난의 상황에서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5절입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 신앙적 생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집으로 비유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비유된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두 종류의 집이 마주하게 되는 동일한 상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가 알아야 할 분명한 한 가지는 반석 위에 지은 집이나 모래 위에 지은 집이나 똑같이 비와 홍수와 바람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든든한 반석 위에다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과 같고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다가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모두 어려움을 당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흔히 예수 믿고 말씀대로 살면 모든 것이 절로 만사형통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도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더 큰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각자 겪는 고난도 있겠지만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한국인이나 북미인이나, 아시아인이나 유럽인이나 동일하게 겪게되는 세계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정치적 대립,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 대한민국과 북한의 긴장 상태,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 벌어진 끔찍한 전쟁, 세계 시장의 재편, 속절없이 흘러가는 기후 위기 타이머, 너무도 어두운 주제들이지만 모두 우리에게 들이치기 시작한 어느 누가가 외면할 수 없는 비와 홍수, 거센 바람들입니다. 평범한 가운데 사는 사람이나 절망의 깊이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느끼게 할 어떤 폭풍우를 만나게 하십니다. 이 폭풍우는 우리를 흔들어 깨우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자 은총의 손길입니다. 그래서 C. S. 루이스는 “고난이란 하나님의 메가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 신앙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수준을 가늠할 가장 중요한 때가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구약성경 욥기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 욥은 그 신앙을 하나님 앞에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직접 “세상에 욥과 같은 사람이 없다”라고 칭찬하실 정도로 인정받는 신앙인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복을 받아 아내와의 사이에 7남 3녀의 자녀를 두고 모든 가족이 다 건강한 가운데 다복한 가정을 이루어 잘 살고 있었습니다. 소유물만 봐도 양 칠 천마리, 낙타 삼천 마리, 소가 천 마리, 암나귀가 오백 마리나 되었으며 수 많은 종을 거느려서 성경에는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불렸습니다. 하지만 그런 욥도 큰 재앙을 경험하게 됩니다. 약탈자들이 몰려와 그의 모든 소유물들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10자녀가 모여 있던 집에 큰 바람이 일어나 집이 주저앉는 바람에 10자녀가 한자리에서 몰사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피부병이 생겨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고난이 욥에게 찾아온 것은 욥과 하나님을 이간질하려는 마귀의 계략이었습니다. 사탄마귀는 욥에게 계속 큰 어려움을 주면 욥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신앙을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욥을 시험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재물에 문제가 생기거나 자녀에게 큰 사고가 생기거나 내 자신에게 치명적인 질병이 생길 때 이 중 하나만 생겨도 “죽겠다, 못 살겠다”라며 비명을 지르고 슬퍼하는데 욥에게는 고난이 연달아 찾아왔습니다. 자연환경으로 따지면 비, 바람, 홍수, 폭염, 우박 등등 자연의 재앙이 겹겹이 몰려왔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 잘 믿고 사는 사람에게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하지만, 이런 일이 하나님 잘 믿는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다가올 때 마치 하나님께서 그런 어려움을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나를 훈련시키고 하나님앞에 겸손하도록 만들어가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고 기도하며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욥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후일 갑절의 복을 더해 주셨습니다. 성도의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엔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갑절의 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편 34편 19, 20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오늘 마태복음 7장 뒷부분에서 신앙인으로 비유된 두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둘 다 예쁘게 외형인테리어를 잘 해서 만들었기에 잘 지었는 지, 잘못 지었는 지 구별 안 되지만 비와 바람과 홍수가 지나가고 난 뒤에 보면 어떤 집이 잘 지은 집인 지, 어떤 집이 잘못 지은 집인지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고난당할 때 이상한 일 당한 것처럼 여기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이 닥칠 때 믿음으로 이겨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삶에서 믿음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둘째는 튼튼한 믿음인 지혜로운 인생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4,2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오늘 본문에서 참 신앙으로 살아가는 튼튼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인생도 두 종류의 집이 존재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반석 위에 인생의 집을 세워가는 사람과 모래 위에 인생의 집을 세워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나눠지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참 신앙인은 어떤 환경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신앙으로 살아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우리 신앙과 우리 가치관을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습니다. 잘 지은 집인지 잘못 지어진 집인지 외관을 봐서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더위를 경험해 보고 추위를 지내보고 비가 올 때 어떤 지 살펴보고 눈이 올 때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 지 살펴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인생을 집에 비유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따져볼 때 우리는 인생의 기초를 어디에 놓아야 할까요?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평가하시면서 반석위에 견고하게 세운 집을 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미국 뉴욕에 가면 수 많은 고층빌딩이 밀집된 맨하탄이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세계의 마천루라고 불릴 만큼 어마어마한 높이의 빌딩이 바로 옆에 수십, 수백 개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맨하탄의 지반은 암반으로 구성되어 있어 건축하기 정말 힘들고 건축비가 배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반석 위에 집을 지으면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또 보니 ‘예수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이며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따져보면 본문에서 지칭하는 ‘반석’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 혹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믿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이라는 집을 예수님이라는 반석 위에 지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4절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린도전서 3장 11절입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예수님이 반석이십니다. 성경은 우리 삶의 기반은 예수님, 우리 신앙의 기초는 예수님, 우리가 인생의 모든 기반을 예수님께 두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터요 견고한 반석되시는 예수님 위에 인생 기초를 놓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말씀 위에 우리의 인생 집을 지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특히 비가 오고 홍수가 났을 때 바람이 세차게 몰아칠 때 무너지는 집과 무너지지 않는 집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신앙과 비유하며 어떤 환경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집이며 그런 인생을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으면 기초가 튼튼합니다. 