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더니!(왕하3:14-27)
갈등
1. 인류사 가운데 전쟁은 그치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추방된 이후 이 땅에서 전쟁은 그칠 날이 없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전쟁(가족 내 전쟁)부터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국가 간 전쟁)만 아니라, 때로는 진영간 전쟁(민주주의-공산주의), 각 나라에서 내전까지요. 오늘 본문에서는 모압과 이스라엘 연합군의 전쟁기사입니다. 연합군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그리고 남유다의 속국이었던 에돔 세 나라였습니다.(지도 영상) 이 전쟁은 모압이 북이스라엘에게 바치던 조공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발발했어요. 4절,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매해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바치다가 배반했습니다.
조공을 바치지 않겠다는 것은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여호람 왕은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에게 사신을 보내서 모압과 싸우자고 요청했어요. 여호사밧이 이 전쟁에 나갈 의무는 없었습니다. 여호사밧은 겉으로는 믿음도 좋고 성품도 좋아 보였지만, 실제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떤 때는 하나님께 묻고 어떤 때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어요. 어떤 일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 임의로 일을 처리하고, 어떤 일은 또 하나님께 묻고 일을 했습니다.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현대인들은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로드십-주님의 주인 되심이 실천되지 않는 경우에요. 자기 필요시에만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2. 오늘 본문에도 이런 그의 들쭉날쭉한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이 전쟁에 나가는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출전 후 물이 없어서 이스라엘 연합군대가 전멸할 상황에서야 선지자를 찾았어요. 여호사밧은 자녀들 결혼에서도 하나님께 묻지 않고 북이스라엘 아합왕과 사돈을 맺었습니다. 그가 여호람에게 7절(영상에 없음),“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는 말은, 우리가 한 집안인데 함께 하지 않겠느냐는 자세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 임의로 결정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이 어떻게 모압을 칠 것인가(군사전략)에 대해서도 여호람은 물론 여호사밧도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없이 두 왕이 모압과 전쟁을 하려고 진격하다가 칠 일 만에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군인들과 말과 노새들이 먹을 물이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이 모압을 이기는 것은 죽 먹듯이 쉬울 듯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전쟁은 고사하고 모두 사막길에서 죽을 형편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이 왜 갑자기 이러한 상황에 빠졌을까요?
갈등 심화
3. 이스라엘 연합군이 생각지 못한 위기를 당하자 여호람 왕이 말했습니다. 10절(영상에 없음),“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도다.”이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 왕을 불렀습니까? 여호람 자신이 불렀습니다. 일을 자기들이 만들어놓고 하나님 탓을 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믿음도 있는 것 같은 사람이, 여호람처럼 말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과는 조금도 대화하지 않아요. 기도라고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일을 자기 스스로 다 해놓고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입니다. 여호사밧이 여호람보다는 믿음이 나았어요. 11절(영상에 없음),“우리가 여호와께 물을만한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위기를 자초하기는 여호사밧이 여호람과 다르지 않았는데, 문제가 발생하자 대처하는 데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제라도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북이스라엘 신하 중 한 사람이 엘리사가 여기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 왕이 엘리사에게로 갔습니다. 왕들을 맞이하는 엘리사의 자세가 당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무릇 이래야 합니다.
4. 엘리사는 여호람에게 13절(영상에 없음),“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바알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당신이 교제하는 선지자들(바알 선지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왜 지금은 나를 찾느냐고 책망했습니다. 엘리사는 나아가 14절,“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나하였으리이다.”여호람을 향한 엘리사의 확고한 태도가 돋보였어요.
여호사밧도 완전한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내가 당신 얼굴을 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이 물이 떨어져 사막 가운데서 몰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세 왕과 연합군이 모두 엘리사만 바라보았습니다. 이때 엘리사가 취한 행동을 봅니다. 15절,“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더니.”엘리사가 이 절대절명의 위기 속에서 왜 거문고를 찾았는지 궁금합니다. 또 거문고가 연주되는 동안 하나님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었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실마리
5. 성경에 기록된 전쟁사는 특별합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전쟁은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신 전쟁을 성전(거룩한 전쟁, the Holy War)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도 성전이 전개되었어요. 이스라엘 연합군이 위기에 빠질 때부터 그들이 위기에서 벗어날 때까지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이 갑자기 물이 떨어진 이유를 성경에서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군이 남하해서 예루살렘에서 유다군과 합류하고 그들이 에돔군과 합하여 사해 남쪽을 둘러서‘와디 엘 아시’부근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본래 물이 많은 곳인데, 이때 물이 말랐던 것으로 주석가들은 봅니다. 이 위기를 당하자 여호람 왕은 하나님께 원망을 돌렸습니다.
