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날들의 소묘
글/김덕길
“바람도 힘들다 쉬어가는/구름도 힘들다 걸터앉는//소백산 죽령/풋사과 주렁진 과수원에서/ 그녀에게 말했습니다//자 눈 감아//눈을 뜨니/사과가 붉어졌습니다./(자작시/입맞춤)”
풋풋한 풀 냄새가 나의 마음을 풀풀 홀리던 그 날, 과수원집 딸인 그녀를 만나러 멀리 풍기 행 열차를 탄 것은 결코 풀 냄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성남 종합시장 다 돌아 눈에 착착 감기는 그야말로 묵빛이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양복을 난생처음 사 입고 청량리역을 출발하는 풍기 행 무궁화열차를 탔을 때는 설레는 마음보다 장인 장모님이 되실 어르신들에게 어떻게 인사를 올려야 할런지 그것이 더 고민이었습니다.
바람을 가르며 열차가 풍기역에 도착했을 때 죽령의 산그늘은 이미 마을로 내려와 외로움을 삭힐 즈음, 풍기역에 내린 나를, 개찰구를 지나 열차가 정차하는 플렛포옴까지 들어와 기다려준 사람은 그녀뿐이었다는 사실이 눈물 나게 고마웠습니다.
헝클어진 머리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 피부가 거칠어진 초췌한 나의 모습만 상상하며 기다렸을 그녀가 마치 영화 장군의 아들처럼 멋진 모습을 하고 나타났으니 그 놀라움을 숨기기도 전에 들켜 어느새 붉어진 모습의 그녀는 한 개의 홍옥 사과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번지는 미소보다 나의 손이 먼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눈물 나게 고마운 사람은 정말 사랑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습니다.
이튿날, 사과를 따 주러 과수원에 들어가 제일 높은 곳에 열린 탐스런 사과를 따는데 갑자기 ‘훔친 사과가 맛이 있다’라는 영화 제목이 생각난 이유를 나는 모릅니다. 청춘은 뜨겁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겠고, 신혼은 그 뜨거움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행복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눈만 감았는데 사과가 이미 붉어지던 그 시절에 다시금 미소 가득 지어봅니다.
오토바이에 그녀를 싣고 길동 지하방에서 광릉수목원까지 드라이브를 하던 날, 내리 쪼이는 햇볕보다 내 허리 꼭 안은 그녀의 팔의 온기가 더 뜨거웠다는 사실을 그녀는 모릅니다.
아이를 낳던 날, 이목구비가 마치 신생아 아닌 듯 선명한 모습으로 태어나 병원이 떠나갈 듯 울어대는 모습이 어쩜 저리도 씩씩한지 장모님은 미소만 머금으셨는데 나는 껄껄껄 웃으며 대견하다는 소리를 연발했습니다.
출근만 할라치면 꼭 오토바이 앞에 자기를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달라던 그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어쩜 저리도 영특한지 깨물어 줘도 아프지 않을 아이였습니다.
내 집 장만 하던 날, 용인으로 계약을 하러 가는데 눈이 펄펄 내려 용인 가는 길을 온통 하얀 융단을 깔아준 것만 같아 이건 길조구나 하며 즐거워하던 때가 어제 일만 같습니다.
내가 발 벗고 나서서 나는 아껴둔 돈을, 형제들은 인력을 투자하여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위해 재래식 집을 현대식으로 고치고 첫 설을 맞던 날,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걸 보며 나보다는 설거지 하는 아내와 형수님들의 볼에 퍼지는 미소가 더 함박웃음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난 생 처음 시집을 발간하고 내 시가 활자가 되어 전국 서점에 배포되었을 때, 학창시절 막연히 꿈꾸었던 시인의 길이 이렇게 열리는구나! 라는 생각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시집을 적시던 날 있습니다.
시사문단에 시 부문으로 처음 문학계에 발을 디뎌 놓던 날, 혹시 만에 하나 먼 후일 내가 정말로 유명한 시인이 될지도 모르니 많이들 오셔서 축하해 주십사 라고 능청을 떨며 형제들을 모셨는데, 시상식 장이 온 통 나의 축하무대가 되어버렸던 그 날이 그렇게도 기뻤습니다.
라디오 여성시대에 내 이름이 올라가고 내 사연이 거푸 소개되던 날, “정말 자기는 소질이 있어”라며 기뻐해주던 아내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습니다. 그 때 받은 선물을 형제들에게 나눠주며 시상식장에 오셔서 축하해준 보답이라고 말씀 드렸을 때 내가 느끼는 행복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내 평생 아내를 위한 시집 한 권은 발간해주고 싶다는 야무진 생각으로 반 년 동안 시와 씨름하다 마침내 한 권의 시집을 탄생시켜 아내 손에 쥐어주었을 때,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좋았습니다.
처음 시도했던 장편소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를 끝마쳤을 때, 거의 일 년여 동안 이 소설을 읽어주고 이 소설을 사랑해주고 이 소설을 기다려준 아내와 독자여러분들의 사랑에 목이 메었습니다. 글을 쓰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절실히 깨닫게 만들어 준 그 때를 기억하며 지금도 매우 감사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행복한 날들의 소묘를 쓰며 사실은 많이 망설였습니다. 괜히 내 자랑하는 것만 같고, 또한 내 자랑이 나에겐 행복한 날이었기에 쓰지 말아야 하는데 하면서도 글을 놓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이유는 결코 불행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해야지요. 내가 행복한 것보다 더 많이 행복한 내 이웃이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눈물 나는 날 보다는 쓸쓸한 날이 더 좋을 테고, 쓸쓸한 날보다는 행복한 웃음이 가득 넘치는 날들이 더 좋은 세상, 여러분 가정에도 이 기쁜 행복이 평생 동안 집안 가득 수북하게 퍼져 나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첫댓글 부러우 면서도 안스럽고 힘들게 지금도 힘들어 보이는 삶을 아름답게 표현해 주는 당신과 마주해보고 싶습니다
잘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뻥 사업 하시겠다니 더 반갑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