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전쟁 이전 38도선에서이 무력충돌 옹진전투 참여한 이등중사 이지환 ※
저희 아버님(고 이지환)은 제주농업중학교(6년제) 재학중 학련과 민예청의 대립하면서 4.3사건 와중에 1948년말 제주주둔 보병 제2연대 신병교육대 가입대(연대본부는 제주농업중학교에 있었고, 신병교육대는 제주북국민학교에 있었음)하여 1949년 3월 10일 보병 제2연대 제12기생으로 입대하게되어 대한민국 정규육군(군번 1205930)이 되었다. 남제주군 대정면 상모리병사에서 교육훈련을 받음. 1949년 7월 1일자로 제2대대 제7중대로 배치되었으며 제주읍에 있는 제주비행장으로 이동하여 4.3사건 진압에 투입되었다. 7월 15일자로 종군기장일성을 수여받았다. 제7중대는 제1대대의 제3중대로 개편되었다. 8월 13일을 기해 제2연대는 수송선을 타고 제주를 떠나 인천항을 거쳐 황해도 옹진의 부포항에 닻을 내렸다. 제3중대 제1소대는 전방인 녹달산고지에 배치하였다. 1949년 9월 1일자로 일등병으로 승진하여 초년병 신세를 면하였다. 1949년 10월 14일 새벽을 기해 북한인민군 소대병력이 녹달산과 그 곳에 인접한 은파산을 공격하였다. 이것이 바로 제3차 옹진전투(1959.10.14-11.15)이다. 이 전투에서 동기생 김종하 일병은 좌측가슴에 적의 기관포탄을 맞고도 대한민국만세를 부르며 장렬하게 죽었다고 전해진다. 김창언 일병도 부상을 당했으며, 이지환일병은 북한인민군과 접전중에 오른쪽 발에 총상(우측발관통총상)을 입어 야전병원에 입원하여, 대전에 있는 제1육군병원으로 이송하여 치료(입원일 1949.10.16- 퇴원일 1949.12.30)받았음.
□ 제주도지구공비토벌(49.03.10-49.05.15)참여하여 2연대(연대장 함병선)를 거쳐 1949년 3.8선 황해옹진지구 은파산전투(49.08.13-49.11.15)에 참여하여 10월 16일에 북한군과 접전중에 발에 총상(우측발관통총상)입어 야전병원에서 치료후 대전에 있는 제1육군병원으로 이송하여 치료(1949.10.16 입원 - 1949.12.30 퇴원)받은 후 1950년 6월 15일 명예제대(계급 이등중사)를 했습니다. 6사단 2연대 훈격으로 보통상이기장(1952.06.15)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1948.08.15 - 1955.06.30 사이에 발생한 전투 중 "참전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 별표의 전투 2,3번에 해당되어 참전유공자로서 선순위유족 1인에게 박근혜대통령 명의 "국가유공자증서"교부해 받았습니다. 제주국립호국원(2015년 개원)이장도 하게 되어 이를 가페엘범에 올립니다.
* 옹진지구 작전부대 전투지역은 1948년 11월 1일~1950년 6월 25일까지 벌어진 전투를 말한다.
* 황해도 옹진지구 은파산 전투(1949. 5. 21 ~ 1949. 11. 15)
이 전투는 1949년 북한군이 제3차 옹진지구 무력침공 사건(은파산전투)을 말한다.
1949년 10월 14일 북한은 옹진반도상의 은파산에 대해 대규모의 군사공격을 감행했다.1) 이 전투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당시 사상자 숫자를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정보보고서는 국군의 사 상자수를 총330명으로 확인하고 있으며, 북한군의 사망자수를 400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2)
제2연대는 옹진 은파산전투(49.8.13-11.15)를 끝마치고 서울로 복귀하여 1950.6.20 강원도 홍천으로 이동하여 6사단에 예속되었다.
각주
1) KMAG G-2 Periodic Report No. 198; KMAG G-3 Operations Report, No. 17.
2) G-3 Operations Report Nos. 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