그래서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반석에 기초공사를 하고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지으면 이런 집은 여간해서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고난을 받을 수는 있지만 한 가지 다른 것은 믿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 고난에 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믿는 사람이라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일곱 번이라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아주 엎드러지지는 않습니다. 비가 오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다 죽게 생겼어도, ‘저 사람 저러다 완전히 엎드러 지고 말지...’ 싶어도 말씀의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사야 33장 2절입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납니다.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손을 내밀고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환란과 고통의 순간들이 우리의 삶에 겹쳐 들이닥칠 때 우리는 어떻게 그 험란한 시간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내 의지를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불변하신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사야 40장 8절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이사야 40장 31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말씀을 새기고 담대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할 때 우리는 시련 속에도 흔들리지 않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런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려움이 닥쳐올 때 어려움만 보지 마시고 그 가운데서도 여러분을 향해 내민 하나님 도움의 손길을 바라보시고 그 손 붙들고 다시 일어나는 굳건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삶에서 믿음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셋째는 허술한 믿음의 어리석은 인생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6,27절입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오늘 본문에서 허술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반석위에 인생의 집을 세워가는 사람과 모래위에 인생의 집을 세워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종류는 지혜로운 사람이고 한 종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에 대해서는 말씀드렸고 그렇다면 누가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오늘 말씀 26절을 보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같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 바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런 인생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기에 쉽게 무너지는 인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건축할 때 기초작업없이 그 위에 그냥 말뚝을 박고 기둥을 세워 건물을 지어도 건물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래 위에 집을 세우는 것은 공사기간과 공사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그럴 듯한 모양으로 집을 지었다고 해도 그 건물은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오늘 본문에서는 ‘인생’을 건물 짓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는데 이렇게 건축하였다는 말은 설계도 제대로 하지 않고 건축물의 내구성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집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은 집은 오늘 본문 말씀처럼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심하게 무너질 것입니다. 실제로 홍수가 났을 때 하천가에 있던 집들이 아래 기반이 튼튼하지 못해 쓸려 내려가는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큰 홍수가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집을 보면서 오늘 말씀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 기초가 없는 집, 튼튼하지 않는 집이 묘사하는 허술한 신앙인은 어떤 삶을 살까요? 그런 신앙인은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고 바르게 아는 것과 그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을 배우려는 마음도 성경의 말씀을 읽고 암송하려는 마음도 없습니다. 성경에 대한 의미에 대해 왜 그럴까 고민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세상 풍조에 휩쓸려 살아가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편 1편 4~6절입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그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진짜 ‘의’와 ‘거룩’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데 관심이 없거나 부족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허술한 믿음이라고 볼 수 있는 말씀이지만 사실 허술한 믿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어중간한 신앙은 아예 없는 신앙과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은 강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 28,29절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리석다는 말은 믿음이 적다는 말이고 제대로 된 믿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말씀으로 적용하면 우리가 매일매일 “뭘 먹을까, 뭘 마실까, 고민하며 걱정하며 근심하며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의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욕심으로, 내 걱정으로, 내 노력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사람이며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입니다. 허술한 신앙, 어리석은 인생 살지 않고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이라는 집, 삶이라는 건물을 화려하게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디자인이 멋있고 인테리어가 예쁜 집을 가꾸려고 합니다. 이런 집은 괜찮은 집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와는 달리 자연재해가 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우리가 머무르는 곳이 안전하고 편안한 곳인 지 알게 되는 것처럼 우리 인생은 삶 속에 찾아오는 온갖 고난과 고통의 순간, 많은 환란을 경험하게 될 때 진짜 건강한 인생, 튼튼한 삶을 살았는 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폭풍우가 몰아치고 태풍이 찾아올 때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어떤 집인지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인생이라는 집을 지을 때 화려한 것에 집중하기보다 기초를 튼튼히 하고 안전하고 편안한 집을 지어야 합니다. 안전한 집, 튼튼한 집 같은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는 몇 주간 산상수훈이라는 예수님 말씀을 통해 발견하였습니다. 우리는 참 신앙 안에서 튼튼한 집을 짓고 올바른 믿음 안에서 건강한 집을 만들어야 세상 가운데에서도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갈 때 참 세상 속에서의 우리 사명은 먼저 내가 주님 안에서 기초를 튼튼히 하고 올바른 믿음 안에서 굳건하여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무너지지 않을 신앙가치관으로 절대 무너지지 않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풍파와 엄청난 유혹과 환란의 태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 어떤 환경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신앙공동체, 우리 주 예수님이 우리의 반석, 힘과 도움이 되시며 주님만 의지해서 우리의 가정과 직장, 신앙공동체와 많은 관계공동체가 하나님이 주인이신 튼튼한 집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각자 신앙인이, 그리고 우리 교회 신앙공동체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가족이 믿음 안에서 오늘 본문에서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반석 위에 세워진 집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까지 지어온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집, 저와 여러분이 앞으로 계속 지어가야 할 멋진 인생이라는 이 집이 모래 위에 세운 집이 되지 마시고 반석이신 우리 주 예수님이라는 기초위에 제대로 세워진 집이 되어 어떤 역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집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