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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따라 길따라 ②
- 삼척港에서 -
영월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길은 그윽했다. 간혹 마주치는 준령에서 애마가 뜨거운 숨을 토해내는 것도 여행의 별스런 흥취로 느낄 정도였다. 2년 전 퇴역한 프라이드보다야 훨씬 성능이 좋고 힘도 세지만, 역시 폭염을 안고 인체 총중량 260여 킬로그램을 실은 애마의 용틀림은 버거울 수밖에 없는가 보다. 그러나 애마의 이런 고충을 아는지 모르는지 승무원들은 행복하기 만하다. 산자수명한 산간을 구비 구비 돌아 나가며 산하에 숨쉬고 있는 푸르디푸른 정취에 흠뻑 젖어있으니 말이다.
년 전에 가끔씩 들었던 ‘강원도의 힘’이란 영화 제목이 생각났다. 그래, 강원도의 힘이란 바로 이런 대자연의 웅자와 그곳에서 섭생하는 인간과 뭇 생명들의 하많은 삶에서 구현된 원시의 힘일 것이야. 21세기 만개한 첨단과학의 물결 속에서 인간의 세포막 촉수들은 기막힌 변신을 거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태고적 원시에 버무려진 원초의 본능을 그리워하는 것이야. 나름대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애마를 재촉했다. 태백시는 산상도시였다. 도시외곽에 있는 석탄박물관에 들려서 아이들의 식견을 넓혀주려 했으나, 차중 의논 끝에 그냥 삼척으로 향하기로 했다.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고, 바닷가에서 숙박하려는 계획 때문이었다.
태백에서 도계(道溪)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가는 계단 같았다. 태백시 외곽 산마루에 애마가 섰을 때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계곡 저 밑쪽에 성냥갑 만하게 보이는 도시가 분명 도계 같았는데, 찬란한 햇빛에 반짝이며 아득히 숨어있는 문명의 숨결이 신비스러웠다. 석탄과 갱도의 도시 도계를 에워싸고 있는 장엄한 태백준령의 위용에 압도당하며 동해바다로 향하는 나그네의 여수(旅愁)도 어느덧 깊어만 간다. 대자연의 경관에 넋을 잃고 연신 두리번거리는 나를 의식한 탓인지, 아내는 차만 타면 자주 낮잠에 빠져드는 아이들에게 차창 밖 경치를 설명하기 바쁘다.
아들과 딸에게, 보아라! 옛날에는 이곳을 사람들이 게나리봇짐을 메고 며칠에 걸쳐 걸어서 넘었느니라. 산골 이곳 저곳에는 험상궂은 산적들이 출몰하고 호랑이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곳이란 말이다. 저어기 산골짝에 조그맣게 보이는 너와집을 보아라. 그 앞에 널려있는 밭뛔기들, 저것이 바로 화전(火田)이다. 도시나 농촌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도저히 살지 못하게된 가엾은 유민(流民)들이 이렇게 깊은 심산에 스며들어 평생을 초부로서 살아간 흔적이다. 요즘 텔레비젼 드라마 ‘장길산(張吉山)’에서 보듯이 산적이나 화적패들은 원래가 흉악무도한 사람들이 아니었단다. 탐학스런 관리나 양반들, 지주에게 버림받은 양순한 백성들이 태반이었다. 그들을 일러 민중이라거나 민초(民草)라 부르는 것이란다.
두녀석은 말없이 차창 밖을 스치는 무성한 숲을 바라보고만 있다. 작년까지 만해도 이렇게 길 따라 산 따라 여행에는 수동적으로 따라와 차만 타면 낮잠에 빠져들던 녀석들이 금년에는 확실히 달려져 있다. 뿌듯한 마음과 함께 아버지를 닮아 가는가 하는 우려도 피어올랐다. 나의 여행방식은 산천을 소요하는 스타일인데…. 요즘 젊은이들의 행동양식하고는 꽤나 거리가 있는 홀로 만의 아취 일진데, 활화산 같이 폭발하는 젊음들에게 집단의식을 떠나 홀로 편력하는 고루한 정서를 심어줄까 봐 하는 염려다. 그러나 기분은 아늑하고 평온하다. 이렇게 차중문답을 주고받으며 짬짬이 주유천하 하는 행운이 어디 쉬운 일이랴 뇌까리며 홀로 자위해본다.
