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선교 찬양을 다녀와서 】
박만길 장로
서강교회 장로
(익투스 선임 부단장)
7월 11일 토요일
″김치″ 소리와 함께 카메라 셔터를 누른 홍집사님의 사진 촬영으로 시작된 선교 찬양. 44명의 대원들과 가족24명,총 68명의 일행은 공항에서 기념 촬영을 마치고 탑승수속을 밟았다. 창단 15년에 여섯 번째 해외 선교 찬양이라 그러한지 2시까지의 집합시간 엄수도 그러하거니와 탑승절차를 밟는 대원들의 움직임 역시 능수능란하다. 정확하게 4시에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그날 밤 우리시간으로 밤10시에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에 도착 했다. 공항은 싱가포르 도심에서 동쪽으로 25㎞ 떨어진 곳에 있는데 공항에서 도심에 이르는 길은 바다 매립으로 건설된 동쪽 해안 도로와 연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 14개 유명 잡지사에서 지난해 (영종도 인천공항 로비에서)
까지 12년째 ‘세계 최고의 공항(Best Airport in the World)’으로 선정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고객편의 위주의 시설들이 가득하고 입출국이 타 공항에 비해 빠르며 환승객을 위한 무료 관광도 인기를 누리는 비결이라고 한다. 면적은 서울보다 작은 곳이지만 경제대국으로 일본에 이은 아시아 국민소득 2위로 연간 6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가고 선박 물동량은 세계 1위를 자랑하고 있단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와 시간차가 1시간 이므로 이곳 시간으로는 밤 9시였다.
곧바로 대절된 관광버스 2대에 몸을 실은 일행은 말레이시 아의 조호바루로 이동 호텔 체크 후 휴식과 수면을 취했다. 잠을 이루기전 무사히 도착함과 앞으로 시작될 일정들을 위해 기도하기로 마음먹고 그날 밤 난 오랫동안 주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사실 이번 선교찬양은 시작부터 어 려움이 많았다. 단장님과 총무장로님의 철저한 준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어려운 경제여건과 신종 인 플루엔자의 영향으로 해외선교 찬양에 참여코자 하는 단원 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찬양에 필요한 절대인원은 40여 명으로 각 파트마다 최소한 10여명은 꼭 있어야 한다는 지 (창이 국제공항 여객청사 전경) 휘자 류 교수님의 요청으로 집행부가 단원들을 개별 설득하기로 하였는데 당초 목표인원보다 4명이 더 많은 44명의 단원이 참여하게 되어 그 어느 해 보다 더 많은 인원으로 해외선교연주에 나서게 되었다. 게다가 젊은 대원들이 대거 참여해 인천공항에서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도 활력이 넘쳐 보였다. 나에게 개별 설득자로 분담된 10여명의 대원들 모두 흔쾌히 승낙, 동행하게 되어 그 기쁨이 더하였다. 특히 건강상 이유로 이번만큼은 부득이 불참하시겠다던 정 집사님마저 나의 간곡한 권유로 끝내 승낙하신 것에 두고 두고 깊은 감사를 드린다. 늘 외국에 나올 때마다 느끼곤 하는 것이지만, 처음 복음을 들고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 발을 디딘 바울 일행의 여정길이 얼마나 험난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물론, 요즘은 비행기를 이용해 쉽고 빠르게 다른 국가들을 넘나 들 수 있고, 가는 나라들마다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가이드와 예약되어진 호텔방이 있다. 하지만, 바울 당시에는 국경을 넘나드는 것이 결단코 쉽지 않았을 것이고, 한 번 여행을 떠나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시간적인 허비를 감수해야 하며, 또, 고린도후서 12장의 말씀처럼,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 형제 중의 위험 등 각종 생명을 위협하는 위기를 견뎌내어야 하며, 수고하고,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게 되는 모든 어려움을 다 극복하며 선교여정을 감당했던 것이다. 당연히 가는 나라마다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가이드도 없었을 것이고, 예약되어진 호텔방 또한 없었음은 자명하다. 우리 익투스 찬양단이 가는 곳들마다 우리들을 환영하는 인파들이 넘치지만, 바울일행은 그들을 돌로 치기 위한 유대인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모든 어려움을 복음의 열정으로 극복하고, 과감하게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였기에, 복음이 전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시간적 차이와 환경적 차이가 있지만, 바울과 우리 사이의 이러한 틈을 뛰어 넘어, 우리도 바울과 같은 선교의 열정으로 익투스 해외선교 찬양사역을 감당하고자 이곳에 왔고 그러하기에, 그 당시 바울과 동행하셨던 하나님은 여전히 이번 우리의 선교 찬양팀과 동행하시는 것이다.
