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한 수, 이백을 그리며
不見李生久(불견이생구)
이백을 못 본 지 오래,
佯狂眞可哀(양광진가애)
미친 체하는 그가 참으로 애처롭네.
世人皆欲殺(세인개욕살)
세상 사람들 모두 그를 죽이려 하지만,
吾意獨憐才(오의독연재)
나만은 그 재능을 몹시도 아끼지.
敏捷詩千首(민첩시천수)
민첩하게 지은 시 일천 수나 되지만,
飄零酒一杯(표령주일배)
떠도는 신세 되어 술잔이나 기울이겠지.
匡山讀書處(광산독서처)
광산 옛 마을 그가 공부하던 곳,
頭白好歸來(두백호귀래)
머리 희었을 지금이 돌아오기 좋은 때이려니.
―‘만나지 못한 이백(불견·不見)’ 두보(杜甫·712∼770)
* 李生(이생): 이백(李白)을 가리킨다.
* 佯狂(양광): 미친 척하다. 미친 것처럼 위장하다.
* 飄零(표령): 바람 따라 떨어지다. 쇠락하다. 흩어지다. 시들어 떨어지다. 맹교(孟郊)는 「老恨」이란 시에서 ‘無子抄文字, 老吟多飄零(좋은 글 베껴 쓸 자식이 없어 / 늙어서 시드는 것 읊기만 하네)’이라고 읊었고, 노조린(盧照鄰)은 「曲池荷」란 시에서 ‘常恐秋風早, 飄零君不知(언제나 가을바람 이른 것을 무서워하더니 / 시들어 지는 것을 그대 몰랐네)’라고 읊었다.
* 匡山(광산): 산 이름. 촉(蜀)에 있는 대광산(大匡山)을 가리킨다. 이곳에서 이백이 공부를 했다.
* 이 작품은 두보가 성도(成都)에 머물 때 지은 것인데 두보는 천보(天寶) 4년(745) 연주(兗州)에서 이백과 헤어진 뒤 15년이 흐르는 동안 이백을 다시 만나지 못하고 있었고 이백은 영왕의 반란 사건에 연루되어 야랑(夜郞)으로 유배의 길을 떠났다가 무산(巫山)을 지날 때 사면을 받았는데 그때 이백의 나이 이미 58세였다.
촉 땅을 전전하던 두보는 시에 쓴 것처럼 이백이 고향인 촉으로 돌아 오기를 바랐을 터이지만 그리하여 둘이서 술을 마시며 시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기를 바랐을 터이지만 두보는 자신의 바람을 이루지 못한 채 객지에서 병이 들어 세상을 떴고 이백 또한 강남을 떠돌다 몸을 기탁한 먼 친척의 집에서 한 많은 생을 마쳤다. 재주와 복록을 함께 타고나기가 어찌 쉬운 일이겠으며 그랬다면 그들이 어찌 천고불후의 시편들을 남겨 둘 수 있었겠는가.
‘不見’이란 두 글자에 머문 눈길을 거두기가 어렵다.
중국 고전시의 두 거봉 이백(李白, 701-762)과 두보(杜甫, 712-770). 두 사람은 당 현종 말년 혼란한 시기에 조우했다. 당시 이백은 황제의 비서 격인 한림공봉(翰林供奉)을 지내다 조정에서 쫓겨난 직후였고, 두보는 10년 유랑생활을 마치고 바야흐로 벼슬길을 모색하던 중이었다. 하나는 온 나라에 시명을 떨치고 장안에서 영광과 좌절을 두루 경험한 유명인, 하나는 대망을 펼쳐보리라 이제 막 관료 세계에 뛰어들려는 신출내기 무명인사. 이백은 11세 어린 후배를 꽤 살갑게 대해준 듯, 둘은 처음부터 의기투합하여 도처를 유람하며 두터운 우정을 쌓았다. 후일 두보가 ‘어느 가을 술 취해 한 이불에서 잠을 잤고, 손잡고 날마다 함께 나다녔지’라 회상할 정도였다.
시는 오래 만나지 못한 선배를 그리는 두보의 간절함이 담긴 노래. 안사의 난을 피해 이백의 고향 쓰촨(四川) 지역에 초당(草堂)을 마련한 두보는 이백의 소식이 자못 궁금했다. 그가 난리통에 반기를 든 영왕(永王)의 막료로 들어간 죄로 남쪽 오지로 유배형을 당했고, ‘세상 사람들 모두 그를 죽이려 한다’는 소식은 이미 들은 터. 당시 이백은 진작 사면되었지만 이 사실을 몰랐던 두보는 이백의 생사를 걱정하며 그 옛날 공부하던 곳으로 돌아오길 고대하고 있다. 귀향하여 늘그막을 보냈으면 고대하는 후배의 애틋함이 마음 짠하다.
● 高句麗(고구려)/ 이백(李白, 701-762)
金花折風帽[금화절풍모]
노란 꽃 절풍모를 쓰고
白馬小遲回[백마소지회]
백마를 탄채 잠시 멈추었다 돌며,
翩翩舞廣袖[편편무광수]
펄럭펄럭 넓은 소매로 춤을 추니
似鳥海東來[사조해동래]
바다 동쪽에서 새가 날아온 듯 하구나.