이전에는 찾지 않았던 하나님의 이름을 원망할 때나 사용했어요. 엘리사가 여호람의 영적 상태를 적접 화법을 쓰면서 말해주었습니다. 당신의 부친과 모친의 선지자들(바알 선지자들)이 있는데 왜 이런 위기가 발생했느냐고 조롱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부르 박물관에는 모압왕 메사의 석비가 보관되었습니다.(영상 사진) 이 석비에는 메사가 자기의 신 그모스신을 얼마나 의지하고 충성심을 보였는지 잘 드러내줍니다. 메사는 그모스신의 도움으로 자신이 북이스라엘과 싸워 이긴 이야기를 이 석비에 남겼습니다. 여호람의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메사가 그모스신을 섬긴 것보다도 훨씬 못했어요.
6. 이런 여호람이 자기 생각으로 연합군을 모집해서 전쟁에 나갈 때 형통할 수 없었습니다. 잠3:5-6,“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가려는 자는 여호람처럼 위험합니다. 여호람은 위기를 자처했고, 여호사밧은 여호람과 함께 가는 길의 위험성을 무시하고 말았어요. 대위기를 맞이하여, 때가 늦었지만 다행히 여호사밧 왕이 선지자를 찾았습니다. 엘리사가 이곳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신비합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그를 이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빌립을 에디오피아 내시에게로 성령께서 인도하신 것처럼요.
엘리사는 여호람은 무시했지만, 그나마 여호사밧을 보아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엘리사는 거문고 타는 자를 찾았고, 거문고를 연주하는 동안 하나님의 감동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그 표현을 15절,“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이 선지자를 찾아 문제를 풀어보려고 할 때, 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엘리사가 거문고 타는 자를 찾은 것은 그가 하나님께 집중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오늘 우리가 기도할 때 찬양 음악을 듣는 것처럼요. 사울 왕이 귀신에게 괴롭힐 때, 다윗이 수금을 연주하면 나았던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기도할 때는 가사가 없는 찬양 음악이 유익합니다.
7. 가사가 들리면 내 마음의 집중력이 분산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 주신 응답은 16-17절,“그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물이 없어진 곳에 갑자기 물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했어요. 하나님은 이런 가운데도 개천을 많이 파라, 물을 충분히 줄 것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당시 현장 예상지-영상 사진) 하나님은 이스라엘 연합군에게 물만 주시지 않고
18-19절,“이것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니,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읍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니.”하나님은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이 엘리사의 말대로 개천을 많이 팠고, 다음 날 아침 물이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였습니다. 비가 내려서 생긴 물이 아니었어요. 이 물이 어디서 내려왔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나님만 아셨습니다.
복음 제시
8. 성전이 개시되면 이스라엘이 쉽게 승리합니다. 성전은 칼에 의한 싸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신비한 방법으로-그때마다 다양한 전략으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어요. 오늘 전쟁사에서는 아침에 물에 해가 비칠 때, 모압 군대가 착각을 했습니다. 22-23절,“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찍이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이르되 이는 피라 틀림없이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하고.”
모압 군대는 이스라엘 연합군의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고 무방비로 덤벼들다가 전멸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성전의 결과는 언제나 싱겁습니다. 아브라함이 318명의 사병으로 거대한 4대 왕의 연합군을 격파할 때부터, 여호수아의 전쟁, 다윗이 평생 싸운 전쟁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성전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하나님이 대신 감당하심으로 승리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9. 예수님께서 유대 종교인들에게 잡히신 후 주님은 무기력하게 죽으셨습니다. 유대 종교인들과 사탄은 자기들이 승리한 줄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주님이 무능해서 당하신 일이 아니고, 인류를 대신해서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유대 종교인들과 사탄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알지 못하고 승리의 개가를 불렀어요. 복음은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입니다. 벧전2:24,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고 선언했습니다.(사53:5 인용)
기대
10. 이스라엘 연합군이 엘리사를 통한 기도로 말미암아, 물이 떨어져서 고통당하던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들이 성전도 경험하고 승리를 거둔 듯하지만 27절,“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승리와 개가를 부르고 모압이 다시 조공을 바치게 해야 했는데, 이런 기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모압은 이 전쟁을 겪고도 끝내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마지막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으니까요. 이런 일은 남북 이스라엘 왕들-여호람과 여호사밧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런 전철은 반복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서 찬양하며 기도합니다.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온전히 쟁취하며 살게 하소서.(오늘 찬양: 내가 예수 믿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