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5)....유럽의 탈것들.
여행내내
한 곳에 도착하여 머무르며 겨우 익숙해지려 하면 또 다른 곳으로..
떠남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유행가 가사를 떠올리며
즐겁게 머무르되 즐겁게 떠날 수 있을 것...
우리네 삶과 아주 닮아있는 여행의 새로운 모습에 자주 감탄하곤 했다.
유럽여행 중, 떠남과 머무름에 항상 친구하며 발 노릇을 했던 다양한 탈것들.
비행기,기차,버스,지하철,트램,택시...있는 교통수단을 거의 다 타보았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몇가지 교통수단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
그중 가장 압권은 ‘탈리스(THA)'란 벨기에 기차였다.
유레일 패스를 가지고 파리에서 암스텔담으로 갈 때 탄 기차였다.
한달 이상 지내려고 싼 엄청난 짐을 지고 끌며 가까스로 2분전에 기차에 올라탔다.
허둥대느라 샌드위치도 사지못해 점심먹을 걱정을 하며 땀을 씻고 있는데,
금방 승무원이 오기에 식당차가 어디있냐고 물었더니 5분후에 온단다.
우리나라 기차의 ‘홍익회’같은 판매원이 오나부다 생각하며,
앉아서 사 먹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후에 나타난 아까 그 승무원이 웨건을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앞자리의 사람부터 무언가 나눠주고 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식사를 기차에서 제공하는 것 같았다.
비행기가 아닌 기차에서의 식사대접은 받아보지 못해 참 신기해하며 기다렸다.
우와~! 물티슈부터 시작해 식사전 음료수,그리고 빵, 본요리,
디저트,식후 음료수와 포도주,커피 등 무려 여덟 번에 걸쳐서
부지런히 다니며 서비스하는 것이 아닌가!
어떤 비행기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본격적이고 다양하며 친절한 서비스에 우린 홀랑
마음을 빼앗겼다. 그리고 몇 번이고 신청하면 계속 가져다 주는 것에 더욱 감탄했다.
어떤 백인여자는 포도주를 다섯병이나(일인용 작은 병) 요구하여 마시니 놀랄 수 밖에..
우리도 감탄하면서 계속 이것저것 쉴새없이 먹게 되었다.
밤기차를 타고 자면서 가야하는 일도 있으니까 꼭 1등석을 끊어라는
친구의 권유에 따라 구입한 유레일 패스 1등석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니스에서 밤기차를 타고 파리로 와서 곧장 이 기차로 갈아탔기에 피곤하여
잠을 잤어야 하는데,기차를 탄 4시간 동안 계속되는 음식 서비스를 받느라,
통 잠을 잘 수 없었던 것이 유일한 결점이었다고나 할까.
탁월한 서비스를 다시 받고 싶어서 그 후에 탈리스를 다시 한번 타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어 그냥 온 것이 내내 아쉬웠다.
탈리스(THA)에 비해 그 유명한 떼제베(TGV-프랑스 기차)나 이체(ICE-독일 기차)는
식사 서비스는 아예 없었으며 쾌적함도 그리 우월하진 않았다.
유레일 패스 소지자라도 약간의 예약비를 더 내고 일일이 예약해야 하는
탈리스나 떼제베에 비해, 이체는 유레일 패스가 있으면
예약없이 그냥 타기만 하면 일등석은 언제나 좌석이 있어서 그만큼 편하게
이용할 수 있긴 했다. 세 기차 모두 약간의 연착이 있었던 것은 공통이었고...
암스텔담에서 런던으로 갈 때 탄 ‘이지 젯( Easy Zet)'이란 비행기도 인상에 남았다.
요즘 우리나라에 등장한 저가 국내선과 같은 개념의 비행기인데,
국가간, 도시간 거리가 짧은 유럽에서 이용률이 많은 저가 항공사였다.
한 달 전에 예약한 탓에 3만원이란 저렴한 가격으로 갈 수 있었다.
(임박하게 예약하면 물론 기하급수적으로 값이 올라간다)
이런 비행기표는 그 대신 변경이나 환불은 일체 안되고...
더불어 기내 서비스는 아무것도 제공되지 않는다. 심지어 물 한잔도...
한번 앉아서 안전벨트를 매면 한시간 남짓 걸리는 비행시간 동안에 화장실 갈 일도 없으니
그야말로 시내버스같은 개념의 비행기였다. 승무원도 안내 정도 해주는 딱 2명이고.
비행기...하면 음료수,식사를 당연히 해결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인해 인건비 등이 많이 들어
비행기값이 비싼데, 그 상식을 깨버리고 서비스를 과감히 줄여서 값을 낮춘 발상의 전환이
돋보이는 마케팅이었다. 뒤늦게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항공사가 생겨서 이용객들이 많이
늘어나리라 생각된다. 얼마전 인터넷에 보니 한달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하면
단돈 천원에도 런던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는 항공사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나는데,
이런 저가 경쟁은 예약문화를 철저히 정착시키고, 현대인들에게 자로 잰 듯
예상 가능한 일상을 살라는 무언의 강한 압력을 행사하는 순기능도 하지만,
갑자기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나는 낭만적인 기질의 사람들은 세상 살기가
더욱 힘들어지게 하는 역기능도 하니...세상만사엔 다 명암이 있게 마련인가.
