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출일기 쓸 짬이 안나 고민중인데, 홍보부에서 전화가 와서 숙제까지 주는군요. 다음달 MBC가이드에 '김정화'가 표지 모델인데, 커버스토리 좀 써줄 수 없느냐구... 정화의 바쁜 일정때문에 따로 인터뷰할 시간 뽑기가 힘들다네요. 그래서 이번에는 연출가가 쓴 커버스토리가 나가게되었습니다. 이하는 그 기사초고로 제가 쓴 글입니다. 연출일기는 곧 다시 시간을 내서 쓰겠습니다. 꾸벅.
내가 만난 배우 '김정화'
내가 '김정화'라는 연기자를 만난 것은 2001년 6월 청춘 시트콤 '뉴 논스톱'의 신인 오디션을 통해서였다. 프로그램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여자 신인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할 당시 모 전자회사의 노트북 광고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마이클 잭슨과 숀 코네리를 닮은 사람을 내세운 광고 컨셉이 재미있었는데, 그 컨셉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처음 보는 얼굴임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여자 모델이었다.
'진짜 여고생 맞아?’논스톱 회의실에 들어선 김정화를 보고 작가들이 한 말이다. 시원시원한 눈매, 서글서글한 미소, 이국적인 마스크까지... 선이 굵은 그녀의 외모보다 더 돋보인 것은 오디션 내내 보여준 그녀의 편안한 캐릭터였다. 이쁜 척 내숭을 떨기보다는 털털하고 솔직하게 질문을 받아넘기는 그녀의 캐릭터에 작가들은 바로 매료되었다. 시트콤이라는 특성상, 우리는 이쁜 척 애교만 부리는 '공주' 스타일 연기자는 사양하는 편이다. (때론 코미디를 위해 분장을 하거나 우스운 꼴로 망가지기도 해야 하는데, 공주님을 모시고 일하기는... 힘들겠죠?) 우리가 만난 자연인 김정화는 공주형 연기지망생이 아니라, 평소 논스톱 시청을 즐기는 털털한 아이였다. 스무 명 남짓 여자 신인 연기자 오디션을 진행해오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뉴 논스톱' 작가진과 연출진, '김정화'라는 카드에 쉽게 의견의 만장일치를 이룬다.
'진짜 신인 맞아?' 하루에 일주일치 내용을 녹화해야 하는 바쁜 스케쥴 속에서 청춘 시트콤 녹화장의 하루는 긴장의 연속이다. 비록 카메라 앞이긴 하지만, 그 카메라 렌즈 뒤에 수백만 시청자의 시선이 있음을 알기에 대사 하나, 표정 하나에 어찌 소홀할 수 있으랴. 막상 카메라 앞에서면 긴장으로 표정이 얼고, 밤새 외워둔 대사까지 까맣게 잊어버리는 게 신인다운 미덕(?)인데, 정화는 그 첫 녹화에서 정화는 단 한번의 NG도 내지 않아, 제작진의 기대를 보기 좋게 저버렸다. 대사 토씨 하나 놓치지 않는 신인답지 않은 치밀함보다 더 놀라운 것은 양동근, 이민우, 이재은 같이 평균 경력 10년 이상의 쟁쟁한 아역 출신 연기자들 틈에서도 기죽지 않고 선배들의 장난기 어린 애드립을 천연덕스레 맞받아치는 배짱이었다. 신인을 캐스팅하고 항상 첫 녹화에서 조마조마하던 연출가로서 정화의 활약은 고맙기까지 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작가들의 만장일치로 뽑혀, 연출가도 놀라게 한 앙팡 테리블 김정화, 이제 그녀는 논스톱의 뉴 페이스로서 인기가도를 질주할 것인가? 미안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세상 일에 다 때가 있듯이, 한 프로그램에서 인물이 뜨는 데도 때가 있나보다. 논스톱 제작진이 비장의 히든 카드로 뽑은 김정화보다 오히려 더 빨리 스타덤에 오른 이는 이재은의 갑작스런 대타로 들어와 양동근과 짝지어진 장나라였으니까. 정화보다 뒤늦게 논스톱에 합류한 장나라, 실수연발 캐릭터로 세간의 관심을 끌더니, 걸출한 연기자 양동근을 파트너로 만나 구리구리를 향한 어리버리한 짝사랑으로 장나라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반면, 술에 취해 '미안해 미안해'를 연발하거나 남자 애들의 등짝을 후려갈기는 터프걸 정화의 캐릭터는 나라에 비해 상대적인 빈곤감을 보였다.
