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51 다시 가고 싶은 한여름 여행
緖
여름철이 오면 언제나 40여 년 전에 경운기로 전국 여행한 일이 생각이나, 여름날이 되면 다시 그 옛날 그 길로 다시 가고 싶었다. 그러나 40년이 지나왔지만 그 여행길을 갈 수 없었다.
올해는 화물차도 새로 구입해서 에어컨도 시원하게 잘 나와, 올 8월은 경운기 여행길을 꼭 가보자고 작정을 했는데, 또 전년도와 똑같이 공상만 하다가 여름을 보내야만 하니, 이게 사람이 사는 것인지, 가면 갈수록 기력은 점점 떨어지는데...
40년 전 그 여행길을 가지 못하는 근본 요인은 나의 환경 탓인 것이다. 이런 주위 환경을 타파해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다.
내년에는 다시 갈 수 있을까 그림을 그려보지만 내년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세상 사람들아, 이 어리버리한 해외여행 경험도 없는 촌사람 같이 살지 말고 국내 여행이나 해외여행을 하면서 살아가시라. 이게 좋은 인생사가 아닐까.
本
1. 나의 경운기 여행 동기
특별한 동기가 없고 그냥 경운기로 가보고 싶었다. 당시 나에게 경운기 이외 다른 교통수단이 없었으니까, 여행 코스도 정해져 있지 않고, 경운기와 경유기름통과 지도 한 장이 여행 준비물 전부였다.
2. 여행경과지
청도 → 밀양 → 마산 → 진주 → 하동 → 구례 → 남원 → 무주구천동 → 라제통문 → 김천 → 칠곡 → 대구 → 경산 → 청도
3. 여행 허가는
당시 노모가 계셨는데 경운기로 여행가려 하나 흔쾌히 허락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외동아들이 경운기로 여행가는 것을 어떻게 허용 했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아들인 나를 든든하게 믿으니 뭔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허락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당시에 가지마라 하든지, 걱정을 했으면 포기 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마누라가 있는데 이 마누라가 흔쾌히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낑낑될 것은 뻔하다. 그러니 여름 여행은 더 어렵고, 겨울철 농한기에도 어렵다. 장거리 여행은 여름철이 최적이다.
4. 당시 여행하면서 대충 기억에 남는 것들
밀양지역을 지니는데 목이 말라 찬물을 마시니 갈증이 더 심하고 경운기 위에 있는 더운 물을 마시니 갈증이 적어지더라. 경운기 추래라 위가 철판이라 자연이 뜨거운 물이 되더라.
여행지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밤에 잠을 자는 것인데, 이 잠자리가 문제로, 여행하기 전날 밤에 시골집 마당에서 경운기 짐칸에 천막을 치고 침대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밤잠을 자봤다. 그러니 잘 만 하더라. 집이라서 그런지 별문제가 없더라.
여행의 첫 밤은 진주 촉석루 다리 밑에서 잠자리를 청했는데 경운기를 주차할 만한 자리가 마땅하지 않더라. 이 때가 밤 11시이다.
진주서 하동으로 넘어 가는데 비포장 길이며 산 중턱에 학교가 있었는데 학교에 들어가 쉴 틈을 찾는데 선생님 같은 분이 나오시던데 천막에 전국유람(全國遊覽)이라고 한자로 써 붙였는데 읽으시는 것을 보고 선생님으로 생각했다. 비포장 산길 옆 학교라 지금은 폐교되었겠지.
밤 10시에 이름 모를 고개를 넘어가는데, 이것도 비포장 길이고, 깊 옆에는 대나무숲이 있었는데 달이 하늘에 떠있고 어시시한 느낌이 들더라, 잠을 잘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데 인가(人家)를 찾을 수도 없어서 이 고개를 넘어가면 고개 아래에 인가(人家)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비포장 길을 계속 올라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짜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여행길도 모르고 가다가 한 밤에 고개를 넘었다. 여행 후 들은 예기인데 이고개가 전설의 고개라 하더라.
어딘지 모르겠는데 다리를 통과하는데 다리 아래서 아가씨 2명이 목욕을 하는데 다리 위에서 한 참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중에 이 아가씨들이 다리 밑으로 숨더라, 이 근처가 박사 마을인지 아리송하다.
하동에 도착.
하동 숲에서 일박을 하고 섬진강 강변이 모래밭이고 물이 아주 맑더라, 섬진강을 건너면 전라도 땅이라, 이 때 전라도 땅을 밟아보지 않으면 언제 밟겠느냐며 섬진교 다리를 건너 잠시 전라도 땅에 들렀다가 다시 하동으로 돌아와 섬진강을 따라 쭉 올라와 구례를 거쳐 남원 땅에 까지 갔다. 경운기로 딜딜거리면서 섬진강을 따라 올라 가니 경치가 참 좋더라.
광한루 앞 강둑에 경운기를 세우고 일박을 하고 광한루를 구경했다. 여기가 춘향이 고향인지 모르지만 가다가 가다가 여기까지 갔다.
무주구천동에 들어갔다.
무주구천동에 들어가나 경찰이 경운기를 세우는데, 경운기 추래라에 덜 수시 보는데, 기름통 밖에 없으니 통과를 시키더라. 구천동을 길 따라 계속 가니 약 200m 간격으로 경찰이 서 있는데 참으로 이상 했다. 나중에 들으니, 내가 무주구천동 가는 그 다음날 전두환대통령이 무주구천동에 행사관계로 참석을 하는 것이였다.
