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구리한갈치누구(?)맨크룸 말랐지만. 간장살짝찍어먹으면보리밥이고슬고슬하지요. (누구 닮아간다)
예! 누가 누구냐 구요? 모르져 본인이야 알려는지.저 파란 야자잎 만지고. 그 옆 노란 망고 건들며 해찰부리고 지나가는. 바람은 알랑가 몰러..
윗글보니 "시이소" 중앙에 있어야 할분이 한쪽 편 역정듭디다. 역정만이 아니고 아예 선동하시든만요. 뭐 안되면 머리수로 밀어 본데나 어쩐데나..
"신체 발부는 수지부모"(이거 맞나요 신 선생님)라 했거를. 아무데나 디밀다가 된장 바르면 우리 책임 못 지지요?
가만! 제가 이 얘기 할려고 한것이아니고요.
동네 방네 사람들 여기 신선생님 글 한번읽어보시요. 새록 새록 떠오르는 그시절. 기계*바르고 다니던시절이. 쫙~ 씨네마스코프 총천연색 파노라마처럼 펼쳐지지요. 70미리 돌비씨스템(더 좋은것도 있나여?)저리가라입니다.
어떤 분들은 우뚜게 어렵게 글을 써놓는지 전달이 잘 안되요. 그런 양반들은 어렵게 써야 잘 하는것인줄 아나봐요. 여기 우리 신 선생님 글 보시요. 얼마나 쉽게 근방 손에 잡힐듯 합니까. 우리글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새삼 느낌니다.
그리고 저 끝에.. "우리도 30대 시절이 있었고 40대 시절도 있었다는 생생한 증거로.." 이 얼마나 상대에 대한 자상한 배려입니까요. (이 대목에서 감격 안하시면 정서가 말려서 비비꼬인 무우 말랭이처럼 됨니데이)
이것은 12간지 한 두번 넘겼다고 되는것 아니져!
저 푸른 한강물이 먹물로 바뀌고. 붓은 화엄사 동자승이 마당쓸고 버린 싸리 빗자루만큼 쓰고서야 가능한 내공인 것 입니다.
그간 소쩍새 소리는 밤세워 얼매나 들으셨으며.(아! 슬프다) 봄 나비처럼 사뿐이 내린 눈에 소나무가지 찢어지는소리. 듣기를 또 얼마... (죄송합니다 신 선생님 제가 글발이 짧아서 여기까지밖에 표현이 안된답니다.그래도 인격높으신 독자들은 다 알것입니다.)
제가 자장면은 못 만들어도 맛은 알수있다는것을. "햅번 공주님도 아시지요(급할때는 ㅋㅋㅋ)
제가 조금 얘기한것 가지고 기죽을 분 안계시겠지만. 느린 컴퓨터에 독수리도 아직 안된 병아리가. 더 무리 안할렴니다. 위험한 강호를 주유할려면 삼푼은 감추라고 하대요.
진정 마음에 와 닿는글 제 컴에도 저장해서. 가까운 이웃과 함께 봐도 되겠지요? 아! 이거 쉰세대 기 산다.
추신: "쉰 왕자. 하하하 (이정도 연륜이면 황제가 멀지 않았다는건 모르시나요?) 신발 찾아가세요.예쁘게 하고 팔 굵은이 찾으러 다니세요. 아! 부마가 보고싶구나....
--------------------- [원본 메세지] --------------------- 서운하실때는 삐치는 게 제일 상숩니다. 말문 닫으시고 상대를 아니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삐치는 당사자의 역량에 따라 상대가 항복을 해 오지요.
머이 사우님의 향수를 책임져야 겠다는 뜻에서, 우리끼리 함 삐쳐보자는 뜻에서 글 한편 올립니다. 쉰 세대라면 공감하는 유년시절이지요.
최초의 모험-대 장정
첫 경험이란 모험과 일맥 통한다. 언젠가는 겪고 말 경험이지만 처음임으로 해서 항상 새롭고 모험이기 때문에 언제나 두렵다. 또한 첫 경험은 두려움과 충동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는 심장을 은근하게 그러나 기어코 빨아들이고 마는 운명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4살배기에게 시오리 낯선 길을 나서도록 허락할 부모는 없는가. 그랬을 때 철부지들이 얻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일까?
