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사상
< 하나님의 개념 >
* 하나님을 아랍어로 알라라고 합니다. 아랍어에서 이 단어는 복수형도 없고 문법적으로 무성(無性)입니다. 알라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알라께서는 아담, 노아, 아브라함, 이스마엘, 야곱, 모세, 다윗, 예수 그리고 무함마드와 같은 선지자들을 포함한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슬람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아랍어는 알라(Allah)이며, 이 단어는 문법적으로 무성(無性)이며 복수형도 없는 유일한 말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바로 그 분의 모든 창조물들과 구별되는 오로지 한 분이자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이슬람적 개념입니다.
한 분이신 진정한 하나님은 바로 이슬람이 하나님과 관계하고 있다는 개념의 반영입니다. 무슬림에 있어 알라는 가장 강력한 분이시며 우주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으로 그 분과 같을 수 있는 것은 어떠한 것도 없으며 그 분과 어떠한 것도 비교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도 무함마드께서 동시대의 사람들로부터 알라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일신론의 모토와 불변성의 본질로 간주되는 꾸란의 짧은 장으로 그들에게 답하셨습니다. 분이자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이슬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 일러 가로되 하나님은 단 한 분이시고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성자와 성부도 두지 않으셨으며 그 분과 대등한 것 세상에 없노라. 112장 1-4절
자신의 삶을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고 억압하는 자들은 결코 그들의 하나님으로부터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할 자들은 인간의 책무인 내세에 대한 믿음을 부인하는 자들이며 이 세상의 도덕적이고 선한 삶을 위한 모든 충고를 부인한 자들입니다. 다음의 꾸란의 구절은 이러한 것에 관련되어 명확하고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은혜의 천국이 있나니 하나님이 믿음의 백성들을 죄인의 백성들처럼 대우하려 하시겠느뇨. 도대체 너희가 그런 판단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뇨. 68장 34-36절
이슬람은 하나님을 어떠한 인간의 형태로 특징화하는 것을 거부하며, 부와 권력이나 인종의 기초 하에 어떤 국가나 개인을 더 선호하시고 있다고 묘사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 분은 인간들을 동등하게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들 스스로를 특징 지워 선행과 신앙심을 통해 그분의 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7번째 날에 휴식을 취했다거나, 그 분의 병사 한 명과 씨름을 했다거나,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 시기의 음모자라거나, 하나님의 어떤 인간으로 육신을 가지셨다는 그러한 개념들은 이슬람의 관점으로부터는 불경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하며, 만일 영속하지 않는다면, 그 그 분은 자급 자족 하시거나, 자아 존재하시거나 꾸란의 언어로 al-Qayyum 하십니다. 그분은 창조물들을 유지하시기도 또한 그것을 없어지게끔 하시며 그것들에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 최종적으로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나니 그분은 살아 계시사 영원하시며 모든 것을 주관 하시도다. 졸음도 잠도 그분을 엄습하지 못하도다.
천지의 모든 것이 그분의 허락 없이 어느 누가 하나님 앞에서 중재할 수 있으랴. 그분은 그들의 안중과 뒤에 있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그들은 그분에 대하여 그분이 허락하는 것 외에는 그분의 지식을 아무 것도 모르니라. 권자가 천지 위에 펼쳐져 있어 그것을 보호하는데 피곤하지 아니 하시니 그분은 가장 위에 계시며 장엄하시노라. 2장 255절
하나님의 속성 창조주가 영원하며 끝이 없다면 그의 속성 또한 영원하며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어떠한 그분의 속성도 잃거나 새로운 속성을 획득하지도 않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분의 속성은 절대적입니다. 그러한 절대적 속성을 가진 창조주 이외에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을 사람이 있을까요? 두 명의 절대적이고 힘없는 창조자들의 예를 들 수 있을까요? 잠시 생각해보더라도 이것은 가능하지가 않는 것입니다. 꾸란은 다음 구절에서 이러한 논쟁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식을 두지 아니하셨으며 그분을 대적할 어떠한 신도 없노라. 만일 다른 많은 신들이 있었다면 각 신들은 자기가 창조한 것을 빼앗아 갔을 것이며 다른 신을 지배했으리라. 하나님이여, 그들이 묘사하는 것을 초월하여 홀로 영광 받으소서. 23장 91절
만일 그 안에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붕괴하였으리라. 옥좌의 주님이신 하나님 그리고 그들이 묘사하는 것 위에 높이 계신 하나님만을 찬미하라. 21장 22절
하나님의 단일성 사도 아브라함은 그의 아버지를 포함하여 그의 고장 사람들이 우상들과 천체를 숭배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이러한 행동이 얼마나 무가치 한 가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였고, 꾸란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길, 여러분이 만든 우상을 숭배한단 말이뇨. 37장 95절
그리하여 밤이 그를 어둠으로 가리우니 그는 별을 보고 이 별이 나의 주님이란 말이뇨? 말하고 그러나 그것이 사라졌을 때 나는 사라지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함이라 말하였더라. 찬란하게 떠오르는 달을 보았을 때 이것이 나의 주님이란 말이뇨? 하더니 그 달이 사라졌을 때 나의 주님께서 나를 인도하지 아니 하시면 나는 분명 방황하는 자 가운데 있게 되리라 하였더라.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서 이것이 나의 주님이란 말이뇨? 이것이 모든 것 가운데 가장 큼이라 하더니 그 태양이 사라졌을 때 백성들이여 나는 이제 너희가 숭배하는 것에서 벗어남이라 하였더라. 나는 실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그 분께로 나의 얼굴을 돌렸으니 나는 결코 하나님께 다른 우상을 비유하지 않으리라. 6장 76-79절
