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뚝이의원 입구에 적힌 재활 클리닉이란 말은 낯설다. 정형외과나 물리치료 센터가 아닌데 재활이라니. 하지만 ‘장애자를 신체적ㆍ정신적으로 가능한 최대한도까지 정상적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학문. 의학의 한 분야’라는 재활의학의 정의를 생각하면 소화기나 순환기, 내분비계 이상도 몸에 생긴 장애니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이 병원의 치료법은 약과 주사가 아니라 건강한 습관. 내 몸에 생긴 병은 건강을 갈망하는 신호며, 사람의 몸은 충분히 스스로 이겨낼 힘이 있다고 강조하는 오뚝이의원 신우섭 원장을 만났다.
편집부가 독자에게 ...
장바구니가 가벼워졌어요 그동안 아이의 상차림은 단순했습니다. ‘이 정도면 좋은 엄마겠지?’ 라며 자신을 위로했지요. 분명 건강한 식단은 아닌데, 노력하기 귀찮아 ‘육식 공룡’ 이라며 자녀를탓하기 일쑤였습니다. 오뚝이의원 신우섭 원장을 만나고 집에 오는 길의 장바구니는 달랐습니다. 두부와 콩나물, 연근, 가지, 호박을 담았습니다. 리포터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독자 여러분이 계실 겁니다. 가족의 건강을 위한 알토란 같은 이야기, 테마 인터뷰에 담았으니 놓치지 마세요.
_ 김지민 리포터 |
약사님, 죄송합니다
일반 병원에 가면 검사 결과 확인이나 문진 뒤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향한다. 진료 시간이 10분을 넘지 않는다. 신우섭(45) 원장의 진료실 풍경은 생경하다. 오뚝이의원 환자들은 진료실에 한번 들어서면 나올 줄 모른다.
열린 문틈으로 듣자니 “안색이 좋아졌다. 앞으로 좀더 힘쓰자”는 격려의 말이 전부다. 한참 뒤 나온 환자는 병원 안쪽에 자리한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느 병원과 사뭇 다른 모습.
“저희 병원과 함께 있는 약국 약사님께 죄송하죠. 오뚝이의원엔 처방전이 없으니까요.”
신 원장은 처방전 발행 대신 환자가 건강한 식습관과 생활 습관을 꾸준히 이어가도록 이끄는 조력자라고 강조한다. 신 원장의 책상에는 약봉지가 많다. 장기간 약을 복용하던 환자가 약을 두고 건강을 찾겠다고 선언한 증거물이다. 그 약봉지를 보며 신 원장도, 환자도 약에 의존하지 않고 좋은 습관으로 건강을 찾겠다는 결심을 다진다.
유전? 아니 엄마 입맛이 문제
100세 시대, 장수하는 비법이 어디에 있을까? 신 원장은 “60세 이상인 분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자연식과 계절식을 가까이하고 살어요. 지금과 비교해서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각종 첨가물이 든 음식을 먹을 일은 적었죠. 그때의 식습관으로 만들어진 면역력과 체력으로 장수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이 생긴 셈이에요.”
그는 ‘유전’ 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하다. 엄마가 비만이면 자녀들도 비만이 되는 경우가 많고, 부모가 당뇨를 앓으면 자녀가 당뇨일 확률이 높다는 데 신 원장은 반기를 든다.
“유전적 원인이라면 언제부터 유전병이 시작됐을까요? 할머니? 증조할머니?” 그는 엄마의 입맛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자녀들의 기호는 엄마의 입맛에 좌우된다는 게 신 원장의 지론. 식생활이 건강하지 않은 엄마에게 병이 생기면 자녀도 같은 병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나쁜 증세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자녀가 잠재적 환자로 살아갈 수 있기에 엄마의 밥상은 중요하다.
“특정 질병의 원인이 유전이라면 치료 방법이 없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생활 습관을 바꾸면 내 몸을 괴롭히던 질병이 사라지는 것을 볼 때 유전이 원인이라는 말은 옳지 않아요.”
지금은 편식할 때
신 원장의 말을 듣다 보니 틀린 말은 아닌데 맘이 편치 않다. 의과대학을 나온 의사의 의학적 지식이라 하기엔 일반적인 상식과 달라도 아주 다르다. 그가 질병과 치료에 대해 남다른 소신을 밝히는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는 공대에 진학하고 싶었어요. 가고 싶은 대학에 낙방하고 아무 생각 없이 의예과에 입학했지요.”
