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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마련한 수의(壽衣)도 못 입고 가시면서, -김 기 태-
어렵고 힘든 시대를 살아온 노인 세대는 건강과 장수에 대한 유혹을 많이 받습니다. 특히 건강 영양제와 윤달에 수의를 장만 해두라는 선전에는 약합니다. 그것 때문에 부모자식 간의 갈등 대립이 있습니다. 저도 그 경우를 당해봐서 잘 압니다.
어머님이 일흔 살 되던 해 윤달에 무병장수하고 자손번창을 하려면 수의를 준비해야 한다면서 두벌을 지어 왔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오십대 초반이니 어머니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아 짜증을 냈습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값을 치루고, 수의는 농 깊이 계속 보관했습니다.
18년 후 아버님은 그 수의를 입고 저승으로 가셨으나 어머니는 수의를 마련한 28년 후 아흔 여덟 연세에 남편 곁에 합장 되셨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장수하시려고 미리 지어둔 수의는 좀이 나서 입지 못하고 새 수의를 입고 가셨습니다.
장수 하겠다는 소망은 이루었으나 병으로 고통을 당하며 사는 장수(長壽)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수의(壽衣)는 세상을 하직 하는 날 자식들이 어련히 알아서 마련해 드릴 텐데, 왜 그리 수의에 집념이 크셨는지? 생각하면 안타깝습니다.
아내가 시집와서 오십년 동안에 아버지 어머니 병 수발한 16년은, 우리 내외에게는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집안의 화목을 위해 서로 참고 이해하며 세월을 보내노라니 몸과 마음이 지쳐갔습니다.
혹시 동생네가 잠시모시겠다는 반가운소식이 올까하고 기다려도 허사였습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장남이니까 하며 체념할 때, 아내는 ‘둘째 며느리는 얼마나 편할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셔서 무척 고마웠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모신 어머니가 임종하시면서 이제까지의 고통을 잊고 웃으며 가셨습니다. ‘너희들 애썼다’ 마지막 말씀을 표정으로 남기셨습니다.
어머니가 병들어 혼수상태로 삼년 반, 깨어나서 관절로 일어 설수가 없으니 기어 다니는 십여 년, 그 십 삼년이 아내와 제게는 고통과 질곡(桎梏)의 날이었습니다. 최근 어머니가 저 세상에 가신 날부터 저희는 회한(悔恨)의 날입니다. 생전에 잘 모시지 못한 후회 때문입니다. 노모를 방안에만 계시게 한 것도, 어머니의 친구들을 집으로 모시지 못 한 것도 미안합니다. 계단이 많은 집 구조여서 휠체어로 모실수가 없었습니다.
듣지를 못하시니 종이에 글을 써서 의사소통을 하고 손자 증손자들은 냄새 때문에 범접을 하지 않아 어머니는 무척 외롭게 지내셨습니다.
그걸 보는 우리 내외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핑계 갖지만, 우리도 다 늙은 노인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주일에 한번 복지관의 목욕봉사 받는것으로 만족 했습니다.
어머니는 외로움을 달래는 방편으로 가끔 엉뚱한 일을 했습니다. 밤중에 실, 바늘을 찾아서 이불을 시치겠다고 하고, 가위로 돈을 갈기갈기 잘라 휴지통에 넣어서 치매초기가 아닐까 염려했으나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식성이 좋은 어머니는 계란 반찬이 없으면 진지를 들지 않아 거의 오년을 하루세끼 계란 장복을 하셨으니, 어림잡아 그간에 삼천 개는 잡수셨을 겁니다. 문병 온 이들이 ‘어떻게 저렇게 오동통하게 살찌우셨느냐’고 할 땐, 웃으며 속으로 나 혼자 말했습니다. ‘며느리의 계란 반찬’ 때문이라고,
어머니는 매일 아침 식후엔 꼭 커피를 마십니다. 그러나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커피 타령을 하실 때는 참으로 민망했습니다. 어느날은 새벽 세시에 ‘나 커피 마시고싶어’ 하셔서 ‘아침에 마십시다.’ 했더니 문을 닫고 훌쩍거리고 울고 계셨습니다.
백수 가까운 노인네가 우는데, 팔십이 다된 아들의 마음인들 편했겠습니까? 타드렸더니 얼마나 맛나게 잡수시는지, 지금은 그 장면이 더 큰 마음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어머니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굵직한 무더기를 누고 그 위에 바지를 몇 개씩 덧입고서 뭉그적거리니, 온 집안은 고약한 냄새로 범벅이 되고 집안의 모든 옷은 냄새가 배었습니다. 부끄러운 표정으로 처다 보며‘ 씩‘ 웃으니 같이 웃어드려야만 했습니다.
아내는 손빨래를 하고 나는 벌겋게 뭉그러진 사타구니를 치료하면서, 칠십 구년 전, 내 고향 앞에 와서 치료를 한다면서 실소(失笑)를 하였습니다.