< 이슬람의 역사관 >
떤이슬람 역사 철학관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현세의 관계설명부터 시작된다.이 관계는 하나의 존재 즉, 하나님과 인간, 현세가 하나라는 생각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또한 현세 혹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무연관성 혹은 어떤 현상에서 어떤 실체가 존재하거나 소멸하는 것이 각각 다른 어떤 근원이 있다고 하는 생각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이 도를 깨달으면 신적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다, 고 하는 사상은 이슬람 사상에 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속성으로부터 나오는 실제 행위이지 하나님과 합일한다거나 하나님 스스로의 본성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에서 말하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창조주의 피조물에 대한 능력과 소유, 인간 구성의 모든 요건에 대한 완벽함과 전지전능을 말한다. 이러한 사상은 창조주가 인간에게 일정한 범위 내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행동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조차 상실하는 즉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나 이성으로서 행동하는 한 개체로서의 상실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슬람에서 인간은 인성을 벗어나 신성을 가질 수 없으며 또한 신이 신성을 벗어나 유한한 인간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시로서 인간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특징이 있으며 이 계시는 창조주가 무한한 능력으로 이룩해 놓은 흔적으로 인간이 창조주의 신성을 확인하고 경배대상으로 유일하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서 완성된다. 이러한 신의 속성 행동방법에 대하여 인간의 이성이 논리적으로나 사상적으로 한정 지을 수 없으며 지식이나 의지 및 우주만물에 대한 지휘, 감독관리, 운영관계를 보고 요약할 수 있을 뿐이다.
이슬람 역사관의 요소로는 실체가 있는 창조목적과 실체가 없는 창조목적 두 가지가 있다. 실체가 있는 창조목적은 하나님을 인지하는 것과 하나님의 숭배, 그의 원리와 이행의 출현이다. <내(하나님)가 진과 인간을 창조함을 그들이 나(하나님)를 경배함에 있다.>51장 56절 실체가 없는 창조목적은 신의 속성의 숨겨진 부분에 대한 선언이고 그의 능력과 특징, 최후 승리에 대해 숨겨진 부분에 대한 설명이다. <죽음과 생명을 창조하시여 그것으로 너희중에 선을 행함인가 시험하고자 함이다.>67장 2절
이러한 창조 목적은 개인이나 집단 두 가지 면으로 볼 수 있으며 가장 기본은 개인 인 것이다. <그들 모두는 심판의 날에 각자 그분에게로 온다.>19장 95절. 바로 이것이 역사가 순종하는 법칙의 기본 원리이다.
이 두 가지 역사관의 요소를 설명하면서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는 사건들과 접목시킬 수 있다. 해서 꾸란에서는 이미 존재하였던 전 시대의 움마(이슬람 공동체)의 상황에 대한 것들을 위의 법칙에 따라 하나님의 행적으로 제시하였다.
꾸란에서는 움마와 국가의 멸망 사유가 기술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 영향하에 역사를 만들어 내는 인간들의 행위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의 법칙과 행적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개인의 경우 까-룬(구약성경에서는 "고라"라 칭함, 민수기 16장, 꾸란서는 28장 29장 40장서 등장), 하만(구약성서 에스더3장, 꾸란에서는 28장 29장 40장), 파라오, 그리고 선지자들과 예언자 등의 행동 모델을 열거하고 그들이 최후에 얻은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즉 이슬람에서 역사는 신의 법칙 안에서 신이 허용한 범위 내에 있는 것이다. 동시에 역사는 역사가들의 연구와 사건 분석, 물질적 멸망의 원인들을 역사적, 혹은 인간의 이성적 원인 분석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그것의 뒤에는 신의 법칙과 행적이 남는 것이다. 즉 신의 법칙은 인간 각 개인의 모든 부분을 구성하는 정신적, 물질적 재창조에도 적용된다. 이러한 것들을 꾸란에서는 前 시대의 상황의 이야기 형태로 기술하면서 무슬림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은 꾸란이 기술한 前 시대의 움마와 인물들을 보면서 현재나 미래의 개인과 움마의 모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그들이 행하는 능동적 역할로써 역사를 만들어 낸다. 그러한 역사를 만들어 내는데 있어서 하나 님이 만들어낸 그들의 능력과 성격상의 특성을 사용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신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다른 방법, 즉 직접적인 방법에서는 인간의 속성이나 방법이 이용되지 않는 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신비스럽고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며 인간들은 육안으로 보이거나 인간의 감 각으로 느끼는 것 외에는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각 움마나 개인에게는 날들이 있고 하나님에 게도 약속과 경고로 실행하는 하나님의 법칙과 원리의 승리가 밝혀지는 날들이 있다.
꾸란에서는 하나님의 날들을 두 방향으로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는 과거이고 두 번째는 미래이다. 이 둘은 인생의 양면이다. 하나님의 날들이란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특별히 베풀어진 날들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은혜는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마다 모든 인간들에게 풍성하게 베풀어지나 하나님의 날들이란 특히 어떤 개인이나 민족의 역사에 있어서의 특별한 경우로 풀이되고 있다.
