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겨울, 그러니까 우리들 중 3때,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원서작성이 한창일 때였다. 완강한 담임 선생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천기계공고에 진학을 하겠다고 고집하던 나는 필살의 카드를 꺼내야만 했으니, 아버님께 선생님을 좀 설득해 달라는 것이었고 그런 며칠 뒤 나는 초등학교 졸업식 날을 제외하고 학교를 찾아오신 아버님을 처음 뵐 수가 있었는데 벌써 40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그 해 겨울 어둠이 깔릴 무렵 정문을 지나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교무실 옆 학교 숙직실로 향하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담임이셨던 이기천 선생님은 내가 원하는 대로 절대 원서를 써 줄 수 없다고 버티시다가 그 날 아버님과의 담판(?)으로 결국 나의 바램대로 원서를 써 주셨으니 그 일이 벌써 37년 전 이맘때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우리 모교 정문만 나서면 주변이 온통 아파트촌으로 변모했고 선생님들의 학교 근무 환경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지만 당시에는 선생님들이 논과 밭 그리고 산으로 둘러쌓인 모교인 능곡중학교의 밤을 지키는 숙직근무를 하셨었다. 이기천 선생님께서 숙직하신 날은 꽤 추웠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날 아버님은 선생님을 만나실 것을 고집하는 막내의 성화를 못 이겨 어둠이 깔릴 무렵 검정색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 숙직근무 중이신 선생님을 찾아 가셨는데, 나중에 아버님께 들어 알게 되었지만 돼지고기와 소주 두병이 든 봉지였다. 두 분의 이야기는 그 날 당직실에 피워놓은 연탄 난로를 사이에 두고 꽤 길게 이어졌던 것으로 나는 기억하는데 창문너머 슬며시 들여다 본 당직실 풍경은 소주잔과 삼겹살이 구워지는 사이로 술잔을 기울이시는 두 분의 모습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기천 선생님은 근무 태만이요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하하~
친구들도 잘 아는 것처럼 이기천 선생님 별명이 '똥닦어' 이실 만큼 자주 그곳을 긁어주셔야 했었으니 딱딱한 나무 의자에 학부형과 마주앉은 긴 시간이 꽤 고역이셨을 것 같다. 하긴 아버님도 어려운 자식의 담임 선생님과 마주 하고 있기가 쉽지는 않으셨을 것 같다. 더구나 선생님의 뜻을 거역하는 아들 입장을 대변하려고 찾아 가셨으니 말이다.
그런일이 있은 직후 선생님은 내가 우기는 대로 인천기계공고에 원서를 써 주셨고 나는 행인지 불행인지 원하던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기계과에 합격을 해 다니게 되었다.
대부분 능곡고등학교에 진학한 우리 친구들에게 혼자 인천으로 유학(?)을 떠난 것이 자랑질 할 '꺼리'가 아닌것은 분명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 이후로 인천에서 혼자 살게 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능곡에서 인천으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서울을 거쳐 인천으로 다녀야 했기 때문에 기차도 자주없던 시절이라 장거리 통학이 무척 어려워 1학년 말 무렵 결국 인천에서 하숙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주인 내외분을 잘 만난 덕에 하숙은 비교적 편안하고 공부하기도 좋았을 뿐 아니라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포함 너댓명이 같이 하숙하는 집이라 재미도 있었으니 당시 성룡의 '취권'이라는 영화는 어찌나 재미가 있던지 하숙집과 가까운 인천의 중앙극장에서 네번이나 하숙생들이 같이 보기도 했었는데 나중에는 자막을 안 보고도 홍콩 배우들의 대사를 알 수 있을 지경이 되었었다.
어쨌든, 공부도, 기술연마도, 노는 것도 만족할 만한 고교생활은 지금도 정말 멋진 추억이 아닐 수 없는데 기술을 배운다고 요즘말로 특성화 고등학교에 간 나는 고 3이 되었고 뒤늦게 대학시험을 보겠다고 허우적 거리게 되었는데, 뜻밖에 시험 하루 전 날 아버님의 편지가 하숙집으로 배달되어 왔다.
편지에서 아버님은 일등수석 하기를 바라셨지만 불효 막심한 나로서는 결코 그렇게 하지는 못하였고 겨우 대학에 진학 한 81년도 이후 벌써 30여 년의 시간이 흘러 며칠뒤면 아들 신우가 다시 대학입학 시험을 치루는 날을 앞두게 되었으니 무심한 세월은 참 빠르기만 하다.
