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자문화권에서 팔리어를 표기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팔리어를 원음 그대로 음사(音寫)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팔리어를 한자로 의역(意譯)하는 방법이다. 두 표기 방법 모두 각양각색이다. 여기에서는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처음 나오는 팔리어 고유명사는 두 가지 표기 방법을 병행했다. 즉 한글 음사와 동시 로마자와 한자를 병기(倂記)하는 방법이다. 단 단어가 너무 길거나 한번 이상 나온 단어일 경우에는 이러한 절차를 생략하였다.
2. 팔리문헌의 한문 명칭은 일본의 {望月佛敎大辭典}에 주로 의존했으며, 경전의 제목은 {南傳大藏經}을 기준으로 삼았다. 단 위의 두 문헌에서도 한자가 아닌 일본어로 음사한 것은 팔리어 원음을 한글로 표기했다.
팔리문헌의 조직
팔리문헌(巴利文獻 Pali Literature)이란 처음부터 오늘날까지 팔리어(Pali 巴利語)로 씌어진 문헌 전체를 의미한다. 즉 불교 정전(正典, Canon)인 띠삐따까(Tipitaka 三藏)와 앗타까타(Atthakatha 註) 및 띠까(Tika 疏)는 물론 후대의 작품인 역사서와 문법서 등을 포함한 것이다.[1] 이러한 팔리문헌을 고대의 상좌부 전통에서는 팔리(Pali, 聖典)와 앗타까타(Atthakatha 註釋) 둘로 구분하였다. 원래의 팔리란 삼장(三藏)을 가리킨다. '팔리'에는 성전이라는 의미와 팔리어(Palibhasa)라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이분법(二分法)은 정전(正典)과 비정전(非正典)의 구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말라라세케라(G.P. Malalasekera)는 팔리문헌을 세 가지 항목으로 분류했다.[2] 그는 앗타까타(註)와 띠까(疏)를 구별하지 않았다. 사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띠까도 앗타까타에 포함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삼장에 대한 주석서들과 관련되었을 때에만 '앗타까타'라는 말을 사용한다.[3] 그리고 앗타까타와 띠까를 구분하는 것이 팔리문헌의 전체적인 체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별도의 항목으로 다룰 것이다. 즉 팔리문헌은 아래와 같이 네 가지 항목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삼장은 팔리 정전 형태인 불교 성전이다. 삼장은 세 가지(Ti) 광주리(pitaka)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위나야-삐따까(Vinaya-pitaka 律藏), 숫따-삐따까(Sutta-pitaka 經藏), 아비담마-삐따까(Abhidhamma-pitaka 論藏)로 구성되어 있다. 율장은 삼장의 첫 번째 분류로서, 비구와 비구니 승단을 통제하는 계율의 규정과 관계가 있다. 이것은 숫따비방가(Suttavibhanga 經分別), 칸다까(Khandaka ?度), 빠리와라(Parivara 附隨)의 세 가지 부분[三部]로 나누어져 있다. 경장은 삼장의 두 번째 분류로서, 다섯 가지 법문의 묶음[五部 Panca nikaya]으로 나누어져 있다. 즉 디가-니까야(Digha-nikaya 長部), 맛지마-니까야(Majjhima-nikaya 中部), 쌍윳따-니까야(Samyutta-nikaya 相應部), 앙굿따라-니까야(Anguttara-nikaya 增支部), 쿳다까-니까야(Khuddaka-nikaya 小部)이다. 논장은 삼장의 세 번째 분류로서, 경장에서 진술된 법에 대한 철학적 논법인 것이다. 논장은 담마상가니(Dhammasangani 法聚論=法集論), 비방가(Vibhanga 分別論), 다뚜까타( Dhatukatha 界說論), 뿍갈라빤邵띠(Puggalapannatti 人施設論), 까타왓투(Kathavatthu 論事論), 야마까(Yamaka 雙對論)·빳타나(Patthana 發趣論) 등의 칠론(七論)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의 칠론 외에 특수한 세 가지 논서(이것을 '장외(藏外)'라고 부른다)가 있다. 즉 ①Nettippakarana(指導論), ②Petakopadesa(藏釋論), ③Milindapanha(彌蘭陀問經) 등이다. 이 세 가지 논서는 논장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내용상 아비달마적 경향을 띠고 있다. 그런데 미얀마에서는 이 세 가지 논서를 모두 경장 중의 '소부(小部)'에 포함시키고 있다.
