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화상17-1-1.zip
惠庵 門人 淸峯 淸韻 선사 의역 강설
2008.5.18. 셋쩨주말 법문.
만법하수 심하이 하여 하노경용 심경의 리오 나~
심왕본자 절다지 이니 지자단명 무학지 니라 나~
만법이 어찌 다를(殊) 것이며 마음이 어찌 달라
어찌 애써 경에서 바름을 찾으려 하리요.
心王은 본래 절로 많이 앎이(多知) 끊긴 것이니
지혜로운 자는 다만 경에서 배울 곳이 없음에 밝으니라
시중하여 “고인이 이르기를 만법이 어찌 다를(殊) 것이며,
마음이 어찌 다르리오. 어찌 애써 경에서 바름을 찾으려 하리요.
心王은 본래 절로 많이 앎이(多知) 끊긴 것이라 지혜로운 자는 다만 경에서 배울 곳이 없음에 밝으니라” 하였으니 그러한 즉 형제들이여! 경의 가르침을 봄을 쓰지 말며, 불도를 수행함(行道)에 예배함을 쓰지 말며, 몸을 태우고 뼈를 달굼(煉骨)을 쓰지 말라.
설사 삼세제불의 십이분교를 해득하여 사자좌에 걸터앉아 거침없이 흐르는 물처럼 유창하게 말을(懸河之辯) 쏟아 놓거나, 사람을 상대로 묘한법을 구름 같고 비같이 널리 설하여 하늘에서 꽃이 땅에 떨어지고 땅이 황금으로 변하고 돌 무리가 머리를 끄덕임을 깊이 느끼고(感得)
백천삼매의 한량없는 묘한 뜻을 해득하더라도 한생각 샘이없는 일(業:무루업)을 닦음만 같지 못하니라.
또한 총기가 좋고 영민(聰明)해도 능히 일대사(業)를 대적치 못하며 마른지혜(乾慧:쓸모없는 알음알이)가 생사를 면하지 못하므로 고인이 이르기를 ‘만약 한 터럭만큼의 감정에서 생기는 사념(情念)이라도 다하지(忘) 못하면 인천의 과보에 의거하여 얽혀 매임(繫縛)을 면하지 못하여 모두가 마땅히 굴러 떨어진다’ 하니라.
보지 못하는가? 천경 초남선사가 말하기를 ‘모든 자가 설사 삼세부처님의 가르침을 해득하여 병의 물을 쏟는 것과 같거나 백천삼매를 얻었다 할지라도 한 생각 샘이 없는 도를 닦아 인천의 인과에 묶이고 얽힘(繫絆)을 면함만 같지 못하다’ 하였으니 만약 모든형제가 다른때 후일 종지의 가르침을 널리 펴(播揚)되 낱낱을 자기의 흉금으로 쫓아 흘러 내어(流出)야 하늘도 덮고 땅도 덮어 부딪치는 곳마다 그대로 드러내(現成)리라.” 하였다.
시중하여 이르기를 “너희들 모든 사람이 나로 쫓아 무엇을 구하고 찾으려 하는가? 너희가 만약 성불코자 한다면 일체의 불법은 모두가 배움을 쓰지 않나니 오직 구함이 없고 집착 할 것이 없음을 배우는 것이니, 구함 없은즉 마음(생각)이 나지 않고 집착 없은즉 멸하지 않은 마음이니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이 곧 이 부처이거늘 너희들은 무엇 때문에 알지 못하는가? 마음이 곧 이 부처이며 부처가 곧 이 마음이거늘 부처를 가지고 부처를 찾아 강서와 호남을 또 이러히 가는가? 한가지 의심을 끝내면 한가지 의심으로 가게 되니 다른 출입구가 되는 긴요한 곳(門戶)을 찾아 구하여 달리기(馳走)를 급하고 바쁘게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를 쫓음과 같으니 어느 때에나 상응함을 얻어 가리요.
노승이 오십년전에 있는 곳마다 다만 한 마리 물소(마음)를 보아 고삐를 굳게 잡고서 한번 떨어진 풀로 돌아가게 됨에 재빨리 코를 잡아당겨 돌이켜 남의 싹(苗稼)을 일찍이 범하지 않고 조복이 이미 오래되어 지금은 화택을 떠난 경지(露地白牛)로 고쳐(變作)져 항상 면전에 있으면서 종일토록 아득히 먼(逈逈) 땅에 놓아(露)두어서 어리석은 것 같으나 움직이지 않는것 같아서 몸과 마음이 토목처럼 듣고 봄에 눈이 멀고 귀가 먼것 같노라.
너희 모든 사람이 진실로 도력이 충만치 못할진데 고삐를 굳게 잡고 하여금 남의 싹(苗稼)을 범하지 않도록 할지언정 자기의 일이 명백하지 못함은 염려하지 말지니라”하였다.
