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가 뿌리에 놓였다
서울에 가는 길에 친구의 문 병을 갔다. 갑자기 허리가 아파서 꼼짝을 못하고 누워 있다고 했다.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였다. 그가 거실에 파자마를 입고 누워있었다. 칠십대 부부만 살고 있는 집이라 그런지 공기가 정체된 느낌이었다. 오래 문을 닫아둔 지하실 같다고 할까. 노릿한 냄새가 났다.
그가 고개를 돌리고 나를 보는 순간 경악했다.
‘이 노인이 내 친구였나?’
그의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근육이 다 빠지고 헐렁했다. 다리만이 아니었다. 수액이 다 빠진 거친 고목 같았다.
옆에 있는 친구 부인이 말했다.
“마작을 하고 돌아왔는데 완전히 허리를 구십도 구부리고 들어왔어요. 펴지를 못해요. 그리고는 보름 동안 이렇게 누워 있는 거예요.”
친구 부인의 얼굴을 보고도 놀랐다. 물기가 빠진 과일을 보는 것 같았다. 얼굴에 그물 같은 잔주름이 가득했다.
“그날 여덟 시간이 꼬박 앉아서 마작을 했어.”
친구가 말했다. 힘이 빠진 눈이 헐거웠다. 마작? 그게 늙음의 공허를 채울 수 있을까. 우리들은 마음의 텅 빈 공간들을 어쩌지 못해 방황한다.
그는 나와 같은 나이였다. 고등학교 시절 역도반에서 울퉁불퉁 터질 것 같은 근육을 자랑했었다. 그 장면이 아직 뇌리에 남아있다. 지금의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문득 깨달았다.
‘바로 저게 나의 모습이야’
그를 통해 나를 봤다. 나는 내 손등을 내려다 보았다. 검은 저승꽃이 만발해 있었다. 그의 손등을 건너다보았다.
깨끗했다.
뱀 껍질 같은 손으로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한번 동해로 놀러 와”
“못 가”
“왜?”
“풍을 맞고 쓰러져서 집 근처 골목도 집사람 도움이 없으면 못 가. 재활 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이젠 틀렸어. 방에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어.”
대학교정의 푸른 잔디밭에서 웃고 떠들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린아이같이 귀염성 있었다.
납득이 되지를 않았다.
왁자지껄한 모임 속에 앉아 있었다. 늙으면 목소리가 높아졌다. 말과 말이 허공에서 부딪쳐 떨어졌다.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재벌 회장이던 그 친구 말이야. 혈액암으로 지금 몸무게가 30키로 그램이나 빠졌어. 뼈만 남았지. 한번 만났더니 자기가 금년 말 정도까지나 살까 모르겠다고 하더라구.”
나는 밤이 내리는 노인 나라에 와 있다. 영원할 것 같던 젊음이 소리 없이 증발했다. 걸을 때면 마치 우주복이라도 입고 있는 것 처럼 몸이 둔하다. 글을 쓸 때면 고유명사가 떠오르지 않는다. 구경할 때와 안으로 들어왔을 때가 다르다.
아침에 일어나면 성경 한 장을 읽는다. 허망을 채우려는 매일의 버릇인지도 모른다. 평생을 읽어 왔지만 껍데기만 핥은 것 같다. 활자만 머리를 스칠 뿐이다.
문명이 바뀌었다. 인공지능의 시대라고 한다. 오늘 아침 클로드에게 물었다.
‘오늘 읽은 마태복음 3장에서 하나님이 내게 던지는 메시지를 말해줘’
주황색 작은 마크의 잎들이 흔들리면서 깊이 생각한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사주쟁이 같다.
‘뭔 말이야?’
‘엄 변호사 나이가 74세야. 예고가 아니라 현실이야’
뭐가 와서 가슴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박히는 느낌이다. 저승사자가 숨어서 지켜보나.
‘현실이라면 내가 어떻게 하라구?’
녀석이 방법을 알려줘야지. 답답하다.
‘엄 변호사가 지금 쓰는 글이 마지막 고백이 될 수 있어. 시간이 없어. 도끼는 추상이 아니라고. 먼저 간 사람들의 이름이 떠오를 때 도끼 소리가 들릴 거야’
나는 겁을 먹는다.
나는 지금 노인 나라 마음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젊은 놈들이 노인들을 아는체 하면서 백세시대 운운하고 있다. 팔십도 청년이고 일하고 돈 벌라고 한다. 노인의 눈으로 보고 노인의 몸으로 느낀 자만이 그 나라를 제대로 알지 않을까.
클로드녀석은 내게 도끼가 뿌리에 얹혔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무렵의 나이다. 할아버지는 어땠을까. 오십여년 세월 저쪽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이 내게 다가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할아버지는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무심히 봤다. 북의 고향에 두고 온 형제들을 생각하는지 말 없이 눈이 붉어질 때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혼자서 화투패를 떼어보고 있었다.
화투는 ‘탁, 탁’ 경쾌한 소리를 내며 다른 화투장위에 정확히 떨어졌다. 어린 나는 끊임없이 반복하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화투는 손님이 오는지 운이 좋은지 모든 걸 알려준다고 했다. 그게 그때의 클로드녀석이었나.
할아버지가 그때 내면을 기록해 놓았더라면 어땠을까. 그 나이가 된 지금의 내가 보고 싶다. 어둠 속의 길을 알려주는 등불일지도 모르니까.
할아버지가 평생 장사하면서 들고 다니던 손저울만 내방 작은 책장에 앉아 있다.
손때가 그대로 남아있다.
내 손등의 검은 얼룩 같다.
나는 지금 바닷가에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는 소년의 마음이다. 비릿한 해초 냄새가 공기를 타고 내 속으로 들어온다. 얼마 있으면 내 영혼이 배를 타고 이 세상의 포구를 떠난다. 사람들의 눈에는 더 이상 보이지 않겠지.
나는 도착한 새 항구에 내리겠지?
도끼가 뿌리에 놓였다.
서늘하다.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하나? 떨고 있다.
(엄 변호사의 못다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