아들 녀석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도 음악 밴드의 보컬을 하네, 즈그 학교 축구부 대표선수를 하네, 중학교때부터 했던 교내 방송반 PD를 하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통에 한동안 은근히 속도 상했었으니 무조건 막내 아들을 믿고 밀어 주셨던 지 할아버지 보다 아들에 대한 믿음이나 지원이 약한 아버지를 만난 것 같아 가끔 미안한 마음이 은근 들기도 한다.
지금은 아래 동영상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아들놈의 대학 입학시험격인 대학수학능력 시험일을 며칠 앞두고 오래 전 빛바랜 아버님의 편지를 다시 꺼내 보면서 벌써 세상을 떠나신 지 24년이나 지난 아버님 생각에 한동안 옛 생각이 나서 혼자 주절거려 본다.
중학교 3학년 시절 그리고 고교 진학 이후로도 지 친구들과 허구헌날 이러구 댕기던 놈이 지금은 고3 수험생
이기천 선생님과 졸업식장에서......
You fill up my senses 내 허전한 마음을 채워 주세요 Like a night in a forest 숲속에서 맞이하는 밤처럼 Like the mountains in springtime, 봄날의 포근한 들녁처럼 Like a walk in the rain 빗속을 거니는 산책처럼 Like a storm in the desert, 사막에서 불어는 폭풍우처럼 Like a sleepy blue ocean 고요히 잠든 파아란 바다처럼 You fill up my senses, come fill me again 당신은 내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지요 내게로 와서 다시 한번 Come let me love you,
내게로 와서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해줘요
Let me give my life to you 내 모든 인생을 당신게 바치겠어요 Let me drown in your laughter, 당신의 웃음 속에 푹 빠지고 Let me die in your arms 당신 품 안에서 이 세상을 마무리할거예요 Let me lay down beside you, 당신 곁에 누울 수 있게 해줘요 Let me always be with you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을거예요 Come let me love you, come love me again 내게로 와서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해줘요. 내게로 와서 다시 나를 사랑해 주세요
You fill up my senses 내 허전한 마음을 채워 주세요 Like a night in a forest 숲속에서 맞이하는 밤처럼 Like the mountains in springtime, 봄날의 포근한 들녁처럼 Like a walk in the rain 빗속을 거니는 산책처럼 Like a storm in the desert, 사막에서 불어는 폭풍우처럼 Like a sleepy blue ocean 고요히 잠든 파아란 바다처럼 You fill up my senses, come fill me again 당신은 내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지요 내게로 와서 다시 한번 Come let me love you,
와 저 편지의 아버님의 글체하며 저희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군요.감개무량합니다. 즤 아버지도 저 군에 있는동안 일주일이 멀다고 편지를 보내셨어요. 선임들이 늬 아버지 같은 분 없다고 했는데, 갑자기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과 추억이 되살아 나네요.
인천기공은 명문이었죠.당시엔 실업계 우대(?)정책이 있을때여서 였던지 실력있는 학생들이 특히나 공고쪽으로 많이 갔었던걸로 기억됩니다. 주렁저렁한 메달 하며 수석졸업 하신듯 ㅎ 능곡중도 잘 알지요 제 고향이 파주 법원읍인데 거기서 능곡종고 다니던 후배가 있었어요 경의선 열차를 타고 많이 다녀서 그쪽은 훠언 하답니다.
아버님의 편지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이장님은 분명 아버지의 믿음직스럽고 귀한 이쁜 아들이었음을 증명합니다. 나도 아버지 필체 떠올리며... 전 일본에서 원정산행이나 출장 중 가족에게 보내주신 후지산이니 여행지나 산 사진이 들어있는 엽서를 오래 간직하고 있었는데..^^ 밴드한다며 팔랑거리던 이장님 아들에게도 아빠란 존재는 든든한 내편이었음을..먼 훗날 그리워하며 추억할테지요. 아빠와 아들 엄마와 딸..부자 부녀 모녀 모자 우리 모두 그렇게 살며 사랑하며 추억하며..
