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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10명+시인 20명+성악가 10명...‘제2회 이안삼 가곡제’ 24곡 풍성했다
‘한국 가곡 살리기’ 뜻 잇기 위해 절반씩 프로그램 구성
예술성·다양성 살린 곡으로 가곡 팬들 사로잡으며 히트
제2회 이안삼 가곡제 출연자들이 피날레 곡으로 ‘내 마음 그 깊은 곳에’를 합창하고 있다. ⓒ김문기의 포토랜드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한국 가곡은 역시 ‘이안삼 가곡제’로 통한다는 전통이 곧 세워지리라. 첫 곡 ‘파랑새의 꿈’부터 마지막 곡 ‘내 마음 그 깊은 곳에’까지 모두 24곡을 연주했다. 어느 것 하나 엑설런트 아닌 노래가 없다. 24곡 모두가 베스트 오브 베스트다.
임청화, 정선화, 김지현, 김성혜, 김민지, 이현, 이재욱, 이정원, 김승철, 송기창 등 톱클래스 성악가 10명이 우리 가곡을 부르며, 작곡가 이안삼이 앞장섰던 ‘한국 가곡 살리기’의 뜻을 이었다. 이안삼의 13곡, 그리고 초청 작곡가 9명(강문칠·김광자·김성희·나실인·박경규·이수인·임긍수·정덕기·최영섭)의 11곡 등 올해는 더 풍성하게 레퍼토리를 구성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국 예술 가곡의 거장 이안삼(1943~2020) 선생 2주기를 추모하는 ‘제2회 이안삼 가곡제’가 20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렸다. 지난해 첫 가곡제는 이안삼 작품으로만 구성했지만, 이번 두 번째는 이안삼의 곡과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반반씩 넣었다. 한국 가곡의 예술성과 다양성을 소개해 가곡제의 위상과 지평을 점차 확대하려는 의지다.
선곡에는 시인 20명이 머리를 맞댔다. 고영복·고옥주·공한수·김명희·김성희·김필연·노중석·다빈·문효치·서영순·심응문·이귀자·이명숙·이향숙·전경애·전세원·조재선·최숙영·한상완·황여정은 모두 이안삼에게 노랫말을 준 절친이다. 이들이 신청곡을 적어내 24곡을 골랐다.
소프라노 임청화는 먼저 ‘바닷가 내 고향’을 들려줬다. 작곡가 최영섭의 고향은 인천 강화도다. 그는 1929년에 태어나 1963년 서울로 이사하기 전까지 30여년을 보낸 인천에서의 삶이 자기 인생의 ‘노른자위’였다고 늘 말한다. 공한수 시인이 그런 마음을 읽어 “황홀하여 넋을 넋을 잃게 하는 구나 / 고향생각 잊을 수 없네 아 아름다운 추억이여”라고 시를 지었다. 임청화는 가사와 선율에 담긴 절절한 수구초심(首丘初心)을 그만의 색깔로 잘 표현해냈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팬데믹 시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따뜻한 위로다. 그런 점에서 ‘위로’(고옥주 시·이안삼 곡)는 안성맞춤 곡이다. 임청화는 “너를 알기 위해 이 세상을 이 세상을 살아보는 것이다”라고 노래해, 혹독한 시절을 이겨 내는 응원가를 선물했다.
소프라노 정선화는 ‘특급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바쁘게 움직였다. 출연예정 성악가 1명이 무대에 설수 없게 되면서 독창·중창 등 모두 4곡을 맡았다. 한국가곡연구회와 세계음악협회 회장님의 순발력이 빛을 발했다.
정선화는 “이 세상 사는 동안 이 세상 사는 동안 함께 물들어 / 가을 빛으로 스며드는 사람아 나의 소중한 사람아”라는 예쁜 노랫말의 ‘가을 연가’(김성희 시·이안삼 곡), 힘든 삶이지만 그래도 세상을 버텨내는 힘은 바로 긍정 마인드라는 점을 일깨워 준 ‘나 이리하여’(이귀자 시·이안삼 곡), 한국 가곡에서는 드물게 탱고리듬이 가미된 클래팝 계열의 ‘금빛 날개’(전경애 시·이안삼 곡)를 멋지게 소화했다.