○ 李白斗酒詩百篇,長安市上酒家眠。天子呼来不上船,自稱臣是酒中仙。
이백은 술 한 말을 마시고 시 100편을 짓고, 장안성 저자의 술집에서 잤다. 천자가 오라하여도 배에도 오르지 않은 채, 스스로 칭하기를 '신은 술의 신선입니다' 하였다.
-두보(杜甫, 712-770)
○ 語不驚人死不休。
시로 사람을 놀라게 하지 못하거든 죽어도 쉬지 아니하리로다.
- 두보(杜甫, 712-770)
● 江村(강촌)/ 두보(杜甫, 712-770)
淸江一曲抱村流(청강일곡포촌류)
맑은 강 한 굽이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데
長夏江村事事幽(장하강촌사사유)
기나긴 여름 강촌은 만사가 한가롭다
自去自來梁上燕(자거자래양상연)
제비는 마음대로 처마를 들고나고
相親相近水中鷗(상친상근수중구)
수중의 갈매기는 가까이 가도 날아갈 줄 모른다
老妻畵紙爲棋局(노처화지위기국)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稚子敲針作釣鉤(치자고침작조구)
어린 아들은 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드는구나
多病所須唯藥物(다병소수유약물)
다병한 몸에 필요한 것이란 오직 약물뿐
微軀此外更何求(미구차외갱하구)
미천한 이내 몸이 달리 또 무엇을 바라리오
● 古柏行(늙은 측백나무)/ 두보(杜甫, 712-770)
孔明廟前有老柏(공명묘전유로백)
제갈공명의 사당 앞에 오래된 측백나무
柯如靑銅根如石(가여청동근여석)
가시는 청동같고 뿌리는 돌같구나
霜皮溜雨四十圍(상피류우사십위)
서리 견딘 껍질에 흘러내린 물방울, 둘레는 사십 아름이라
黛色參天二千尺(대색참천이천척)
검푸른 잎새는 하늘로 이천 척이나 솟아있구나
君臣已與時際會(군신이여시제회)
군신이 이미 시국에 따라 함께 모였으니
樹木猶爲人愛惜(수목유위인애석)
사당 앞의 나무도 사람의 아낌을 받고 있구나
雲來氣椄巫峽長(운래기접무협장)
구름 몰려오면 그 기운 길게 무협으로 이어지고
月出寒通雪山白(월출한통설산백)
달 떠오르면 그 찬기운 설산의 흰 눈과 통하는구나
億昨路繞錦亭東(억작로요금정동)
지난 날을 생각하노라, 길 따라 금정 동쪽을 도니
先主武侯同閟宮(선주무후동비궁)
선주 유비와 무후 제갈공명이 같은 사당에 모셔있었다
崔嵬枝幹郊原古(최외지간교원고)
나무 줄기는 크고 높았고 교외의 들판도 오래되어
窈窕丹靑戶牖空(요조단청호유공)
단청은 으슥했으나 창문 안은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었다
落落盤踞雖得地(락락반거수득지)
측백나무는 가지 늘어뜨리고 서리어 땅을 얻고 있으나
冥冥孤高多烈風(명명고고다열풍)
어둑하도록 높이 자라 사나운 바람 많이 받는구나
扶持自是神明力(부지자시신명력)
자신을 부지한 것은 곧 신명의 힘이요
正直元因造化功(정직원인조화공)
바르고 곧게 자란 것은 조물주의 공덕일 것이다
大廈如傾要梁棟(대하여경요량동)
만약 큰 집이 기울어져 대들보나 기둥감이 필요하여도
萬牛回首丘山重(만우회수구산중)
나무가 산처럼 무거워 만 마리 소도 고개 돌려 외면할 것이다
不露文章世已驚(불로문장세이경)
아름다운 무늬가 드러나지 않아도 세상사람들 이미 놀라
未辭剪伐誰能送(미사전벌수능송)
베기를 거절하지 않아는다 해도 누가 능히 운반해 갈 수 있으리
苦心未免容螻蟻(고심미면용루의)
개미에게 당하는 마음 속 괴로움 면하지 못하고
香葉終經宿鸞鳳(향엽종경숙란봉)
향기로운 나무 잎새는 난새나 봉황새의 잠자리도 되었을 것이다
志士幽人莫怨嗟(지사유인막원차)
뜻 있는 선비나 숨어사는 사람들은 원망하고 한탄하지 말아라
古來材大難爲用(고래재대난위용)
예부터 인재가 크면 쓰이기가 어려웠노라
● 江南逢李龜年 (강남에서 이구년을 만나다)/ 두보(杜甫, 712-770)
岐王宅裏尋常見(기왕택리심상견)
기왕의 저택에서 (당신을) 늘 보았고
崔九堂前幾度聞(최구당전기도문)
최구의 대청에서도 수없이 (당신의 이야기를) 들었소
正時江南好風景(정시강남호풍경)
바로 경치 좋은 이곳 강남에서,
落花時節又逢君(낙화시절우봉군)
꽃 지는 시절에 그대를 또 만났구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수(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3년 08월 25일.(금)〉, Daum, 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9월12일 화요일
가을 아침을 그려가는
아름다운 계절 이슬 방울이 곱게 만들어 가는 대자연의 위대함을 느끼며 이 좋은 계절에 해맑은 미소로 가을 빛 따사로움 속에 오늘도 마음은 풍성함으로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