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정말 작가들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더군요...
역사속 기록의 얼개에....
상상력으로 끌어낸 스토리들이 흥미진진합니다...
최정미!!!가
그 작가입니다.
실록의 얘기를 알고 드라마를 보면
더 재미있을꺼에요....
실록속의 숙종은 부인이 셋인데요.
첫째부인는 김만기의 딸 인경왕후로 딸 둘을 낳았고..
천연두를 앓다가 죽어요...
그래서 둘째부인(제1계비) 민유중의 딸을 다시 왕비로 맞이하게 되구요...
그러나 인현왕후는 후사 없이 폐서인이 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지요.
인현왕후가 죽자 세번째 부인 김주신의 딸을 맞지만 인원왕후(제2계비)에게서도 후사가 없었답니다.
장옥정에게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지요...
아들 왕위에 오르니 경종이랍니다
아들을 낳고 왕비까지 되지만
결국 폐위되고 사약을 받아 죽게됩니다.
이 일로 숙종은 훗날 후궁이 왕비가 되는 일이 없도록합니다.
그리고 후궁 숙빈최씨에게서 아들 셋을 낳으나
둘은 일찍 죽고 남은 이가 연잉군,
훗날의 영조에요.
또 명빈박씨에게서 연령군을 낳지요....
숙종은 정실부인 세명에
후궁이 6명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서오릉에 세왕비와
부근에 희빈장씨.숙빈최씨,소의유씨,귀인김씨...
와 함께 사이좋게(?) 누워계십니다.
자~~
그러면
다시 옥정의 얘기로 가서....
옥정이 나인으로 궁궐에 들어갔는데...
실록에 '얼굴이 자못아름다웠다'라고 기록해요...
실록에 기록될 정도로 미인이었던거죠....
옥정은 숙종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고,
아들을 낳았으니...
그 위세가 대단했겠죠~~
숙종은
인현왕후를 폐하고
아들을 낳은 희빈장씨를 왕비로 삼지요....
4년간 왕비로 있었으나
그사이 여러차례 환국이 일어나고..
오빠 장희재가 중궁 모해죄로 처벌받고
왕비 장씨는 '내전을 질투하여 모해하려 한죄"로
폐위되어 자진하게하였어요.
희빈장씨는 죽어서 양주 인장리(동구릉 근처) 묻혔다가
광주 진해촌으로 옮기고
다시 서오릉 경내로 옮겨졌답니다.
그리고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옥산부대빈으로 추증하고 중부경행방에 사당을 짓습니다.
지금의 종로세무소부근이지요...
대빈의 사당으로 대빈궁이라 부른답니다.
지금은 칠궁내로 옮겨져있구요.
대빈궁은 왕비였던 희빈장씨의 사당이기에
둥근기둥을 썼답니다.
칠궁제사에요...
가운데가 대빈궁..
둥근기둥이 보이나요?
서오릉의 명릉이에요...
광주의 대빈묘가 있던 곳
지금은 다른사람의 묘가 있어요.
서오릉으로 이전한 대빈묘
종로구 낙원동 58번지일대로 대빈궁길....
지금은 삼일대로 26길이라는 멋없는 이름으로 바뀌었죠...
그럼 옥정이
궁인이 되어 숙종의 승은을 입고(1680)
궁궐에서 쫒겨났다가
다시 궁궐로 들어와(1686)
왕자를 낳았고(1688)
후궁에서 왕비까지 올랐다가(1690)
다시 강등되어(1694)
죽기까지의(1701)
파란만장한 삶을
드라마는 어떻게 엮어갈지 기대해 봅니다...
첫댓글 장옥정 많은것들을 꼼꼼히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재미있네요^^
항상 같은 이야기로 드라마가 펼쳐지지만 매번 다르게 흥미진진하게 다가오는것은 아마도 작가분들의 개성이겠지여.ㅎ ㅎ 멋진 역사의 이야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