7월 12일 주일
어제는 늦은 수면으로 피곤했지만 6시에 있을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5시에 서둘러 기상을 했다. 모닝콜 소리에 전날의 피곤함도 잊고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든 대원들이 호텔 예배장소로 모였다. 좀처럼 주일날 본 교회를 떠나본 적이 없는 대원들인지라 주일날 교회를 빠졌다는 아쉬움 때문에선지 예 배드리는 모습이 더욱 진지했고 찬송소리 역시 예사롭지 가 않았다. 가족들 나중 얘기가 찬송을 할 때마다 화음(4 부)을 넣어서 모두 부르니 더욱 듣기 좋았고 은혜스러웠 다고 한다. 이시걸 단장님이 인도한 ‘보라 내가 새일을 행 하리라‘라는 출애굽기 말씀으로 정신 무장한 우리 일행은 새벽기도를 마친 후 호텔에서 준비한 아침을 감사히 먹 고, 말레이시아 관광에 나섰다. 아침부터 36도의 무더위 가 우리를 맞았지만, 한국의 만만치 않은 더위에 단련되 어서 그런지 더위가 우리의 관광에 큰 방해요소는 되지 못했다. 이곳 말레이시아의 정치는 입헌군주국으로 국왕 (푸트라 모스크 사원) 은 각 주의 술탄 9명 가운데 5년마다 호선(互選)으로 선출되고 임기는 5년이다. 국왕의 정식명칭은 양디페르 투안아공(Yangdi-Pertuan Agong)이며 흔히 '아공'이라고 부른다. 2001년 12월에는 12대 국왕 시라주딘(Sirajuddin) 국왕이 취임, 2006년 12월 14일에 뜨렝가 누주의 미잔자이날아바딘(Mizan Zainal Abidin)이 국왕의 자리를 취임했다. 말레이시아는 회교국이어서 회교사원과 회교문화유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건설 사업을 하고 있는 나는 각 나라의 문화와 종교의 색채가 묻어나는 건축물을 볼 때 마다 새로운 감흥을 느끼게 된다. 원주민 마을에서 볼거리를 즐기고 이곳 원주민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마친 우린 다시 싱가포르로 가기 위해 버스길에 올랐다. 찬양 선교지로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는 예정에 있었지만 순서에 없는 말레이시아를 굳이 들러 1박을 한 것은 경유하는 인접 국가를 관광하기 위한 여행사와 집행부의 배려가 아니었나 생각이 된다. 다리 하나를 건너 싱가포르로 재입국하기 위해 우리는 여권을 꺼내 수속절차를 밟았다. 이웃 국가 간에도 간단한 절차만 밟으면 입국과 출국이 가능한데 같은 민족인 북한과 우리의 교류와 왕래는 언제나 자유롭게 이루어지려는지 50여 년 동안의 신 세월이 아쉬움으로 가득 찬다.
다시 싱가포르 여행이다.