도계를 지나 땅거미 지는 산천을 주파하다 보니, 어느덧 바다 내음이 풍겨오기 시작했다. 삼척에 당도한 것이다. 시내로 진입하여 일단 삼척항(港)으로 방향을 잡았다. 재작년인가 속초의 어느 후미진 해안가 민박집에서의 추억도 떠올라 의식적으로 해안선이 보고싶었다. 비릿내가 가득히 퍼져있는 항구를 지나 모퉁이를 돌자, 역시 동해안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해안의 굴곡이 나타났다. 어스름한 수평선에 떠있는 오징어 배 두어 척, 갑자기 동해의 힘찬 아우성이 와락 달려드는 듯 했다. 기괴한 해암(海巖)이 불쑥 솟아있는 해안도로 가에 애마를 세워놓고는 숙박할 만한 곳을 살펴보았다.
신축한지 한두 해 정도 되어 보이는 7층 규모의 깨끗한 모텔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와 같이 들어가 객실 유무를 물으니, 방은 얼마든지 있다고 한다. 숙박요금을 문의하니 6만원이라 한다. 피서철 성수기이기는 하나 월요일이고 부근에 피서객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아 슬그머니 카운터 아줌마에게 5만원으로 에누리하자고 했다. 중년의 아주머니는 무표정하게 그렇게는 안되니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한다. 멀쓱해져서 아내와 상의 후, 그러면 방 하나 주십쇼 하면서 아이들 둘이 있다고 하자 여인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그러면 1인당 5천원씩 추가하여 7만원이라고 하면서 언짢은 표정이다.
나 역시 불쑥 짜증이 솟아올랐다. 전문 러브호텔인가?…. 갈테면 가라는 식의 불친절도 마음에 안들었지만, 왠지 개운치 않은 심정으로 모처럼의 외박을 즐길 수는 없었다. 수고하라는 말과 함께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즐거운 마음이었으면 7만원이 아니라 10만원이라도 흔쾌히 투숙하려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인근을 살펴보니 3층 건물 횟집 앞에서 어느 아주머니가 손짓하며 부른다. 다가 가보니 아까와는 달리 밝은 표정의 아주머니가 활기차게 소개하기 시작했는데, 생선회에다가 저녁식사를 하면 3층에 있는 객실을 3만원에 모시겠다는 것이었다. 기왕지사 동해에 왔으니 회한접시에 술 한잔은 필수여야 하는지라 쾌히 승락했다.
이윽고 삼척시 정하동 41-266 해안횟집 3층 객실에 여장을 풀었다. 곧이어 아이들과 함께 길 건너 인접해 있는 바닷물로 나갔다. 마치 용두암처럼 기괴한 해암 주위에는 저녁나절인데도 수영을 즐기는 여러 가족들이 있었다. 암반을 타고 내려가서는 마침내 2년 만에 동해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시원한 바닷물에서 차 오르는 뽀숭뽀숭한 대해(大海)의 향기가 폐부를 말끔히 씻어주는 듯하다. 아득한 수평선 너머 어스름을 뚫고 마냥 흘러가노라면 그곳에 울릉도가 있을 것이다. 울릉도에 다녀온 사람들의 얘기로는 그곳에 신비스러운 산이 있다고 한다. 태고적 밀림을 거쳐 분지에 이르면 선계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성인봉(聖人峰)을 두고 이르는 말이겠지만,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마음 속의 이상향이다.