감사합니다, 김광희선생님. 아버님은 속 깊고 너그러우신 분 맞습니다. 저는 중학교 은사님의 깊은 뜻을 한참 뒤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저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습니다. 그동안 훌륭하신 선생님들도 많이 만났지만 이 선생님을 통해서도 스승님 제자 사랑이 부모의 자식사랑 못잖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집은 화공과 집안입니다. 나와 11살차이 나는 큰 형님이 인천에 있는 대학 화공과를 나왔고 셋째형이 인천기계공고 화공과를 나왔죠. 저희 셋째 형님은 아마 68년도 입학생정도 되는데 당시 모든 중고등학생은 빡빡머리였는데 인천기계공고는 스포츠 머리를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완고하신 아버님께서 형님이 고등학교 들어가서 머리 빡빡 깎지 않고 기른다고 고무신짝으로 형님의 뺨을 때렸던 기억이 납니다. 나도 대학들어가서 머리길른다 하니 대학3학년때까지 빡빡 머리 하라고 해서 얼마나 사정하며 졸랐는지... 기계공고하시니 그 시절이 생각나네요.^^
동창 카페에 썼다가 스크랩 한 글인데, 감명깊게 읽어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수능 직 후 아들넘한테 이 글을 보여주니 자기 이야기가 자랑질 같다며 삭제 우짜고 하길래 이 넘은 아직도 공부보다 밴드, 운동 그런쪽을 더 좋아하는갑다 싶더군요. 써니님, 연말 정모에서 또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첫댓글 아련함에 잠시 눈시울 적셔봅니다.
이러한 편지 한쪽씩은 가지고 있어야 효자지요?ㅎ 전 받은적도 드린적도 기억이 가물이라...
요즘 같으면 이메일을 주셨을텐데....
암튼, 두공님은 편지를 주고받을 일이 없으셨겠지요.
공감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그시대로선 드문 멋진 아버지 이시군요~
아버지에대한 추억이 없는 저는 참 부럽습니다!
재능이 많은 아들~
본인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 곁에 든든히 서계셔주시고 계십니다!!
멋진 삼대~~~~~
아버님은 제가 약간 짖궂은 장난을 해도 화내거나 그런일이 없으셨지요.
마담올리브님은 아버님에 대한 추억이 없으실 정도로 일찍 잃으셨나보군요.
그래도 적극적이고 활기찬 성품은 닮으신게 아닐까 싶네요.
우리 아버지 편지본 기쁨이 듭니다...........
그렇시담 저도 깊이 감사 드립니다.
어제 누님 그리고 형수님들과 나누는 카톡방에 아버님 편지 올렸더니 부모님 생각나고 보고싶다며 그리워들 하고 난리......
최장호 음악선생님도 계셨겠군요...트럼펫 피스자국이 입술에 선명하신..저는 인천고라서 그선생님이 제은사님이셔요...인천공고로 가셨다고예기듣고 나서..미국으로이민가신선생님 3년전에 잠시오셨을때..선후배들과 인사드리러갔었읍니다....
약간 작은 키에 구렛나루 멋지게 기르신 멋쟁이 음악 선생님, 물론 기억나지요.
재카님도 그 선생님께 배우셨었군요.
알고보니 재카님과 동문 다름없네요.
주옥같은 게시..잘 봤습니다 전구씨...
이 조금 있다는 
근데 스크롤
생각없이 나오는대로 주절거리다 보니 글이 길어 졌습니다.
장문의 재미없는 글 읽어 주셔서 감솨~
와 저 편지의 아버님의 글체하며 저희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군요.감개무량합니다.
즤 아버지도 저 군에 있는동안 일주일이 멀다고 편지를 보내셨어요.
선임들이 늬 아버지 같은 분 없다고 했는데,
갑자기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과 추억이 되살아 나네요.
인천기공은 명문이었죠.당시엔 실업계 우대(?)정책이 있을때여서 였던지 실력있는 학생들이 특히나 공고쪽으로 많이 갔었던걸로 기억됩니다.
주렁저렁한 메달 하며 수석졸업 하신듯 ㅎ
능곡중도 잘 알지요 제 고향이 파주 법원읍인데 거기서 능곡종고 다니던 후배가 있었어요
경의선 열차를 타고 많이 다녀서 그쪽은 훠언 하답니다.
잊혀졌던
옛 기억을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
하마님과 동향 다름없군요.
파주 법원읍에 같이 하숙했던 강성유라는 제 고교 1년 선배(전기과)가 계셨지요.
암튼 반갑고 댓글도 고맙습니다.
아버님의 편지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이장님은 분명 아버지의 믿음직스럽고 귀한 이쁜 아들이었음을 증명합니다.
나도 아버지 필체 떠올리며...
전 일본에서 원정산행이나 출장 중 가족에게 보내주신 후지산이니 여행지나 산 사진이 들어있는 엽서를 오래 간직하고 있었는데..^^
밴드한다며 팔랑거리던 이장님 아들에게도 아빠란 존재는 든든한 내편이었음을..먼 훗날 그리워하며 추억할테지요.
