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이후 미국의 아프칸 보복 전쟁이 지속되면서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전쟁영화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소말리아 전쟁을 소재로 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 호크 다운]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보스니아 내전을 소재로 한 [에너미 라인]이 막 개봉을 했다. 로드 루리 감독의 [라스트 캐슬] 역시 전쟁이나 테러 영화는 아니지만, 군인들을 소재로 한 남성 영화라는 점에서 위의 영화들과 궤를 같이 한다.
이스라엘계 미국인 로드 루리 감독은 현역 미국 감독 중 유일하게 웨스트 포인트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전투 무기 장교로 4년동안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는 그는, 군인들의 칼날같은 자존심 대결을 그리고 있는 [라스트 캐슬]의 감독으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그는 연예부 기자 출신이기도 하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오픈 시네마 출품작인 [콘텐더]로 영화비평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알란 J 파큘라상]을 수상했다.
[라스트 캐슬]은 군대와 감옥이 결합된 군감옥을 소재로 해서 억압체제 내에서의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지를 그리고 있다. 사실 이런 소재는 그동안 무수히 많이 존재했다. 악랄한 교도소장과 맞서는 죄수들, 그들 중에서 뛰어난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주인공은 절대적 권력을 앞세운 교도소장의 압박과 회유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자유의지를 펼쳐나간다. 그것이 동료 집단 죄소들 전체의 후원을 받아 마침내 불가능한것처럼 보였던 탈출을 성공 시키거나 교도소장을 굴복하게 만드는 이런 류의 이야기는 일종의 변형된 영웅담이라고 볼 수 있다.
[라스트 캐슬]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독특한 점은 [라스트 케슬]의 교도소는 단순한 교도소가 아니라 군형무소라는 점이다. 교도소장은 현역 대령 윈터(제임스 갠돌피니 분). 이곳에 삼성장군 출신의 죄수 어윈(로버트 레드포드 분)이 호송되어 온다. 그는 전쟁터에서 일급정보에 바탕을 둔 대통령의 명령을 어기고 적진 침투했다가 8명의 부하가 숨지는 참사를 빚어 명령불복종죄로 10년형을 언도받고 수감된 것이다.
[라스트 캐슬]의 재미는 교도소장 윈터와 3성장군 출신의 죄수 어윈의 칼날같은 대립이다. 죄수들의 폭동이나 탈출을 사전 진압하기 위해 때로는 실수를 위장한 치명적 공포탄 발사로 교묘하게 반항하는 죄수들을 살해해온 윈터의 만행을 목격하고 어윈은 군 계급으로는 부하들이며 죄수 신분으로는 동료들인 군형무소의 다른 죄수를 위해 선두에 서서 윈터 소장과 맞선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사실 두 사람의 팽팽한 심리전이다. 그것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어윈 주변의 다양한 죄수군들이며, 대립적인 어윈과 윈터의 캐릭터는 물론 죄수들의 다양한 캐릭터가 선명하게 살아 있어서 중심부와 주변부의 조화가 잘 되고 있다.
지배자/피지배자의 단순하고 선명한 대립구도는 자칫하면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 그러나 감독은 대립적 구도 속에 중층적 의미망을 부여하면서 상징적 비유와 탄력적 해석이 가능한 길을 열어놓았다.
[라스트 캐슬]에는 다양한 대립구도가 존재한다. 물론 중심축은 교도소장 윈터와 죄수 어윈의 수직적 대립이지만, 교도소장이 죄수들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 회유하는 죄수/ 폭동을 일으키는 죄수의 수평적 대립, 교도소 안/밖의 대립, 과거(전쟁터)/현재(감옥)의 대립, 감옥 내에 존재하는 옛 성곽의 벽/감옥 벽의 대립 등이 그것이다.
영화의 처음과 끝 부분에 반복되는 나레이션, 다른 성은 사람들이 못 들어가게 막는 기능을 갖고 있지만, 이 성은 사람들이 못 나가게 막는 기능을 갖고 있다는 진술은 이 영화가 철저하게 대립적 구도 아래서 서사구조가 구축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독은 이러한 대립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기교를 동원한다. 극단적인 의미의 차이를 갖는 하이 앵글/로우 앵글, 두 인물의 대립적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투샷이나 교차편집에 의한 원샷/교도소 내부의 집단샷 등이 리드미컬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우리들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채 서사구조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죄수들의 폭동과 진압이라는 군형무소 전체의 대립을 그리기 이전에 몇 가지 에피소드를 설치해 놓고 긴장을 잠차 고조시킨다. 경례사건/벽돌 나르기/성곽 쌓기 등의 에피소드를 통해 긴장은 점층적으로 고조되며 폭발 직전의 단계까지 에스칼레이터된다.
경례사건은 죄수들 사이에는 형무소 들어오기 이전의 계급에 의한 경례가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윈에게 경례를 하던 죄수를, 윈터가 본보기로 형벌을 내리는 것이다. 비가 오고 날이 저물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장 한쪽에 서서 계속 경례를 하게 하는 것을 보고 어윈은 제지시킨다.
날이 저물면 모든 기합은 중지되어야 한다는 규칙을 내세우자 윈터는 어윈에게 하루종일 뙤약볕 속에서 돌을 나르게 한다. 중도에 포기할 것이라는 예측과는 다르게 어윈은 하루 일과를 마칠 때까지 묵묵히 돌을 나르고 또 나른다. 또 어윈은 죄수들 자신들의 자유의지를 위해 성곽쌓기에 동참하게 하지만 윈터는 그 성곽을 포크레인으로 무너뜨리고 반항하는 죄소를 살해한다.
결국 [라스트 캐슬]의 배경인 군형무소는 축소된 세계에 다름아니다. 그곳에는 자신의 절대권력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자유의지를 억압하려는 지배자가 있고, 그 억압의 그늘 속에서도 짓눌리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자유의지를 펼치려는 사람들이 있다.
제대한 후에도 거의 2년 가까운 기간동안 난 군대로 다시 복귀하는 꿈을 꾸었다. 서류가 잘못 되었으니까 다시 이등병으로 군대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공포였다. 병장도 아니고 이등병부터 다시 군대생활을 시작하라니. 나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곤 했다. 그런데 이와같은 꿈은 내용 면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제대한 남자들 상당수가 꾸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현역으로 육군에 입대해서 병장으로 제대한 나 역시 파란만장한 군대생활을 했다. 제대할 때는 부대가 있던 쪽을 향해 오줌도 누지 않겠다던 병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군대라는 집단은 극도의 긴장을 요구한다.
그런데 푸코는 학교나 군대, 감옥은 인간을 억압하는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고 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선명하게 노출되어 있는 곳이 바로 그런 공간이다. 푸코에 의하면, 권력이란 지배계층의 소유물이 아니라 일종의 전략이라는 것인데, 예전에는 처벌의 직접적 방법으로 신체를 감금하거나 끊임없이 감시하고 통제하면서 권력을 행사했지만, 점차 신체가 아닌 영혼을 규제하는 방법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전노장 로버트 레드포드가 모처럼 적역을 맡아 호연을 보여주고 있는 [라스트 캐슬]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그것을 위해 우리는 존재 자체를 송두리채 던질 수도 있다는 것을, 군형무소라는 극단적인 공간을 통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