'돋보이는 미모가 정화에겐 오히려 약점?' 지난 봄, 연예계 최고의 신데렐라로 화제를 일으킨 이는 단연 장나라다. '뉴 논스톱'에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해서 가수로, 연기자로, MC로 방송계를 평정한 만능 엔터테이너 장나라. 비슷한 시기에 논스톱 출연을 시작한 정화는 신인답지 않은 호연을 보여주었음에도 나라의 그늘에 가리워질 수 밖에 없었다. 김정화의 인기질주가 잠시 주춤한 듯 하자, 여기저기서 훈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트콤에 나오는 캐릭터는 좀 빈 구석이 있어야 호감이 가는데 정화의 외모는 빈틈이 없다. 정화의 돋보이는 미모가 오히려 그녀의 약점아냐?' 어라? 언뜻 모순같이 들리는 말이지만, 빈틈이 많아 보이는(?) 양동근과 박경림이 실제 논스톱 인기의 쌍두마차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이즈음 '논스톱에서 김정화는 미스 캐스팅 아닌가?' 하는 말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미스 메이킹은 있어도 미스 캐스팅은 없다.' 논스톱 팀은 신인을 많이 기용하는 편이다. '뉴논스톱' 시절, 조인성, 장나라부터 '논스톱 3'의 김정화, 정다빈, 조한선까지... 스타급 연기자 모셔오기 전쟁이 한창인 방송가에서, 과감한 신인 캐스팅으로 승부하는 논스톱 팀의 소신을 주위에서는 높이사는 것 같은데... 실상은 아픔이 있다. 스타 캐스팅, 우리도 하고 싶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능력이 안돼서... 그리고 어느 스타가 멋있는 드라마 연기하고 싶지, 굳이 시트콤 나와서 망가지려 하겠는가? 신인 기용, 소신이 아니라 현실 적응이다. 신인을 데려와 스타로 키우는 데 있어 논스톱 팀의 노하우, '캐스팅보다 중요한 것은 메이킹이다'. 올 봄, 김정화라는 연기자가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한 것은 그녀에게 맞는 역할을 못 만든 논스톱 팀의 역량부족탓이지, 연기자의 자질탓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항상 이성에 별 관심없이 터프하고 보이쉬한 캐릭터를 연기한 김정화, 그런 그녀가 늘 곁에서 쿨한 친구로 지내던 이에게서 사랑을 느낀다? 이런 가정에서 나온 것이 올 여름 논스톱의 메인 테마가 된 김정화-정태우-이진의 삼각관계였다. 주축 인물들간의 삼각관계는 시트콤에서 약간 금기시되던 소재였으나, 이들의 삼각관계는 기존 멤버들이 빠져나간 후 위기에 빠진 '논스톱 3'의 부활을 이끄는 견인차가 되었다.
이제 논스톱을 통해 김정화를 만난지도 1년이 넘었다. 그동안 정화는 연기자로서의 자리매김을 탄탄히 하게 되었고, 영화 '데우스 마키나'의 타이틀 롤을 맡아 촬영중인 한편, 출연을 확정한 드라마도 몇 편 된다. 요즘 그녀의 다양한 활동 중 관심을 끄는 것은 MBC FM ' ' DJ이다. 2시간 편성이라는 라디오의 편성틀까지 깨며 역대 최연소 DJ로 자신의 프로를 진행하는 김정화. 역시 라디오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그녀의 털털하고 솔직한 진행매너이다. 라디오의 남태정 PD는 '시트콤 스타로서 10대 틴에이저에 주로 어필할 것이라던 예상을 깨고, 성숙하고 편안한 진행으로 10대에서 20대, 30대까지 청취자 층이 넓고 고른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한다. 역시 김정화의 털털한 인간미는 사람냄새 물씬나는 라디오라는 매체에서 더 돋보이나 보다.
'자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떤 사람인가?'이라는 구태의연한 질문을 던지자,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요? 저란 사람은 그냥... 백지 같애요.' 하는 기대밖의 대답을 한다. 하긴 열여덟 어린 나이에 연기자로 데뷔해 그냥 TV화면에서 만나던 시트콤 주인공들과 함께 있다는 것에 신기해하던 그녀이니, 신문지상에서 부르는 슈퍼 루키니 방송가 샛별이니 하는 표현보다는 아직 자신을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는 것이 그녀의 솔직한 심정일 수 있겠다. CF 촬영에, 영화 촬영에, 시트콤 녹화까지 일주일에 며칠씩 밤을 새는 그녀. 연기자로 활동하며 제일 아쉬운 점은 또래 친구들과 더 자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란다. 라디오 사연을 읽을 때도 제일 아쉬운 점은 또래들이 해보는 고민과 경험을 바쁜 일과로 놓치고 산다는 점. 그런 그녀에게 '10년 후, 자신의 모습은?'하고 묻자. '평범한 주부로 단란한 가정을 꾸려 살며, 젊어서 못해본 것들을 해보고 사는 것.'이란다. 글쎄... 시트콤 연기자로 데뷔해, 드라마 영화로 영역을 넓히고, 라디오 DJ로서의 입지를 굳혀가는 김정화. 연출가의 눈에는 대형 MC에 대형 연기자로 성장해, 더 바빠질 미래가 그려지는데... 평범한 주부로 조용히 살고싶다라... 그녀의 야심찬(?) 소망이 이루어질 지는 역시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