<우리(하나님)는 모세에게 예증을 주어 일러 보냈으니 " 그대의 백성을 암흑에서 광명으로 구하라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날들을 기억케 할 것이니 실로 그 안에는 인내하고 감사하는 자를 위한 예증이 있느니라.>14장 5절
위의 꾸란 구절에서는 <하나님의 날들을 두려워하지 아니한 그들을 용서한 믿는 그들에게 일러 가로되 그분(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얻는 것으로 백성들에게 보상하시리라.> 45장 14절.
위의 꾸란 구절은 그들이 이룩한 것에 대한 보상이 있는 하나님의 날들을 원치 않고 정도를 넘어 해악을 미치는 불신자들에게 관용과 사랑을 베푸는 신도들의 미래에 관해 제시하고 있다. 현재로 말하자면 이 현세를 옳게 만들 때까지 현재의 앞과 뒤를 살펴보도록 인간들에게 요구하는 주관 표현의 기간이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로든 신의 법칙의 흔적이 나타나는 숫자의 양과 어떤 시대 범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즉 어떤 특정시대에 더 많은 혹은 더 적은 신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와 시간 그리고 모든 일에 신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이슬람 역사 철학관을 살펴보았다. 즉 이슬람 역사 철학관은 한편으로는 일간 발자취의 근원을 살펴보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능력으로 주관적인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미래 성자을 포함하며 그와 동시에 현재를 간과하지 않는다. 이것은 과거를 거울삼아 인간의 길을 인도하고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것이 유익하고 인간들에게 영광을 줄 수 있는 원리들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인간 사상개혁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이슬람 역사 철학관은 이슬람 틀 안에서 사상 개혁운동의 원천인 종교적 명상에 전념하는 것과 연관된 여러 갈래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이슬람의 예언자관>
예언자관은 유태교나 기독교와 같은 계시종교에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특별한 위치와 중요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슬람에 따르면 알라는 숭고한 목적으로 인간을 창조하였습니다. 즉 신을 경배하며 그의 가르침과 인도에 따라 진실한 삶을 영위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알라로부터 진실된 가르침을 받지 못한다면 인간은 어떻게 피조물에 대한 그의 의도를 알 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 때문에 알라는 그의 백성들에게 그의 메시지를 전달할 하나 또는 여러 예언자들을 여러 나라에서 선택하신 것입니다. 고꾸란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각 민족에게 하나의 에언자가 보내어져 그들에게 이르렀으니 그들의 범사는 정의롭게 해결될 것이며 그들을 억압받지 아니할 것이니라. 10장 47절
하나님이 각 민족에 예언자를 보내어 하나님을 섬기되 우상을 피하라 하였으니 그들 중 하나님께서 인도한 자 있었으며 그들 가운데 방황하는 자도 있었으니 대지 위를 여행하며 진리를 부정하는 이들의 말로가 어떠했는가를 보라. 16장 36절
예언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알라가 베풀 수 있는 축복이자 은총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여러 예언자들을 살펴보면 3가지의 특성이 나타납니다.
1. 그는 그가 속한 사회에서 가장 도덕적이고 지적인 사람입니다. 이것은 예언자의 삶이 그의 추종자들에게 귀감이 되기 때문에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그의 성품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입니다.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는 완벽한 사람이 됩니다. 즉, 그는 어떠한 죄도 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계시에 의해 대속되는 사소한 죄는 질 수 있습니다.
2. 그는 사기꾼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기적에 의지합니다. 그러한 기적들은 하나님의 권세와 허락에 의해 이루어지며 대개 그의 백성들이 뛰어나거나 월등하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 일어납니다. 우리는 3대 종교 즉,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의 세 예언자들이 행했던 중요한 기적들을 언급함으로써 이러한 사실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모세 시대의 사람들은 마술에 능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주요한 기적은 그 당시의 이집트 최고의 마술사들을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시대의 사람들은 훌륭한 의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기적은 죽은 자를 일으키고 불치의 병을 고치는 것이었습니다. 예언자시대의 사람들 즉, 아랍인들은 웅변술과 멋진 시가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언자 무함마드의 주요한 기적은 모든 아랍 시인들과 웅변가들의 어록이 도저히 필적할 수 없었던 꾸란이었습니다. 무함마드의 기적은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전에 일어났던 모든 기적들은 시간과 장소에 국한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기적들이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함마드의 기적인 꾸란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보편적이며 영원한 기적입니다. 전세대의 사람들이 그것을 목격하였듯이 후대의 사람들도 형태와 내용 그리고 영적인 부흥 면에서 꾸란의 기적적인 면을 보게 될 것입니다.
3. 모든 예언자들은 그들이 계시 받은 것이 자신으로부터가 아니라 인간의 안녕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 이전에 계시된 것과 그들 이후에 계시될 것을 역시 인정하고 있습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에 의해 그에게 주어진 메시지를 단순히 전달하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지는 근본적으로 같으며 같은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예언자 이전이나 이후의 것에서 벗어나서는 안됩니다. 예언자들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도를 전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왜 창조되었는지에 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죽음 이후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그리고 죽음 이후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그리고 죽음 이후에 어떠한 삶이 존재할까요?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계산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우리가 일생동안 행한 행위에 대해 어떠한 보상과 벌이 있을까요?
