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직장인들은 만성 스트레스 상태에 빠져 있다. 우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근로시간이 가장 길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또 치열한 사내 경쟁으로 회사에서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크다.
젊은 직원들은 조직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중년 직원들은 젊은 층을 이해하지 못한다. 직장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이런 고충을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엉뚱하게 일터에서 터져나오고, 힘들게 입사한 신입사원들은 쉽게 회사를 떠난다. 역설적이지만 이처럼 마음의 상처를 받은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바로 회사의 '사내상담사'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 도입되기 시작한 사내상담 제도는 초기 대기업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이제는 일부 중견기업도 도입하는 등 꾸준히 확산돼 왔다. 자체적으로 운영할 여력이 되지 않는 중소기업을 위해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상담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사내상담실의 존재를 모르거나 이곳의 도움을 받는 것을 거부한다.
매일경제 비즈타임스팀은 사내상담 제도를 운영하는 대표적인 기업인 현대모비스, LG상사, HS애드 등을 찾아 사내상담사 4명과 각 기업의 인사담당자를 심층 인터뷰했다. 또한 사내상담을 경영학적 측면에서 살펴보기 위해 해외 상담 심리 전문가인 리 뉴먼 IE 비즈니스 스쿨 교수(현 인문과학 기술대 학장(Director of IE School of Human Science & Technology))와 캐리 쿠퍼 맨체스터 비즈니스 스쿨 교수를 인터뷰했다.
사내상담 제도를 도입한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사내상담 제도가 단순히 직원들의 복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직원의 심리적 문제를 해소해주는 것은 개인의 업무 성과와 기업의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든,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든 직원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은 회사의 기업문화를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지난해 사내상담 제도를 도입한 HS애드의 인사 담당자는 "회사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겪는 스트레스가 회사 내 업무에도 영향을 주는 사례가 있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사내상담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는 사내상담의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HS애드에서 사내상담을 맡고 있는 예담 심리상담센터의 안미경 심리상담사는 "현재 대기자가 많아 상담을 받기까지 3개월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인 미미박스 인사담당자 역시 "상담 신청을 공지하면 하루 만에 상담 인원의 6배가 넘는 인원이 몰렸다"며 "그만큼 직원들이 심리상담을 필요로 하고 참여할 의지가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미미박스는 지난해 정부 지원으로 한국EAP(근로자지원프로그램)협회로부터 상담서비스를 제공받았다.
상담사들은 직원들이 상담을 통해 그간 고민해왔던 문제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효과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지연 현대모비스 상담실장은 "100명 중 98명 정도가 상담사에게 말을 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 것 같다'며 고마워한다"고 말했다. 이어 "언어를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감정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문제를 훨씬 더 잘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담사들은 사내상담이 회사의 전반적인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창구로도 활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상담실장은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회사에 다니면서 힘들었던 부분이 뭔지를 심층적으로 듣는 퇴직면담을 실시하고 있다"며 "조직의 체질을 바꿔보겠다는 회사의 의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상담의 독립성만 유지할 수만 있다면 고충을 갖고 있는 직원과 회사 간 매개 창구 또는 완충지대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며 "실제로 그런 부분을 기대하고 오는 직원도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