좋은 의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품고 의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본태성 질환’이란 용어와 만나며 도무지 풀리지 않은 의문이 생겼다. 환자에게 병의 원인을 알려주지 못하면서 증상만 완화하는 약을 처방하는 의사의 역할에 회의가 들었다. 군의관으로 복무를 마치고 의사 가운을 벗었다. 때마침 시작된 벤처 붐에 편승해 전자 처방전 사업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실패. 생계를 위해 다시 병원에 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 ‘모든 병의 원인은 음식에 있다’ 는 원리를 깨닫는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음식과 병에 관한 책을 섭렵했어요. 공부하다 보니 ‘모든 병의 원인은 음식에 있다’는 맥락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환자들을 대하기에 전에 자신의 몸에 그 원리를 적용했다.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고 식후 담배를 즐기던 80kg의 거구 의사는 곧 담배를 끊고 자판기 커피와도 이별한다.
육식을 줄이면서 그동안 거들떠보지 않던 현미밥과 채소를 먹으니, 체중이 줄면서 찌뿌듯하던 아침 기상도 거뜬해졌다.
신 원장은 환자와 지인들에게 ‘편식’을 권한다. 첨가물과 가공식품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건강하고 신선한 음식을 까다롭게 골라 먹어야 건강을 담보할 수 있다며 그만의 편식 철학을 강조한다.
밥심은 스트레스도 이긴다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생기는지, 몸이 약하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취약한지 스트레스와 질병의 상관관계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신 원장은 건강하면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한다. 취미 생활이나 여가 활동으로 잠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보다 이를 이겨낼 수 있는 건강한 몸 만들기가 우선이라고 말한다.
신 원장을 찾는 환자들은 저마다 병명이 다르다. 하지만 그의 처방은 하나. 건강한 혈액순환과 장운동으로 체온을 올리고, 면역성을 키우는 것. 그 중심에 건강한 음식이 있고, 정점은 현미밥이다.
인터뷰 말미 신 원장과 함께 병원의 식당을 찾았다. 흑미와 콩을 섞은 현미밥과 다양한 채소 반찬, 뭇국으로 차린 뷔페식당이다. 가장 놀라운 건 신 원장의 접시에 담은 밥의 양. 접시의 반을 밥으로 채운다. 다소 짭짤한 반찬도 의외다. 요즘 건강 밥상의 트렌드인 ‘반찬은 싱겁게 많이 밥은 조금’과 반하는 식단이다.
신 원장은 “흰밥은 영양적으로 균형 잡힌 주식의 역할을 할 수 없다”며 현미 섭취를 권한다. 현미와 흰쌀을 동시에 물에 담그면 현미는 싹이 나지만 흰쌀은 불다가 썩는데, 이것만 봐도 현미가 생명력 있는 음식임을 알 수 있다는 것.
“우리 몸의 소화기관은 한두 가지 음식이 들어올 때 가장 힘 있는 소화작용을 합니다. 영양이 풍부한 밥을 중심으로 간이 맞는 반찬 한두 가지에 신선한 채소를 곁들이면 고기 한 점 없어도 충분한 영양 섭취가 가능하죠. 간이 맞는 음식을 먹으면 속이 편안하고 든든해 군것질 생각도 줍니다.”
자녀의 10년 뒤 건강, 엄마에게 달렸다
“아이들이 식습관은 100% 엄마의 책임입니다. 아이가 현미밥이나 채소를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방법이 없다는 말은 엄마의 변명일 뿐이죠.”
사춘기 자녀가 둘인 신 원장. 한참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 식품을 좋아할 나이다.
신 원장의 식탁이 궁금하다.
“병원 식단과 같아요. 아이들은 먹거나 안 먹거나 선택해야죠.”
학교 급식이나 밖에서 사 먹는 것 까지 간섭하고 관리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집에서 먹는 밥은 엄마가 차린 식단이어야 한다. 습관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다. 하지만 아이의 10년 뒤 건강을 생각한다면 엄마의 결단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원장은 강조한다.
“처음엔 아이가 먹을 것을 선택할 기회를 주되, 자녀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세요. 물론 엄마와 아빠는 같은 밥상에서 건강한 식사 실천을 보여줘야 합니다.”
사춘기에 류머티즘성관절염과 고혈압, 당뇨 때문에 병원을 방문하는 청소년이 많아졌단다. 육류와 당분의 지나친 섭취로 성장만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노화까지 빨리 진행되는 결과라고.
“엄마의 건강한 밥상이 가족을 살리는 가장 좋은 영양제고 예방약이며 치료제임을 잊지 마세요.”
신 원장은 엄마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고 바삐 진료실로 향한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