네 식구가 해안 바위틈에서 사진도 찍고, 바닷물에 적시면서 망중한을 달래다가 숙소로 돌아오니 인상 좋은 예의 그 아줌마가 저녁을 권한다. 2층 횟집으로 들어가 창활한 동해바다가 보이는 창 쪽에 자리를 잡았다. 조망치고는 훌륭한 곳이다. 음식주문을 받는데 아주머니의 설명이 흥미롭다. 정식 활어회 큰 것으로 시키면 부대 서비스로 산오징어회와 성게회, 멍게등이 나오고 푸짐한 안주로 포식할 수 있게 해주는데, 정가가 15만원이지만 민박으로 하룻밤을 보내니 숙박료 3만원을 공제해 주어 12만원에 모시겠다는 말이다.
해안에 도착했을 때, 옆에 있는 모텔에서 느꼈던 불쾌감을 깨끗이 씻어준 아주머니였는지라 흔쾌히 승낙하면서 아내를 힐끔보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에누리 버릇이 있어 슬며시 눙치기를, 에이~ 10만원에 전부 해주시지 그래! 하면서 싱긋 웃어 보였다. 의외로 아주머니는 잠시 생각하다가 순순히 응해주는 것이 아닌가. 상쾌한 기분으로 도미회를 시켰다. 소주를 시켜 미리 나오기 시작하는 부대안주와 더불어 아내와 한잔 들이키니, 애마를 재촉하며 산하를 달려온 피로가 일거에 가시는 듯 말끔하다.
이제 고교 1학년인 아들녀석에게도, 호위하느라 수고 많았지? 하면서 어때? 한잔 해볼 테냐? 하면서 소주 한잔을 따라주니, 이 녀석 곧 터져 나올 제 어미의 핀잔을 미연에 틀어막으려는 듯 게눈 감추듯 훌쩍 들이켰다. 어? 이 녀석 봐라, 너 술 잘하는구나. 그래 오늘만은 이 애비도 이해하마. 그런데 아직 정수리에 피도 안 마른 청소년이 벌써부터 술맛을 알면 안된다 알았지? 흐뭇한 얼굴로 다그쳤다. 녀석왈, 에이~ 아부지두, 요런 소주 한잔에 무슨 술맛을 느껴요? 걱정 마시라니까요, 하면서 오히려 능글맞게 대꾸한다. 허허 웃으면서 아들의 듬직한 어깨를 어루만졌다.
그래 이 우람한 체구에 겨우 소주 한잔이 들어가 무슨 반란을 모의하고 주태백의 경지에 들겠는가. 가족과 나누는 정담이 무르익어 갈 무렵, 도미회와 서비스 안주들이 연이어 나왔다. 일단 푸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커다란 메인 접시에는 싱싱한 도미회가 진열되어 있었고, 한쪽에는 아직도 살아서 눈을 껌벅이는 거대한 도미머리가 있었다. 아내와 연이어 건배하면서 모처럼 만의 포식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이들은 회의 참 맛에 익숙지 않은지 산오징어와 부대안주만 찾는다. 결국 도미회 절반을 혼자 먹다가, 아주머니에게 나머지는 싸달라고 했다. 소주 두병에 얼큰해져 숙소로 돌아와서는 포장된 회와 양념을 들고는 아내와 바닷가로 나갔다.
아이들은 객실 텔레비젼에 열중해 있다. 소주 한병을 더 가지고 물가 쪽으로 다가갔는데, 어느새 내려가는 길은 ‘야간통행금지’ 팻말과 함께 철조망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할 수 없이 애마를 주차해놓은 방파제 난간에 걸터앉아 아내와 밤바다를 감상하면서 소줏잔을 기울였다. 시원한 해풍에 고소한 도미회를 초장에 찍어 상추에 말아 서로의 입안에 넣어주니 주흥은 치솟고 술맛은 일품이다. 문득 생각나는 영시가 있어 우물우물 낭송하니, 아내의 검은 눈망울이 더욱 반짝거리며 취흥은 절정에 달했다. 에이레 시인 예이츠(Yeats)의 ‘애주가’다.
