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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경제의 현주소]②빚의 덫에 걸린 신불자 | ||
직장으로 집으로 "빚갚아라" 인출기서 월급 찾을날은 언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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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신용불량자로 등록도 되지 않았는데 추심회사 직원이 집까지 찾아와 애들 앞에서 윽박지르고 병원에 수시로 독촉 전화를 해서 일도 제대로 못하게 해요. 내 월급을 현금 인출기에서 빼낼 수 있는 날이 오기나 하려는지…. (33세 여성·간호사)”
24일 오후 서울 명동 센트로빌딩 6층. 신용회복지원위원회 접수 창구는 개인워크아웃제도를 통해 ‘신용불량자’라는 주홍글씨를 지워버리기 위한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진한 화장기의 20대 여성, 아이를 들쳐업거나 배가 불룩한 여성, 넥타이를 맨 직장인, 부부나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 신불자 스스로도 “내 주변에 이렇게 신불자가 많은 줄 미처 몰랐다”고 할 정도였다.
이상수 상담팀장은 “100명 정도는 상담 희망일 예약을 받아 다른 날로 넘기는데도 접수·상담 직원 18명이 하루 평균 500여명을 상대하고 있다”며 “특히 배드뱅크 출범 이후 선불금(3%)에 대한 부담 탓인지 이곳을 찾는 이가 더욱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신불자는 지난해 4월 300만명을 넘어섰다. 세상은 시끄러워졌고 정부는 취업알선과 배드뱅크 등 각종 구제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꼭 1년이 흐른 지난 3월 신불자수는 줄기는커녕 392만명으로 ‘신불자 400만 시대’ 초읽기에 들어섰다.
이는 1월 말 기준 경제활동인구 2279만명의 17.2%로 6명 중 1명꼴로 ‘신불자’ 낙인이 찍혀 있는 셈. 특히 우리 경제를 짊어질 20∼30대가 전체의 절반 이상(50.7%)을 차지하는 것도 사회불안 요인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에서 ‘신용불량자’를 입력하면 300여개가 뜬다. 회원수가 6만명이 넘는 곳도 있다. 심지어는 ‘예비 신불자 모임’도 있다. ‘다음’ 관계자는 “지난해 이맘때만 하더라도 신불자 관련 카페는 100여개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신용회복위에서 만난 신불자들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담화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위기를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 데 대해 “이렇게 신불자들이 넘쳐나는 게 엄살이냐”고 따져 물었다. 일부는 ‘육두문자’를 쏟아내거나 눈물샘이 고장난 듯 울음도 터뜨렸다.
채권추심회사인 자산관리공사에서 정년 퇴직하고 지난 1월부터 신용회복위에서 상담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국형만(전 조흥은행 지점장)씨는 “신불자 80% 정도가 월 소득이 70만∼120만원이어서 생활비를 쓰고 나면 사실상 채무 변제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며 “결국 소득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빚을 갚을 길이 없다”고 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최공필 연구위원은 “신불자의 ‘신용불감증’, 금융회사의 ‘죽기살기식 대출 경쟁’, 그리고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이 모두 신불자 양산의 주범”이라며 “개인워크아웃제도를 강화하고 일자리 창출을 통한 변제 능력 향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04.05.24 (월) 18:22 황현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