이러한 것들과 신과 천사들 그리고 천국과 지옥에 관한 많은 의문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의 계시 없이는 도저히 답해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한 대답들은 우리가 믿고 존경하는 사람들로 나올 때 신뢰할 만한 것이 됩니다. 그 이유는 예언자들이 도덕적 행위와 지적인 능력에서 사회에서 선출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에언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기적을 통해 도움을 받으며 계시의 연속성을 증명하도록 하나님에 의해 인도됩니다. 인간에 대한 예언자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신에 대한 명확한 개념 : 신의 속성과 창조에 관한 것 2. 보이지 않는 세계와 천사와 진(불에서 창조된 영), 그리고 천국과 지옥에 관한 명확한 지식 3. 신은 인간을 왜 창조하였나?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며, 그에 대한 복종의 보상은 무엇이며 거부의 대가는 무엇인가? 4. 그의 의지에 따라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사회를 운영할 수 있을까? 즉 명확한 인도와 법이 올바르게 적용될 때 행복하고 이상적인 사회가 만들어집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예언자를 대신할 사람은 없습니다. 심지어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초자연적인 세계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계시뿐입니다. 인도는 과학이나 신비적 체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자는 너무 물질적이고 제한적인데 반해, 후자는 너무 주관적이고 종종 현혹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느 사람이 물어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선지자들을 인간에게 보냈을까요? 우리는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단지 우리는 꾸 란에서 명확히 언급되어진 사실 즉 하나님이 모든 나라에 에언자를 보내셨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습니 다. 꾸란은 25명의 예언자들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고 무함마드가 언급하지 않은 다른 예언자들이 있었음 을 말하고 있습니다. 25명의 예언자들 중에는 노아,이브라힘, 모세, 그리고 예수와 무함마드가 포함됩니다. 이 다섯 예언자들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예언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신념이 강한 예언자들이라 부릅니다. 예언자에 대한 이슬람의 견해는 무슬림들은 하나님의 모든 예언자들을 예외 없이 믿고 존경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예언자들은 오직 하나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같은 목적을 갖고 인간에게 보내졌습니다. 따라서 어떤 예언자들은 받아들이고 다른 예언자들은 거부하는 것은 예언자의 역할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인종적 편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무슬림들은 하나님의 모든 예언자들에 대한 믿음을 신조로 여기는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무함마드를 거부하며, 기독교인들은 무함마드와 모세의 율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세도 실제로 거부합니다. 무슬림들은 그들 모두를 인간을 인도했던 하나님의 사도로써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에언자들에게 내린 계시는 여러 방법으로 변절되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에언자들에 대한 무슬림들의 믿음을 꾸란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말하라!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에게 계시된 것과 아브라함과 이스마일과 이삭과 야곱과 그리고 그 자손들에게 계시된 것과 모세와 예수가 계시 받은 것과 예언자들이 그들의 주님으로부터 계시 받은 것을 믿나이다. 우리는 그들 어느 누구도 선별치 아니하며 오직 그 분에게만 순종할 따름이니라. 2장 136절
꾸란은 이것이야말로 진실되고 올바른 믿음이라고 다음 구절에서 무슬림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약 다른 민족들이 같은 믿음을 찾는다면 그들은 진정 올바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일시적이고 편견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다음을 읽어보십시오.
너희가 믿는 것처럼 그들이 믿을 때 그들은 올바른 길로 인도되리라. 그러나 그들이 배반한다면 그들은 지옥에 빠질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그들에 대항하도록 충만하게 할 것이니 그분은 들으시고 아시는 분이시라. 2장 137절
예언자와 관련해서 명확히 밝혀야할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언자로서 예수와 무함마드의 역할에 대한 잘못된 인식입니다. 예수에 대해 꾸란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의 신성함을 강하게 거부합니다. 대신 그를 하나님의 위대한 예언자들 중의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꾸란은 아버지의 존재 없는 예수의 탄생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님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이점에서 꾸란은 아버지와 어머니 없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아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랬듯이 예수에게도 다를바가 없노라. 하나님은 흙으로 그를 빚어 그에게 말씀하시니 있어라! 그리하여 그가 있었노라. 3장 59절
다른 예언자들처럼 예수 역시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가예를 들어, 그는 죽은 자를 세워 일으켰고 맹인과 나병환자들을 치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들을 보이면서 그는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능력에서에게 비롯됐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실제로 예수의 존재와 임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그의 추종자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설교한 신성한 계시가 그의 생전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사후 100년 후에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꾸란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자손으로 태어나 모세에게 계시되었던 모세 5경의 믿음을 따랐으며 이후에 나타날 마지막 예언자의 소식을 갖다주었습니다.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여! 실로 나는 너희에게 보내어진 예언자로서 내앞에 온 구약과 내 후에 올 아흐마드란 이름을 가진 한 예언자의 복음을 확정하노라. 그러나 그가 분명한 예증으로 그들에게 임하였을 때 이것은 분명한 마술이라 하였더라. 61장 6절 (아흐마드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태인들은 그의 권위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들은 그에 대한 음모를 꾸며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꾸란은 이러한 사실을 달리 보고 있습니다. 꾸란은 그들 누구도 예수를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박히게 할 수 없으며 단지 그는 하나님을 위해 순교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꾸란에는 예수께서 돌아올 것이며 모든 기독교인들과 유태인들은 그를 믿게 될 것이라고 암시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예언자 무함마드(그분께 평화가 있으라)의 권위 있는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예언자인 무함마드(그분께 평화가 있으라)는 서기 6세기에 아라비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메카인들은 그를 단지 인품이 훌륭하고 교양이 있는 사람으로 보았으며 알-아민 (신뢰받는 자)으로 불렀습니다. 나이 40이 되던 해에, 하나님은 그를 예언자 즉 하나님으로부터의 계시를 전달하는 자로 임명하였습니다. 그가 받았던 계시들은 생전에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보존되었고 나뭇잎 또는 가죽조각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꾸란은 그가 계시 받았던 당시의 꾸란과 같은 것입니다. 즉 한 구절도 변절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그분 자신이 그것의 보존을 보장하셨기 때문입니다. 꾸란은 모든 인류의 영원한 복음서이며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마지막 예언자라고 꾸란은 말하고 있습니다.
