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양천(陽川)은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일대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 때의 재차파의현(齊次巴衣縣)이었으며, 신라 경덕왕 때 공암현(孔巖縣)으로 고쳤으며 율진군(栗津郡)의 영현이 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양천현(陽川縣)으로 개칭되어 현령을 두었으며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1896년(고종 33)에 경기도 양천군(陽川郡)으로 개편되었으나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경기도 김포군(金浦郡)에 흡수되었고, 1979년 양천군 관할이었던 양동면과 양서면이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었다.
성씨의 역사
양천최씨(陽川崔氏) 시조는 최원(崔遠)으로, 고려시대 봉선대부(奉善大夫)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냈다. 나라에 많은 공을 세워 양천백(陽川伯)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양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분적종 및 분파
양천최씨는 경주최씨(慶州崔氏)에서 분적한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시조 최순작(崔純爵)을 파조로 세계를 이어가고 있다.
보령파(保寧派), 찰방공파(察訪公派), 현령공파(縣令公派), 제학공파(提學公派), 명천부사공파(明川府使公派)
주요 세거지
경기도 개풍군 북면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경상남도 합천군 청덕면 대부리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차동
충청남도 천안군 성환면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양천최씨는 2,205가구 총 6,914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