런던에서 에딘버러로 갈 땐 기차를 탔다.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해보고 싶어서였다.
이 차표도 한 달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한 탓에 저렴한 가격으로 갈 수 있었는데
스코틀란드 기차는 오래되어 시트도 낡고 삐그덕대며 달렸다.
대신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스코틀란드의 완만한 구릉산지의 자연목장에서는
양,소,말들이 점점이 흩어져서 풀을 뜯어먹는 광경은 정말 목가적이었다.
산들이 완만한데다 숲이 드문드문하면서 대부분은 자연목초지라고 할 만큼
풀들이 잘 자라 있어서 거기서 자라는 양들은 토실토실 영양이 좋아 보였다.
최고의 양털로 짜내는 캐시미어 제품에서 스코틀란드산이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만 했다.
기차의 같은 칸에는 젖먹이부터 열네살까지 딸을 무려 넷이나 데리고
여행하는 중년여인이 있었다. 쉴새없이 재잘거리는 딸들을
이리저리 야단치며 통솔하느라 그야말로 진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그녀가 중얼거리는 말은 영어도 아니고 독일어나 불어도 아니어서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일까 궁금했다.
나중에 같이 여행하는 학생에게 물어보니 그게 바로 스코틀란드식 영어 란다.
같은 영국인데도 런던이 속한 잉글랜드 지방의 영어와 스코틀란드 지방의 영어는
이렇게 달라서 외지인들은 거의 알아 들을 수 없을 정도니,
두 지방의 이질감은 듣던 것보다 심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네덜란드의 암스텔담에서 라이덴까지 오가는 열차들은 시설이나 모든 것이 아주 준수했다.
일찍이 배를 만들고 세계를 누빈 그들 답게 기차도 아주 튼실하게 잘 만들고 깨끗했다.
달리는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차나 운하, 초록의 목장들이 계속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다른 유럽도 비슷했지만 여기서도 일일이 차표검사를 안하고 있었다.
어떨 때는 왕복표를 끊어서 오가는 도중, 한번도 검표를 받지 않고 내릴 적도 몇 번
있었는데, 이럴 땐 은근히 그 표가 아까와서 누구에겐가 주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직원에게 표를 끊는 것이, 자동기계에서 사는 것보다,
2-3유로가 더 비싸다는 사실이다. 철저하게 사람값이 비싼 나라다.
우리나라의 지하철표는 자동기계나 창구의 직원, 어느 곳에서 구입하나 같은 값인데,
이런 점은 그들이 더 합리적으로 보였다.
자동기계에선 8백원인 1구간의 지하철표가, 직원에게 사는 경우 1천원이라면
웬만한 사람은 다 기계에서 구입할 것이고,
직원은 상대적으로 좀 더 줄일 수 있을 터이니까.
라이덴 시내의 버스도 유리창이 무지하게 크고 넓어서
버스에 앉아서 시내를 돌아다녀 보면 깨끗하게 잘 닦여진 유리창을 통해
마치 파라다이스 장면같이 온 시내가 한눈에 들어와 쾌적한 느낌을 주었다.
표는 탈 때 마다 운전수가 일일이 돈을 받으며 끊어주고 있었다.
그곳의 시민들은 물론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있었고...
유명한 영국의 빨간 이층버스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런던과 에딘버러에서는 버스를 하루에 몇 번이고 탈 수 있는
저렴한 one day-ticket을 사서 이것 저것 다른 번호로
갈아타보기도 하고 종점까지 무작정 가보기도 했다.
이층에 올라가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거리를 달리면 온 시내의 건물이랑 풍경들이
한 눈에 들어와 도시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시내의 박물관이나 미술관들을 부지런히 다니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다리가 아프면 이층버스를 아무것이나 타고 앉아서 쉬면서 눈으로만 감상하곤 했는데,
운전도 안하면서 제일 앞자리 높은 곳에 앉아 모든 것을 한 눈에 넣으면서
달리는 맛은 아주 특별했다.
런던의 중심가부터 한적한 교외까지, 에딘버러의 구시가지에서부터 조용한 주택가까지
샅샅이 살펴볼 수 있는 이 이층버스는 정말 영국의 명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보면 높은 버스가 기우뚱거리며 코너를 돌 때는 위험한 생각도 들었는데,
막상 타고 앉아 다녀보니 그런 기우는 쓸데 없는 생각이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운전을 해서 빨리 쉭쉭 달리는 서울의 버스들보다는 덜 어지러웠다.
