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곡리
연곡리 문화
명성황후의 친정고향
조선 18대 현종의 비인 명성황후의 친정고향 집이 연곡리 새터말이라 한다. 명성황후의 본관은 청풍 김씨이며, 왕후의 할아버지는 김육으로 효종때에 우의정, 좌의정, 영돈령부사, 영의정을 지낸 조선시대의 문신이며 대경재학자였으며, 명성황후의 아버지 김우명도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1659년에 현종이 즉의하자 국구로서 청풍부원군에 봉해지고 영돈령부사가 되었다 한다.
한양조씨 집성촌
연곡리에는 한양조씨 검한성공파일가의 집성촌이었다. 조씨일가는 지금으로부터 약 700여년전에 금성면 성내리 은행정이라는 곳에서 마을을 형성하여 생활해오면서 세도가로 군림하여 오다가 벼슬길이 막히게 되자 문한가로 전환하여 청풍면 교리에 양제사를 건립한 후 후예양성에 뜻을 두고 많은 인재를 배출하는 한편, 지금의 청풍면 연곡리로 이전 정착하여 집성촌을 이루어 오늘까지 대를 이어온 곳이다.
민속행사
이 마을에서도 해마다 정월에 택일하여 마을동제를 지낸다. 먼저 이 마을을 상징하는 마을 어구의 연못에 제를 올린 다음, 새터말 뒤 산지당구렁에 있었던 서낭당에 제를 올린다. 마을에서는 제관선을 생기복덕에 맞고 깨끗한 사람을 선출하여 10여일 이상 금기생활하도록 하며 제물은 백설기 떡과 제주만을 올린다.
연곡리 지명
검한사「사당」: 한양 조씨 검한성공파 휴손들이 조상들의 위패를 모시고 시제 지내는 사당으로 수몰 이후 현 연고기 마을에 1984에 새로 지어진 건축물임.
고래장터 「터」: 옛 인근 마을 사람들의 고래장터. 지금의 새로 조성된 연곡리 마을터.
남-산(南山)「산」: 모단 동쪽에 있는 산. 옛 청풍 고을의 남쪽이 됨.
딱밭-구랭이「마을」: 모단 서남쪽에 있는 마을. 전에 닥나무가 많았음.
모단「마을」: 연곡리.
모단 「수몰마을」: 연곡리, 못안 마을로 수몰전에 21세대가 있었음.
배밋 골「골」: 연리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뱀처럼 꾸불꾸불함.
비봉산(飛鳳山)「산」: 해발 531m 연곡리 서쪽으로 광의, 신리, 대류, 도곧, 양핑리 마을이 둘레에 있으며 2시간 30분 거리의 등산로가 있다.
산지당구렁「계곡」: 새터말 뒷편에 있는 구렁이며 성황당이 있던 곳.
새터-말 「수몰마을」: 모단 서북쪽에 새로 된 마을.
서낭-댕이「고개」: 모단 남쪽에서 신리로 가는 고개. 서낭당이 있었음.
신-대(新垈)「수몰마을」: 새터말.
알-봉「산」: 모단 서남쪽 비봉산 아래에 있는 산. 봉우리가 새알처럼 동그랗게 생김.
연-리(淵里)「마을」: 연곡리.
연곡(淵谷)「못」: 마을입구에 있던 연못. 마을 모양도 연못같이 생겼다. 비봉산 8경의 한곳이며, 매년 정월에 마을에서 제사를 지내던 연못임.
은행나무「나무」: 수령 600년정도의 은행나무로 군보호수로 지정하고 보호하고 있음.
지-내(池內)「마을」: 연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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