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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게시판 ▒▒ 스크랩 그 여름, 복날에/ 이길원
靜 波 추천 0 조회 116 14.07.23 00: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그 여름, 복날에/ 이길원

 

 

어린 시절에 목격한 야만의 추억

 

바로 그 대추나무다

설핏 부는 바람에 곤두박질치던 내 연(鳶)을

관처럼 쓰고 있던 그 대추나무다

검둥이는 목이 비끌린채 매를 맞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게 목소리라도 높이면

으르렁 기세를 세우던 목을

수천 번도 더 쓰다듬었던 목덜미를

머슴들은 매달았다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교문을 나서는 내게

바지가랑이 잡으며 꼬리치던 검둥이가

그날따라 보이지 않더니

거기 매달려 사정없이 맞고 있었다

누군가가 울며 몸부림치는 내 어깨를 짓눌렀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검둥이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혼절하고 말았다. 매달린 검둥이처럼

 

오늘같은 복날이면

친구들은

뛰는 메뚜기처럼 젓가락을 움직이는데

40년 전 검둥이 눈물이나 떠올리며

내 젓가락은 동그라미나 그린다

 

- 시집『계란 껍질에 앉아서』(시문학사, 1998)

..............................................................................................

 

 오늘은 여름이 절정기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초복’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복달임으로 삼계탕집은 붐빌 것이며 ‘마니아’들은 삼삼오오 보신탕 맛집을 찾을 것이다. 닭 공장에서 출하되는 닭들은 그렇다 치고 개도둑들이 설쳐대는 바람에 멀쩡한 집안 견공들마저 수난을 겪고 있다. 복날 보양식으로 개고기를 으뜸으로 꼽은 연유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한여름 기력을 되찾기 위해 단백질 공급원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 옛날 먹을 게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인지라 자연히 집에서 기르는 개와 닭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 가운데 개는 나눠먹기 딱 좋은 크기였을 터인데, 조선 후기 서양 선교사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도 이 개고기였다. 그래서 가톨릭과 보신탕은 꽤 깊은 유대가 있다. 물론 동의보감에도 ‘개고기는 오장을 편하게 하고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하여 기력을 증진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 땅에서 개고기는 여전히 합법화 되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개라는 종은 단순 가축이 아니라 오랜 기간 사람들과 함께한 반려동물이기에 보신탕 문화를 쉽사리 용인하지 못하며, 그걸 먹는 사람들을 혐오하는 분위기도 일부 존재한다.

 

 시인이 어린 시절 목격한 ‘검둥이’를 잡는 야만적 장면은 트라우마가 되어 세월이 한참 흘렀음에도 ‘내 젓가락은 동그라미나 그리’며 개고기를 입에 댈 수 없도록 했다. 집에서 애지중지 애완했던 개가 발기발기 찢어져 탕 그릇에 담긴다는 생각만으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나도 큰 망치로 개의 머리를 후려치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으며, 쥐약 먹고 뻗은 개를 불에 거슬려 털을 벗겨내는 장면을 빤히 쳐다본 적도 있다. 그리고 재래시장 좌판에 놓인 이빨 드러낸 개머리를 수시로 보아왔다. 그 심정을 어찌 모르겠나.

 

 하지만 내가 먹지 않는다고, 도저히 먹을 수 없다 해서 남이 먹는 것까지 반대하고 혐오하는 것은 온당한가. 오래전 한 프랑스 여배우가 야만국으로 규정하면서 우리들의 입맛까지 관리하려 들었던 어이없는 일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먹는 음식으로서의 개와 집에서 애완하는 반려동물로서의 개를 동격으로 보는 시각에서 오는 불필요한 마찰인 것이다. 자기가 기르던 애완견을 잡아먹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시중에 식용으로 유통되는 개는 축견으로 전문 사육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조상들도 아무 때나 닥치는 대로 개고기를 식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산림경제>에는 ‘개날(戌日)에 개를 먹지 말 것, 개의 형태를 잘 가려서 먹을 것, 집에서 기른 것은 될 수 있으면 잡지 말 것’ 등 나름의 금기 원칙을 두었다. 마구잡이로 개를 때려잡는다든지, 지난 ‘먹거리X파일’에서도 보았듯이 못된 ‘업자’들에 의해 애완견까지 보신탕집으로 팔려나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 개고기를 혐오하는 사람 앞에서 쪽쪽 뼈를 빨아가며 과장된 입맛을 보이는 것은 예의가 아니며, 성당 앞에서 벌이는 개고기 파티도 민망한 노릇이다.

 

 얼마 전 ‘개식용 금지를 위한 인도주의 행동연합’이란 단체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불법운영 중인 개도살장의 폐쇄를 주장했다. 하지만 당국의 대처는 미온적이다. 허용하자니 국내외 비판여론이 걱정되고, 도살장 폐쇄와 영업금지 등의 강경 조치를 내리자니 관련 업계와 식도락가의 반발이 우려되어서다. 입장이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불편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위생적인 도축과 합법적인 유통체계의 확립이 필요한 시점이긴 하지만 이래저래 난처한 상황이라 개고기에 대해서는 ‘해결되지 않은 게 해결책’일지도 모르겠다. “개 하나?”라고 누가 물으면 “먹긴 해도 별로 즐기진 않아”라는 나의 궁색하고 어정쩡한 대꾸처럼.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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