싱가포르 문화 유적지를 탐방하고 관광을 즐기는 대원들 모두가 유쾌한 표정이다. 이번에는 가족을 동행한 대원들의 수가 비교적 많은 편인데 부인을 동행한 몇몇 대원들은 마치 신혼여행을 재현하듯 얼싸안고 사진을 찍는 등 여행을 만끽 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첫 번째 선교찬양지인 싱가포르 한인교회로 발걸음을 돌렸다. 우리는 충분한 연습으로 완성도 있는 찬양을 하기 위해 여유 있게 도착하기로 마음먹고 서둘러 교회로 향했다. 싱가포르 한인 교회는 1980년 8월 3일 창립된 교회로서 싱가포르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한인 교회다. 어린이를 포함 약 1,300여명의 성도가 매주일 출석하고 있으며 특이한 점은 여러 교단의 목회가 협력하여 교회를 섬기고 있다고 한다. 싱가포르 한인 교회는 우리나라처럼 자체 교회가 없고 교회건물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는데 예배는 주일 1부(오전 10시), 2부 (오후 12시 30분), 3부(오후2시) 예배가 있으며 모두 한인 들을 위한 예배이다. 2시 예배에 찬양을 드리기로 한 우리 는 시무 목사 황창선 목사님의 설교 후 찬양을 했다. 빈자 리 없이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어른들을 기준으로1, 2층 모두 700여명은 되는 듯하다. 연습할 때도 느낌이 좋았지 만 음향시설이 비교적 잘 되어 있는 본당에서의 찬양은 매 우 성공적이였고 우리의 찬양을 듣는 수많은 교인들의 표 정에서 찬양을 부르는 자와 듣는 자 모두가 감격과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먼 이국땅에서 오랜만에 듣는 남성 찬양 (싱가폴 한인교회 앞에서) 의 화음에 매료되어 선지 눈을 감고 숨까지 죽여가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듣는 이들도 보였는데, 성가대석의 어떤 이는 울먹이며 눈을 감고 가슴에 꼭 손을 얹고 듣는 모습이 특히 눈에 띄었다. 찬양하는 나 역시 큰 은혜를 받았다. 『평화의 기도』『승천』『사도신경』등 3곡을 찬양하였는데 ‘앙코르’ 소리와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를 뒤로하고 아쉬움 속에 두 번째 찬양지인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버스에 먼저 타고 있던 가족들이 버스에 오르는 우리들에게 환호를 하며 박수를 쳤다. 선교찬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해외여행쯤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며 따라온 몇몇 가족들은 우리의 찬양을 듣고 몹시 감격해 하는 듯 했다. 우리 집사람 양권사도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흐르더라고........익투스 찬양단원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동안 육로로 왕래하며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국경을 넘나들었는데 이번에는 배편(고속훼리)으로 인도네시아 바탐섬으로 이동했다. 인도네시아는 적도를 끼고 약 5,000km이상의 거리에 1만 7천개이상의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섬나라로 다민족 국가로서 상당히 많은 민족이 섞여있는 나라다. 네덜란드의 지배를 많이 받았고, 일본의 지배도 한 때 받았다고 한다. 인구는 약 2억 1천여 명으로 세계4위 인 구를 가진 나라인데 솔직히 현지 가이드에 의해 안 사실이다. 중국, 인도, 미국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나라라는 것을......우리 행선지인 바탐섬은 면적 415km²이며 시조리그로스 삼각주(Sijori Growth Triangle)의 일부이다. 카리문섬 및 불란섬에서 서쪽에, 빈탄섬에서 동쪽에, 렘팡섬에서 북쪽에, 싱가포르에서 남쪽에 위치한다. 리아우해협(Riau Strait)을 사이에 두고 바탐(Batam)과 빈탄(Bintan)이 분리되어 있다. 소수의 오랑라우트(Orang Laut) 토착 부족민이 아직도 이 섬에 살고 있으며 싱가포르 바로 옆에 위치해 있고 값싼 노동력 덕분에 몇몇 싱가포르 회사들의 공장이 소재하고 산업 지구와는 별도로 휴양지와 관광지가 여러 곳에 산재 되어 있다.
이곳은 오토바이가 우리나라 택시처럼 승객을 태울수 있고 버스라는 것은 코란도 보다도 약간 큰 지프차 형태의 작은 차인데 무려 12명까지 탈 수 있다고 한다.
빠듯한 이동시간으로 쫓기는듯 걸음을 재촉하여 각자의 짐 을 챙겨 배에 몸을 맡겼다. 1시간가량 지나서 인도네시아 바탐섬에 도착했다. 짐도 많고 이동 시간도 촉박해 피곤했 으나 현지 관광 가이드의(가명: 설운도) 넉살에 버스 안이 웃음바다가 되고 이내 일행들의 피곤 끼는 모두 사라진 듯 했다. 수 많은 한국 관광객이 왔다 갔겠는지를 현지가이드 의 유창한 우리 말솜씨로 짐작 할만 하다.숙소에 일찌감치 도착해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은 후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GPIB 임마누엘교회로 이동 주일 오후 예배와 찬양을 드렸 다. 싱가포르 한인교회와는 달리 이곳 교회는 모두 인도네 시아 원주민들도 약 500여명이 1,2층과 교회 밖 창문 앞까 (아름다운 바탐섬 해안가) 지 보조의자를 놓고 참석했다. 인도네시아의 전통적인 형태의 복조건물의 임마누엘 교회는 시골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교회였지만 에어콘 시설이 되지 않아 대원 모두가 더위에 어려움을 겪었다. 주일 밤 예배는 성찬식까지 곁들여 무려 2시간이나 있었는데 우리 모두 나라와 언어의 장벽을 허문 그리스도의 한 형제자매임을 깨닫는 감동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곳 교회의 요청으로 다음날 건축헌금을 모으는 특별예배에 다시 한 번 초청되어 예정에 없던 찬양을 부탁 받게 되었다. 우리 임원진은 회의를 소집 다음날의 찬양특별순서도 쾌히 수락함에 따라 예정에 없던 앙코르연주가 다음 날 하루 더 생기게 되었다.