장에 간 어른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조무래기들의 하루는 끔찍이도 길었다. 동구 밖 '덜커덩 공굴'(덜커덩 소리가 나는 뚜껑이 덮여 있던, 관개수로용 콘크리이트 다리: 콘크리이트를 공굴이라 불렀다)에는 아침부터 장에 간 어른들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조무래기들이 중천에 떠 있는 해를 가늠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해는 중천에 못 박힌 채 기울 줄을 몰랐다. 이런 상태로는 어른들이 돌아 올 해질 녘까지 기다릴 자신들이 없는 표정을 조무래기들은 묵시적으로 교환하고 있었다.
애타게 기다리는 복안들은 나름대로 절실하였다. 잠결에 발바닥 길이를 지푸라기로 재어보시던 어머니를 곁눈질로 확인한 아이의 머릿속에는 고무신 한 켤레가 환상적인 자태로 자리잡고 있었다. 장바구니(군용 전화선으로 엮어 만든)를 챙기는 어머니로부터 '아메다마'를 사 오마고 언질을 받은 아이의 입안에는 진작부터 침이 넘쳐흘렀다. 특별한 언약이 없었던 아이들도 어른들이 장에 간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대할 가치는 충분하였다. 저녁상에는 반드시 읍내 장날의 흔적이 오르기 마련이었고 간 갈치나 전갱이 한 도막과 더불어 먹을 저녁은 생각만 해도 팔다리가 저릴 만큼 흥분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조무래기들의 이 모든 간절한 희망들은 해가 서산에 질 때가 되어서야 확인 가능한 것이었고 최악의 경우에는 기다리다 지쳐 끝내는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잠드는 불행한 사태로 발전한다. 그날따라 유난히 운행이 더뎌 보이던 해가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을 더해주는 것이었다.
장에 간 어른들이 돌아 올 읍내 쪽으로 목이 굳어버린 조무래기들의 눈앞에는 초여름의 신작로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다재까지만 마지매(마중) 가 보자.
다재(달고개→월령)는 고향마을에서 읍내로 가자면 처음으로 지나게 되는, 한 마장쯤 떨어진 이웃 동네다. 급하면 엄마 젖을 바꿔가며 빨고 자란 우리들은 드디어 생사고락을 같이 할 결의에 동의하였다. 우리는 서로의 이해가 너무나 일치하였던 까닭에 주저 없이 다재를 향해 출발하였다. 그러나 우리들 중의 어느 누구도 태어난 이래로 고향 마을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다재 동네가 점점 희한한 모습으로 커져 보이는 반면 우리 동네는 점점 작아져서 이상하게 보이는 바람에 갑자기 무서워진 조무래기들의 가슴들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하였다. 인도 대륙을 발견하기 위하여 대서양을 항해하던 컬럼부스도 선상 반란에 가까운 상황을 치러야만 하였다. 멀어지는 조국 땅, 망망한 대해, 불확실한 미지의 목적지는 선상반란의 농익은 조건이기도 했을 것이다. 다재까지 설레는 초행길을 나선 우리도 선상반란에 가까운 갈등을 겪어야만 하였다. 생판 낯선 다재 동네 조무래기들의 도발적인 눈빛에 으스스한 오한을 느낀 우리는 그러나 우리들 진로에 대한 비장한 결단을 내려야만 하였다. 나아갈 길은 불안한 대신 되돌아 갈 길은 너무나 처량하였다.
-고마 읍내까지 가 보자!
비교적 간이 큰 어느 조무래기의 단호한 결단에 우리는 오장육부가 쪼그라드는 전율을 느꼈다. 목적지를 향한 정식 출범이었다. 이미 고향 마을은 다재 마을에 가려 사라져 버렸다. 이름 모를 들판과 산들이 펼쳐졌다. 낯선 산천의 생경함에 우리의 머리는 쉴새없이 어지러웠다. 한참을 가다가 우리는 놀라운 장면에 이르렀다, 엄청나게 커다란 괴물이었다. 대지를 진동시키는 굉음도 그 괴물 같은 건물 속에서 웅웅거리고 있었다. 저렇게 거대한 건물을 만든 어른들의 전지전능한 능력에 대한 경탄으로 우리 조무래기 일행은 한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였다. 거대한 괴물-상대포 양수장의 물 퍼 올리는 소리는 적막 같은 고향 마을의 평온에 길들여진 조무래기들의 청각을 사정없이 유린하였다. 양수장 배후로 30리나 뻗어 있는 장대한 방죽 위에 올라 선 우리는 또 하나의 장관에 정신이 아뜩하였다. 철제 난간이 설치된 거대한 교량이 건너편의 방죽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다리의 높이가 어찌나 높은지 우리 일행은 또 다른 종류의 혼란에 빠져들었다. 하늘에서 하늘로 걸쳐진 듯한 저 높은 다리를 건너다가 발을 잘못 디디는 날에는 죽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위대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위험해 보였다.
