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천하가 단풍으로 물 들어가네.
하다못해 들풀 마저 영롱한 이슬을 머금은 채 불그스레해 졌더라니깐.
이 가을, 왠지 아름답고 황홀해 보이는 것이 오직 나만의 감동일까.
더욱 오랜만에 한번하고 맞는 가을이다 보니 그 감동이 진하고 격렬하네.
지금쯤 내가 사랑하는 방태산 마당폭포 계곡의 단풍나무는 운해에 휘감기어 농염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을걸.
설악산 허리, 한계령의 아침 운해는 우리 할아버지의 기품 있는 담뱃대 속 연기처럼 춤을 출걸.
오대산 월정사에서 비포장 오솔길을 흐르는 계곡 물소리 들으며 상원사까지 걷는 길 위엔 핏빛의 단풍잎이 구르겠지.
상원사에 다다르면 종루 앞에 경봉스님의 포근한 미소가 반길걸.
이 가을 어딜 가든, 어느 것을 보든 이렇게 남 다른 것은 내 삶의 행복에 취해서 일거다.
더욱 15년만에 이사 한번 했더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네.
(자슥들 한번 했다니 깐 뭐 이상한 생각했지, 특히 너 임마 침흘리지마 스지두 않는 다매.
부평서 살다 이 달 초 김포로 이사했네)
신혼같고 말야.
마치 콘도에 여행 온 느낌으로 하루 하루를 보낸다니깐.
이제 우리 나이는 적당한 변화와 자극이 필요한거 같애.
애들은 훌쩍 다 커버렸고, 항상 젊고 이쁠 것만 같던 마누라도 이제 세월의 무게에 눌려 그 아름다움이 사그라드는게 웬지 이 가을과 같드라깐.
여보 시요 친구들.
너무 아등바등하지 말고 이제 숨 한번 고를 겸 세월이 타오르는 산야로 가보슈.
설악산이 아니면 어떻고, 지리산 자락이 아녀도 크게 다를 게 없을 거요.
항구가 아름다운 조그만 어촌, 강구앞 바다에서의 일출이 아니더래도 이 삭막한 도시를 벗어 날수 있으면 숨통이 트일 것 같지 않은가.
좋기로 하면 경주의 토함산과 불국사를 거쳐 감포 앞 바다 문무대왕릉에서 환상적인 해 맞이를 할수 있다면 더 할 나위가 없지.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추암에서의 일출을 보고 나면 지나가던 놈이 따귀를 때려도 웃고 지날 만큼 기분이 좋아지더라구.
거기다 무릉계곡의 오솔길을 거쳐 쌍폭포에 다다르면 어지간이 무뚝뚝한 놈도 와 하며 감탄을 토해 낼걸.
두 시간 넘게 환상이 이어지는 불영계곡은 봉화에 이를때 까지 소름끼치도록 찌릿한 감동을 줄거야.
물론 불영사 앞뜰의 황금빛 연못에 드리워진 단풍은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할걸.
소백산도 그렇고 단양 도담삼봉의 아침도 그대를 흥분하게 만들걸.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포항 근처의 오어사 단풍은 그 색이 얼마나 고운지 모른다네.
내장산의 백양사 단풍에 취해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어디 헛된 일이라 할까.
고창 선운사앞 개울에 드리워진 단풍의 아름다움에 외마디 탄성을 지르는 것도 나이와 상관 있을까.
서산 개심사를 감싸고 있는 겹벚꽃도 단풍들면 당신을 설레게 할거요.
꼭 먼 곳이 아니더라도 속만 썩인 마누라 손잡고 가을 들판을 걸어보슈.
정선 민둥산의 수 만평 억새 밭에 서서 벅찬 감동으로 오랜만에 뜨거운 포옹 한번 해보면 어떻겠는가.
아니면 밀양의 표충사가 있는 재악산에 30만평이 넘는 억새 밭을 한번 올라볼거요.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영남알프스요.
비구니들이 청초한 눈매로 당신을 맞이할 새벽 안개 그윽한 운문사도 눈앞에 누워있지요.
평생을 통해 꼭 한번만이라도 가보쇼.
한마디로 죽입니다.
얼음골 사과 두어 개 사들고 님의 손을 꼬옥 잡고 올라보오.