참으로 찬양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놀라운 선물이다. 찬양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는 힘이 있다. 나이와 지역, 문화의 차이를 단번에 허무는 능력이 찬양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찬양을 통해 피부색이 다른 민족들이 하나가 될 수 있고, 찬양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가, 또 우리들 안에서 너와 나가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찬양은 특권층만이 아닌, 누구나가 부를 수가 있을 때, 그리하여, 찬양을 통해 모두가 다 어우러질 수 있을 때,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되는 것이다. 이러할 때, 찬양은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서 형식적인 거룩을 지향해야 되는 무언가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것이 아닌, 바로 우리의 삶 자체가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양이 바로 이러하였다. 그래서 시편을 보면, 아주 다양하게 삶과 밀착되어진 찬양들을 만날 수가 있는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시뿐 만이 아니라, 감사시, 예식시, 또,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부르는 탄원시, 일하면서 부르는 노동요, 향연이나 집안 잔치를 위한 노래, 사랑의 노래, 결혼의 노래, 전쟁이나 승전의 노래, 죽음을 슬퍼하는 노래 등이 들어있는 것이다. 이번 해외선교 찬양사역을 통해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민족들과 소통케 하는 힘과 능력이 되는 찬양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찬양을 마친 후 임원회의까지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니 이곳 시간으로 밤 10시 30분이었다. 싱가포르와 1시간차, 한국과는 2시간 차이가 나니 한국시간으로는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이었다.
7월 13일 월요일
연이은 연주와 이틀간의 강행군으로 오늘 새벽기도회는 쉬기로 하고 오전시간 모두는 자유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각자의 주어진 자유 시간으로 어떤 이는 숙소주변의 관광지를 탐방하고 일행들 일부는 호텔 내 실외 수영장에서 한가로운 수영을 즐기며, 일부는 골프 팀을 구성 골프를 치는 등 각자의 취향에 따라 자유를 누렸다. 왜냐하면 오늘 저녁에 예정에 없던 찬양 프로그램이 한 번 더 늘어났기 때문에 대원들에게 주어질 즐거운 저녁만찬 파티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중식 때는 모두 모여 만찬 시간을 가지며 총무 장로님의 소개로 참석자와 가족소개가 있었다. 난 꼭 동참했어야 할 몇몇 대원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함께 동행 했어야 할 분인데 장기간 통근 치료가 필요해 부득이 오지 못한 장 장로님과 아팠던 몸이 다시 재발돼 동행하지 못한 추집사의 모습이 더더욱 그리웠다. 그리고 최근 새로이 직장을 옮겨 차마 회사에 얘기하기가 곤란하다며 함께하지 못 한 박집사님과 암투병으로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는 나와 평대원 동기생(19기) 김집사가 이 자리에 없음이 못내 아쉬웠다. 바탐섬의 몇몇 관광 장소를 들러 본 뒤 대원들은 월요일 밤의 앙코르 찬양을 위해 단복을 준비하고 교회로 출발, 찬양 예배를 드렸는데 대부분의 우리들 위주의 순서였다. 『쿰바야』, 『해피데이』등 8곡을 1,2부로 나누어 찬양했다. 마지막 찬양으로 『죄짐받은 우리구주』곡을 인도네시아어로 부를 때는 큰 환호성과 박수를 받았다. 앙코르 곡으로 『죄짐받은 우리구주』를 인도네시아어로 『예수스 까완 양서 자더』를 다시 한 번 찬양하길 원해 우리 대원들은 더더욱 정성스럽게 힘차게 찬양했으며 교인 대부분도 우리와 함께 따라서 찬송을 불렀다.