소프라노 김지현은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세련된 선율의 ‘아리랑 연가’(고영복 시·나실인 곡)에 이어 ‘조선판 사랑과 영혼’으로 통하는 안동 원이 엄마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담은 ‘월영교의 사랑’(서영순 시·이안삼 곡)을 들려줬다.
1998년, 안동 고성 이씨 가문의 이응태 무덤을 이장하던 중 깜짝 놀랄만한 부장품이 발견됐다. 이응태가 1586년에 31세의 젊은 나이로 숨지자 그의 부인이 ‘원이 아버지께 드리는 한글 편지’를 작성해 넣은 것. 더욱이 서신 옆에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 한 켤레도 놓여 있었다. 김지현은 “먼 옛날 미투리 신고 건너간 / 은하에 강물이 흐르고 그리움이 밀려와”라고 엔드리스 러브를 펼쳤다.
‘자클린의 눈물(Les Lames de Jacqueline)’이라는 첼로곡이 있다. 첼리스트인 베르너 토마스-미푸네는 오펜바흐의 미발표 작품 가운데 ‘숲의 하모니(Les Harmonies des Bois, Op.76)’를 발견한다. 모두 세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두 번째 곡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마흔 둘에 요절한 천재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그 곡에 특별히 ‘자클린의 눈물’이라고 독립된 제목을 달았다.
자클린은 인생의 마지막 15년을 신체기관을 쓰지 못하게 되는 ‘다발성경화증’이라는 희귀병과 싸우다 숨졌다. 또한 기독교에서 유대교로 개종을 감행하면서 다니엘 바렌보임과 결혼했지만 결국 배신당한 비극의 주인공이다. 한상완 시인은 이런 이야기와 음악을 모티브로 시를 썼고, 김성희 작곡가가 곡을 붙여 ‘자클린의 눈물’이라는 가곡을 만들었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김성혜는 첼리스트 강지현의 반주에 맞춰 노래했다. 관객들도 깊은 슬픔에 공감했다.
김성혜는 이에 앞서 바리톤 이재욱과 듀엣으로 ‘파랑새의 꿈’(최숙영 시·임긍수 곡)을 들려줬다. 두 사람은 “한 마리 비둘기처럼 날개 접고 살아왔지만”(소프라노 파트) “날고 싶다 날고 싶다 언제나 노래하였죠”(테너 파트) 등 경쾌하고 발랄한 감정을 잘 살려냈다. 3막짜리 오페라를 보는 듯했다.
소프라노 김민지는 ‘홀로’(이향숙 시·강문칠 곡)와 ‘마음 하나’(전세원 시·이안삼 곡)를 연주했다. 특히 ‘홀로’에서 3단계로 고조되는 마음의 변화를 잘 포착해냈다. “아, 그러나 어쩔까 어쩔까 / 밤을 새도 새벽이 와도 / 나는 나는 홀로다”라고 노래한 2단계에선, 그의 목소리에 실려 서글픔이 밀려왔다.
디바 5명은 강지현의 첼로에 맞춰 김지현→정선화→임청화→김성혜→정선화→김민지 순서로 ‘내 맘의 강물’(이수인 시·곡)을 5중창으로 불렀다. 삶에 대한 관조가 뚜렷한 이 노래는 원래 곡이 먼저 만들어졌다. 마땅한 노랫말을 찾지 못해 결국 이수인 선생이 직접 가사까지 썼다. 들을때 마다 지난온 날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테너 이현은 ‘어느 날 내게 사랑이’(다빈 시·이안삼 곡)에서 그리움과 보고픔이 아로 새겨진 마음을 잘 담아냈다. 또한 ‘다시 묻지 않으리’(노중석 시·이안삼 곡)에서는 삶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다시 묻지 않으리” 부분에선 지금껏 힘든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내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자각하며,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맹세로 읽혀졌다. 숙연했다.
