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시 17:1-3)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만일 다윗이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항상 간구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서둘러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억울한 정죄를 당하기도 하고, 무자비한 박해를 당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할 때,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며 호소하였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1절에서, 다윗은 세 번이나 하나님께 그의 소리를 들어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예수님께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라고, 기도하라는 말을 세 번이나 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계속해야 합니다. 반복해서 해야 합니다. 응답받을 때까지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이 계속 반복하여 기도했다고 하는 것은 몹시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루터는 이 구절에 대해서, “세 번이나 반복되는 이 동사들로 볼 때, 시편 기자가 감정에 복받쳐, 열정을 다해서, 눈물로 기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이 말은 “정직함을 들으소서”, “나의 진실을 변호하여 주십시오.”, “이 몸의 죄없음을 밝혀주소서”라는 의미입니다.
마음이 상한 자는 위대한 심판주께서 귀를 여시고, 그의 목소리를 들어 주실 것을 간절히 바랬습니다. 주님이 들으시면,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리를 들으실 수 없거나, 들으려 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진정 비참한 상태에 빠질 것입니다.
우리는 올바르고 정직한 길을 걸으면서,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로우신 재판장께서 결코 정직한 자를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소리를 항상 들어 주십니다.
히스기야 왕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자기의 진실함과 선함을 내세우면서,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사 38:3).
우리에게 잘못이 있을 경우에는 어떠해야 합니까? 우리에게 잘못이 있을 때에도 우리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큰 특권입니다.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이 말은 “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 주십시오”, “이토록 울부짖는 소리 모르는 체 마옵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이 구절은 간구하는 자가 얼마나 열심히, 간절하게 간구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그저 입으로만 중얼거리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강청하는 기도입니다.
누가 이 부르짖음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마음으로, 애통하며 부르짖는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눈물의 기도는 호소력이 있습니다.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기도를 계속 반복하여 하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기도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함이 없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십니다.
거짓된 입술은 사람에게도 가증스러운데, 하물며 하나님께는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2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는 재판할 때나 길이나 무게나 양을 잴 때 불의를 행하지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모든 규례와 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35-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시 9:4,7-8)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문제를 공평하게 판단해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공평하게 판단해 주실 것입니다.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우리는 공평하게 판단해주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여기에 “시험”과 “감찰”이라는 말은 금속을 테스트하고, 불로 제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내 마음을 샅샅이 뒤져보시고 밤새도록 심문하고 불에 달구어 걸러보셔도 무엇 하나 나쁜 것이 내 입에서 나왔사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주께서는 나의 마음을 시험하여 보시고, 밤새도록 심문하시며 단련시켜 보셨지만 내 잘못을 찾지 못하셨습니다. 내가 입으로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C.S. 루이스는 “‘내가 옳다(I am right)’라는 확신과 ‘나는 의로운(righteous) 사람, 선한 사람이다’라는 확신을 구분해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죄 없는 의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사람들이 자기를 반역죄인으로 보고 있는 그 점에서 ‘자신은 잘못이 없다, 자신은 옳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한 사람의 인격에 대한 말이 아니라 어떤 특정 사안, 특정 상황에 대한 말인 것입니다. 이 일에서, 이 사건에서 다윗은 자신이 무고하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완전하게 깨끗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어떤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완전하게 깨끗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정직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의 말이나 우리의 행동이나 어느 면에서나, 정직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속임이 없어야 합니다. 위선이 없어야 합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시 11:7)라고 말했습니다.
정직한 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정직한 자의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시 24:3-4)라고 말했습니다.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가 하나님의 거룩한 산,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점이나 흠이나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니엘 6:5절을 보면,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아무 그릇됨이 없고, 아무 허물도 없는 깨끗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했습니다.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우리의 입으로 범죄하지 않으려면, 결심하고 또 결심해야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가 혀를 재갈 물릴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슬로 혀를 제어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혀를 길들일 자가 없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입으로 범죄하지 않기 위하여, 결심하고 또 결심해야 합니다.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라는 말은 “내 입에서 무슨 잘못을 발견하셨습니까?”, “무엇 하나 나쁜 것이 내 입에서 나왔사옵니까?”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하나님께서, 밤에 자기에게 오셔서 자기 마음을 다 살펴보시고 아침에는 자기의 의로움을 입증해 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15절을 보면,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나는 떳떳하게 주님의 얼굴을 뵙겠습니다. 깨어나서 주님의 모습 뵈올 때에 주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라는 말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거짓됨이 있다면 어떻게 우리 중심을 꿰뚫어보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솔로몬은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잠 15:8,29)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기도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의 맛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도를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밤새워 기도하다가, 아침에 눈을 뜰 때에,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 기도를 체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지 않습니까?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 앞에 나와 거짓됨이 없이, 정직하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공평하게 판단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맛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