무주구천동 개울가에 일박을 하고 말만 들은 나제통문을 통과해서 김천으로 왔다.
김천에서는 고교동기생 집에서 일박을 했다. 이 친구는 공무원으로 당시에 김천에서 근무했다. 친구 마누라가 해주는 아침밥을 먹고 칠곡으로 해서 신동고개를 지나 대구를 거쳐 경산으로 오는데 경운기 운전에는 전국을 여행할 만큼 능숙하지만 어떻게 대구 시내를 통과하는가, 이게 큰 걱정거리였다. 이 대도시에 쉴 새 없이 차는 달리는데,
대구시내 길은 내가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대구역을 기준으로 동쪽 편은 지리를 잘 아는데 서쪽 편은 잘 모른다. 그러니 칠곡에서 대구역까지 지리를 전혀 모른다. 또 대구 시내를 관통하지 않고는 길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무모하게 대구역 앞으로 진격을 하는 것이다. 당시에 겁 대가리도 없이 대구역 앞을 틸틸거리면서 통과해 동인로타리를 거치고 경대 대학병원을 지나 삼덕로타리를 지나서 수성교에 오니 살았다 싶더라. 수성교를 거쳐 경산 영대캠퍼스에 도착했다.
영대 중앙도서관 앞에 경운기를 주차하고 신문 열람대에 가니 공부하러 도서관에 온 동기가 있었는데 내가 경운기 여행하고 온 것을 알고 100원짜리 커피 한잔 하자고 했다. 내가 기억하기론 커피 값이 없다며서, 커피한잔 하지 않으면 훗날 얼마나 말할 것인가를 말 했는데, 당시 나로서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고, 가슴에 담지도 않았다. 다만 생각을 하는 학우이다는 생각이 들더라, 커피값은 아무나 내면 되지 하며, 내가 낸 것으로 기억을 한다. 세월이 40여년이 지났지만 이 동기 말은 기억나지만, 만나 보지 못한지가 30여년이 넘었다.
여름방학이라 캠퍼스에 학생은 없고 조용하다. 그러니 중앙도서관 앞에 경운기를 주차했지,. 안거라마 넘싸 시러워서 우째 주차했겠노.
집으로 돌아와 대청에 누웠는데 일주일 동안 일어나지를 못했다. 얼굴은 새까맣고 몸은 축 늘어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 후 지나니 기력이 회복되더라. 빠른 회복을 위해 꿀물을 퍼마셨다.
結
혼자 경운기를 몰고 6박7일 동안 방랑끼가 있는 내가 경운기 여행 후 지금까지 뭘 했나.
경운기로 전국 여행했는 방랑끼가 있는 정도였으면 지금쯤 전세계 곳곳을 여행했어야 할 것인데,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국내 여행도 못가보고 청도 시장 뒷골목에 처박혀 있는 나라는 존재는 뭔가.
국내 중에서 가고 싶은 곳은 청와대와 전쟁기념관인데, 서울에 올라갈 기회가 있어도 이곳을 들러 볼 기회가 없더라.
나는 TV에 걸어서 세계속으로 같은 세계여행프로를 즐겨본다. 해외여행은 못가지만 TV로 해외여행을 한다. 시골이라도 해외여행 가보지 않는 사람이 없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나라는 존재는 참으로 특이해서 방에 처박혀 TV로 해외여행을 한다.
그래서 실현 가능한 여행을 해보자.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내가 살고 있는 청도군내에 동내마다 가보는 것이다. 내가 청도 태생이지만 가보지 않았는 동네가 많이 있다. 특히 청도 산서지역, 그러니까 청도중심에서 서쪽은 가보지 않는 동네가 있다. 이런 곳이라도 가보자. 청도는 산악지대라 골짝 골짝이 가볼만 한 곳이 많다. 청도 동쪽지역은 지방선거를 4회 출마해서 한 두 번은 가봤다. 당시는 선거용으로 가봤는 것이고 여행용은 아니었다.
나의 여행길을 막는 악조건들은 격파해야 하는데 나는 이런 격파술이 확실히 부족하고, 공상하는 분야가 있다면 무모하게 실천에 옮겨야 하는데 이게 부족하다.
생각하건데, 마누라가 나의 경운기 여행길을 같이 한번 가보자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화물차로 간다면 1박 2일이면 충분히 다녀올 거리가 아닌가. 그런데 이게 합치가 안 된다는 것이다. 고로 우울하다.
경운기 기본 푸리가 4인치인데 이것을 8인치로 교체해서 달렸는데 속도는 보통 경운기보다 3배 이상 빠르지만 위험하다. 그렇지만 젊은 방랑끼에 위험을 모르고 무모하게 즐거운 여행을 했다.
아!.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은 동경, 내일을 북경, 다음은 뉴욕, 런던, 파리, 로마 등등. 여행길은 꿈속에나 나오겠지. 나의 해외여행은 영원히 요원하고, 나의 뇌리 속에는 희미하게 사라져간다.
당시 경운여행을 허락해준 엄마에게 40여년 만에 감사의 말을 전한다.
2024. 8. 24.
무기력한 청도 kimsunbee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