이번 ‘이안삼 가곡제’는 두 사람을 추모한다. 이안삼 작곡가는 2020년 8월 18일 별세했다. 그를 떠나보내고 1년 뒤인 2021년 8월 22일 이수인 작곡가도 타계했다. 이수인 선생(1939년생)은 이안삼 선생(1943년생)보다 네 살 많은 선배인데, 공교롭게도 후배가 저 하늘로 떠난 날 나흘 뒤에 별세했다.
이안삼과 이수인은 2003년 최영섭, 임긍수와 함께 ‘4인 작곡가회’를 결성해 본격적으로 한국가곡 부흥에 나서는 등 온 힘을 다해 우리 가곡 살리기를 이끌었다. 테너 이재욱은 이수인 작곡가를 기리는 의미를 담아 ‘바람아’(홍일중 시)를 불렀다.
테너 이정원은 ‘분수의 노래’(이명숙 시·김광자 곡)로 8월 더위를 한방에 날려 보냈다. “그리워 그리워서 마르지 않는 / 수정 같은 간절한 나의 기도여”가 하얀 물줄기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침묵하는 동안’(조재선 시·이안삼 곡)에서는 연인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생길까봐 아예 입을 다물고 그리움을 삭이는 모습이 오버랩됐다. 고음에서도 빛났고 저음에서도 빛났다.
스리 테너(이현·이재욱·이정원)는 이안삼의 시그니처 곡 중 하나인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문효치 시)로 폭풍 고음을 뽐냈다.
지난해에도 이 곡을 선보여 강한 임팩트를 줬는데, 1년만의 앙코르였음에도 감동은 여전했다. 찰떡케미의 진수를 선보였다.
바리톤 김승철은 물안개, 소낙비, 단풍, 초록물, 찬바람, 눈, 진달래, 철쭉, 보슬비 등을 잘 포장해 팬들 가슴으로 택배를 보냈다. 그의 목소리를 타고 ‘대관령’(신봉승 시·박경규 곡) 아흔 아홉 굽이에 흐르는 맑은 자연이 한꺼번에 온 셈이다. 거기에 더해 천년을 산다는 나무 ‘주목’(심응문 시·이안삼 곡)까지 배달됐다. 소백산 비로봉에 우뚝한 나무가 눈앞에 펼쳐졌다.
바리톤 송기창은 익살스러운 해학미가 넘치는 ‘라면 한 입’(김필연 시·정덕기 곡)으로 웃음을 안겨줬다. 아들은 라면을 끓이면서 아빠에게 말한다, 지금 끓일 건데 아빠도 먹고 싶으면 두 개 끓이겠다고. 아빠는 먹을 생각이 없으니 한 개만 끓이라고 한다. 그러나 결국 아빠는 딱 한 입만 먹겠다고 해놓고 반사발을 먹는다. 송기창은 아들, 아빠, 극중화자 등 1인 3역을 맡아 능청스럽게 노래했다. 중간에 진짜 나무젓가락을 쪼개어 라면 먹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연기했고, 노래가 끝난 뒤에는 앞자리에 앉아있던 김필연 시인에게 젓가락을 전달해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이어 ‘그대 있어 천년을 살고’(장장식 시·임긍수 곡)로 분위기를 돋운뒤, "아아 검정 유리알 같은 어두운 밤하늘 / 꽃술 터지듯 흩어지는 별무리 별무리"라며 누군가를 보고싶은 마음을 드러낸 '그리움'(황여정 시·이안삼 곡)으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피날레는 모든 출연진과 관객이 함께 이안삼의 대표곡 ‘내 마음 그 깊은 곳에’(김명희 시)를 합창했다. “내 마음 그 깊은 곳에 그리움만 남기고 떠나버린 그대여”를 부를 땐 모두들 마음속으로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를 외쳤다.
피아니스트 이성하와 장동인은 10명의 성악가와 호흡을 맞춰 풍성한 음악을 선사했다. 시인 장장식과 김정주가 진행을 맡았고, 김문기가 사진 촬영을 담당했다.
ⓒ김문기의 포토랜드
첫댓글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님은 큰 음악회 때 마다 전기와 후기를
올려주시는 음악 전문기자이십니다. 감사드립니다. ^^
와 24곡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