욕창도 고치고 몸을 늘 깨끗하게 닦아드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요로(尿路) 세균감염’ 으로 한 달 이십일을 병원에 계시다 가셨습니다. 가시고 나니 후회가 더 많습니다. 아쉬움이 큽니다. 이것이 자식의 마음 입니다. 잘못해 드린 일, 짜증낸 일, 어머니 때문에 외출도 못한다고 원망하던 일, 큰소리로 몰아 세웠던 일들이 죄송하고 후회가 큽니다. ‘無病長壽’ 가 ‘有病長壽’였지만, 수의를 미리 마련하고, 그 수의를 보면서 오래살수 있다는 믿음으로 사신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좋아지는 세상에서 아들의 효도를 받고 싶었을 겁니다. 그 마음을 이해 못하고 잘 해 드리지 못한 한이 커서 죄인 된 마음입니다.
우리 내외도 이제는 부모님이 안 계신 고애자(孤哀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외로워집니다. 그리고 그리워집니다.
어머니가 임종 무렵 혼수상태 직전에 병원에서 저를 찾으셨습니다. ‘나, 집에 가고 싶어’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해요’ 듣지 못하셔서 흰 종이에 써 드렸습니다. ‘아범 몇 살이지?’ ‘내년이면 여든 살 인데요.’ 또 써 드렸습니다. 눈은 밝아서 읽으십니다. ‘응, 여덟 살 때는 예뻤는데, 지금은 머리가 희네.’ 힘없이 말씀하시더니 손을 놓습니다.
그런 대화가 있은 후, 차츰 혼수상태에 빠지다가 한 주일 만에 하늘나라로 떠나 가셨습니다.
어머니가 잘 듣지 못한 삼년간은 A4용지에 글을 써서 의사소통을 하였는데, 그 편지가 5백여 장이 넘습니다. 어머니와의 편지 글에는 살아있는 역사가 많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해놓고, 매일 쓴 편지를 가끔 읽으면서 어머니를 잘 모시지 못한 잘못을 뉘우칩니다. 어머니 죄송했습니다.
세월의 흐름을 타면서 우리 내외도 자꾸 허리가 굽어집니다. 힘이 없어집니다. 내일은 산소에 가서 생전의 잘못을 넋두리로 말해 보겠습니다. 그래야만 제 마음이 편해 질 것 같습니다.
새 수의를 입고 새집인 무덤에 계실 어머니, 아버지의 집은 푸른 잔디 지붕이 이어졌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생전의 불효를 용서하세요. (끝) 제7회 한민족 효사랑 글짓기 공모전 수상작
제7회 한민족 효사랑 글짓기 공모전 수상작 발표 한글을 사용하는 전 세계에 살고 있는 한민족을 대상으로 한 ‘한민족 효사랑 글짓기 공모전’이 어느덧 7번째 행사를 끝내고 이제 결과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지부와 중국 연변지부가 동시에 진행했던 이번 제7회 공모전에는 9백 여 명의 회원들이 참가하였는데 1인당 3~6편을 낸 것을 감안한다면 수 천 편의 작품이 올라왔습니다.
전 세계에서 수상자가 나온 만큼 이번 공모전 시상식은 온라인으로 진행합니다. 수상자들은 2월 10일까지 이메일(aiy814@hanmail.net)로 본인의 휴대폰번호, 주소, 계좌번호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제7회 한민족 효사랑 글짓기 공모전 수상작 발표작 중 겨우 입선한 작품입니다. 한글을 사용하는 전세계에 살고있는 한민족을 대상으로 한 ‘한민족 효사랑 글짓기 공모전’에
미국지부와 중국 연변지부, 기타 나라에서 9백 여 명의 회원들이 참가하였는데 1인당 3~6편을 내어 2천 여편이 넘는 작품 중에서 43명을 고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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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축하합니다.
효를 받아야할 연세에 그렇게 효를 잘 실천하셨군요. 입선을 축하드립니다.
장희자님, 한인자님 , 부끄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제, 황장진 회장님과, 김병택 성악가, 수필가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근황을 묻기에 2월 초에 이런 일이 있었노라며, 환담을 나누었었지요.
황회장님이 그 글이 읽고 싶고 경위가 알고 싶으시다기에 메일로 보냈습니다.
황장진 회장님이 널리 알려주시는군요. 부끄러워 어찌 하오리까, 대상, 우수상도 아닌데.....
그러나 저는 영광스럽군요, 900명중에서 43명중의 하나, 2500여편 중에서 뽑혔다는 것때문에,
제 마음이 많이 기쁘군요, 제가 금년 여든살 되었다고, 좋은 선물을 받은 것 같습니다.
글 선배님들, 많이 지도 해주시고, 이끌어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고맙습니다. 꾸뻑! 절!
축하드립니다. 그 왕성한 필력-. 모든 작가들의 로망입니다.
뒤늦게
드립니다. 孝를 하루라도 실천해 보신 분은 이 글이 대상 감이라는 걸 알고도 남습니다. 다시금 
드립니다.
덕전님, 안녕하시지요? 고맙습니다. 늘 희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슬옥님, 감사합니다. 늘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유정 문학촌의 막걸리 한잔, 부침개 가 생각납니다.
황회장님이 제글을 올려주셨고, 덕전님, 구슬옥님의 댓글을 읽으니
지난 날의 만남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거듭 고마운 인사를 드리며,좋은날 되세요 <김기태 장로>
배움이란 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孝와 왕성하시신 필력-배움으로 가득채웠습니다.
고맙습니다. 격려에 힘이 납니다.<김기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