무함마드는 너희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의 아버지가 아니며 하나님의 예언자이자 최후의 예언자라. 실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라. 33장 40절
또한 꾸란은 예언자의 아름다운 삶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훌륭한 모범이 되는 하나님의 예언자를 갖게 되었으니 이는 하나님과 내세를 염원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자를 위함이니라. 33장 21절
< 무슬림 되는길 >
이슬람은 "신에 대한 절대 복종"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슬람 신자, 즉 무슬림의 의미는 "신에게 완전히 복종하는 자"이다. 이슬람은 성 꾸란(코란)과 예언자 무함마드(그분께 하나님의 평화가)의 모범적인 삶을 통해 구현된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도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슬람은 인류에게 완벽한 삶의 지침을 제공한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그 삶은 인간에게 현세는 물론 내세에서도 평화와 조화 그리고 성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아랍어로 하나님을 가리키는 "알라"는 독특한 개념이다. 성도 배우자도 없으며, 유일하고 뛰어난 모든 만물의 으뜸이다.
2. 지속적인 메시지
이슬람은 새로운 종교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이슬람은 앞선 모든 예언자들에게 내려졌던 메시지와 가르침과 동일하다.
말하라: "우리는 알라를 믿고, 우리에게 계시되었던 것은 물론 아브라함, 이스마일, 이삭, 야곱 그리고 그들의 자손들에게 내려졌던 계시들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모세와 예수 그리고 예언자들에게 내려졌던 성서를 믿습니다. 우리는 예언자들을 서로 차별하지 아니하며,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경배를 드리나이다." 3장 84절
예언자 무함마드(그분께 하나님의 평화가)에게 계시된 메시지가 이슬람이며 가장 포괄적이고 완전하며 최종적인 형태를 갖추었다.
3. 이슬람의 다섯 기둥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인식을 가지고 행한 모든 행위는 이슬람에서 신앙의 행동으로 간주된다. 그렇지만 무슬림들의 영적이고 사회적인 삶의 토대가 되고 이슬람의 기둥을 이루는 구체적인 신앙의 행위가 다음과 같이 존재한다.
1) 신앙의 고백 "나는 하나님을 유일하시고, 무함마드는 그분의 선지자임을 증언합니다"라는 구절이다. 무함마드가 (하나님의)예언자임으로 모든 무슬림은 모든 측면에서 그분의 삶을 모범적인 표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2) 하루 다섯 차례의 예배 신에 대한 의무로 무슬림들에게는 하루 다섯 차례의 예배가 부과되어 있다. 예배는 신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켜주고 생생하게 해줄뿐만 아니라, 인간의 도덕성을 고양시켜준다. 예배는 마음을 정화하고 유혹과 악행을 자제시켜 준다.
3) 라마단 한달 동안의 단식 이슬람의 정의에 따르면, 단식이란 새벽부터 일몰까지 음식을 먹고 마시는 행위, 담배나 부부관계, 나쁜 의도와 완전히 단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단식은 사랑과 성실성 그리고 봉사의 정신을 가르친다. 단식은 인내와 희생, 사회적 양심은 물론 고통을 극복하는 의지를 강화시켜 준다.
4) 자카트(종교세) 가난한 사람을 위한 종교세인 자카트는 부자나 여유있는 사람들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일종의 희사금이다. 자카트는 특히 가난한 자나 고통받는 자를 위해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사회의 복지를 위해 사용된다. 자카트의 지불은 신자들의 수입과 부를 정화시켜주고, 한 사회의 경제적인 균형과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데 도움을 준다.
5) 하즈(성지순례) 하즈는 메카에 있는 카바(신전)를 순례하는 것이다. 평생에 한번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될 때, 메카를 순례하는 것은 무슬림의 의무이다.
4. 신의 유일성과 독창성
이슬람의 핵심은 유일신에 대한 신앙, 즉 하나님의 일원성과 독창성에 대한 믿음이다. 여러 다양한 형태로신의 유일성을 반복해서 강조함으로써 꾸란은 이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나님의 유일성과 독창성을하함축한 구절이 바로 성 꾸란 112장이다.
하"말하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낳지도 낳아지지도 않으셨도다. 그리고 그 분에 비할자 아무도 없나니라."
