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족보에 선조의 휘(이름)를 올려 조상을 모멸해서는 안 됩니다.
2014년 갑오년을 맞이하여 일가 여러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새해에는 세계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 속에 우리의 살림살이도 좀 더 나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일가님들께서도 가일층 더욱 잘 사시는 한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를 추구하며 많은 부를 가져왔지만 외환위기, 금융위기,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복지를 갈망하게 되었고, 최근에 창조경제 화두 속에 인문학적 가치를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문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에 비중 있게 투자하고 있습니다. 과거 인문학적 소양으로 우리는 효 문화를 중시하며 살아왔습니다. 효의 표징으로 선조의 유훈을 기리고 기일을 지켜 제사로 경모하며 그 휘를 받들어 족보를 모셨습니다. 성경의 창세기도 족보를 언급하리만치 조상을 경모하는 것은 인간의 계율이 되었습니다. 효 문화의 대미(大尾)는 족보이며 족보는 신성한 사실의 기록이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경건해야 할 함평이씨 족보는 그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 내용은 족보평고와 족보사실록에 상세히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 함리의 시조는 역사적 진실과 논리적 사실로 함풍부원군 이광봉 祖임이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본관은 계유초보서문에 우리는 함풍이씨 라고 밝혔고 무진보 원본표지에도 함풍이씨 족보라고 적혀져 본관이 함풍이씨 임을 명백히 했습니다. 인관의 후손 종지의 손녀사위 고봉 기대승의 부인 묘비도 함풍으로 기록되어있고, 기성군 이긍후손의 30%정도가 호적이 함풍으로 기재되었고, 인문조도 무진보에 광봉을 선대로 했다고 기록되었으니, 인관, 인검, 인문은 광봉 祖 후손입니다. 인원, 인계 후손에도 광봉의 후손의 흔적이 사마방목, 방목열기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또한 죽음공 현손 諱익경, 죽곡공 5대손 諱신께서는 효우공유인에게 꾸짖었고, 이사직 재종숙부 諱호, 낭곡공 6대손 諱사격, 죽음공 현손인 諱사천, 諱사창, 諱사윤 등 이분들도 족보의 부당성을 성토했고 효우공의 이운복, 이명룡, 그 외 이인옥, 이인립, 이신수 등과, 1980년 대에 이기범, 이명헌, 이내범, 이명범, 이강수, 이수범, 이시행 등 많은 족인들이 성토했습니다.이분들은 인원, 인관, 인검, 인계, 인문 조의 후손들입니다.
이러함에도 1688년대까지 함풍부원군의 군호(君號)으로 함풍을 본관으로 한 함평이씨가 갑자기 함평을 본관으로 한다고 변경한 원인은 장양공 이종생이 세조 13년에 최부의 묘갈명에 함평군이라 명명함에 기인하며, 이에 1742년 임술보표지와 내용에 함평이씨 라고 처음으로 기록했습니다. 또한 이종생을 함평이씨 중시조로 한 장양공파는 함평군 파보를 1957년부터 발행해서 국립도서관에 소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 함풍이씨들은 이 세도가들의 피해자가 된 것입니다.
시조부분에 대하여는 칠실 묘지명에 영의정 정호대감이 함평이씨는 고려밀직사사 이광봉이 시조다. 라고 언급했고 족보사실록에도 시조는 부원군 이광봉 祖라고 기록했으며, 1938년에 송규헌이 쓴 기성군 신도비에 이긍은 함풍부원군을 시조로 한다. 라고 명명했습니다. 이러함에도 함평이씨측은 다른 문중도 이렇게 잘못된 족보를 갖고 있다고 에둘러 변명을 하면서 잘못된 족보를 합리화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평문씨도 잘못된 족보를 전 문교부장관 문홍주씨가 수정했고, 경주최씨는 시조 최사달에서 최치원으로 바로 바로 잡았으며, 광산김씨도 보체를 바르게 수정했습니다.
위처럼 신성한 족보를 올바로 수정한 예와 같이 우리도 족보를 바르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함평이씨족보에 우리선조의 휘(이름)를 올려 조상을 모멸해서는 아니 됩니다. 이제는 우리의 정체성을 바르게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이는 현시대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종사발전을 위한 문중회의를 의견수렴을 거쳐 3월중이나 4월초에 갖고자 하오니 각 파종회 전, 임직 임원여러분은 공사다망하시더라도 좋은 의견 개진하여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2014년 1월 일
함풍이씨 대종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