아빠와 아들
엄마와 딸..부자 부녀 모녀 모자
우리 모두 그렇게 살며 사랑하며 추억하며..
아드님 원하는 대학에 철썩 붙기를 기원해요!!♥
@violet 간직했었는데 지금은 혹 분실?
자당간 거맙심미당, ㅎㅎ~
신우 진학은 잘 되리라 저도 믿고 있습니다.
@이장 울 어메가 가꼬 계실규..ㅎㅎ
지난번 친정 가 보니..농짝 아래 별별 거 다 숨겨놓으셨더라능..ㅋㅋ
서은이는 시방 몇학년? 중3?
@violet 아, 자당께서...그렇군요.
서은이는 고1이예요. ㅎㅎ~
이장님은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이었나봐요. 아버님은 속 깊고 너그러운 분이셨구요. 다음주 목요일이 수능날이지요? 주변에 여러집 수험생이 있네요.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김광희선생님. 아버님은 속 깊고 너그러우신 분 맞습니다.
저는 중학교 은사님의 깊은 뜻을 한참 뒤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저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습니다.
그동안 훌륭하신 선생님들도 많이 만났지만 이 선생님을 통해서도 스승님 제자 사랑이 부모의 자식사랑 못잖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그 편지를 지금까지 가지고 계시는 이장님이
정말 대단하세요.
어쩌다 긴 시간 보관이 되었을 뿐인걸요. 아버님의 흔적같아 보관하길 잘했구나 싶을때도 있기는 하네요.
막내가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이였으니 얼마나 이쁘셨겠어요 믿음직스런 막둥이 아버님 편지를 지금까지 간직하신 효자아들 맏네요
효자는 잘 모르겠지만 전 막내라서 그런지 아버님 살아 계실 적에 부모님과 잔정도 많고 아버님께 짓궂은 장난을 하곤 했었지요.
신우 원하는 대학 철석 붙도록 기원드립니다
그럴려면 눈높이를 많이 낮춰야 할 것 같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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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간직하시었네. 이장님 마음이 곱소이다.
아버님은 물론 선생님 속도 많이 썩이고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신 뒤 이렇게 후회하는 아들인걸요.
그런데 선수는후반전님, 반갑습니다.
송년회
아버지께서 보내신것 같은 마음이 드는군요...가씀이 따스해 집니다^^아드님~`합격기원 합니다
시간을 보니 자작님 작품 하시다가 카페 방문하셨던 듯 하군요. 동창회에 올린 글을 스크랩 했습니다만 제 글로 부모님과의 추억을 반추할 수 있으셨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ㅎㅎ 응원의 말씀도 감사드립니다.
우리 집은 화공과 집안입니다.
나와 11살차이 나는 큰 형님이 인천에 있는 대학 화공과를 나왔고
셋째형이 인천기계공고 화공과를 나왔죠.
저희 셋째 형님은 아마 68년도 입학생정도 되는데
당시 모든 중고등학생은 빡빡머리였는데
인천기계공고는 스포츠 머리를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완고하신 아버님께서
형님이 고등학교 들어가서 머리 빡빡 깎지 않고 기른다고
고무신짝으로 형님의 뺨을 때렸던 기억이 납니다.
나도 대학들어가서 머리길른다 하니 대학3학년때까지 빡빡 머리 하라고 해서
얼마나 사정하며 졸랐는지...
기계공고하시니 그 시절이 생각나네요.^^
인천(기계)공고 선배님도 계시면 동문 집안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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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반갑습니다. 선배님께도 안부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주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따뜻하고 훌륭한 아버님도 두셨구요.. 아들 귀엽고 소질 다분한데요 뭐....
동창 카페에 썼다가 스크랩 한 글인데, 감명깊게 읽어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수능 직 후 아들넘한테 이 글을 보여주니 자기 이야기가 자랑질 같다며 삭제 우짜고 하길래 이 넘은 아직도 공부보다 밴드, 운동 그런쪽을 더 좋아하는갑다 싶더군요.
써니님, 연말 정모에서 또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발음그대로 적으시는 글하며 한문섞으시구 또 끝에 꼭 끝이란 안쓰셔도 될 정겨운 글자
울 아버지 편지를 보는듯 ㅎㅎ
그아버지에 그 아들 ㅋ
발음 그대로 쓰는것은 아버님 세대의 맞춤법이지요.
마치 '할께요' 하면 '할게요'라 배우는 요즘 애들이 발음대로 쓴다고 하는 격이겠지요.
암튼 오래 전 글에도 관심 주셔서 반갑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