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과학철학자·문예철학자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의 의지론은 독일 철학자 쇼펜하워(Schopenhauer, 1788~1860)의 맹목적 삶의지(생의지; 生意志; Wille zum Leben; Will to Life)가 독일 철학자·시인 니체(Nietzsche, 1844~1900)의 권력의지(Wille zur Macht; Will to Power)로 변이할 수 있던 사연의 실마리를 암시해준다.
바슐라르는 《대지와 의지몽상들(La terre et les rêveries de la volonté)》(1948) 제12장 5절에서 다음과 같은 의지론을 제시한다.
“의지는 쇼펜하워의 철학에서처럼 불합리하기는커녕 오히려 의지의 성취결과들에 합리성을 부여한다. 불규칙하게 분포한 여러 산봉우리를 바라보는 의지는 논리적으로 이어지는 산맥을 연상한다. 의지는 적어도 자체의 이미지들을 가지고 자연의 작업에 동참하면서 자연을 이해한다.”
자연을 이해하는 과정은 자연을 관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슐라르는 《공기와 꿈들(L'air et les songes)》(1943) 제1장 제6절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관조능력은 본질적으로 창조력이다. 관조하는 우리는 우리의 내면에서 태어나는 관조의지(觀照意志; volonté de contempler)를 자각하고, 관조의지는 그렇게 태어나자마자 거의 곧바로 우리가 관조하는 대상의 운동에 동참하려는 의지로 변이한다. 그리하여 쇼펜하워의 철학 속에서 경쟁하던 의지와 표상은 경쟁을 중단한다.”
의지와 표상은 협동하면서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바슐라르는 같은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시론(詩論)을 제시한다.
“시(詩)는 의지의 진정한 팬캘리즘(Pancalism; 만유아름다움주의; 범미주의汎美主義; 전미주의全美主義) 활동이다. 시는 아름다움의지(la volonté de beau; the Will to Beauty)를 표현한다.”
쇼펜하워를 괴롭힌 불합리한 맹목적 삶의지(맹생의지盲生意志)는 바슐라르와 더불어 이렇게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詩)를 상상하고 창작하는 예술의지로 변이한다. 바슐라르는 《공기와 꿈들》 제5장 제7절에서 니체의 상승의지를 예시하는 이런 예술의지를 쇼펜하워의 의지와 비교한다.
“예컨대,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자라는 전나무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쇼펜하워는 그 전나무를 관조한다. 그는 그 전나무를 삶의지의 증거로 간주하고 그것을 근거로 삼아 ‘식물과 암벽의 위태로운 공생관계’와 ‘중력에 맞서는 나무의 항쟁’을 설명한다. 니체의 관점에서 그 전나무는 꿋꿋하게 직립하여 더 높게 상승하려는 존재이다. … 니체의 전나무는 … 공중운동상상력(空中運動想像力)의 우주적 벡터이다. 우리가 이 벡터를 매우 구체적으로 활용하면 의지상상력(意志想像力; l'imagination de la volonté)의 두 유형을 구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지는 상상력의 두 유형과 불가분하다’는 사실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두 유형 중 근간의지(根幹意志; la volonté-substance)는 쇼펜하워의 의지이고 권력의지(la volonté-puissance)는 니체의 의지이다. 근간의지는 근저에 머물려는 의지이고 권력의지는 상승하려는 의지이다.”
* 출처: 헬런 짐먼, 《쇼펜하우어 평전: 염인주의자의 인생과 철학》, 354~356쪽
☞ 참조: 바슐라르 생성변증법 물질상상력 시철학 니체 차라투스트라
* 왼쪽부터: 쇼펜하워, 니체, 바슐라르