둘째, 앗타까타(Atthakatha 註釋)[4]는 삼장의 해석상의 설명들이다. 비록 주석서가 보다 광범위하게 응용되고, 삼장보다 모든 문학 작품이 포함되었을 때인 아누라다뿌라(Anuradhapura) 시대(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10세기까지) 기간에 만들어진 모든 주석적 문헌과 관련된 것이지만, 오늘날에는 삼장에 대한 주석서들과 관련되었을 때에만 사용된다.[5]
앗타까타는 팔리정전의 각기 다른 성전에 관한 해석적 논문인데, 각 성전은 자기 고유의 주석서를 가지고 있다. 주석서의 주된 목적은 붓다의 교설을 해석하는데 있는데, 이것은 문법적 및 어휘적으로 어려운 단어들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붓다 교의(敎義)의 설명과 해석을 담고 있다. 주석가들은 종종 자신들의 설명을 진행하는 동안 본래의 주제를 벗어나기도 하였고, 다양한 설화와 에피소드에 기초를 둔 그들의 방식은 풍부한 자료를 갖춘 주석서가 되었는데, 종교의 역사를 위한 것뿐만 아니라 고대 인도와 세일론의 세속적 역사를 위한 것들도 있다. 오늘날 현존하는 주석서들은 붓다고사(Buddhaghosa 佛音)와 다른 주석가들의 작품들이다. 그들은 당시 싱할리어(고대 스리랑카어) 주석서들을 팔리어로 번역하였는데, 당시의 싱할리어 주석서들도 또한 원래의 팔리어에서 번역된 것이었다.[6]
물라(M?la-) 혹은 마하-앗타까타(Maha-Atthakattha)[7], 마하-빳짜리(Maha-Paccari)[8] 및 꾸룬디(Kurundi)[9]는 싱할리어로 씌어진 세 가지 중요한 주석서였다. 그런데 이 주석서들에는 삼장의 중요한 성전 대부분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이밖에 또 그 보다는 중요성이 적은 주로 싱할리어로 씌어진 여러 가지 주석적 작품들이 있었다.[10] 삼장에 관한 이러한 주석서들은 가장 초기의 문학 작품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현존하지 않는다."[11]
현존하는 삼장의 주석서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즉 주석서는 크게 Vinaya-atthakatha 律註釋, Sutta-atthakatha 經註釋, Abhidhamma-atthakatha 論註釋으로 나뉘어진다. 첫째의 Vinaya-atthakatha 律註釋은 다시 Vinaya Pitaka 律藏에 관한 주석인 Samantapasadika-atthakatha 一切善見律註와 Patimokkha 戒本에 관한 주석인 Kankhavitarani-atthakatha 波羅提木叉註로 나뉘어져 있다. 두 번째의 Sutta-atthakatha 經註釋은 Sutta-pitaka 經藏에 관한 각각의 주석들이 있다. 세 번째의 Abhidhamma-atthakatha 論註釋은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즉 Dhammasangani 法聚論에 관한 註釋인 Atthasalini 義卓越論, Vibhanga 分別論에 관한 註釋인 Sammohavinodani 除癡論, 그리고 Kathavatthu 論事, Puggalapannatti 人施設, Dhatukatha 界說, Yamaka 雙對, Patthana 發趣에 관한 註釋인 Pancappakasanatthakatha 五論註解가 현존한다.
셋째, 띠까(Tika 疏)는 삼장의 주석서에 관해 씌어진 주석의 주석이다. 이러한 삼장보다 다른 성전에 관해 저술된 주석서도 또한 띠까로 불린다. 월폴라 라훌라에 의하면, '띠까(tika)'라는 술어는 산스크리트의 영향으로 서기 10세기 혹은 11세기경 폴로나루워(Polonnaruva) 시기 중에 유행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아난다(Ananda)의 물라띠까(Mulatika 大疏)가 최초의 띠까였다. 이것은 서기 10-11세기에 씌어졌다. 아난다는 팔리 문법서 루빠싯디(Rupasiddhi)의 저자 붓다삐야(Buddhappiya)의 스승이었다. 서기 약 12세기 중엽에 씌어진 목갈라야나(Moggallayana)의 저자는 붓다삐야의 루빠싯디를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아난다를 서기 10세기 혹은 11세기 어딘가에 놓더라도 크게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띠까 문헌의 시작은 대략적으로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의 시기로 한계를 정할 수 있다. 이 시기 이전의 삼장이 아닌 모든 작품들은 포괄적인 술어 앗타까타의 밑에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핫사밧투-앗타까타(Sahassavatthu-Atthakatha)라는 문헌에 대한 기술은 이것이 최소한 서기 9세기보다 이전 시기의 것으로 본다.
이와 같이 띠까 문헌은 삼장-주석서와 비정전(非正典)의 저술 모두에 관해 씌어진 주석서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대부분은 아직까지 싱할라 문자로 기록된 패엽의 형태로 남아 있다. 몇몇 정전의 띠까들은 비록 12세기에 속한 것이지만 오늘날 손에 넣을 수 없는 초기의 자료에서 발췌한 매우 가치 있는 정보를 담고 있다. 그것은 비숫디막가(Visuddhimagga 淸淨道論)에 관한 것을 포함하여 모두 11개의 띠까로 이루어져 있다.[12]
비정전의 띠까들은 목록으로 만들기에는 수량이 너무나 많다. 그것들 중 몇몇은 Moggallanavyakarana에 관한 Sangharakkhita 스님이 지은 Susaddasiddhi와 Saratthasalini, Vinayavinicchaya에 관한 Vacissara 스님이 지은 Yogavinicchaya, 그리고 Padasadhana에 관한 Rahula Vacissara 스님이 지은 Buddhippasadani 등이 있다. 이러한 비정전의 띠까에 관해 지적하는 또 다른 견해는 이것들은 주석서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고 원전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띠까(Tika 疏)가 아니고 앗타까타(Atthakatha 註)들이라는 것이다.
넷째, 세속적 주제에 관한 역사적 문법적 그리고 다른 작품들과 약 5세기부터 현재까지 수세기 동안 학자들에 의해 저술되어 온 역사와 문법 그리고 관련된 주제에 관한 기본적인 텍스트에 대한 주석서들이다. 디빠방사(Dipavamsa 島史), 마하방사(Mahavamsa 大史), 밀린다빵하(Milindapanha 彌蘭陀問經), 비숫디막가(Visuddhimagga 淸淨道論)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