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초반, 강화 선원초로 초임 발령을 받아 시외버스로 통근하고 있었습니다.
직행버스를 타고 강화읍까지 간 다음 다시 버스 타고 선원면까지 가는 거의 두 시간 걸리는 힘든 길이었지요.
1979년 계엄이 발표되고서는 매일매일이 공포의 날이었죠.
강화에서 인천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검문이 있었는데....
군인들이 총 들고 올라와 버스에 탄 사람들을 하나하나 노려보면 버스 승객들은 모두 죽을죄를 진 사람처럼 거북이 목을 하고, 눈을 내리깔고 숨도 못 쉬었지요.
"너, 내려!"
군인의 손가락질은 주로 허름한 차림새의 젊은 남자들이었죠. 그 시외버스에 있던 남자들은 대부분 강화나 김포에서 농사 짓거나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어서 차림새는 시골스러웠죠.
누군가 끌려내려가고 버스가 출발하면 남은 사람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죠.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럴 때마다, 저는 창밖 풍경을 끝까지 보았어요. 아무리 봐도, 누가 봐도 저 사람은 죄가 없는데...
마구잡이 발길질을 당하며 끌려가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때 저는 부끄럽게도...
고백합니다.
다음 해 결혼하려고 했는데 결혼 못하면 어떡하지? 이랬습니다. 참 한심한 여자였지요.
스물 세살, 저를 떠올리면 그저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런데 어제 늦은 저녁,
앙상블 연습 마치고 기분좋게 집에 돌아와 맞닥뜨린 계엄령.
숨도 못 쉬고 벌벌 떨었던 군인 세상이 떠올라, 계엄선포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되어 밤새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점점 나은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거꾸로 가는 거지요?
첫댓글 잘 살려고 발버둥치는 서민들 머리 위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네요. 여든 야든 정치인들은 신물이 납니다.
국민들이 제일 성실하고 위대한 나라^^
저는 폰으로 인터넷 검색하다
계엄 글자를 보고도 믿질 않았습니다
오타인줄 알았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싱숭생숭하여 일이 손에 안 잡히네요.
@바람숲 저도 밤새 잠이 안 오더라고요
분해서요
어떻게 이룬 민주화이고 선진국인데😭
어제 그래도 국회의원들이 신속하게 일을 처리해서 다행이었습니다.
어제 잠깐 만난 친구가 있는데 부모님이 광주분들이시라고
계엄령 뉴스에 불안해하고 진정을 못하셨대요.
그때 광주 사람들.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그러니까요. 저는 친한 학부모가 입수한 광주 사태에 관한 비디오를 몰래 봤는데 정말 끔찍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때 총 든 군인들이 왔다갔다하고 집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 꼭꼭 숨어 있었지요. 전화도 안 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대학때 최루탄에 찌들어살면서 뛰어다니고 5.18책도 썼는데.
거꾸로 가는 느낌에 황당, 씁쓸, 어처구니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