멀리 동해바다가 손짓을 하고, 가을 햇살에 화장기없는 처녀 볼때기 같이 불그스레 타오르
는 황홀한 억새를 바라보면 멋없이 살아온 당신도 괜히 가슴이 벅차 오를거요.
아마 가슴에 뭉쳐있는 응어리가 눈 녹듯 사라질 거요.
자연은 역시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 훨씬 감동적입디다.
자연이 연출하는 그 장엄한 풍광을 감히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습디다.
특히 가을엔 어딜 가든 아름답고, 운치가 있고, 낭만이 있습디다.
난 벌써 20년 넘게 그 벅찬 감동에 취해 보려고 사진을 찍어왔소.
오랫동안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산하를 누비다 보니 많은 것을 느끼고, 봤고, 생각할 수 있었다오.
얼마나 행복하고, 보람있는 나날들이었는지 이루 형언키 힘들 정도요.
어이 친구들, 지금이라도 일손을 잠시 거두고 물안개 피어오르는 아산만으로 달려가 일몰을 보쇼.
시간이 조금 넉넉하다면 안면도의 꽃찌해수욕장 할미바위에서 서해로 넘어 가는 해를 지켜보쇼.
오로라가 생기는 해였다면 당신은 신의 축복을 받은 것이오.
설혹 날이 흐려 구름이 찌푸리고 있다면 그건 당신에게 큰 행운이 온 것이요.
그저 방파제 큰 바위에 아무렇게나 기대어 눈을 감고 기다려보쇼.
신의 향연이 벌어질 거요.
대자연이 연출하는 찬란한 빛의 축제가 열릴 거요.
감히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황홀함을 안겨 줄 거요.
어쩌면 그대가 첫 키스하던 그 감미로움보다도 훨씬 짜릿할 거요.
온몸이 마비되는 듯한 전율을 맛보게 될 거요.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그대는 인생의 참 맛을 느낄 수 있을 거요.
정말 오줌지리는 환상에 젖어 볼 수 있을 거요.
늦은 저녁 식사는 승언리에서 매운탕 한 냄비 시켜 해 보쇼.
소주 한잔 하는 것도 괜찮을 거요.
돌아 올 땐 반드시 서산의 간척지로 오쇼.
우직한 우리의 우상, 정주영 회장의 큰 기상에 당신도 흠뻑 젖을 수 있을 거요.
천수만에 저녁 노을이 내려 앉으면 수 십만 마리의 정동 오리 떼가 비상할거요.
하늘이 마치 유명한 화가의 화폭이 될 거요.
새벽 여명보다 훨씬 신비로운 서해의 여명을 뒤로하고 천천히 달려 고래 원으로 가보쇼.
선장이 건너다 보이는 나루터로 가도 좋을 거요.
흔적조차 사라진 추억의 단상을 하나씩 끄집어내면서 담배 한 까치 피워 무쇼.
소풍생각을 해도 괜찮고, 유난히 큰 잎새의 프라타나스가 늘어 졌던 내경국민학교의 교정을
그려봐도 좋을 거요.
그래도 추억이 스산하면 이번엔 수멍 통으로 가보쇼.
혹시 찾지 못하거든 어릴 적 어쩔 수 없이 지나야 하던 한 밤중의 갯뚝 길을 생각해보쇼.
무서워 허겁지겁 뛰어야 했던 동심을 회상하며 슬그머니 웃어보쇼.
아직도 허허 로우면 최장묵 선생과 방달순 선생한테 얻 맞던 생각을 해 보쇼.
그러다 우울해지면 승대가 광호 귀에 송곳 대고 광호야 하고 불러 돌아보다 찍혔던 일 생각
하면 벌써 그대는 삽교천을 넘고 있을 거야.
하긴 안중을 지날 때쯤엔 사정없이 두들겨 맞든 승대 생각하며 한참을 웃어야 할거요.
그러고 나면 그대는 아마 꽤 의미 있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을 거요.
그 동안 맛보지 못한 여유와 낭만으로 인해 행복에 취하게 될 거요.
그래도 뭔가 허전하고, 답답하면 나에게 연락하쇼.
가슴에 멍든 상처 보듬어 줄 비책을 가르쳐 드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