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시인
움직이면 외로움의 은빛 날에 내 몸이 베인다. 그 무게는 없는 듯 안으로 감당하며 살아간다. 외로움은 생명의 그늘인가. 누구도 제외되는 법이 없는가.
외로움은 가는 비처럼 오기도 하고, 구름처럼 누르기도 하고, 때론 천둥처럼 소름이 돋게도 한다.
외로움은 온 몸을 조여 통증까지 느끼게 할 때도 있다.
스스로 그 날에 베이지 않으려고 꼭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한다. 아니면 혼자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영국인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의 흑백사진은 거의 모두 홀로 선 나무들이다. 눈밭, 벌판, 절벽에 홀로 서서 자연의 골수 깊은 고통을 견디며 지극히 차가운 아름다움을 연출해 낸다. 외로움이 아름다움으로, 빛으로, 예술의 극치로 변화하는 것은 나무 내면의 고통이 승화된 결과일 것이다
이 시대의 외로움은 반드시 홀로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배는 부른데 마음은 굶주리는 정신적 허기가 핵심이다.
소망이 빗나가고 관계는 무너지고 자신은 시선 밖에 머문다고 생각될 때
우울은 깊어지고, 외로움은 질병 수준으로 추락한다.
문제는 그런 문제가 없는 사람에게도 허기는 있다.
이 외로움의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지 않으면 우리는 캄캄한 어둠을 피할 수가 없다.
사람 내부에 외로움이 하나의 장기처럼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를 피우는 것과 같다고 한다.
'나는 잘못되고 있다는 고독의 경고음'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사람과 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
자신의 둘레를 정확하게 이해해서 조금도 과다하지 않게 자신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외로움을 인정하는 일이다.
외로움을 녹이는 위로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외로움의 땅이 넓어지면 투시의 눈이 멀고 감각의 촉매가 둔해진다.
외로움이 작아지고 힘을 얻으며 의욕이 팽창하게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다.
자기가 자신을 대접하는 일이 소득이게 하는 …. 할 수 없는 일을 고민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하게 되면 할 수 없는 일도 하게 되지 않을까.
내가 무엇이라도 일을 할 때 운명의 지배를 덜 받는다는 생각을 나는 너무나 오래 해왔었다.
외로움은 이상현상이 아니다.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자연현상과 같이 꽃이 피었다 지고 다시 피는 것이 아닐까.
외로움은 생명을 가진 자들의 육신 그 한 부분이다. 하나의 장기라고 말해 두자. 그러므로 잘 사귀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 노력이 정서적 근육을 다지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신달자 에세이 / 외로움을 녹이는 위로는 없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