A DRINKING SONG
- William Butler Yeats
Wine comes in at the mouth,
And love comes in at the eye
That's all we shall know for truth
Before we grow old and die.
I lift the glass to my mouth,
I look at you, and I sigh.
애주가
술은 입으로
사랑은 눈으로 들이마신다.
우리가 늙어서 죽기 전에
알아야 할 모든 진리는 오직 이것 뿐.
나는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그대를 바라보고 한숨짓는다.
길 건너 횟집 3층의 창가에는 아이들이 고개를 내밀고 손을 흔들면서 무어라 지껄이며 웃고 있다. 어느 순간, 취기가 물씬 오른 아내가 불쑥 말을 건네왔다. 당신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요, 유유자적하면서 좋아하는 것을 모두다 이루고 사니 말이요. 그런데 나는 가끔씩 너무도 외로울 때가 많아요. 당신처럼 고고한 문인들과 어울리길 하나, 특별한 취미를 가졌나… 그저 당신과 애들 수발이나 하면서 맞벌이에 등골만 휘어지니 말예요. 하면서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머쓱해져 있다가 잔을 훌쩍 비웠다. 그래 아내야말로 어쩌면 인고의 세월로 찌든 동아줄 위를 외롭게 걷고 있는지도 모르지.
변변치 않은 남편의 경제능력을 커버하기 위하여 맞벌이로 버텨 나가는 이 시대 소외된 모든 중년여인들의 표상인 게야. 아내에 대한 측은지심과 아릿한 동정이 샘솟듯 치밀어 올랐다. 아내의 어깨를 부둥켜안고 위로주를 따라 주는데, 아내의 목소리는 더욱 앵토라져 있다. 아까 두 번씩이나 전화 온 여자 분들은 누구예요? 당신의 문학활동은 이해하지만, 이곳에까지 와서 그런 장면을 보면 은근히 짜증이 납니다. 하면서 따라준 술잔을 난간에 그냥 놓는다. 건너편 3층 창문에서는 분위기를 잘 모르는 아이들의 환호성이 또 터지고 있다. 그랬다. 요즘 내가 관여하는 문학지의 출판과 함께 그 책에 작품이 실린 문인들로부터 자주 감사의 전화가 걸려오고 있는데, 주로 여류문인들이 많았다.
내가 무슨 인기문인이어서가 아니라 남자들보다 감수성이 예민한 여류시인들의 고맙다는 일회성 전화가 많은 것이다. 그것이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구나 생각하면서 미안한 감정이 더욱 들었다. 하기야 모모한 문학행사니, 무슨 출판기념회에다가 낭송회 등등 부지런히 오가는 내 모습에서 아내는 철저한 소외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아내에게 핑계보다는 진실된 남편의 심정을 밝혀주고 싶은 마음에서 아내의 술잔을 시원스레 들이키고는,
여보! 누가 뭐래도 난 당신을 제일 사랑하오. 간혹 내가 지은 시나 수필에서 무슨 구원의 여인이니 푸릇한 시절의 사랑이니 하는 구절들은 내 내면에 순수하게 간직되어 있는 이룰 수 없는 막연한 이상적 여인상들이오. 아니 그것은 반드시 여인이랄 수도 없소. 문학적 구애를 통해 내면의 갈증을 씻어내려는 내 사색의 외침일 뿐이오. 내게 당신말고 누가 있겠소? 문학하면서 교류하는 여류문인들은 모두가 문학적 양식과 사유의 동질감을 주고받으려는 순수한 만남일 뿐이요. 삿된 만남이나 부정적 행위는 있을 수 없소. 당신의 요즘 노고에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끼오. 사랑한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백번하는 사람보다, 한번일지라도 진정한 눈빛으로 말하는 사랑이 사랑이오.
