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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한답시고 독수공방하면서 지내다보니 수다떨곳도 없구.. 얼마 살지 않은 지난날만 돌이키게 되네요 ㅎㅎ
작년 이맘때쯤 알바 끝내고 모은 돈으로 혼자 3박4일로 전라도 여행에 갔다 와서 썼던 글의 일부입니다. 좀.. 많이 길긴 한데 개인적으로 정말 인상깊었던 일화라 공유하고 싶어서 ^^ 글은 서툴러도 지루..하진 않을거에요....ㅠㅠ 끝까지 읽어봐주세용ㅎㅎㅎㅎ
목포에서 만난 이야기
곧장 해남으로 향하긴 뭔가 아쉬워 구경할 겸 들른 목포. 이곳에서도 굉장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포터미널에 내려 좀 내려와 걸어보아도 그냥 서울과 별다를 바 없어 보이는 도시였다. 파리바게트가 보이고, 핸드폰가게‘T world’의 글자가 눈에 들어오자, 나는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그냥 청산도나 가자.’
선택의 순간. 이것은 분명 찰나이다. 버스정류장이 내 눈 앞에 들어왔고 목포 항구 주변을 둘러보면 되겠다. 이내 맘이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온 첫 버스 ‘1번버스’(우연이지만, 그 때 내 앞에 멈춰선 버스는 ‘1’번이었다)를 타고 나는 항동시장에 내렸다. 내 눈에 들어오는 몇몇 장면들 (돼지머리를 불로 쬐는) 을 쑥~지나가고 나니, 이것조차 지루해졌다. TV에 나오는 리포터들처럼 나도 시장 아주머니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붙여보았지만, 그들이 스무 살 첫 여행의 설렘을 알아줄리 만무했고, 냉랭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항구 쪽으로 나가보았다. 고기잡이를 곧 하러 나가기 위한 듯 준비가 한창이신 아저씨 3분이 보였다.
“도와 드릴까요~?”
내가 봐도 나는 참 오지랖도 넓고 말도 참 잘 건다.
어느새 나는 민씨 사장님 며느리가 되어 잠깐이지만 열심히 날라 드렸다. 아저씨들은 예쁜 며느리, 며느리 하시며 또 친절히 대해주셨다. 이 아저씨들을 따라 고기잡이 구경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또 솟구쳤다. 새벽에 일을 끝내 들어오게 되라도 다음날 해남가지 뭐. 하는 생각까지 하며 따라가고 싶은 듯한 의사표현을 했다. 하지만 이 배는 목포로 바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도초’라는 섬에 가는 거라며 안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후에 ‘도초’에 오게 되면 자신에게 연락하라며 나에게 번호를 남겨주셨다.(후에 이것이 나에겐 두려움을 안겨준다) 따라가진 못하더라도 고기잡이의 출항과정을 끝까지 관찰해보고 싶은 마음에 거기 계속 쭈그리고 앉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자 또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한 아저씨. 아까부터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돌아 다니시길래 어선 아저씨들과 일행 혹은 거래처쯤으로 생각했다.(나중에 와 생각해보니 내가 불안하셨나보다.)그러나 나에게 대뜸 명함을 내미는 이 아저씨.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쳤다. 사실 어선을 따라가려 생각할 때도 조금은 불안한 생각이 있었지만, 도대체 또 이 아저씨는 무어란 말인가. 내가 뭐라고 명함을 주며 그렇게 배를 타고 싶으면 자기 배는 오늘 출항하고 바로 들어오니 태워주겠다는 말까지.. 내가 배를 타고 싶어 조를 때는 몰랐지만, 갑자기 그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그럼에도 똥배짱 별둘이는 기어코 명함 준 아저씨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아니면 뛰어 내리지 뭐.(이 때는 이런 생각조차 없이 그냥 배를 타고 싶어서였다. 반성한다. 무서운 생각이다.)
명함 속 이름은 ‘목포항도선사회 선장 ***’. 처음 들어보는 직업이었다.
‘도선사’라는 이 직업은 해외에서 수출입들을 위해 들어오는 배들을 목포항까지 안전하게 입항 또는 출항 시켜주는 일로써, 수 년 동안의 숙달된 운항실력(실수 없는 : 외국 배를 운항해야하므로)과 목포항에 대한 빠싹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여튼 처음 알게 된 멋진 직업이다. 그중에서도 선장님이 하시는 역할은 도선사 사장님들께서 외국배를 입출항 시키기 위한 약속장소까지 사장님들을 모셔다 드리는 일이다. 언뜻 쉬워보일지 모르지만, 배와 배를 밀착 시키되, 부딪혀서는 안 되니, 이 나름의 고도의 노하우를 필요로 하고, 또 배 한척을 혼자 운항하시니 줄을 매고, 푸르고, 운전, 기관 일까지 일인 다역을 해야 하는 엄청난 일이다.