찬양 후 나오는 우리를 전교인들이 두 줄로 서서 일일이 악수를 하며 ‘땡큐’를 연발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현지 인들의 절반 이상이 피아노를 몰라 반주자 이수진 교수께 서 순서에도 없던 『소녀의 기도』의 특별 연주로 그 무 거운 피아노가 이런 감미로운 소리가 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당초 이 교회는 피아노가 없었는데 이 번 연주를 위해 멀리서 옮겨 왔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교회에 선교 사로 파견된 우리나라 부부가 있었는데 우리의 찬양 선교가 자신들의 전도 사업에 큰 도움이 되었고 이 땅 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시간을 찬양선교로 인해 (바탐 교회 앞에서) 단숨에 단축시켰다며 우리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 곳 월요일 밤의 찬양은 그야말로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감동적인 밤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의 그 순수한 믿음, 열광적인 환호와 답례, 박수 등 우리가 이곳에 왜 왔는지를 알게 하는 밤이었다. 이제 내일이면 고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밤을 몹시 아쉬워했다. 밤이 깊도록 이방 저 방에서 아쉬움을 달래는 대원들의 큰 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부족한 우리의 찬양을 통해 현지교회와 선교사님 부부의 전도 사역을 돕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놀라운 은혜 속에서 찬양의 능력을 가슴 깊이 체험케 된 선교찬양의 마지막 날 밤을 나는 깊은 감격을 느끼며 모처럼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었다.
7월 14일 화요일
오늘 새벽예배 설교는 내가 맡기로 돼 있어 준비한 말씀을 전했다. 『천국여행까지 함께 합시다』라는 제목으로 마태복음에 나온 열 처녀의 예를 들며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정녕 일할 수 없는 밤이 올 것이니 젊어서 일할 수 있을 때 찬양 봉사를 열심히 하자고 결론지었다.
난 해외 선교찬양지에 올 때마다 먼저 하늘나라에 간 익투스 단원들을 생각하며 그분들과 해외 연주를 함께 다니며 봉사하던 감회를 이따금 떠올린다. 유난히 바다를 좋아하며, 아픔을 큰 웃음으로 씻어내던 (고) 김창훈 집사님. 작년 이맘때는 우리와 함께 찬양을 했건만... 천국여행에 먼저 떠난다고 운명하기 전 병원에서 편지를 작성하여 자기 몫까지 찬양 봉사를 열심히 해달라며 익투스 단원에게 고별의 편지를 전해주었던 (고) 김충호 장로님. 그 분들과 이제는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천국에서 우리 모두 해외 선교에서 했던 그 찬양을 부르자며 설교를 마쳤다. 찬양선교순서를 모두 마치고 이제 집으로 간다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짐을 싸고 인도네시아 바탄섬을 빠져 나와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오늘 밤 자정에 출발될 서울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우리는 싱가포르에서 마지막 여행을 즐기기로 한 것이다. 머라이어 공원과 차이나타운을 돌며 사진 촬영과 더불어 즐거운 여정을 보냈다. 한가로이 모노레일을 타고 [새쇼]도 보았는데 기대했던 것만큼 새쇼는 흥미 있고 재미있었다. 두고온 가족 생각이 나선지 선물들을 몇가지씩 사는 대원들도 눈에 띄었다.근엄하며 말 안하기로 유명한 단장님도 조는 사람들의 표정과 익살스런 단원들의 모습들을 연실 카메라에 담는 걸 보니 연주회를 잘해야겠다는 긴장감에서 총 책임자로서 이제는 해방된 즐거운 모습이셨다. 그날 밤 12시 싱가포르 공항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다음날 새벽 6시에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난 개인적으로 이번에 꼭 참석을 부탁한 몇몇 대원들이 있었는데 외국에 갈 형편이 못 되는데도 쾌히 승낙해 준 많은 후배대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병석에서 금번 선교찬양을 위해 기도하며 함께 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던 대원들이 있었는데 금번 선교찬양을 통해 받은 성령의 은사를 그들과 나누어 불편한 단원들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는 은총이 임하길 기도한다. 함께 한 가족모두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지휘자 류교수님과 반주자 이수진 교수님의 안정적인 리더로 좋은 연주를 하게 됨을 감사 드린다. 이제 서울에 도착하면 모두 흩어져 각기 생활하겠지만 서로를 축복하며 중보기도 해줌으로 이번 선교찬양이 대원간 사랑의 교제가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와 동행하며 그 바쁜 일정동안 우리의 여정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싱가폴 공항에서 서울로 오기전 마지막 기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