유일신에 대한 믿음은 인위적인 힘과 자연의 힘에 의존하게 하는 모든 종류의 미신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 주며, 인간에게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의지하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책임을 지도록 해준다. 더욱이 유일신 신앙은 우리에게 모든 인류를 절대적이시고 창조주이시며 우리 모두의 부양자이신 하나님 아래 한 가족임을 일 깨워준다. 이슬람은 "선택된 백성"이란 개념을 부정한다.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선행을 하는 것만이 천국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다. 따라서 이슬람은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다. 어떠한 차별이나 중간 매개자 없이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열려있는 분이시다.
5. 꾸란
성 꾸란은 예언자 무함마드(그분께 주님의 평화가)에게 내려진 마지막 계시서이다. 선과 악을 구분해주는 꾸란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길에 들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이다. 꾸란은 예언자로서의 생애 23년동안 무함마드에게 순수한 아랍어로 계시되었으며, 매 계시마다 즉시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 계시는 예언자는 물론 그의 동료들에 의해 암송되었다. 이렇게 하여 모든 계시는 하나하나 처음부터 꾸란으로 보존되었다. 이 작업은 매우 성공적으로 수행되어,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아랍어 꾸란은 1400여 년 전 예언자에 의해 계시되었던 것과 정확히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긴 세월을 흘러오면서도 단 한자의 변형도 없었고, 하나님에 의해 약속된 바와 같이 앞으로도 영원히 보존될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하나님께서 그 메시지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것을 보호하시리라." 15장 9절
앞에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원래 꾸란은 아랍어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꾸란의 의미는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어 주요 도서관과 서점에서 구할 수 있다. 꾸란은 신의 유일성과 예언자의 문제, 내세관 같은 이슬람의 기본적인 개념을 정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덕성, 신앙, 지식, 법, 정치, 경제와 같은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한마디로 꾸란은 인간생활에 종합적인 지침을 준다.
6. 예언자의 모범적 삶
성 꾸란이 갖고 있는 완벽성과 내적인 탄탄함에도 불구하고 예언자 자신의 지침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결코 완전한 꾸란의 이해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예언자의 가르침은 순나라는 체계 속에 구체화되어 있다. 순나란 예언자의 행동이나 언급, 그리고 묵시적 승인에 대한 신뢰성 있는 기록을 말한다. 이런 이유로 진정한 무슬림은 일상 생활에서 꾸란과 함께 예언자의 표본적 삶을 추종한다. 성 꾸란의 다음 구절은 이 점을 명확히 해준다.
진실로 너희들은 훌륭한 모범이 되는 알라의 사도를 갖게 되었으니, 이는 하나님과 내세를 염원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자를 위함이니라. 33장 21절
7. 종교적 의식주의의 배격
이슬람은 형식적 의식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 형식적 의식주의는 의도와 행위를 지나치게 강조한다.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은 그 분을 사랑하는 것이고,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며, 선을 권장하고 악행과 박해를 금하는 것이다. 나아가 자선과 정의를 행하고, 인류에게 봉사함으로써 그분께 봉사하는 것이다. 꾸란은 이러한 숭고한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동과 서로 고개를 돌리는 것은 진정한 신앙이 아니다.
진정한 신앙이란 하나님과 최후의 심판, 천사들과 성서들 그리고 예언자들을 믿는 것이며, 하나님과 가까운 친지, 고아와 가난한 사람들, 여행자, 구걸하는 자 그리고 석방된 노예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며; 꾸준하게 예배를 드리고, 정기적으로 희사를 행하는 것이며; 약속을 지키는 것이며; 고통과 역경, 혼란의 시기에 참고 인내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야말로 진실로 알라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자세이다. 3장 177절
8. 자유와 순수한 존재로서의 인간
이슬람에서 인간은 신이 창조한 최상의 피조물이다. 인간에게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주어졌다. 신은 인간을 한 줌 티없는 순수한 존재로 창조했기 때문에 인간은 소위 "원죄"라고 하는 부담을 안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이슬람은 또한 한 인간의 죄가 다른 사람의 대속적 희생을 대가로 소멸된다고 믿지는 않는다. 이런 점은 꾸란에 명료하게 언급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최고의 형상으로 빚으셨도다. 95장 4절
짐을 짊어진 자가 다른 사람의 짐을 짊어질 수 없도다. 무거운 짐을 진 자가 다른 사람을 불러 그의 짐을 덜어달라고 하나,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도 그의 짐을 조금도 덜어줄 수 없도다. 그대는 단지 보이지 않는 주님을 두려워하고, 열심히 예배를 보는 사람에게 훈계를 할 뿐이다. 스스로 정화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위함이니, 최후의 목적지는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다. 35장 18절
9. 神에 대한 인간의 책임
인간의 삶은 속세의 짧은 기간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최후의 심판일, 모든 인간은 부활하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불려나가 현세에서 그 가 행한 모든 행위를 보게 된다. 따라서 내세의 삶은 현세적 삶의 계속 인 셈이다. 꾸란은 이 점 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티끌만한 선을 행한 자는 그 결과를 보게 될 것이며, 티끌만한 악을 행한 자는 또한 그 결과를 보게 될 것 이다. 99장 7-8절
선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믿게 되면, 삶에 대한 태도와 관념이 달라지고, 인간이 동물과 무생물과는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나아가 범죄나 부정부도덕과 불의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해준다.