선장님께서는 우선 어선을 따라가려했던 나의 부주의에 대해 잠시 주의를 주신 후, 배의 이곳저곳을 설명해주셨다. 그 때까지도 나의 두려움이 완전히 가시진 않은 상태였다. 그 때, 무언가 생각이 나신듯 서랍 속에서 주섬주섬 꺼내신다. 종이컵 2잔과 맥*커피... 아마 이 때 나의 경계심이 거의 풀려 버린 듯싶다. 외국인들도 한국에 와 맥심커피의 맛을 보면 왕창 사간다고 하니, 그 맛을 알만하다.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동대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노란 커피믹스가 한국 직장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한국 사회인들의 필수품. 이걸 보고 긴장이 풀린 나는
“저 커피 무진장 잘 타요~제가 타드릴게요.^^”
하는 여유까지 부릴 수 있었다.
배가 떠나고 얼마 안 돼, 바다 구경한다고 밖으로 나가 덤벙대다 그만 내 모자를 날려버렸는데 괜찮다는 날 뒤로하고 재빨리 나오셔서 긴 작대기(가끔 바다에 있는 여러 가지 찌꺼기(?)들 때문에 상비되어있었다)로 모자를 건져주시는 모습을 보고 경계심이 완전히 풀렸다.
회사 상황이 급하게 변동되는 바람에 (대상이 바다다보니 상황이 그 때 그때 다르고 바뀌기도 잘 바뀔 수밖에 없다) 원래 예상시간보다 늦춰지게 되었다. 그로인해 난 ‘외달도 30분구경권’을 얻었으니, 더 잘 된 셈이다.
두 분의 사장님을 모셔야하는 상황이었다. 첫 번째 사장님은 한배에서 모셔와 또 다른 배로 모셔다 드려야 했고, (바뀐 상황) 두 번째 회장님은 목포항에 모셔다 드려야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첫 번째 사장님 모셔올 시간에 닿았다. 배에 탑승하신 후 낯선 아가씨를 보고 흠칫 놀라신다. 자초지종을 들으신 후,
“간 큰 아가씨네. 결국 이 아저씨도 모르는 아저씨였던 거잖아.”하신다. 그러면서 어선을 따라가는 건 정말 위험하다고 한 번 더 주의를 주신다.
아, 내가 하려했던 행동이 정말 위험한 행동이었구나. 한 번 더 느꼈다. 그러시면서도,
“그래도 이 아저씨는 믿을 만한 사람이야. 좋은 사람이야.”하며 선장님을 툭툭 치신다. 그 속에 느껴지는 믿음이 멋졌다.
알고 보니, 선장님은 두 딸을 키우시는 이혼남이셨다. 아내 되셨던 분이 하도 사고를 많이 치셔서 그 것으로 인해 믿음이 깨져 2년 전 이혼을 하셨다고 한다. 그 전에는 또 믿음에 배신 당하실까봐 항상 불안했는데 오히려 이혼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셨다고 하셨다. 두 딸에게 도저히 아빠는 안 되겠다고 말하며 이혼을 마음먹기까지도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은 게.. 겨우 ‘힘 드셨겠어요..’라는 말 밖에 해드릴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결혼이라는 말씀 속에서 그 고통이 느껴졌다.
“제 꿈이.. 제가 정말 사랑할 수 있는 사람과 내가 해줄 수 있는 능력 안에 모든 걸 해주며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는데...”
...
“이제는 그냥 두 딸이 말 잘 듣고 예쁘게 커줬으면 좋겠어요. 이젠 정말 그게 다에요.”
하시면서도,
“가끔씩은 있는 당직에 일도 하고, 애들 밥, 학교 등을 챙기다보면 제 시간이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를 위한 건 운동뿐이에요..”
라 하시는.. 외로우시겠구나. 싶었다.
얼마 전에는 작은 따님이 선장님 몰래 엄마를 만나는 걸 선장님이 아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못 만나도록 했던 엄마를 휴일에만 보도록 하셨다고 한다.
“거짓말하도록 하게 하는 것보단 낫겠다 싶더라고요. 그리고 애들 교육상 만나는 게 좋대요. 어쩌겠어요..”
