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신학화(自神學化: Self-Theologizing)와 자선교학화(自宣敎學化: Self-Missiologizing)가 한국교회의 화두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와 한인세계선교사회(KWMF)가 제6차 세계선교전략회의(2014 NCOWE Ⅵ)를 개최하면서 “한국 자신학화와 자선교학화”라는 표어로, “선교 관점에서 본 한국교회의 위기와 한국 자신학화와 자선교학화 정립”를 주제로 내건 것을 계기로 이 말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주최측에서는 이 주제와 표어에 대해 “선교 130주년을 맞이한 한국 교회와 한국 선교의 위기적 상황을 돌아보면서 한국 자신학화와 자선교학화를 모색함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아가 선교지의 자신학화와 자선교학화를 도움으로 한국교회와 한국선교가 다시 세계선교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반에 ‘신학의 중국화’ 깃발을 든 중국교회
세계선교전략회의 주최측으로부터 통일선교 분야의 발제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어렵지 않게 생각하고 응낙했는데 이어서 “자신학화와 자선교학화의 관점에서 발제를 해 달라”는 주문을 받고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 단어를 처음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랴부랴 잘 아는 선교학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전문서적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자신학화와 자선교학화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갖게 된 다음에는 ‘이거, 새로운 것이 아니지 않아?’ 했습니다.
1960년대 초반, 신학을 공부할 때 ‘한국적 신학’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한국신학계에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구약학 교수 김정준(金正俊)박사님은 “우리대로 교회의 교리며 신조를 한국적인 바탕과 얼에서 정리해야 할 필요”를 자주 강조했습니다.
1963년부터 토착화 문제를 주제로 학술모임이 자주 열렸는데 이럴 때는 수업을 중단하고 모임장소로 가곤 했습니다.
1972년도에 출간된 민경배(閔庚培)교수님의 「한국기독교회사」 마지막 절(節)의 제목은 ”한국적 신학 형성의 모색“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오늘날 포장을 바꾸어서 다시 출시된 것이 자신학화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선교전략회의 현장에서 이런 의견을 말했더니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맞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 생각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20세기 초반에 들어서면서 중국교회는 자립운동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선교사 중심의 선교, 외국 열강의 비호 아래서 실시되는 선교가 한계점에 이르러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 토착운동이 일어났는데 중국교회의 토착운동은 기독교의 중국화, 경제적 자립, 관리(행정)의 중국화, 제도(조직)의 중국화, 그리고 신학의 중국화라는 깃발을 내걸고 진행되었습니다.
이것 역시 ‘자신학화’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토착운동의 성과에 대해서는 별도의 고찰이 필요할 줄로 압니다만 여하튼 이런 깃발을 들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중국교회는 자신학화의 선구자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와 한인세계선교사회는 자신학화와 자선교학화 문제를 계속 확산시켜 나갈 계획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달 말에서 다음 달 초에 걸쳐 세계선교전략회의 후속대회가 열리는데 여기에서는 적용점을 찾는데 주력하고, 11월에 열릴 예정인 한국선교지도자포럼에서도 이 이슈를 다룰 것이고, 내년 2월에도 포럼을 열어 이 문제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모임에서 중국선교 문제가 좀 더 심도 있게 다뤄졌으면 합니다.
아니, 마땅히 그래야할 것입니다.
2014 세계선교전략회의에서 중국 선교에 대한 발제가 들어있지 않은 점이 아쉽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중국선교야 말로 자신학화와 자선교학화의 관점에서 조명될 필요가 절실한 분야입니다.
한국교회는 선교중국의 겸손한 동반자가 되어야 과제를 안고 있는데, 선교의 새로운 강자로 그 위치가 점점 확고해지고 있는 중국교회가 자신학화와 자선교학화에 대한 인식을 갖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서울아시안게임(1986)에의 추억
제17회 인천아시안게임이 이달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열립니다.
이 대회는 한국에서 열리는 세 번째 아시안게임입니다.
28년 전인 1986년에 제10회 서울 아시안게임이 열렸는데 해방 후, 당시 용어로 ‘중공인(中共人)’들이 최초로 대거 한국 땅에 몰려오고, 오성홍기가 쉴 새 없이 서울하늘에 휘날렸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저는 선수촌 기독교관 채플린의 한 사람이었는데 중국 선수나 임원을 만나면 때때로 필담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글〔簡字〕은 좀 알지만 말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세계선교전략회의에서 같은 방을 쓰게 된 선교사 한 분이 “저도 그 때 종교관에서 일했는데 간자를 자유롭게 쓰시는 것을 보고 부러워했습니다.”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간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낯선 글자였는데 저는 일터인 극동방송에서 중국에서 오는 편지를 해독하느라고 간자를 익혔던 것입니다.
저는 그 선교사님에게 “제가 글을 능숙하게 쓰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이 말도 잘할 것이다’ 생각하고 말을 걸어오는 중국인들이 많았지요. 그러면 저는 ‘워 뿌지도 중국화(我不知道中國話)’하고 도망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했고 둘은 마주보고 함께 웃었습니다.
그때 그런 원시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해도 심각한 표정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지금 성령이 가장 강하게 역사하는 나라가 중국이라고 하는데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면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깨달았습니다.
아시안게임에 대한 뉴스를 대할 때마다 그 일이 생각납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인천은 중국과 유난히 가깝고, 중국인들과 선한 이웃으로 살자는 뜻으로 이름을 선린동(善隣洞)으로 정한 곳도 있고 ‘차이나 타운’도 있는 곳입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이 중국 선수단과 임원들, 취재진, 관광객들에게 좋은 전도의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설렘과 두려움을 함께 담아 <웹진 중주> 첫 호를 선보입니다.
기탄없는 의견과 충고를 부탁드립니다.
웹진의 큰 장점 가운데 하나가 쌍방 커뮤니케이션인데 그 장점을 마음껏 활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주신 의견들을 가지치기 가위로 삼아 <웹진 중주>를 더 아름답게 가꾸는데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