10. 人權
이슬람은 모든 고귀한 가치과 인권을 보호한다. 자유와 평등, 정의와 삶의 권리, 해방과 개인의 안전 등은 이슬람 법의 주된 관심 사항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율법을 내렸나니, 만약에 지상에서 살인을 저지르거나 해악을 끼치지 아니한 자 가운데 한사람이라도 살해한다면, 그것은 모든 백성을 살해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5장 32절
종교에는 강요가 없다. 진리는 잘못과 분명히 구분되나니, 악을 물리치고 알라를 믿는 자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 가장 단단한 동아줄을 잡았도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듣고 알고 계시도다. 2장 256절
이슬람은 사회적 정의를 매우 강조한다. 이슬람은 다른 사람을 착취하고 박해하며 불공정하게 취급하는 자를 거부한다.
도둑질한 남녀의 손을 자르라. 이는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이로다. 알라는 권능을 가진 분이다. 5장 38절
11. 과학과 기술
이슬람은 과학과 과학적 방법의 사용을 권장한다. 지식의 획득은 모든 무슬림 남녀의 의무이다. 이슬람에서 과학과 기술은 도덕적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하고, 인간의 정당한 필요를 위 해 봉사해야 한다. 더욱이 과학과 기술은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수단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또한 그분은 너희들을 위해 삼라만상을 창조하시고... 2장 29절
읽으라. 그대의 주님은 가장 은혜로운 분으로 연필로 쓰는 것을 가르쳐 주셨으며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도 가르쳐 주셨느니라. 96장 3-5절
우리(하나님)는 곧 그들에게 우리(하나님)의 예증을 대지 안에서 그리고 그들의 영혼 속에서 보여 주리니 이것이 진리임을 그들이 알 때까지라 그대 주님이 모든 것에 대한 증인이라는 것으로 충만하지 아니하뇨? 41장 53절
12. 이슬람 : 현대사회의 해결책
인종주의는 많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주요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특정 종족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오늘날에도 매우 보편화되고 있다. 1400년 동안 이슬람은 인종주의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슬람의 사회적 진면목은 특히 성지순례 기간 중에 뚜렷이 나타나는데, 신의 유일성 아래 종족과 국가의 차별 없이 모든 신자들이 형제애의 독특한 진형을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문명의 기본 단위인 가족도 현대 사회의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 가족은 급속도로 와해되고 있다. 이슬람의 가족제도는 남편과 아내, 자식들과 친척들의 권리에 정교한 평형을 주고 있다. 이슬람은 가족간의 관용을 장려하고 가족을 꾸란의 율법과 예언자 무함마드(그분께 하나님의 평화가)의 가르침에 묶어두고 있다. 한마디로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이슬람은 인간 생활에 평화와 조화를 가져다 준다. 알라는 아랍어로 하나님을 칭하는 용어이다. 어떠한 대상이나 배우자도 그에 필적할 수 없다. 그분은 창조자이고, 우주의 운영자이다. 그분은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고, 아담, 노아, 아브라함, 이스마엘, 야곱, 모세, 다비드, 예수, 무함마드(그분께 하나님의 평화가)를 포함한 모든 예언자들의 하나님이다.
<샤리아 법>
샤리아(이슬람 법)는 실정법과 유사한 점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실정법의 시각으로 샤리아(이슬람 법)를 유추해 보는 것을 옳은 방법이라 할 수 없다. 만일 샤리아(이슬람 법)가 실정법처럼 생성 발전해 왔다면 반드시 초기 샤리아(이슬람 법)가 있을 것이다. 또한 실정법이 수 천년동안 사회변천과 함께 변화 발전한 것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하고 새로운 현대 이론이 나타나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샤리아(이슬람 법)는 기본 이론과 법칙에서 변한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이 보는 샤리아(이슬람 법)는 실정법과 다음의 3가지 면에서 다르다.
첫째, 실정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고 샤리아(이슬람 법)는 하나님이 만든 것이다. 즉 이 두 가지는 누가 제정한 것이냐 하는 것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실정법은 유한한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에 사회가 그 시대에 맞게 발전하거나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변화함에 따라 발전이라는 이름 하에 변화되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실정법은 항상 변화 발전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위한 완전함에 도달하지 못하고 늘 부족함과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에 샤리아(이슬람 법)는 하나님이 만든 것이므로 그 속에 창조주의 위대함과 전지전능함이 포함되어 있어 모든 시대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어 어떤 변화나 대체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지 마라"(꾸란 10:64)
즉 이 구절은 시간과 공간이 변함에도 불구하고 바꾸거나 대체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논리는 무슬림들에게는 당연한 것이나 꾸란을 믿지 않는 비무슬림들은 이러한 논리의 샤리아(이슬람 법)를 인정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 믿음에는 논리적인 면도 중요하나 직관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어 비무슬림들이 샤리아(이슬람 법)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슬림들이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꾸란을 믿듯이 우리가 이슬람교의 신조-절대자의 전지전능과 완벽성을 강조하는 신조-를 이해해야만 이 신조의 연관관계로 형성되는 샤리아(이슬람 법)의 이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샤리아(이슬람 법)는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조 즉 믿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즉 상호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실정법은 사회의 필요성에 의해 생겨난 것이므로 그 사회가 존재하는 시대 즉 시간에 구애를 받는 법칙이며 항상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법칙이다. 따라서 오늘의 법이 내일의 법과 같을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는 빠르게 변화 발전하므로 실정법 역시 여기에 뒤쫒아 변화 발전하여야 하는 것이다. 즉 시간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법칙이 아닌 것이다.