“아무리 딸이더라도 실망스러운 건 사실이에요. 그만큼 기대도 조금은 줄게 되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더 엄격해졌어요.”
홀로 배를 운항하시고, 홀로 두 딸을 키우시며, 어느 곳 하나 의지할 데 없이. 바쁘지만, 외롭게 사시는 선장님..
“(아내분일에 대해)다른 사람들은 몰라요. 한 번도 일에 빠진 적 없던 내가, 그 때 2년 만에 아내를 만나기 위해(둘째 아이 거짓말로 인해) 일을 하루 빠지는 바람에 사장님들은 아시지만, 다른 사람한텐 말 못하죠.. 부끄럽잖아요.”
여행객의 특권이다. 이별을 전제한 만남이기에 나는 분명 좀 더 편히 선장님의 말동무가 되어드릴 수 있었다. 다시 목포에 올 때 꼭 연락 하란 말씀만 대 여섯 번 하셨던 걸 보면 선장님도 말동무가 꽤 마음에 들었음에 틀림없다.
두 번째 회장님을 모시러 가기 전 남은 시간동안 선장님은 나를 근처 외달도에 내려주셨다. 30분 후, 다시 그 자리로 오기로 약속한 후, 나는 섬에 낙오되었다.
외달도는 외달도 내 주민들끼리 외부업체의 진입을 일절 금지시켰다고 한다. 주민들이 민박, 음식점 등등을 자체적으로 각각 운영하는 식이다.
그 섬에 들어선 후부터 나올 때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민박 구하셨어요?”
였다. 그럼 나는
“아니요, 오늘 바로 나가요.”
하면,
“어? 오늘 배 모두 끊겼는데..?”
아무나 느낄 수 없는 쾌감이다. 내 전용 여객선이 있는 자만이 부릴 수 있는 여유.
“아.. 따로 와주시기로 한분이 계셔서..”
나... 이런 녀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약속시간이 다가와서 아까 배를 탔던 곳으로 돌아가는 중 음료수를 종류 별로 하나씩 샀다. 그 값어치의 1/100도 못 미치는 승선료다. 그렇게 또 선물을 샀다는 들뜬 마음에 쫄래쫄래 배 있는 곳으로 향하는데 전화가 울린다. 선장님이다.
“지금 그 곳에서 옆으로 쭉 더 가시면 나무계단이 나와요. 그거 따라 올라가 등대까지 구경하고 오세요~”
정말 좋으신 선장님.
두 번째 회장님을 모시러 가는 길.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내 분하고는 어떻게 결혼 하신 거 에요?”
“처음엔 제 직업이 이렇다보니, 그냥 제가 다 끌어안고 가야지 생각했어요.”
“선장님 직업이 왜요? 멋지잖아요.”
“그 땐 그렇게 생각 못했어요. 뱃사람이란 게 예서부터 좀 천하게 여겼잖아요. 처가에서도 반대하더라고요.”
ㅡㅡ...
“아무리그래도 내가 도둑질을 하는 것도, 남을 속이며 사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정말 성실히 하면서 사는 데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인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설득을 포기했어요. 그러니까 나중엔 장인, 장모님이 절 찾아오시더라고요. 그냥 그렇게 결혼하게 됐어요.”
“정말 다 필요 없고, 결혼할 땐 그 사람 됨됨이를 봐야 되요. 돈이고 뭐고, 그건 내가 성실히 하면 되는 거잖아요.”
“저는 기면 기다 아니면 아니다. 확실한 사람이에요. 아내한테도 기회를 3번 줬어요. 근데 몇 천 만원대로 가니까. 너도 죽고 나도 죽고 하겠더라고, 다시 기회를 줄 때마다 그리고 사고 칠 때마다의 그 배신감이.. 이건 못할 짓이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이혼했어요.”
“그래도 내가 일은 정말 열심히 하면서 살아요. 사실 이 배를 4명이서 운항 하거든요. 근데 그 일을 혼자하려고 해봐요. 보통 노하우로는 안 돼요. 그래도 4명이 하는 것보다 완벽하게 잘해요 난.”
선장님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멋졌다.
“내가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왔어요. 그런데 여기는 대학 나온 사람들뿐이잖아요. 그러려면 난 정말 운항실력에서 만큼은 다른 사람보다 월등 해야 되요. 정말 그래요. 이론은 내가 조금 모자랄지 몰라도 나는 모든 걸 배에서 직접보고 배우고 익힌 거니까. 배 운항실력에서 만큼은 뒤지지 않아요. 그들이 3배 노력할 때 나 같은 놈들은 10배 더 노력하는 거 에요.”