취기가 더욱 달아오른 아내의 얼굴에 마침내 포근한 미소가 어렸다. 아내와 나는 어깨를 감싸안은 채, 한동안 검은 수평선만 바라보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두 녀석이 웃으면서 빈정대듯 농담을 해댄다. 야아~ 엄마 아빠 스크린 좋더라. 바닷가에서 연애하는 청춘남녀 모습이야. 네 식구의 얼굴에 가득 담긴 웃음이 심야를 밝히고 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잠든 후, 창가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있으려니 시원한 밤바람이 방안을 휘감는다. 아내와 같이 소주잔을 기울이던 길 건너 난간에는 어느새 왔는지 젊은 두 남녀가 부둥켜안고 밀어를 속삭이고 있다.
그때 어디선가 쩡하는 소리가 아득히 길게 들리는가 싶더니, 우르릉 우르릉 하는 깊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것은 해명(海鳴)이다. 바다가 울고 있다. 급히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들고 취기에 민완해진 손가락에 볼펜을 끼웠다.
三陟港에서
하늘까지 八部 능선
검은 수평선
밤바다 동해
대지는 암묵의 世紀를 그렸다
철썩 쏴아 철썩
한줄기 빛 형형한
오징어 배 석류알 닮은 集魚燈
해안선 아스팔트 고동색 빛깔
中世에 거닐었던 돌판자 길 같구나
저기
난간에 쓰러질 듯 부둥켜안은
두 남녀는 어이해 항구에 왔는가
부벼대는 키스에 익숙한 大氣,
날렵한 時代도 명멸하고 있는데
우르릉 콰앙
억만년을 그렇게 울고있는
비릿한 海鳴
東海여 三陟아
먼길 휘돌아 온 행인의 旅愁를
이 밤 다하도록
잊혀진 雄渾, 숨겨진 太白의 혼 줄로
多情多情 얼큰히 흔들어다오
<2004.7.26 子正, 삼척 정하동 해안횟집 창가에서>
[②삼척항에서 끝]
1 [순두부] 저도 이스탄불과 뉴욕을 약 한달 넘게 갔다가 어제(8월 5일) 돌아와선 시차에 비몽사몽중입니다. 오랫만에 들어와보니 우연의 일치로 오늘 글을 올리셨군요. 참으로 행복한 그림이 그려집니다. 산따라, 길따라 그리고 물따라로 소주를 마시며 사랑하는 아내와 낭만을 구가하시는 모습이 또한 아주 로맨틱합니다. 이번엔 뉴욕에 가선 매일 도서관을 드나들며 그동안 접할 수 없었던 한국책들을 거의 하루에 한권 꼴로 급히 읽어버려 소화도 제대로 안된 느낌이지만 그래도 포만감에 기분이 아주 좋았읍니다. 강원도만 돌아보실 건지? 몇년전에 친구들과 정동진에 밤기차로 갔다가 어느 산속을 도는 기차를 타고 이렇게 정겹고 아름다운 곳이 있는 곳이 우리나라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2004.08.06>
2 [한비] 순두부님! 안녕하셨어요? 역시 오랫만에 뵙습니다. 답글을 보니 대양을 건너 장시간 외유하고 오셨군요. 세계지도를 보면, 손톱만한 이 한국 땅에서 기행운운하며 피로가 묻은 글을 써댄다는 것이 우습기도하구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님의 장정에 비하면 그야말로 부처님 장중이랄까..ㅎㅎㅎ 어쨋든 이번 여름휴가 2박3일은 가족들과 알차고 유쾌하게 다녀왔습니다. 우리의 산하는 언제 다녀도 새로운 비기가 숨어 있어요. 해외에서도 한국학을 열심히 탐구하시는 님의 열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언제고 기회가 생긴다면 저역시 이스탄불에서 뉴욕으로 날아가고 싶군요. 역설이지만 지금으로서는 님의 '해외고독'이 부럽습니다. 물론 저의 치기지만요... <2004.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