읍내로 가는 멀고도 험한 길은 실로 극적인 연속이었다. 길은 갈수록 넓어졌고 오가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다. 저 멀리 또 다른 신작로를 따라 질서도 정연한 가로수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그 가로수 사이로 이따금 하얀 구름을 일으키며 달려가는 자동차가 보이면 조무래기들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제트기만 하늘에 흰줄을 긋는 것은 아니었다. 자동차도 땅 위에다 구름을 만들었다. 그 구름의 앞머리가 거대한 동네 사이로 파고 들어갔다. 수많은 기와집, 끝이 뾰족한 교회당의 지붕 위에 걸린 십자가, 한없이 길다란 지붕위로 또 하나의 지붕들이 얹혀져 있는 괴상한 집들!
마침내 우리는 목적지 읍내에 도착하였다. 우리들의 눈에 새로운 천하가 펼쳐져 있었다. 읍내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웅장함으로 그 위용을 하늘로 뻗치고 있었고 엄청난 어른들의 무리가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우리들의 청각은 이미 마비되었다. 시골 조무래기들의 여리고 여린 청각은 읍내 장터의 거대한 소음에 삼켜져서 우리끼리의 통신은 불가능하였다. 시력 또한 마비되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가만히 있는 것이라곤 없었다. 하나같이 날뛰고 있었다. 쉴새없이 변화하는 장터의 모든 것들은 조무래기들의 망막을 마음껏 교란하였다. 누가 우리 동네 사람이며 어느 사람이 엄마나 아버지인지를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우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서로의 손과 손을 꼭 잡았다. 신천지 읍내에서 우리 눈에 익은 유일한 존재는 오직 우리 조무래기들뿐이었다. 우리는 절벽 위의 나뭇가지를 움켜쥐듯 서로의 손을 죽어라고 움켜쥐었다.
-우짜꼬, 야가 하내댁이 얼라 아이가? -아이고 야들아, 너거가 우짠 일고? 너거 끼리 장에 왔나? -시상에, 얼라들끼리 장에 오다니!
읍내 장터 초입에서 때마침 우리 일행을 발견한 동네 어른들은 놀란 입을 다물 줄을 몰라하였다. 평소 무심하기 짝이 없어 보이던 동네 어른들로부터 한꺼번에 폭발적인 관심을 차지하고 보니 우리 조무래기들은 또 하나의 새로운 감격을 맛보았다. 이날 동네 어른들을 감탄시킨 우리 조무래기들은 읍내까지 대장정을 감행한 대가로 고향으로 영광스런 개선을 하였다. 아메다마를 전리품으로 입에 넣은 채 소달구지에 실려 오는 동안 끝없는 찬탄을 듣고 또 들었다.
-쟈들이 시방 및살썩 묵노? 니살이가 닷살이가? -닷살은 머슨 닷살, 석동댁이 아가 우리 아 하고 섣달에 같이 났응께 인자 니살 들어가구마는. -보소야, 석동 양반, 고마 인자 아 다 키야뿟네. -시상에 저 쪼매는 것들이 시오리 길을 걸어오다니......!
모험의 뒤끝이 이렇게 황홀한 것일 줄은 몰랐다. 모험해 볼 건덕지가 있는 세상은 살아 볼 가치가 있음을 일찍이 우리는 체험하였다. 어린 날 읍내까지의 장정은 어쩌면 뒷날 내 고집대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버린 과단성의 리허설이 아니었는가 모르겠다. 4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기억이 천연색으로 남아 있는걸 보면.......................
*본문 중 '40년이나 지난......' 부분은 이 글을 사실은 10여년 전에 써 두었던 것이라 '50년이나 지난....'으로 해야 옳지만 그대로 두었습니다. 우리도 30대 시절이 있었고 40대 시절도 있었다는 생생한 증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