반면에 샤리아(이슬람 법)는 하나님이 제정한 법칙이므로 사회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영원성을 갖고있어 변화와 대체가 없는 것이다. 즉 샤리아(이슬람 법)의 말씀과 법칙은 시간과 장소가 변화 발전하고 다양해짐에 따라 요구되는 모든 필요성에 적용되는 보편적이고 유연성 있는 법칙인 것이다. 또한 샤리아(이슬람 법)의 말씀과 법칙은 말이 생겨난 다음 시간상 거리를 가지고 문법이 생겨나는 것처럼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즉 사회수준에 적합한 법칙이 되기 위해 시간상 거리를 가지고 사회발전속도에 뒤쳐져 생겨나는 것이 아닌 고귀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무슬림들이 보는 샤리아(이슬람 법)와 실정법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다.
샤리아(이슬람 법) 법칙은 다른 것에 비해 보편적이고 유연한 것이며 고귀한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샤리아(이슬람 법)가 생겨난지 13세기동안 많은 사상과 이론이 발전했고 과학과 문명이 큰 진전을 이뤘다. 따라서 실정법 역시 새로운 상황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변화의 과정을 겪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실정법과 샤리아(이슬람 법)가 처음 내려올 때 당시의 실정법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을 정도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샤리아(이슬람 법)는 아무런 변화와 대체과정을 겪지 않았으면서도 인간사에서 요구되는 모든 필요성을 만족시켰던 것이다. 바로 이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고 이것이 가능하게된 방법론으로 꾸란과 하디스 말씀에서는 다음의 논리로 증명하고 있다.
"그들의 일을 그들 사이에서 협의하고"(꾸란 42:38) 하디스에서는"이슬람에는 해가없고 해를 끼치는 자가 없으니..." 이 구절들은 샤리아(이슬람 법)의 보편성과 융통성, 편리함을 제시하는 구절로서 협의를 개인과 집단 및 공공질서에 해를 주지 않기 위한 규범의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협의를 전제로 하는 샤리아(이슬람 법)는 오늘날 인간들이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높은 경지에 이미 존재해 있는 것이다. 즉 무슬림들은 그들의 일을 그들 사이에 해가되지 않게 하기 위해 서로 협의하는 것이 의무로 되어 있는 것이다.
< 이슬람신앙의 핵심절구 (상극요인) >
■ 타종교와 신에 대한 자세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 일러 가로되
하나님은 단 한 분이시고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성자와 성부도 두지 않으셨으며 그 분과 대등한 것
세상에 없노라. 112장 1-4절
너희가 믿는 것처럼 그들이 믿을 때 그들은 올바른 길로 인도되리라. 그러나 그들이 배반한다면 그들은 지옥에 빠질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그들에 대항하도록 충만하게 할 것이니 그분은 들으시고 아시는 분이시라. 2장 137절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랬듯이 예수에게도 다를바가 없노라. 하나님은 흙으로 그를 빚어 그에게 말씀하시니 있어라! 그리하여 그가 있었노라. 3장 59절
"말하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낳지도 낳아지지도 않으셨도다. 그리고 그 분에 비할자 아무도 없나니라." 꾸란 112장
■ 절대자와 인간의 관계
내(하나님)가 진과 인간을 창조함을 그들이 나(하나님)를 경배함에 있다. 51장 56절
진정한 신앙이란 하나님과 최후의 심판, 천사들과 성서들 그리고 예언자들을 믿는 것이며, 하나님과 가까운 친지, 고아와 가난한 사람들, 여행자, 구걸하는 자 그리고 석방된 노예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며; 꾸준하게 예배를 드리고, 정기적으로 희사를 행하는 것이며; 약속을 지키는 것이며; 고통과 역경, 혼란의 시기에 참고 인내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야말로 진실로 알라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자세이다. 3장 177절
도둑질한 남녀의 손을 자르라. 이는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이로다. 알라는 권능을 가진 분이다. 5장 38절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지 마라"(꾸란 10:64)
■ 예언자에 대한 절대적 의뢰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여! 실로 나는 너희에게 보내어진 예언자로서 내앞에 온 구약과 내 후에 올 아흐마드(무함마드)란 이름을 가진 한 예언자의 복음을 확정하노라. 그러나 그가 분명한 예증으로 그들에게 임하였을 때 이것은 분명한 마술이라 하였더라. 61장 6절
무함마드는 너희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의 아버지가 아니며 하나님의 예언자이자 최후의 예언자라. 실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라. 33장 40절
진실로 너희들은 훌륭한 모범이 되는 알라의 사도를 갖게 되었으니, 이는 하나님과 내세를 염원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자를 위함이니라.
33장 21절
"의심할 바 없이 하나님께서 그 메시지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것을 보호하시리라." 15장 9절
나는 하나님을 유일하시고, 무함마드는 그분의 선지자임을 증언합니다"라고 항상 고백하라. 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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