에딘버러의 주택들에 빠짐없이 굴뚝들이 나와있는 것도 이 버스를 탐으로 인해서
볼 수 있었다. 굴뚝 수만 헤아리면 그 건물내의 가구수를 자동으로
알 수 있었던 것도 신기했다. 아마 높은 산악지대인 이곳의 집들에선 기압이 높아
굴뚝을 특별히 높게 해야 연기가 잘 빠지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다른 나라에서 운영하는 오픈투어버스는 영국에도 있었지만
오픈 투어버스는 값도 비싸고 노선도 다양하지 않았다.
one day-ticket으로는 버스는 물론 지하철까지 하루 종일 몇 번이고 탈 수 있으니
지리가 서툴러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배낭여행객들에겐 대 인기였다.
그런데 참 우스운 것은 사흘간 탈 수 있는 티켓을 사려고 했더니
그것은 하루씩 사흘치를 따로 사는 것보다 비쌌다.
그래서 하루에 한장씩 사서 다녔는데 이것은 정말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었다.
사흘치를 한장으로 사면 더 싸야 마땅할텐데 말이다.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영국인들의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닐까.
파리에선 지하철이나 버스를 일주일간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까르트 오랑쥬‘ 라는 티켓을 사서 다녔는데, 이 티켓엔 사진을 꼭 붙여야했다.
파리의 지하철은 들어갈 때만 개찰하고 나올 땐 그냥 나오는데
아주 가끔 직원들이 몰려서서 표검사를 한다.
이땐 사진과 대조해 본인인가를 꼭 확인하는 것이었다.
6일간 타고 다니는 동안 딱 한번 흑인여자 직원들이 서서
불시에 검표를 하는 것을 보았다.
만약 이때 무임승차가 발각되면 벌금 30유로를 물어야 한다.
세계에서 몰려드는 배낭여행자들이 무임승차를 곧잘 하여 가끔 적발되기도 한단다.
파리의 지하철은 아주 오래전에 설치되어 차량의 객차수도 적고 좌석도 좁고 불편했다.
우리의 전철처럼 옆으로 앉는 것이 아니라 보통 기차처럼 앞으로 앉게 되어 있어서
수용인원도 적었다.
에어컨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역 사이의 벽에는 온통 낙서투성이이고...
타고 내릴땐 문손잡이를 수동으로 돌려서 열어야 했다.
팔꿈치가 안좋은 나는 이런 도시에 산다면 정말 힘들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유럽인들이 서울에 와서 개통된지 얼마 안된 지하철을 타 본다면
그 편리함과 쾌적함에 얼마나 감동할지 짐작이 안된다.
하지만 14개의 지하철 노선과 4개의 교외선,그리고 국철까지
거미줄처럼 곳곳에 연결되어 파리의 어느곳이나 거의 안닿는 곳이 없어
대중교통의 접근성과 편리성은 아주 뛰어났다.
비엔나와 뮌헨,그리고 암스텔담에선 지상으로 다니는 전철인 ‘트램’을 타고 다녔다.
트램은 노선도 상당히 많고 곳곳에 잘 닿게 되어 있어서 어느 곳을 가든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이 트램도 창문이 넓어서 그냥 타고 앉아있기만 하면
이곳저곳 거리를 달리면서 시내의 건물들이나 풍경들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어서
아주 애용했다.
트램은 매연을 내뿜고 다니는 버스와 달리 전기로 달리니까
쾌청한 도시의 공기를 유지하는 환경친화적인 교통수단이었다.
트램을 이용하는 수많은 일반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체취를 가까이 느끼며 여행할 수 있었던 것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런 트램들은 정류장에 다음 트램이 도착할 시간이
번호별로 전광판에 기록되어 있어서
자기가 타고자 하는 트램을 몇분이나 기다리면
탈 수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참 편리했다.
시간은 놀랍도록 거의 정확하게 지켜졌다.
우리나라의 버스도 이 제도를 몇 년전에 시행했다가
교통정체 때문에 시간을 지킬 수가 없어서 폐지시켰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서울 못지않게 복잡한 대도시인 그들도 훌륭하게 시행하는 이 제도가,
우리 서울에서도 다시 시행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트램이나 기타 교통수단에 대해선 사진 찍은 것들이 별로 없다.
다닐 땐 별로 의식못한 채 무심히 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개의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니 각기 도시가 지닌
교통수단들의 특징이 재미있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뒷배경에 우연히 찍힌 사진 두 장만 싣는다.
런던 국회의사당 빅 벤(시계탑) 앞에서 찍은 사진에 영국의 명물인 빨간 이층버스가 뒤에 보인다.
구경다니다 배고플 땐, 이 버스를 타고 이층 맨 앞에 앉아,
갖고 다니던 비상식량인 바나나를 까먹거나 누룽지를 먹으며
한참 졸고 나면 어느새 종점 근처,돌아오는 길엔 길가의 풍경들을
새롭게 보면서 원기를 회복하여 시내로 들어와 다시 다니곤 했다.
에딘버러 축제에 사용된 이층 투어버스. 수만명의 인파가 모인 에딘버러 축제엔
참가한 단체도 정말 많았는데, 거리 퍼레이드에 동원된 이 이층 투어버스 위에서는
온갖 기발한 퍼포먼스나 춤 등이 총동원되어 굉장한 볼거리를 제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