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외출을 서두르다 아이가 토끼풀을 헤집는 걸 보았습니다. 달 포전 아파트 잡초 제거 때 용케도 뽑혀지는 수난의 손길을 피했나 봅니다. 토끼풀은 땅 속 뿌리가 깊고 넓게 얽히고설키듯 자라서 잔디에는 천적이나 다름이 없지요. 뿌리의 깊이만큼 생존력도 얼마나 끈질긴지 봄에 잡초제거 때마다 씨름하듯 낑낑거리며 애를 먹고는 한답니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인간의 잣대로 재어 잔디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깡그리 뿌리 뽑혀야하는 현실이 말 이예요.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토끼풀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장난감이었습니다. 특히 친한 친구들과 꽃반지를 나누기에 토끼풀처럼 예쁜 꽃은 없었답니다.
지금도 추억은 남아 토끼풀을 뽑기 전에 어릴 적처럼 하얀 풀꽃 줄기 가운데 흠을 내어 꽃반지와 길게 이은 꽃목걸이를 만들어 주위아이들에게 끼워줍니다. 물론 절대 버리지 말라고 앙증맞은 새끼손가락을 걸고 덤으로 약속을 덧붙여 두지요. 어릴 적 비밀 약속을 말하고 언약식으로 서로 나누던 모습처럼 말입니다.
자라서는 안 될 자리에 뿌리내린 죄로 모조리 뽑혀야 하는 토끼풀의 운명을 볼 때마다 그래도 토끼풀이 있어 고즈넉한 옛 정취에 빠져들기도 하는 소중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미안해 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마주 보이는 아파트 잔디밭에 토끼풀이 곱게 피어있네요. 하얀 꽃대까지 쭉쭉 피워 올리면서 말 이죠.
그날따라 유난히 풀숲에 고개를 박고 토끼풀을 헤집는 모습이 어릴 적 내 모습과 닮아있어 살며시 발길이 이끄는 대로 가까이 다가가서 무엇 하니? 묻는 말에 아이는 화들짝 놀라면서도 고개 들지 않고 네잎 클로버를 찾고 있다 네 요. 그러고 보니 우리가 흔히 토끼풀이라고 불렀지만 클로버라는 예쁜 이름이 있었다는 사실마저도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저도 외출을 잠시 뒤로 미룬 채 아이 곁에 쪼그리고 앉아 클로버를 헤집기 시작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한참을 뒤지다보니 정말 감쪽같이 세 잎 속에 네잎 클로버 한 장이 몰래 숨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너무 기뻐 아이처럼 팔딱거리며 환호성을 질렀답니다. 찾았다 하구요. 물론 제가 네잎 클로버를 찾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고 합니다. 네 잎은 누구나가 잘 알고 있듯이 행운이구요. 세 잎에 감춰둔 잔잔한 일상의 행복 속에 소중한 네 잎의 행운이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누군가 의미 있는 꽃말을 붙여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하게 되네요. 그리고 처음 발견한 네잎 클로버를 지갑 속 전화 번호 수첩에 소중하게 넣어두었습니다.
가끔 사람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에 대한 존재를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저 역시 그렇지요. 때로는 봄 향기를 싣고 내 뺨을 스쳐 지나는 부드러운 바람을, 살아 숨쉴 수 있는 공기를, 툭툭 스치고 지났던 많은 소중한 인연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너무나 소중한 것이 많다는 걸 새삼 아득히 잊고 지냈습니다.
부끄럽지만 오늘은 아이 몰래 네잎 클로버를 찾으러 나갔습니다. 향기로운 풀 냄새가 코끝을 스쳐 지나갑니다. 푸른 하늘은 청명한 가을을 연상시키며 쪼그려 앉은 등을 따스한 초여름 햇살로 포근히 감쌉니다. 예상대로 행운의 클로버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언제나 곁에 머무는 자연의 푸른 향취를 마음껏 음미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새삼스레 가끔 찾아드는 행운이라는 요행보다 생활의 여유에 젖으며 고즈함으로 찾아오는 행복이 더욱 귀한 존재라는 걸 깨닫습니다. 예전에는 사랑을 하면서도 그 사람에게 내가 첫사랑이길 바랐지만 지금은 내게 마지막 사랑이길 바라는 마음처럼 어떤 존재일지라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사실하나로 감사한 마음이 한없이 풍성해집니다.
입으로 되뇌는 것만이 사랑은 아닐 겁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한없이 너그럽게 보담고, 쓰다듬는 애절한 눈빛으로 상대를 따스한 눈길로 품어 안을 수 있는 것이 진실한 사랑이 아닐까요? 행복이라고 해서 내게 언제나 크나큰 행운만 안겨주는 것만이 아닌 것처럼 내 가슴 밑바닥에 가득 차 있는 믿음 하나면 행복도, 행운도, 서툰 사랑까지 풍족합니다.
어쩌면 이것도 내게 찾아 온 행운일까요? 작년에 부서진 처마 밑 제비집으로 다시 제비 두 마리가 터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부지런히 진흙을 물고 허물어져 버린 집을 이어나가는 모습에 괜스레 분 꽃 같은 하얀 감사가 묻어납니다. 지난 13년간 내게 제비는 보기만 해도 한결같은 행복을 물어다 주는 파랑새 역할을 톡톡히 했으니까요.
그리고 늦은 오후에 8년 동안이나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분께 전화도 왔답니다. 문득 네가 생각이 났다는 따스한 목소리와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는 반가운 소식에 들고 있던 커피를 짙은 향기와 뜨거운 감격으로 함께 훌훌거리며 마시고 말았습니다. 나 역시 가끔 그분들을 떠 올리면서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는 작은 궁금증은 있었으니까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욕심이 줄어드나 봅니다. 그리고 살아갈수록 추억이라는 소중한 보물은 곳곳에 겹겹이 널어놓고 햇빛에 잘 말려서 때로는 외로움이 짙은 날은 향긋한 차로 우려마시고 때로는 그리움으로 차곡 차곡 쌓아올려 놓고는 한 겨울 양식 곳간처럼 풍성하게 풀어 둘 가슴속 따스한 추억의 비밀 방 하나쯤은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게 되나 봅니다.
바다를 눈으로 보아야만 믿는 것은 아닙니다. 우주를 내다 볼 수 는 없어도 존재를 믿는 것처럼 이제는 흐르는 세월의 흔적을 믿고 싶습니다.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일지라도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사실하나와 세월의 기억 속에 여전히 나와 부대끼고 살아가는 존재가 곁에 있는 한, 추억은 일년 내내 내게 행운의 네잎 클로버였음을 이제서야 비로소 알 것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