시중하여 이르기를 “무릇 참선으로 배우는일(參學事)이란 어떠한 것인가? 參學이란 것은 묻는말을 배움이 필요하지 않음이 이 참학이며, 수다스러운 말 필요치 않음이 是 참학이며. 번갈아서 하는 말(代語)이 불필요함이 이 참학이며, 별다른 말을 배움이 불필요함이 이 참학이며, 경의 가르침을 봄이 불필요함이 이 참학이며, 논리를 만들거나 제거해 없앰(討?)이 불필요함이 이 참학이며, 여러곳을 찾아 돌아다님(遊州獵縣)이 불필요함이 이 참학이며, 시끄러움을 피하여 고요함을 구함이 불필요함이 이 참학이며, 또한 이 마음을 들어 밖으로 비추거나 마음을 맑혀 묵묵히 비춤이 필요치 않음이 이 참학이니라.
만약 이와 같은 등의 일에 그대가 칠통 팔달하더라도 참학사에는 마침내 관계를 갖음(交涉)이 없으므로 이르기를 ‘총명이 이일(業)을 대적치 못하며 건지혜가 생사를 면하지 못한다’ 하니라.
만약에 진실한 참학자라면 참구함에 모름지기 실답게 궁구하여야 하며 깨달음에 모름지기 실다운 깨침으로 비로소 증득하여야 하니라.
자! 어떤 것이 이 실참 실오인가? 二十六時(넘칠정도) 가운데 행주좌와(四威儀) 안에 생사대사를 생각하되 생각으로 계교함(心意識)을 여의고 범부와 성인을 벗어날 길을 참구하며 무심무위로써 공부(學)하되 면밀히 가꿔(培養)서 항상(常常) 무념으로 항상 어둡지(?) 않아야 마침내 의지하여 도움(依倚)이 없이 그윽함(冥然)에 이르러 자연히 도에 합하리라. 보지 못하는가? 고인이 이르기를 ‘무심하여야 바야흐로 본래의 사람을 보리라’ 하였느니라”하였다.
시중하여 이르기를 “모든 형제여 이제 말세 운(말법시대)에 當하여서 현인과 성인은 숨어 가려지고 邪法은 더욱 치성하며 불법은 쇄약하고 피폐하여 많은 사람들은 게으르고 느슨해(懈怠)졌도다. 밖을 향해 달려 구하며 사방의 형제들이 이쪽에서 여름을 지내고 저쪽에서 겨울을 지내며, 또 다시 북쪽 오대산으로 가서 문수보살에게 예배하고, 남쪽 낙가산으로 가서 관음보살에게 예배하며, 서쪽 아미산으로 가서 보현보살에게 예배하고, 동쪽 금강산으로 가서 법기보살에게 예배하도다.
이와 같이 분주히 떠돌아다니는 모양(派派浪走)이 한갓 신심으로 베푼 보시만 소비하고 헛되이 세월(光陰)만 허비하며 수행한다고 돌아다님(行脚)을 삼나니 이와 같은 무리는 곧바로 방망이를 휘둘러 달을 침과 같거늘 본분사에 무슨 관계가 있으리오. (交涉)
만약 이러히 行脚한다 하는 이름만 있는 僧(비구:수행인)은 도무지 실다운 일이 없어 행각의 일을 물으면 다만 눈만 껌벅이며 입을 열지 못하고 다만 성품을 취하려 시간만 보내노라.
설사 이치를 깨친 사람이 있더라도 하나의 반은 깨달은 가운데의 법칙을 알지 못함이 있으며, 이치에 들어가는 문에 비뚤어진 배움(枉學)으로 많이 듣기만 하여 내 소견(我見)만 늘고 길어져(增長)서는 문득 이르기를 ‘영원히 세속의 이익을 구함에서 벗어났다’ 하며 또 어떤 수행인(衲衣)은 한가히 空에 머물러 있으면서 산과 물가를 돌아다며 몸과 시간과 먹는 것을 절제하며 가볍고 소홀하게(?軟)여겨 위에서 흘러옴(법맥)을 경솔하고 소홀히 여겨 하여금 끝까지(致使) 마음에 흐름(心漏:유위의 상념)을 그쳐 다하지 못하며 이치를 지혜(理智)로써 밝히지 못하고 부질없이(空) 늙음에 이르도록 성취하지 못하고 가벼운 복덕 만 짓다가 다른날(死後) 염라대왕이 밥값을 계산 할 때에 노승이 너희에게 설하여 주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 너희가 만약 듣지 못했다면 나로서도 어찌 하지 못할 뿐이로다.
공도노무성 작박복덕업 하다 타일염왕이 타산반전시 에는
막도노승이 불여니설여 하라 불청오미여 지하야이의 로다 나~
부질없이(空) 늙음에 이르도록 성취하지 못하고 가벼운 복덕 만 짓다가
다른날(死後) 염라대왕이 밥값을 계산 할 때에
노승이 설하여 주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
너희가 만약 듣지 못했다면 나로서도 어찌 하지 못할 뿐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