“나는 지금까지 지각 한 번 한적 없어요. 항상 약속된 시간보다 한 시간은 먼저 배에 나와 기다려. (사장님을 목포항에서 약속된 배까지 모셔다드릴 때) 사장님 집은 15분 거리고, 난 5분 거리거든요. 근데 내가 항상 너무 빨리 나와 기다리니까 사장님이 나중엔 그러시더라고요. 당신이 출발할 때 전화할 테니까 그 때까지 나오지 말라고.”
지각을 자주하는 나와는 대조된 모습이었다. 열심히 사는 거란, 노력하는 거란 이런 건데.. 참 건방졌다 싶다.
“나는 지금도 초심과 같아요. 처음에 입사할 때 회장님이 그러시더라고. 처음엔 모두 당신과 같이 더 잘하겠습니다. 한다고, 두고 보자고. 근데 그렇잖아. 지금까지 나 믿고 계속 써주시잖아요. 더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 없어요. 그냥 묵묵히 나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 내는 거 에요.
처음에 들어와서 이것저것 모를 때 사장님한테 여쭤보면, 잘 설명해주셔요. 그런데 처음 한 번 듣고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나중에 그걸 다 노트에 적었어요. 그리고 혼자 배에 와서 직접 다 해보면서 익히는 거야. 나는 그렇게 했어요.”
삶의 지혜. 8년 노하우의 진실. 그뿐이었다. ‘성실함’그리고 ‘우직함’.
“나대는 게 좋은 게 아니에요. 사실 제가 선장들 중 팀장이거든요.”
팀장이라고 말씀하시는 데 느껴지는 조심스러움. 거기서 겸손함이 보였다.
“저는 절대 나서지 않아요. 다른 선장들도 다 저와 같은 선장이거든요. 배를 직접 운항하시고, 각자의 방식이 있어요. 거기에 제가 뭐라 할 순 없는 거거든요. 다들 저와 같은 선장님들이시니까.”
왜 ***선장님이 팀장이 되셨는지 알 것 같은 대목이었다. 그는 그의 동료들을 존중하는 법을 알고 계셨다.
나는 참 운도 좋다. 놀러 와서 조차 이런 멋진 사람을 만나 인생을 배운다.
선장님의 이야기에 취해있다 보니, 어느 덧 회장님을 모시러 갈 시간에 닿았다. 회장님의 그 과묵한 포스에 목포항까지 아까보다 훨씬 엄숙히 갔다. 회장님도 나의 그 간 큰 행동에 대해 실 예를 들어 주의를 주셨는데, 실제 이런 일도 있었다더라 라는 얘기까지 들으니, 정말 무서운 일이었구나 싶었다.
목포항에 내려 주시면서 해남 도착하면 잘 도착했다고 전화 달라는 선장님께 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 날 밤 어선아저씨한테 전화가 왔는데 받지 못했다. 사실 아까까지만 해도 살갑게 굴던 며느리의 변심이 서운하실지도 모르지만, 회장님의 마지막 안타는 내게 충격이 컸으므로, 받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받지 않고 나니, 그 두려움과 미안함이 배가 되어 이 날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끝은 무서웠지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이날 목포 여행을 난 잊지 못할 것이다.
다음 날 선장님께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목포에 들르게 되면 맛난 저녁이라도 사주시겠다고 전화가 왔지만, 해남서 서울로 바로 가는 버스를 탈 예정이라 약속드리진 못했다. 다음 목포에 올 때 꼭 한번 다시 뵙고 싶은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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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 ^
반응이 없어서 상심하구 있었는데...ㅠㅠㅠ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여행의 참맛이 느껴집니다. 끝까지 잘 읽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읽고나니 저도 여행가고 싶어지네요 ㅜ
날씨도 더워지고ㅠㅠ 저도 바다보러 가고 싶네요ㅜㅜ
정말 간 큰 여인이시군요. 저희 형도 어렷을 때, 배 잘못탔다가(?) 새우잡이에서 몇달 고생만하고 도망나왔던 터라 조심은 하시는게 좋아요. 다행히 좋은 분 만나서 좋은 경험하신 듯하네요.
.........이런경우가 적지 않은가봐요....;; 선장님도 실제로 있는일이라고 몇번 강조하셨는데.. 앞으로 조심해야겠어요ㅠ
조심하세요 ㅎㅎ 근데 이런 붙임성은 정말 본받아야할듯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